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자료등록
 
주제 주제어 출처 내용 등록일   ~
 현재위치 : HOME > 선교정보보기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7-31
 제목  사랑의 여성, 의로운 여성, 봉사의 여성- 숭의여고를 찾아서-
 주제어키워드  기획3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413  추천수  11
(취재 : 송명준 기자)



서울을 상징하는 남산의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숭의여고. 1903년에 창립되어 올해로 98년째 되는 숭의의 교정,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는 학생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듣는 기자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 깔끔하면서도 아담한 교장실로 남상학 교장선생님과 현 교목실장으로 계시는 한동윤 목사님을 모셨다. 두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구한말 이후 조국과 아픔을 함께 해온 숭의여고에 서려있는 마펫의 정신, 기독교의 정신을 찾아본다.



Q : 1903년 창립 당시의 모습에 대해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 창립 당시의 우리 나라 여성들은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한 대가족제도 하에서 순종과 인내를 강요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쇄국정치가 무너지고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여성들의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지요. 이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에서는 교육 전담 선교사로 배위량(William Martyne Baird) 목사를 임명하여 마펫 목사와 함께 선교교육정책의 계속적인 추진을 일임했습니다. 이에 1887년 신양리(新陽里)의 이길함 목사 집 앞 단층 기와집에서 10여명의 규수들이 모여 시작한 ‘예수교소학교’가가 숭의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6년의 과정을 마친 ‘예수교소학교’ 졸업생의 진학을 위해 마펫 목사는 선교부에 중등교육의 필요성을 피력했고 평양 최초의 선교 병원이었던 제중원 건물을 사용하여 개교하기로 결정, 1903년 10월 31일 처음으로 숭의가 문을 열게 되었죠. 개교 첫해 43명의 처녀들이 찾아왔는데 당시 여성들은 내외하던 때라 “귀한 것이 학생이요, 더욱 소중한 것이 여학생”이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학생 모집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Q : ‘숭의’의 의미와 건학정신은 무엇인가요?

A : ‘숭의’라는 교명은 마펫 목사와 초대 교장인 배귀례 선생 등이 의견을 모아 지은 것으로 봅니다. 숭의여학교, 숭실전문학교, 숭실중학교를 삼숭(三崇)이라 불렀죠. 뜻은 마태복음 6:33 말씀을 근거로 ‘의를 높이는 학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학교’라는 뜻입니다. 건학정신은 사랑의 여성(마26:7-13), 의로운 여성(행16:14-15), 봉사의 여성(잠 31:30-31)의 세가지입니다.



Q :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폐교될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A : 193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군국주의 체계가 노골화되기 시작했지요. 우리말을 배우고 쓰는 일을 민족 사상 고취로 보고 금했으며, 일본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배일사상자로 여겼습니다. 숭의여학교는 일본인 교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부터 일본어와 일본사를 국어, 국사로 쓰지 않은 일, 수업을 일어로 하지 않은 일, 성경 과목 폐지에 반발하여 끝까지 예배를 드린 일 등 사사건건 일제와 부딪쳤지요. 그러던 중 30년대 초반부터 강요돼오던 신사참배의 압력이 더욱 거세지면서 마펫 목사 이하 일치 단결된 마음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해오던 학교측에 35년 12월 30일, 학무국장 와다나베가 최후 경고를 전달해왔죠. 결국 학교장 대행으로 일하던 선우 리 선생이 파면되는 극한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삼숭(三崇)학교는 “죽으면 죽으리라”(에스더 4:15)는 말씀아래 더욱 일치단결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마침내 숭의여학교는 1938년 3월 15일 오전 10시 40분, 스스로 폐교식을 갖게 되었고 평양의 상수구리 숭의 강당은 하염없는 통한의 눈물로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읍소하는 소리가 식의 시작을 숙연하게 만들었는데 찬송, 기도, 성경봉독, 말씀 순서로 식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울음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소안엽 전교장이 고별사를 하던 중 흐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모두 통곡을 하며 무너지는 가슴의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개교 이후 35년간의 평양에서의 숭의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죠.



