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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0-09-22
 제목  2000년세계선교대회(목회지도자)-한국 교회 선교와 선교신학 고찰
 주제어키워드  WMS2000 선교신학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10440  추천수  17
분과별세미나 (1-2)





"한국 교회 선교와 선교신학 고찰"







고신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졸업(신학 석사)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졸업(선교학 박사)

피어선신학교(현, 피어선대학교) 학장 역임

고신대학 학장 역임

한국복음주의선교학회 회장 역임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역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장 역임

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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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한국교회는 바야흐로 세계선교에서 막대한 책임을 느끼고 선교에 분발하고 있으며 세계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강한 자의식과 반성를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피선교지 교회가 아니라 선교교회로 부상하였다. 한국교회는 1970년대 후반 세계선교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1999년 말 공식 통계는 145개 국가에 약7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즉 한국교회는 벌써 받는 교회(the receiving church)에서 주는 교회로, the younger church에서 the older church로 발전하였다. 한국는 세계교회사에서 유례없는 성장으로 해외교회에 선망이 된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는 한국교회 성장을 경이적 성장으로 표현하였다. 한국교회 선교역사는 먼저 다른 아시아 나라 교회에 비하여 역사가 짧지만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였고, 선교사 급성장하여 선교사 파송면에서 5대 혹은 6대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도 있다. 본 강의에서 한국교회 선교역사와 선교신학의 흐름을 고찰하고저 한다.



1. 한국 기독교의 선교역사



한국에서 기독교 선교역사는 아시아 나라중에서는 비교적 역사가 짧지만 교회 성장에서는 가장 급성장한 나라이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는 한국에서 기독교 성장을 기적으로 표현하였다.



1) 천주교 선교의 시대

한국이 기독교와 접촉한 것에 대하여는 먼저 역사적으로 확인된 것과 미확인된 역사로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에서 활동한 오윤태 목사님은 저서에서 신라시대 때에 당의 경교가 경주에 들어와서 지금도 불국사의 불교 상징물 속에 기독교 흔적이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였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일부 서구학자들도 경교는 신라를 통하여 일본의 불교와도 접촉하였다는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 학설은 불행하게도 역사적으로 증명할 자료나 역사기록이 전혀 없고 개연성으로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 이미 일본에는 많은 천주교 신자가 있었고, 일본 병사들을 위하여 포르투갈 신부가 한국에 왔지만 그가 한국인들에게 전도하였다는 흔적은 없다. 다만 임진왜란 때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서 천주교로 개종한 자가 있었고 그 중에는 신학을 한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전도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한국이 천주교와 접촉한 것은 이조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혼란속에서 우리사회의 문화와 정치에 대한 개혁의지에서 양반들이 중국에 가서 천주교를 접촉,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들이 받아들인 천주교 신앙은 학문적 차원에서 더 이해되었기 때문에 서학이라고 불리워졌다. 천주실의는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천주실의는 사실 조직신학의 신론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천주교 선교의 전형적인 특징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들어난다. 즉 천주교 선교는 대체적으로 전도의 대상이 상류층인데, 한국에서도 천주교를 받아들인 자들은 양반계급이었다. 따라서 천주교 신앙을 학문적 차원에서 이해하였고 신앙적 차원은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천주교 선교의 장단점을 분석하면 천주교는 들어오면서부터 한국의 유교문화와 충돌이 불가피하였다. 여기서 많은 핍박을 받았다. 이 핍박이 개신교 선교의 문을 여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고 본다. 한국에 들어온 천주교회는 당시 중국에서 오랜 기간의 토착화 논쟁 때문에 제사를 정죄한, 전통문화에 비교적 비타협적인 천주교회였다. 천주교회가 한국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불란서 신부 달레는 그의 조선교회사에서 천주교가 들어오기 전의 한국은 암흑문화였지만 천주교 선교이후에 많이 사회가 많이 발전하였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달레의 평가에 대하여 한국의 민족적 사관의 학자들은 불쾌하게 생각한다. 최근 천주교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들을 배타적이라고 하면서 불교에 더 호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개신교회가 들어올 때 사실상 개신교 선교를 방해한 사건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과거 중세시대때에 서구에서 천주교의 독점사상이 한국에서 한때 표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주교회가 먼저 선교를 하였음에도 성장이 개신교에 뒤떨어지는 것은 설명이 단순하지 아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천주교는 역시 의식중심(rituals)의 종교로서, 개신교에 비하여 성경번역에 등한하였고, 신자들의 전도의 정열이 개신교 보다 못한 것은 자인해야 할 것이다.



