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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7-31
 제목  평화와 자유, 사랑의 마펫
 주제어키워드  기획4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252  추천수  11
1. 1894년 마포삼열 목사 선교보고서 중



서울에서 학교(예수교학당) 일을 그만 두게 되자 나는 이길함 목사와 함께 평양으로 출발하였다. 1893년 10월에 평양에 도착하여 석달 동안을 그 곳에 머무르면서 ‘사랑방’에서 전도 사업을 계속하였다. 이 사랑방에는 한조사(韓助事,한석진)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랑방에서 떼를 지어 오는 방문객을 맞아서 매일 거의 온종일 동안 복음을 가르쳤다. 하루 건너씩 오후에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대동강변과 변두리로 다니면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노방 전도를 시작하였다.

노방 전도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었다. 첫째는 복음을 널리 전파할 수 있었고, 둘째는 평양에 서양 전도사가 왔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를 보려고 찾아드는 사람은 매일 장사진을 이루었다. 어떤 때에는 저명한 인사의 집 사랑방으로 초청을 받기도 했는데 가서 보면 으레히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한조사와 함께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예수교의 진리를 가르쳤다. 그 집 주인이 예수를 믿을 마음이 생겼을 때에는 밤에 그 집 사랑방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주일날 아침에는 우리 사랑방에서 정식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그 때에 나는 사회와 설교를 도맡아 하게 된다. 주일 오후에는 아이들을 위해 주일학교를 개설하였고 주일 밤에는 한조사의 지도로 저녁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신자들의 태도가 처음부터 매우 성실하고 엄숙한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찬송가를 부를 때에는 그 뜻을 알고 진심으로 노래를 부르며, 기도할 때에는 무엇을 간구해야 할 지를 알고 있어, 공중 기도를 올리면 뜻을 함께 모으고 어떤 필요한 사업을 시작하면, 그 사업이 완성될 때까지 힘써 기도한다.



2. 선천 삼노회 연합회 희기축하회 설교 중



나는 조선에 와서 복음 전도하기 시작하기 전에 황주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결심한 바 있었다. 이 결심은 내가 이 나라에 십자가의 도외에는 전하지 않기로 오직 하나님의 그 뜻대로 죽든지 살든지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로 굳세게 결심하였다. 그 다음해에 평양에 왔는데, 평양에는 그 때에 신자는 1인도 없었다.

하루는 어떤 불교 학자를 만나 예수교 이야기를 할 때에 불교도 좋고 예수교도 좋으니 둘 다 믿는 것이 가하다 하나 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 믿을 것을 말하매 그는 섭섭히 여기었다. 그 익년에 의주로 가서(43년 전) 한 청년을 만나서 산에 올라가서 산보도 하고 봉천서 받은 한글 신약을 주면서 예수를 믿으라 전하였는데 그 청년이 믿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곧 한석진 목사이다.

그 후에 점점 한석진 씨와 나는 바울과 같은 결심으로 조선 13도에 전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에 평양에 돌아와서 교회를 설립하였는데, 맨 처음에는 한 씨와 나는 하나님의 말씀 전하면 교회가 반드시 설립될 줄을 알고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하였고, 그 후에 기일 목사와 동행하여 선천에 내왕하며 전도하여 처음 믿는 자를 얻었으니 그는 김청삼씨이다. 우리의 처음 결심은 바울의 결심과 꼭 같은 결심을 하였다.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만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결심하였다. 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는 다른 것은 전하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 다른 것은 참 복음이 아니다. 근래에 와서 교회에서도 종종 이런 말이 들린다. 교회를 좀 변경하여야 한다. 혁신하여야 한다. 그전 같이 전하면 듣는 자가 좋아하지 아니한다. 새 시대에 옛적 복음이 적당치 않다. 새 세계에는 새로운 복음을 전하자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바울의 두뇌와 비교하면 적은 자이다. 바울은 그 당시에 다른 복음을 전할 만 하였으나 결단코 아니했다. 그는 철학과 재간이 있고 학식이 있고 로마국에 권세가 있었으나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다.

바울의 기록한 서신을 보든지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을 보든지 바울은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을 전하지 아니하기로 힘썼다. 그렇게 50년간 로마에서 전파하므로 그는 큰 결과를 얻은 것이다. 금일에 말하기를 마목사는 너무 수구적이요 구습을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옛 복음에는 구원이 있긴 있으나 새복음에는 구원이 없는 데는 답답하다. 그 옛 복음, 바울의 전한 복음을 전할 때에는 교회가 왕성하였지만 새복음에는 대단히 조심하시오. 우리는 옛적 복음 그대로 금일까지 전한다. 죄는 복음으로야만 사한다. 복음을 변경하려면 바울의 자격이 제일 할만 하였지만은 그는 결코 아니했다. 근대에 있어 흔히 새신학, 새복음을 전하려는 자는 누구며 그 결과는 무엇일까 조심하자. 조선 모든 선교사가 다 죽고 다 가고 모든 것은 축소한다 할지라도 형제여! 조선 교회여, 형제여! 40년 전에 전한 그 복음 그대로 전하자. 나와 한석진 목사와 13도에 전한 그것이 길선주 목사가 평양에서 전한 그 복음, 양전백 씨가 선천에서 전한 그 복음은 자기들의 지혜로 전한 것이 아니요 그들이 성신의 감동을 받아 전한 복음이니 변경하지 말고 그대로 전파하라.

