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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8-25
 제목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10:23-33)
 주제어키워드  타임즈강단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967  추천수  8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때 대개 자기감정, 자기생각을 통해서 결정하고 선택합니다. 양심이 꺼림이 없다고 판단할 때 어떤 행동을 하고 말도 하게 됩니다. 성경은 내가 괜찮더라도 남이 문제가 되면 그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방의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의 상당히 많은 양이 제물로 바쳐진 고기였습니다. 제사가 끝나고 제사장들과 이방신을 섬기는 제주들이 남은 고기를 시장에 팔았습니다. 이것이 시장에 공공연히 유통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제물로 드려진 것인지 도축장에서 직접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할 때는 묻지 말고 먹되, 그러나 누가 그것이 제물이라 말 할 때는 그 땐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처음에 무조건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까? 그것은 사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먹을 수 있되, 제사로 참여하며 함께 먹는 것은 귀신을 섬기는데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물로 드렸다 할지라도 이것이 유통되어 판단할 수 없을 때는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 그냥 먹으라는 겁니다. 그러나 제물인 것을 알고서는 그땐 먹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되면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제물을 고기 먹는 것으로 먹는 것은 괜찮은데 제물 먹는 것으로 알고 생각한다면 제사 드리는 곳에 함께 참여하기 쉽고 우상을 섬기는 그 곳에 익숙해집니다. 그것은 양심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양심을 위해서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않습니다. 이것을 덕이라고 합니다. “덕을 세우자” 성숙한 행동의 모습은 모든 판단이 나에게서 머물지 않고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차원에서 최종 판결을 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덕을 세우라”



사도바울도 자신이 고기를 먹는 것이 자유 하다 할지라도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내 고기 먹는 모습을 보고 실족하게 된다면 영원토록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성숙한 자의 모습이죠. 상대방의 유익까지 생각하는 그런 자의 모습입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주제가 “덕을 세우라”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라. 가정의 덕을 세우라.’ 정말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기도할 때 막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옆 사람이 기도할 때 내가 소리지르고 기도하는 것이 방해가 된다면 삼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하라 하셨습니다.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언을 말 할 때도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혹 지장이 되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지장이 된다면 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행동강령입니다. 즉, 기도하는 것은 좋은데 나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덕을 세우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만 생각하지 말고 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문단의 주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항상 의식해서 그 최고의 기준에 따라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유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의 자유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미숙하고 어린아이 같고 자기만 알기 때문에 좀 성숙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행동과 삶의 원리를 가져야 합니다. 중요한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우리 장로교회 소요리 문답 1번을 보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요 인생의 목적입니까?



전도서 12장 13절에 보면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 하셨습니다. 우린 다 피조물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는 미세한 세계(Micro World) 안에, 그것이 생명세계이건 물질세계이건 굉장한 지성의 섭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놈 프로젝트라고 해서 유전자 정보를 다 해석하고 있는데 질서가 있고, 조직이 있고, 지성이 있는 게 대단합니다. 그걸 보고 누가 우연히 만들어졌다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정서, 하나님의 인격과 그분의 지성이 확실히 보입니다. 우리가 다 그분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 받았습니다. 지음을 받았다면 지음을 받은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지은 자의 뜻에 있는 것입니다. 그 뜻대로 사용되어 지는 것이 본분입니다. 자기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 피조물임을 알아야 되고, 나를 지으신 그분에 따라 사람마다 다양한 은사가 있고 서로 다릅니다. 하여튼 간에 각자 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기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걸 통해서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본분입니다. 우리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삶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지으신 그분의 목적에 따라서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만물의 존재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와 달과 별과 모든 일월성신 삼라만상 모든 만물들이 다 그분의 뜻에 따라 위치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유독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비결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을 경외할 때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라고 고백하는데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이 아니고 관계 속에서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온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왜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야 하느냐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 행복을 구합니다. 그러나 구하지만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행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행복을 구하면 안됩니다. 행복을 구하면 안되고 의를 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구하고 사랑을 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이 그 구하는 동안 내안에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구하려고 쫓아가면 반드시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구하고 사랑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에 내 안에 그냥 형성되어 지는 것이 행복인 줄 믿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모든 것들을 다 누려보았습니다. 엄청난 지혜와 지식과 많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봤습니다. 천 명이 넘는 처첩을 거느리고, 또 주위의 경관이나 인테리어에도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참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이거 다해봤자 말짱 헛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아무리 솔로몬이 지식이 많고 지혜가 많아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을 때에 그것은 번뇌가 되었습니다. 불안이 되었습니다. 현대를 일컬어 지식과 정보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얼마나 번뇌가 많습니까?

분명한 것은 행복이란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다른 것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면 확실하게 도망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항상 즐거워하는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의 형상을 배워 가는 가운데, 우리의 생명의 근원 되시고, 사랑의 근원 되시고,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줄기에서 뚝 짤라 가지고 스스로 뚝 잘라진 가지 끝에 열매가 맺겠습니까? 나를 떠나지 마라. 내가 수액을 너에게 공급해주리라. 내가 진액을 공급해주리라. 네가 나에게 붙어만 있으면 내가 너로 열매 맺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나의 성취가 아니고 그 관계 속에서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게 됩니다.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뭘 취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급해서 주시기 시작합니다. 성령을 통해서 내 영혼에 감격과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낭비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그 사랑 받았으니 그 은혜 받았으니 당연히 그렇게 배우며 좇아가야 합니다. 로마서14장 8절에 사도바울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하나님의 거룩한 그 뜻을 따라, 하나님의 그 거룩한 성품을 따라, 그 분의 그 사랑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대로 예수께서는 우리를 향해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예배당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결단하고 모험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험하는 것은 헛되지 아니합니다. 확실하고 완벽한 가이드가 있습니다. 성령님이신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는 완벽한 가이드이시며 돕는 자(helper)로서 우리 안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우릴 위해 기도하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증거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옳은 길로 행할 때에 그 분이 기뻐하시고 우리가 연약할 때에 그분께서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부탁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완벽한 도우미이십니다.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것은 우리를 도우러 오신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1초, 1초 지나가는 세월을 허비하지 아니하고 위대하고 거룩한 뜻을 위해서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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