2) 개신교 선교역사

개신교 선교역사는 서구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시 한국은 닫혀진 나라, 혹은 은둔의 나라(Hermit nation)였다. 그래서 더욱더 서구의 열정적인 일부 선교회와 선교사들이 선교의 문을 두드렸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나 만주에 활동하던 선교사들과 먼저 밖에서 접촉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밖에서 선교사를 만난 우리사람들은, 만주의 경우 장사꾼들이었다. 로스 경우 만주의 고려문에서 의도적으로 한국 장사꾼들을 만나려고 시도하였다. 여기서 개신교 선교는 하층지향지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천주교나 개신교가 공히 우리사람들이 밖에서 먼저 기독교를 먼저 받아들인 사실을 지나치게 민족적 사관에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아니하다고 본다. 즉 우리가 능동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대기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접촉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방글라데시등 다른 나라들도 공통된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66장18 이하에서 언급한다.

그런데 개신교 선교가 천주교에 비하여 선교 역사가 100년 뒤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더 성장한 것은 선교사들의 숫자가 많았거니와 미국 교파주의 선교회의 경쟁적 선교와 한국교회 신자들의 전도의 열심과 당시 유교적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실망이 민주적인 개신교를 더 선호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 선교가 다른 아시아 나라와 다른 특징이 있다면 서구 식민주의와 무관하다는 점이며, 신학적으로 자유주의가 강하지 않은 보수적 신학이며, 당시 서구 선교단체들이 공통으로 채택한 자립원리가 네비우스를 통하여 실천된 점이며, 지역 할당제와 선교사들의 연합정신이다.

해방 후 한국교회 선교는 50년대와 60년대는 소수의 선교사를 파송한 일 이외에는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7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선교가 시작되고, 1980년대 절정에 달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무려 7-8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지만 경제위기 이후 약간의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 선교의 특징을 든다면 초기에는 초교파 선교회가 선교의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점차로 교단선교가 강화되어 현재는 교단 파송의 선교사가 숫적으로는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단 선교는 주로 일부 대교단에 집중되고 군소 교단은 아직도 선교가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초교파 선교회도 성장하며 미전도 종족, 전문인 선교회, 성경번역등 특수 기능을 요하는 선교는 역시 초교파 선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선교는 평신도 선교가 점차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여자 선교사가 남자보다 숫적으로는 더 많은 편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의 비극은 선교가 점차로 약화되며 교회부흥과 성장도 둔화된다는 사실이다. 다시금 부흥의 불길이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교회를 지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이제 선교를 논하기 전에 참교회를 회복하는 것, 선교적 교회와 기관이 되는 것이 먼저 선교이다.



2. 초기 한국교회 선교 신학

1). 개인전도의 신학



한국교회는 시작부터 신학적으로는 소위 보수주의로 말하지만 신앙형태는 "웨슬리적 정열과 퓨리탄적 윤리"로 규정되었다. 이것은 특히 전도와 선교에 잘 반영되었으며, 개인전도의 신학이 해방될 때까지 한국교회를 지배하여왔다. 그러나 해외선교에서는 개인전도와 교회개척에도 중점을 두었지만 의료와 교육도 병행하였다.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는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부흥운동의 결과이다. 중요한 전도운동으로는 1907년 100만 구령운동과 교회진흥운동이다. 이 여파로 1910년대에는 해외선교로 확대된다. 이때에 선교원리나 신학을 구체적으로 다룬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개인전도가 전도와 선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평양신학교 교수 곽안련 선교사는 1918년 신학지남에서 "전도자로서의 목사의 기능"을 역설하면서 목사는 "사람을 만나 하는대로 마구 전도할 것이 아니요, 개인전도 방침중에 최요점은 남과 침묵하는것이됴. 동 내각인을 위하여 은밀히 그 성명을 들으셔야 할것이며 목사가 그 사람과 정숙하게 친근한 후에 전도할 것을 권장합니다" 하였다.

현대 교회성장의 신학은 개인전도 보다 맥가브란의 집단개종의 원리가 더 호소력이 있지만 19세기 서구 복음주의 선교의 특징인 개인전도가 한국교회에 너무나 강하게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집단개종은 바람직하지 못한 탁상공론으로 여길 정도가 되었다. 장로교의 대신학자인 박형룡 박사는 한국신학의 고전이 되는 [신학난제선평]에서 1930년대 당시 인도에서 사역한 영국선교사 트레베리안(Sir Charles Trevelysan)의 교회, 문서전도, 홍보, 서구인과의 대화를 통하여 집단개종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론으로서의 가치는 있을런지는 몰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가치도 없는 '탁상이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박박사의 지론은 철저하게 "영혼구원"과 "개인전도" 만이 바람직한 전도이다.

