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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9-21
 제목  <교수가 쓰는 수필>이 의약분업 난리통에 어머님이 병환이라니
 주제어키워드  교수가 쓰는 수필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743  추천수  13
2000년 8월 15일 현재 의사선생님들께서 병원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한 마디로 밥 그릇싸움이다. 돈벌이가 전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의사가 원망스럽다. 정부도 원망스럽다. 의사도 싫다. 약사도 싫다. 환자도 싫다. 국민도 싫다... 이러는데 누구를 위하여, 누가 좋다고 하여서 이 난리를 치루느냐 말이다. 정권 유지에 좋은지, 정권을 다시 잡는데 좋은지... 신문이고 방송이고 어떤 논리고 주장이고 외국 경우고 무엇이고 다 꼴보기 싫다.

“흥, 아파죽겠는 사람에게 무슨 개딱지 같은 소리야.” 이정도는 약과다. 더 심한 말이 있는데 불문이 가지라고 추측하여 아시라.

“안 아프면 될 것 아니여? 왜 하필 이 의사들이 파업할 때 아파가지고 거친 말을 해대는 거여?”

이렇게 말을 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서 웃는다.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누가 시도 때도 점을 치면서 아픈가 말이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아픈 사람만 서럽다고 하는데 이 의사들 페업때 아파보니 정말 서럽다. 서럽다 뿐인가? 원망스럽다.

“페업하는 통에 환자가 죽어가는데, 치료를 못받고 아파죽을 지경인데 의사선생님이고 의사선생이고 무엇이고 의사지. 그 사람들, 사람이야? 자기 아버지는 안아파? 자기 각시는 안아파? 자기 자식은 안아파?” 우리 교인이 진단을 하여보니 간암인데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사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간 바람에 수술 날짜를 못잡고 그저 있다.

자, 나는 어떤가? 사실 병원 파업에 그리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나 약간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그동안 겪은 일을 말하겠다.

나는 2000년 7월 6일에서 17일 까지 비교민속학회 회장으로 민속학회 회원 26명 대장이 되어서 몽골에 갔다왔다.

고향인 전북 남원시 운봉읍 동하동에 올해 88세 아버지와 86세 어머니가 계시는데 이런 구십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식으로서, 그것도 맏아들 내외는 외국에 가려면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혹시나 우리가 없는 사이에, 물론 이것은 방정맞은 생각이지만 현실이 현실인 것을 어이하랴?

이런 조마조마한 가운데 7월 17일 오후, 12일 만에 귀국하여 집에 잘돌아 왔다고 전화를 올렸더니,

“사실은 느그내우(너희 내외 부부)가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영 몸이 좋지않다. 일어나기도 힘이들고....”라고 사실을 말하였다.

우리는 어떻겠는가? 18일 우리는 우리 강 집사가 봉고차가 있고 이전에도 운봉에 두 번이나 갔다 온적이 있어서 부탁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와 달라고 하였다. 강 집사는 쾌락을 하여 18일 오후 운봉에 내려가고 5시간이 걸려서 운봉에 밤 10시에 당도하고 좀 쉬었다가 상경하여 새벽 5시에 서울 우리집에 어머니를 모시고 당도하였다.

드디어 어머니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일 아침을 들고 우리 교인이 효험을 보았다는 강남구청 옆에있는 ‘우리들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였는데,

“MRA사진은 열흘 후 29일입니다. 그 전에는 환자가 밀려서 찍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지 아니한가? 한시가 급한 환자라 강 집사가 연이틀 야간에 응급차처럼 모시고 온 터인데 앞으로 열흘을 기다리라니 원. 워낙 루마치스 신경통 환자가 많아서 그런다고 하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고 난감하기도 하였다. 소문을 듣고 수유리에서 그 먼 병원을 가서 보니 열흘을 기다리라고 하는 바람에 그만 그 병원을 간 것을 후회를 하고 우리는 내가 있는 한양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대학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와서 입원수속을 하였더니 이내 자리가 있어서 입원을 하였다.

내가 아는 정형외과 오 박사가 주치의가 되어 검사에 들어갔다. 운봉에서는 MRA만 한번 찍어보자고 상경을 한 것인데 검사는 왜 이리 많은고? 조금 있다가 오 박사는 못오고 다른 의사가 와서,

“조사 결과 병은 없습니다. 심장은 백세를 사실만큼 튼튼하십니다.”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혹시나 하고 염려를 하였는데.... 그런데 어머니는 여전히 아프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분명 병이 있는데 병원은 분명 병이 없다는구나. 안심이냐? 불안이냐? 우리는 판단이 서지 않아서 3일만에 퇴원을 하였다.

“한약과 침을 맞아야겠다.”

우리 교회 김성태 집사는 침에 달통한 분이요 이전에 여러번 어머니를 치료하고 말벗도 하여 준 분이라 김 집사님이 수고를 하였다. 한약도 지어왔다. 그런데 그리 큰 효험이 없었다.

나는 경동시장에 가서 치자를 사다가 다려서 노란자에 타서 잡수라고 하여 보고 지네 백 마리를 2만원에 주고 가루로 만들어 따듯한 물에 타 잡수라고 하기도 하였는데 효험이 없었다. 다시 병원에 가볼까? 그런던 중에 7월 말이 되었다. 의사들이 데모를 하고 파업을 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약국에서는 약을 제대로 팔지 않았다.

“어머니, 평생을 신앙으로 사신 분이니 그까짓 의사들 손으로 나을라 말고 하나님 힘으로 나아봅시다.”

하고 밤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였다. 예배중에는 좀 나은 듯 하였으나 별반 효과가 없었다.

