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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0-07-31
 제목  ‘씨를 뿌리러’가 아니라 ‘땅을 갈러’
 주제어키워드  선교편지4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774  추천수  6
내가 S자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비전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고향인 수마트라섬으로 돌아가 목회를 하는 것이었다. 고향에는 그녀가 섬기던 교회가 있었고 여자도 보통 목사가 되는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볼 때 그 꿈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와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가 그 동안 기도하며 관계하고 있는 이슬람 순다 마을인 P마을을 소개하며 그 곳을 섬기면 어떻겠냐고 권면했는데 그 자매는 선뜻 그러하겠다고 허락했다. 그후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 이 마을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나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과 명령을 도전하며 미전도종족 순다족을 자매의 가슴에 숙제로 가득 안겨 주었다. 정말이지, 순다족을 평생 섬기려면 순다언어와 문화를 배워야하는 어려움이 있고, 자국인 선교사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고통이 따르는데도, 첫사랑의 뜨거움인지 그녀의 헌신은 참으로 귀했고 열심이 있었다.



요나의 깨달음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 갑자기 그녀는 배를 타고 수마트라섬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렇게 이슬람이 득세하는 가난한 마을안에서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3주 후에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 주께서 그녀에게 ‘요나’의 비유를 주셨는데 순다족이 곧 ‘니느웨성’임을 깨달았다는 고백을 했다.

이후에 그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가족과 1년 넘게 공동생활을 하며 이슬람과 중보기도에 대해, 그리고 순다족에 대해 많은 것을 훈련하며 배웠다. 훈련이 끝나자, 그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정말 급하고도 강한 바람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신분-신학생이었다는- 문제가 늘 불안하고 걸렸다. 이슬람 마을에 들어가 살려면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만 의심을 받지 않는다. 그녀에겐 그 마을에서 의심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정체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가르치는 은사를 보며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코스를 마치도록 했다. 이제 그녀는 유치원 설립 자격증까지 얻어 당당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이 코스를 공부할 때부터 이미 P마을 안에서 비거주로 유아들과 학교 못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거기에다 김조은 선교사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으며 터를 닦아가고 있었는데 그 마을 부모들이 S자매가 마을에 들어와 살면 좋겠다고 요청을 해서 그녀는 즉시 믿음으로 그 마을에 들어가기로 했다.



첫번째 자국인 선교사



‘여자 혼자 왜 순다마을 시골안에 들어와 살까’하며 의심의 여지가 많았지만 세를 내준 주인집과 유치원 아이들의 부모가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어 그녀의 정체성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으로 마을 안에 알려졌다. 마을에서는 그녀가 크리스챤인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마을에서 받아들였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뒤에 선 기도 동역자들의 4년 반이라는 중보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우리의 첫번째 자국인 선교사이다. 드디어 4월 10일 순다족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리고 이때 HOPE 대구지부의 윤 목사님께서 오셔서 설교와 안수를 해 주셨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고 알아주지 않았지만 우리끼리 드린 이 조촐한 파송예배는 하나님께서 보셨고 받으셨다. 이렇듯 한 명의 사역자가 세워지기까지 수많은 기도와 시간과 재정과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를 기도한다. 그녀의 정착을 위해 약간의 물건을 사고 이사짐을 꾸려 마을로 보내는 순간, 5년전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셨던 교회와 동역자들을 생각했다.

그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약하지만 용감하게



이제 마을에 들어간 그녀는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사단과 싸워야 한다. 신변의 위험을 극복해야 한다. 그녀가 마을에 들어간지 한 달이 넘어가자 모스크의 코란 선생은 아이들이 그녀 집에 가는 것을 막고 부모들을 선동해 이 자매를 매장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젊은 청년들이 때때로 위협적인 자세로 협박하며 그녀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믿었던 한 부모가 모함을 하며 S자매의 집이 ‘교회’라고 소문을 내며 방해까지 했다.

그러나 부모가 가지 못하게 해도 몰래몰래 그녀의 집으로 다녀가는 아이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고, 한 엄마는 5,000루삐아(계란 10개 값)를 가져와 S자매의 손에 슬그머니 쥐어주면서 아이들을 계속 가르쳐 달라고 하기도 했으며, 밤 늦게 들어와 밥을 하려는데 이웃 아주머니가 밥과 반찬을 가져다 주어 그 밥을 먹는 순간 목이 메어 울어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는 나약한 마음을 가진 자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용감하게 P마을 안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7명의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녀는 때로는 모아놓은 헌옷을 가져다가 싼 가격으로 팔고 그 재정으로 생활을 하며 사도바울의 ‘전문인 선교’의 길을 걷고 있다.



돌짝 밭을 갈며



헌옷을 팔며 이웃들과 사귀기도 하는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언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씨를 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갈러 왔습니다. 포도밭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나는 실망하지 않고 여호와로 만족하며 P마을 사람들의 마음 밭이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땅이 되도록 돌짝 밭을 갈겠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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