"사회구원"을 중시하는 일부 사람들은 초기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구령사업에 빠져 사회봉사를 외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사회봉사를 철저하게 외면한 것은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장로교와 감리교는 홰외선교에서 의료, 교육을 병행하였다. 그러나 우선 순위는 전도였다. 이점에서 서구선교도 선문명이냐, 혹 선복음화냐 아니면 선복음화냐, 혹 후 문명화냐를 고심하였지만, 한국교회는 철저히 선복음화였다. 선교지의 선교사들은 피선교지의 참혹한 비인간적인 정황을 슬퍼하면서 이를 복음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실례로 중국에 파송된 한 선교사는 중국사회의 참혹한 의료사항을 소개하면서 복음만이 퇴치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2). 해방신학에 반대하는 복음주의 선교신학

1960년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준 신학의 이슈는 제3공화국의 등장으로 민주화에 강한 열의가 사회와 교회에 나타나서 교회는 사회참여를 활발하게 논의하였고,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진보적 신학자들이 먼저 신학의 토착화를 논의하였는데, 그것은 물론 선교신학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지금도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사회참여의 신학과 토착화는 물론 개인구원의 선교를 타계적이고 고유한 문화적 유산을 외면한다고 비평하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전도와 선교에 가장 도전적인 공식적인 이의 제기는 1961년 NCC가 WCC에 보고하는 문서 가운데서 나타난다. 문서는 보고하기를 한국교회의 전도에 관한 서적들을 "교회의 본질과 전도에 관한 성서적인 이해가 완전히 결여되었다"고 혹평한다.

1960년에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선교신학(Missio Dei)이 일부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었고 또 어떤 교단은 선교정책으로 채택하였다. 하나님의 선교는 사회참여의 신학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회정의와 봉사를 선교로 간주하면서 전도는 배제하는 경향을 띈다. 현재 기장은 해외선교가 약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감리교는 장로교 보다 강력한 행정체제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의 선교사 통제는 아직 부족하고 선교관리체제가 약한 것은 선교신학의 영향때문이라는 것이 감리교 선교사들의 견해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1970년부터는 해방신학으로 발전하여 1970년대 해방신학이 곧 선교라는 정치신학이 교회와 사회와 대학가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대체로 사회참여도 적었지만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본다. 복음주의는 "친체제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을 비판하였다. 필자는 [혁명이냐 개혁이냐]는 적은 책을 편집하였고 많은 교수들이 이 분야에 대하여는 비판적 글들을 썼다. 일반적 논조는 사회의 급진적 혁명보다는 우선 개인의 중생이 먼저임을 강조한다. 이 문제에 대한 솔직한 입장은 보수파는 너무 현실 도피적이어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 약하고 반면 진보파는 지나치게 사회정의에 치우쳐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외면한다는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리고 최근 신자들이 부정에 많이 연루되는 것으로 보는데, 여기에 보수교회 신자와 참여적 진보교회 신자들의 성향이 다르다는 객관적 사실은 없다고 본다. 이점에서 개인중생이 있을 때 근본적으로 사회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두 "김정부"를 통하여 입증되고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보수교회 장로지만 사회참여파를 등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현 정부에도 진보성향의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였지만 현재 진정한 개혁이 진행된다고 보는 국민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더 편안할 날이 없다는 것이 대중들의 불만이다.



3). 통합적 선교로 발전

그러나 80년대 한국교회는 선교가 활발하면서 전도와 사회참여의 이분법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복음주의의 사회참여는 물론 인권운동이나 사회정의 보다는 봉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복음주의 선교대회인 로잔운동의 영향이 많이 나타났다고 본다. 로잔은 WCC의 인간화와 해방을 부정하면서도 전도와 사회행동의 통합적 모델을 권장한다. 로잔언약은 전도와 사회적 관심을 상호 배타적 관계로 본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이 아니지만 선교운동은 대체적으로 전도와 사회행동을 대립적 관계로 보다는 통합적 모델을 권장한다. 즉 전교회가 전체의 복음(The whole gospel)을 전세계에 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현장은 봉사와 개발에 참여가 불가피하다. 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말씀전파와 교회개척만을 하는 목사선교사 보다는 봉사를 위주로 하는 평신도 선교사를 더 선호하여 전문인 선교회가 증가하는 것이 한국선교의 현실이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4). 토착화 문제

토착화에 대한 복음주의 입장은 모든 문화는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문화는 어떤점에서 종교의 표현이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는 "이교적 문화"와는 전혀 충돌이 없이 복음 전파는 불가능하고 다만 충돌을 어느 정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위하여 토착화를 논하는 것이지 충돌을 전무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마테오리치나 노빌리는 문화와의 충돌을 전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순응모델(accomodation)을 택하여 혼합주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복음은 문화와의 충돌이다.(행 6:14; 16:21) 그러나 충돌을 극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 같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 하는 적응의 태도를 취하였고(고전 9:10-22)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들에게 유대의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부과하기를 피하고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데 노력하였다. 따라서 복음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독교는 그 나라의 문화적 유산을 존경하는 범위에 적절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이점에서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80년대에 토착화 보다 상황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복음주의 일부 선교학교수들은 상황화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5). 복음주의 종교신학