우리 길음성결교회에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근처 광덕4리에 백운산 기도원이 있다. 마침 아내가 기도원에 온 신자들에게 밥을 해주는 봉사당번이라 기도원에 갈 일이 있고 그 기도원 구내에 우린 소유인 농가가 하나 있어서 나도 같이 기도원에 갔다.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여러 사람이 권유하여 음식도 잘드셨지만 일어나고 눕는 것은 여전히 힘이 들었다. 그래서 20리 떨어진 소재지 사창리에 가 보니 병원이 둘이 있는데 다 문을 닫았다. 약도 제대로 살 수 없었다. 그 고통이라니..... 그래도 기도원에서 병 전환이 조금 왔다. 역시 신앙이 일등치료자구나.

서울에 와서 삼양동에 잘본다는 의원을 가보니 장기휴가였다. 바로 파업이다. 환자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못된 사람들 같으니. 마침 그 옆에 현대 정형의원이 고맙게도 문을 열어서 어머니 아픈데를 엑스레이를 찍고보니 골다공증이었다. 이 병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도 아닌데 왜 한대병원에서는 말하지 않고 병이 없다고만 하였을까? 골다공증 자체가 병이 아니라는 말인가? 저렇게 아파하는데 왜 병이 아닌가?

어머니는 그 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나는 세 가지약이 적힌 약 처방지 두 장을 받고 종로5가에 있는 유명한 보령 약국에 갔다. 처방지를 든 환자나 가족들이 약을 사려고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방지 두 장을 가져왔소?”

“아차, 한 장만 있으면 되는 줄 알고 그만.... 한 장을 복사하면 안될까요?”

“안됩니다. 다음 사람 오시오.”

나이가 든 약사는 그만 안된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비록 처방지를 한장만 가져왔다고 저렇게 하면 되는가 말이다. 이제 의사가 거만한 것이 아니고 약사도 거만해 가는구나. 나는 보령 약국에서 속이 상하여 그 옆에 있는 공생약국을 들어가서 처방지를 한 장 가져왔는데 되는가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젊은 여자 약사가 처방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 약이 있는가가 문제라고 하면서 처방지를 받아 보더니, 약 하나는 있고 둘은 없다고 하였다. 이 큰 약국에 없는 약도 있구나. 하기야 수천 수만의 병, 그 병에 듣는 수천 수만의 약을 어이 다 구비하랴? 이 약사는 핸드폰으로 약 인덱스책을 보고 제약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 생산이 중단이 되었는지 처방을 한의원에 걸어 의사를 찾으니 회진중, 다시 걸고 또 걸고, 드디어 걸어서 다른 약으로 대체를 할 수 있는가, 있다면 무슨 약인가 묻고 대체약으로 바꾸고, 그러고 나서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왔느냐, 어머니 주민등록번호를 아느냐고 물었다.

처방지 한장은 복사를 하여서 결국 두장이 되었다. 손님을 받는 중에 나의 일을 하여준 약사가 고마웠다. 약값은 하루치니까 약 종류 3개에 두번 먹을 약 도합 여섯 알이었다.

“약값은 천원입니다.”

자그마치 세 시간이나 약국에 앉아서 기다린 결과 겨우 하루치 약, 처방을 그렇게 하였으니 할수 없고, 약값이 무지하게 싸구나. 그런데 시간은 무지하게 걸리는구나. 이 약국은 무척 친절하구나.

집에 와서 의료보험증 사항들을 약국에 불러주고 도대체 이런 의약 분업이 일반 사람에게 무슨의미가 있는가 생각을 하였다.

나중에 정형의원에게 약을 구하기 힘이 들었다고 하니까 바로 앞에 있는 약국에서 사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튿날 그약을 사러가니 삼분도 걸리지 않아 약을 주었다.

“아하, 약은 병원 바로 앞에 있다. 처방지를 받을때 이 약을 어디서 사면 좋은가 의사에게 물어봐야겠다. 약 이름을 컴퓨터나 타자가 아니면 또록또록 잘 알아보기 쉽게 정자로 써달라고 하여야겠구나. 처방지는 반드시 두 장을 가져가야 겠구나. 의료분규 때는 참을성이 제일이구나. 이제 약국은 친절로 승부를 걸어야겠구나.”

이런 문리를 터득하였다.

그 뒤 어머니는 부흥회도 참석하고 천마산 기도원에 가서 표창배 목사님의 안수도 받고 우리 자녀손이 예배를 보는 중에 차츰차츰 병이 나으셔서 일어나고 눕는 일은 거의 해결을 하여 8월 15일 운봉으로 내려가셨다. 나의 넷째딸 우주와 우주친구가 어머니를 모시고 기차로 내려간 것이다. 그동안 근 한달이나 혼자 계시면서 밥을 해잡수신 88세 아버지도 이제 마음을 놓게 되었다.

‘이번에 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하나님에게 매달리니 기분도 좋고 돈도 적게들고 운동도 되고 신유도 받았으니 전화위복이로다. 하나님은 돈을 더 벌겠다고 투정도 데모도 하지 않으시니 그 얼마나 좋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서울역에서 어머니를 전송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문에는 여전히 수많은 의사들이 드러누워서 시위를 하는 사진이 있었다. 이전 대학생 시국데모 같았다. 나는 괘씸하여서,

“이 사람들아, 일어나지 말아라. 아파서 야단야단인데 의사는 병원 문을 닫고 저리 데모만 하고 어린애 마냥 투정을 부리고 정부를 상대로 일을 벌리고 있으니 원. 이런 분규통에는 아프지 말아야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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