Q : 광복 후 서울에서 재건설립시의 정황은 어떠했나요?

A : 1913년 송죽결사대가 조직된 해에 숭의교우회가 창설되었습니다. 지정학교 인가, 신사참배 거부 등 학교의 크고 작은 일을 주도했던 모임이었는데 폐교 때도 숨어서 학교 살리기 운동을 했죠. 그때 회장이 박현숙 동문이었습니다. 폐교 후에도 이 모임은 더욱 융화, 단결되었고, 모교 재건의 열렬한 의지를 가슴에 품은 채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광복과 함께 평양에서 학교 재건의 기치를 높이 들지만 일제보다 더 기독교를 싫어했던 공산당의 배척과 탄압하에서 결국 숭의인들은 재건의 설계도와 건학 정신을 가슴 속에 싸 넣고 38선을 넘어오게 됩니다.

월남한 숭의인들은 신문 광고와 라디오 광고를 통해 1945년 5월 8일 남대문교회에서 모이게 되고 즉석에서 숭의재건위원회를 조직하게 되어 재건 설립자인 박현숙 선생의 주도 하에 곧 재건 사업에 착수하게 됐죠. 숭의 동문들의 눈물어린 오랜 준비 끝에 중구 남산동 2가 1의 2번지 퇴계로에 있는 송죽원 일부를 교사로 하여 5명의 학생으로 ‘숭의여자중학’이라는 간판을 내건 채 1950년 4월 12일 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달 만에 학생 수가 45명으로 늘어나게 됐고, 6월 15일 목요일에는 재건 숭의의 개교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많은 숭의인의 감격과 환희 속에 재건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열흘 후 발발한 6·25 사변으로 말미암아 개교 열흘 만에 다시금 모든 것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Q : 참으로 조국과 아픔을 함께해온 학교라는 말이 맞는군요. 그 이후의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A : 피난 생활 속에서도 숭의동문들의 개교를 위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고, 청년 실업가 박이봉씨의 광산 희사로 재단 법인 숭의학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서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인 1953년 6월 1일 송죽원에서 숭의여자중학이라는 간판을 걸고 23명의 입학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증가하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사 건축 부지를 알아보던 중 바로 남산 기슭 옛 경성신사 자리로 신사 건물의 일부와 군경유자녀원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과 파문 속에서 1956년 6월 24일, 옛 경성신사 자리로 교사 이전 작업을 시작하여 자리잡은 곳이 바로 지금의 숭의여중·고 교지이지요. 1938년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문을 닫았던 숭의가 서울에서 재건하여 바로 조선 신사의 본거지인 그 터에 교지를 정한 것은 참으로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Q : 현재와 앞으로의 숭의의 발전 방향은 어떴습니까?

A : ‘경건한 여성이 되자. 작은 일에 충실하자. 부덕을 높이자.’ 라는 교훈 아래 50 여명의 선생님과 123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정신에 의하여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숭의 교육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사랑과 봉사, 그리고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실천할 줄 아는 여성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죠. 정기예배로는 매주 수요 예배와 토요 학급 예배가 있고,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때의 절기 예배와 신입생 환영, 졸업식 때 드리는 특별예배 등이 있습니다. 신앙 관계 특활로는 학급예배 준비 및 각종 봉사활동을 하는 선교반과 영어로 성경공부 등을 하는 영어성경반, Y.F.C와 Y-teen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50여개에 달하는 부서들이 각종 발표회를 하며 부족함 없는 시설속에서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마음껏 펼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펫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들과 교사, 동문들의 눈물과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이제 곧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숭의여중·고는 2003년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대방동으로 교지를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연 많은 남산을 떠나는 서운함과 21세기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기대감에 차있는 숭의 교정을 바라보며 앞으로도 이 땅을 이끌 많은 여성 선각자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본다.



숭의여자고등학교

(100-250)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3

Tel : (02) 3708 - 9303

                  






  선교정보리스트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