복음주의 선교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의 등장에 솔직히 불안과 우려를 금치못한다. 서구기독교는 이미 종교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종교신학을 발전시켰고, 현대는 서구의 퇴각,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서구가 다원화사회로 발전하는 것, 동시에 상대주의가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풍토가 결국 다원주의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본다. 1992년 감리교회에서 다원주의 논쟁이 제기될 때 장로교회는 비교적 구경꾼이 되었지만 그러나 방관자만은 아니었다. 여기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그러나 감리교내의 보수신학자들은 다원주의를 비판하였으며 필자도 종교다원주자와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19세기 서구 복음주의의 종교신학 입장인 배타주의 모델을 따른다. 독일의 선교학자 구스타프 바르넥이나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이 입장이다. 19세기 종교 다원주의가 서구에서 대두될 때, 역시 배타적 복음은 서구 기독교를 지배하였고, 우리는 이것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복음주의 선교학자들은 타종교에의 구원을 거부한다. 전도하여 구원하여야 할 선교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바르넥은 타종교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인간과 함께 시작된 종교적 오류라고 하였다. 따라서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하여 성취설이나 연속성이 아니라 접촉점(Ankunpfung)을 찾고 동시에 변증(Apologetik), 논쟁(Polemik)을 해야하며, 이를 위하여 선교사는 모든 종교를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아것은 선교변증학으로 개혁주의 선교학자 바빙크가 말하는 엘렝틱스(elenctics)와 같은 입장이다.

현대선교의 관건은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조우이기 때문에 한국의 복음주의 선교도 선교변증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타종교도 현대호하고 부흥하는 종교다원화의 상황에서 우리는 성경적 종교신학을 수립하여야 한지만 선교현장에서는 사상은 강하게 방법은 부드럽게(fortiter in res, suaviter in modo)해야 하지 결코 종교전쟁을 유발해서는 안될 것이다.



6). 교회성장 신학의 등장

현대 복음주의 선교에 가장 영향력있는 선교신학은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신학이다. 이 선교원리에 대하여 WCC와 개혁주의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많은 저서들과 번역물들 및 목회학박사 논문들이 홍수를 이룬다. 물론 학문적 깊이가 없다는 평도 듣지만 신학교에서 배운 강의보다는 더 현장적이라는 것이 목사들의 일반적 생각라고 본다. 그러나 이 분야의 글을 제일 먼저 쓴 자는 한국교회 신학자나 목사가 아니라 1934년 미국 감리교 신학자 A. W. Wasson이 Church Growth in Korea를 한국을 방문, 연구하고 저술하였다. 물론 그는 당시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의 위촉으로, 또한 사회학적 접근방법에서 연구하였다. 다음 1960년대 후반 Roy Shearer가 풀러 학위 논문으로 한국의 문화를 연구하고 쓴 것이 Wildfire: Church Growth in Koread이다 (번역되었음). 이것은 철저히 풀러의 성장학을 한국교회에 적용한 것이다. 다음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이 70년대 초기 번역되었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이 풀러와 목회학 과정을 개설하면서 풀러의 이론을 소개하였다. 물론 맥가브란의 신학은 알미니안적 복음주의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교회가 이 선교신학을 통해 신학적으로 교파를 초월, 일치점을 이룬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박형용박사는 개인전도만을 강조하였지만 현 선교지의 상황은 동시에 수정된 집단주의 선교도 필요한 실정이다. 한국선교사가 일하는 대부분의 선교지는 개인이 선택하고 행동하기에는 많은 핍박과 제한이 따르는 집단주의 사회이다. 즉 개인보다 가문, 동네, 사회, 국가 더 우선하는 사회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식 개인주의에 입각한 개별 전도른 선교의 한계를 느낀다. 한국교회는 이미 해방 후 군대 전도와 학원전도 등 집단전력을 채택하였다. 개혁주의 선교 신학도 개인위주의 선교보다는 가정단위의 선교가 성경의 원리리라고 생각한다.

최근 복음주의 선교이론의 경향은 서서히 미전도종족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에 대한 글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한국미전도종족 입양운동본부는 이 분야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며 현장연구도 겸한다.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불가피하게 문화인류학의 관심을 증대시켜서, 이 운동본부는 문화인류학 교수를 초빙하여 강의를 듣고 자문도 받는다. 미전도종족운동은 현재 도시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에 저술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유는 대부분의 미전도종족들이 도시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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