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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9-21
 제목  <선교세계> 선교사 - 순교사
 주제어키워드  선교세계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848  추천수  9
21세기,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원년인 금년에는 유난히도 대형 선교대회가 많이 열렸다.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제4차 시카고 세계 선교대회’(4년마다 한번씩 시카고에 있는 빌리 그래이엄 센터에서 열린다.)를 시작으로 잠실 체육관에서 있었던 “선교한국 2000”, 그리고 8월 9일부터 시작해서 18일 막을 내린 “2000년세계선교대회” 등인데 시카고 대회는 미주 한인교회들이 주축이 되어 한인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이루어지는 대회로서 약 4천명 가량이 모여 21세기의 세계 선교를 우리에게 맡기어 달라고 부르짖었고,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선교한국’은 청년, 대학생들에게 선교의 비전과 꿈을 심어주는 것들로 금번의 경우 7,500명 가량이 동원되어짐으로 앞으로의 한국 선교의 앞날에 희망을 품게 해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열린 ‘2000년세계선교대회’는 잠실 운동장을 비롯하여 여러 교회에서 진행된 선교대회로 수백명의 선교사들과 동원된 참석인원만도 3천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각 선교대회가 인원동원에는 대체적으로 성공한 셈인 것 같다.

이번 대회들을 통하여 현재 세계 각국에 나가서 활동하는 한국 선교사들의 숫자가 8천 명이 넘었다는 발표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불과 20여 년 사이에 이처럼 우리들을 축복하셨는가 싶어서 감격하며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

선교사 이야기



20년 전, 그때 네다섯 번의 거절을 통하여 겨우 받아 쥔 9개월 짜리(?) 여권을 손에 쥐고, 여권의 기간이 9개월 밖에 안되니 가족을 데리고 나갈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고 선교지로 떠날 때 그때엔 한국 사람이 선교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밖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고(선교사=미국사람) 그러다보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를 통틀어 봐야 한국 선교사 숫자가 불과 몇 십명을 헤아릴 정도이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거대한 선교대회가 여기저기서 열리게 되니 그 주인공격인 선교사들이 국내에 부름을 받고 들어와서 이곳저곳에 얼굴들을 내밀게 되었고, 자연히 우리 선교사들끼리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을 자주 갖게 되었다.



선교사는 순교사(?)



그러한 대화가운데 들었던 이야기 한두 토막이 오늘 쓰려고 하는 글의 주제이다. 즉, ‘宣敎師는 殉敎師’라는 이야기이다.

동남아지역의 한 곳에서 12년째 사역하는 선교사님 한 분이 있는데 이분은 선교사로 나가기 이전에는 매우 건장하였고 말하는 것이 조리가 있으며 뜨거운 전도의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다.

또한 그의 설교는 항상 힘이 넘쳤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느날 선교사로 헌신하고 사역지로 떠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며(국내에서 목회를 하면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빠른 시일 안에 돌아와 국내에서 사역하기를 바랬었다.

이렇게 떠나간 그 선교사는 특유의 열심으로 사역지에서 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 앞에 인도하며 큰일들을 하는 가운데 어느날 자동차 전복사고를 당하였고 한동안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사하게도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으나 그 후유증은 대단히 컸다. 선교사역을 계속 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자동차 사고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너무 독한 약을 쓰다가 ‘신장’이 망가져서 연속적인 신장 투석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매일매일의 삶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역중이다.

한번은 사역을 중단하고 돌아오라고 하니까 선교지의 수많은 영혼들을 바라보며 주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사역을 감당하겠노라고 하면서 “목사님, 물론 저도 건강이 어려워지니까 국내에 들어와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곳(자신의 선교지)에는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사실 국내에는 그 튼튼하던 몸이 많이 망가지고 때로는 말도 어둔한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가 내뱉듯이 하는 말이 “宣敎師는 殉敎師입니다”라는 말이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보내는 하루하루의 삶의 여정이 마치 순교자가 순교의 현장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해외선교에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뛰어든지 20여 년이 채 안되는 이때 8,000여 명의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서 사역하게 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나 한가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짧은 시간에 우리들이 이루어낸 일들에 만족하여 자만하거나 혹시라도 오늘날의 성장이 있기까지 그 그늘에서 宣敎師가 아닌 殉敎師의 길을 걸어온 이들을 망각해서는 안되리라 믿는다.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비자 문제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고민하고 걱정하며 금식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리다가 사역을 시작한지 1년도 안되어 하나님께 부름받은 우리의 김00 선교사. 밤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춥지 말라고 피워준 난로 가스에 꽃망울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부름받은 두 자녀를 평생동안 가슴에 묻고 살아가게 된 이00 선교사, 열악한 위생 환경 탓에 얻은 질병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일찍 주님의 나라로 떠나보내고 슬픔 가운데 살아가는 000 선교사, 하지만 우리 주변에 殉敎師의 길을 가다가 아픔을 겪은 이들이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언젠가 선교지에서 발생한 문제로 마음 아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도하며 매달리는 아들을 보면서, 또 선교사 초년병 시절 건강을 잃고 국내에 들어왔으나 마땅히 가서 쉬고 치료할 곳이 없어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댁에서 별다른 치료약도 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때, 아무도 돌아보아주지 아니하고 관심 가져주지 않는데 대하여 분노하는 나를 향하여 ‘당신이 선교사로 가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라며 위로(?)아닌 동정을 해주던 어떤 분처럼 외로움과 육신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선교사들을 향하여 “당신이 선교사로 가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만한 일인데 마치 우리들의 책임인양 떠들어대면 곤란하지 않느냐”고 무책임하게 대답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리라고 본다. ‘주인없는 잔치’‘마땅히 먹을만한 것이 없어서 굶주렸다.’는 어떤 화려한 잔치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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