바울이 청년 목사 디모데에게 부탁함과 같이 나도 조선에 있는 원로 선교사와 노인 목사를 대표하여 조선 청년 교역자에게 말한다. 원로 선교사와 원로 목사의 전한 그대로 전하라. 이 복음은 우리가 내 것이 아니요, 옛적부터 전한 복음이다. 이렇게 하므로 신성하고 권능있는 교회를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십자가의 도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기 바란다. 형제여! 원로 선교사 원로 목사들이 40년 동안 힘쓴 것인데는 우리의 지혜가 아니요, 바울에게서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인데는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말할 기회 많지 않는 데는 딴 복음을 전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3. “3·1운동과 외국인 선교사”(동아일보사간, 마삼락)

- 1919년 3월 4일과 5일 사이에 목격한 장면에 대한 증언문 -



“3월 4일 화요일에 나는 학교 시학관 야마다와 함께 대학 운동장에 모여 있는 한국인 군중들 사이로 들어갔었다. 여기서 동정을 살핀 다음 다시 시내 거리로 나가 보았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경찰서 가까이에 이르자 군인들이 거리 가운데 있는 15명 정도의 군중에게로 돌진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또 다른 군인 3명은 길가 상점의 처마 밑에 조용히 서 있는 한인 5, 6명에게 달려가 가진 총으로 때리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 아주 깨끗한 흰 두루마기를 입은 키 큰 한 청년이 처마 밑 약 5피트의 거리에서 들어오는 총을 재빨리 피해버리는 찰나 장교 한 사람이 칼로 그의 등 어깨 바로 밑을 찔렀다.

그 청년은 우리 앞에 10피트도 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시학관 야마다 씨도 극도로 분개하여 ‘내가 눈으로 분명히 목격한 바를 구도지사에게 소상히 보고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야마다 씨에게 그 청년이 조용하게 길가에 서 있으면서 공격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는가를 묻자, 그는 네라고 대답하였다. 바로 그 다음에 우리는 34명의 소녀와 부녀자들이 6명 내지 8명의 군인과 경찰을 따라 행진하는 것을 보았으며, 앞에 선 소녀들은 12살이나 13살이 넘지 못하였다.

서문 밖에서 야마다 씨와 헤어져 나는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가까이 이르자 수명의 군인들이 신학교 교수집으로 달려 들어가 한 사람을 끌고 나와서 발로 차고 때리며 끌고 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또 어떤 군인들은 대문 뒤에서 청년 한 사람을 몽둥이로 때리며 끌고 나와 결박하여 놓고 차고 때리었다. 그러자 청년 두 명과 또 다른 한 사람이 군인에게 끌려나와 뒷짐을 지운 채 포승줄에 묶이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중 구타를 당한 한 사람이 문간 집에 살고 있던 나의 비서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다가가 보았으나 네 사람 중 아무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이 길이 연결된 곳에 이르자 수명의 군인들이 내게서 불과 10피트 내지 12피트 떨어진 곳에 이르러 포승줄을 더욱 단단히 고치고 꼼짝할 수 없이 묶인 네 사람이 장교 1명의 지휘를 받는 20여 명의 군인들에 의하여 주먹과 몽둥이로 얼굴과 등에 마구 구타를 당하며 끌려 가는 것을 보았다.

그뿐 아니라 발길로 마구 차는 것도 목격하였다. 그리고 한 소년 앞으로 장교가 다가가며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군도를 머리 위까지 치켜들고 내리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이때 나와 소년은 다같이 소년이 두동강이 나리라고 생각하였다. 공포와 번민에 찬 소년의 절규는 마치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그후 그들은 계속해서 발로 차고 때리며 사라져 갔다.

위에 말한 바는 모두 내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이며, 내 진술의 진실성은 나 자신이 입증한다. 지난 닷새 동안 내가 접촉한 한국인이나 시내 또는 시외에서 목격한 군중이나를 막론하고 한국인 측에서는 어떠한 폭력행위도 또는 도전적인 행위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4. 세계 장로회 동양선교대회(1922, 중국, 남경) 연설문 중



한국 사람은 평화와 자유를 지극히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민족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독립을 찾기 위해서 죽음도 돌보지 않는 의롭고 용감한 민족입니다. 40년 간 우리 기독교 선교사상에 있어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신속하게 발전하였습니다. 내가 직접 체험한 3·1 운동에서 조선 민족은 불사조와 같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일본 관헌이 창으로 찌르고 총으로 쏘아 쓰러뜨렸지만 그럴수록 전 민족이 단결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가 불길같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관헌은 애국을 절규하는 모든 집회에 총을 들이대었으며 예수 믿는 교인들을 교회당 안에 감금하여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는 등의 잔악한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순국자요 순교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더욱 신앙을 굳게 하고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일 큰 건물은 모두 교회당이며 이러한 건물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몇해 되지도 아니한 교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지은 것입니다. 이런 민족이 축복을 받지 못하면 누가 축복을 받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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