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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7-31
 제목  정말 탐내고 여기서 행하라
 주제어키워드  선교기고I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497  추천수  7
선교 정탐은 탐정 수준이 아니라 믿음 수준으로 결정된다



무식용감하게 뛰어들었던 고참들은 선교지에 대한 어렴풋한 정보만으로 뛰어들었다. 가서 생을 걸고 일해야 할 나라인데 선교지에 대한 정보 수집을 왜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정보는 선교에 도움이 되는 전문 정보가 아니었다. 당시 한국에 있는 선교지에 대한 정보는 백과사전의 내용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참고한다는 것이 『대영백과사전(Encyclopedia Britanica)』이었는데 그것은 당시 지식인들의 서재에 장식품으로 많이 꽂혀 있었다. 그 사전의 판매 대리인은 지식인들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파는 작전을 썼다. 그 작전이 적중해 외화가 부족한 당시에 많이 팔아서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이후에 그는 수익으로 민주의식화 잡지를 내다 폐간당하기도 했다.

영어로 쓴 백과사전을 줄줄 읽을 만한 사람이 몇 되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전집으로 사서 모양 나게 꽂아두기 좋아하는 졸부에게 금빛의 장식성이 잘 먹혔다. 표지의 큰 영문이 금빛을 발하고 내용이야 영문을 너도 나도 잘 모르니까 권위가 있었다. 발행사가 한국에 몇 부 팔릴까 해서 판매권을 주었는데 엄청난 판매량을 올렸다. 그 책들은 손때도 별로 안 묻고 아직도 꽂혀 있을 테니 시대에 뒤떨어진 정보이지만 역사적인 참고 자료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 가서 보니 개인적으로 이 백과사전 한 질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지역 공공 도서관이 잘 되어 있는데다 일반적인 정보여서 전문가들은 참고 정도로 쓰는 책을 집에다 줄줄이 꽂아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정작 그 백과사전에는 당시 적성국(당시는 사회주의라는 이름만 비슷하게 걸쳤어도 무조건 적성국)에 대한 것을 좀 찾아보려면 지워지거나 잘려진 면들이었다. 검열이라는 명분으로 군사 독재 정권이 해놓은 정보 독점의 결과였다.

이런 시절에 일한 선교사의 눈으로 보면 지금은 선교 정보의 해일시대이다. 선교지에 나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미정보부의 각 나라에 대한 공개 정보까지도 볼 수가 있다. 또 어느 나라든 영어나 현지글을 읽을 줄 알면 선교지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정보 시대니 선교도 잘되고 세계화도 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빌린 외화 통계를 내는 정보 실력도 없어 환란 사태 속에 온 국가 망신을 다 당하고 있으니….



정말 그렇다고 수긍할 수 있을까



선교지의 정보를 많이 가졌다고 해서 선교지에 뛰어드는 데 과연 유리할까?

성경에서 정보와 분석에 대한 중요한 실례가 있다. 가나안 정탐꾼의 이야기이다(민 13-14장). 이 성경을 갖다 맞추어서 선교지 정탐 여행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정보의 중요성도 무척 강조했다. 정탐했다는 별 가치 없는 미전도 종족 거품 정보를 책으로 내어서 비싸게 돈받고 파는 조직도 생겼다. 거품 경제 시절에는 수많은 거품 정탐 여행이 유행하기도 했다. 가나안 정탐꾼의 이야기가 정보 파악의 중요성이나 정보의 상세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을까?



전혀 다른 두가지의 정탐 보고서



(1) 첫 동아리의 보고서

절대 다수 - 열두명 중 열명의 입장 - 쪽이고 대중에게 잘 먹히는 보고서에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나 그 땅의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크다. 수비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지키는 아낙 자손은 거인족이다. 아말렉은 남방 땅을, 헷, 여부스, 아모리인은 산지 쪽을,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가를 다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가 쉽게 뚫고 들어갈 장소의 여분이 없다. 거기에다 우리가 약해서 능히 올라가서 그들을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월등히 강하다.

결론 :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다. 거기에 사는 모든 백성은 거인족이며 우리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다. 이 땅은 좋아 봤자 못먹는 땅이니 포기하고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



(2) 둘째 동아리의 보고서

소수 - 열두명 중 두명의 입장 - 쪽이고 대중이 싫어하는 보고서.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겁낼 필요는 없다. 그들은 우리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결론 : 우리가 하나님만 순종하면 되니 밥 먹으러(그 땅을 취하러) 가자.

똑같은 사실을 보고 왔는데 보는 눈에 따라 결론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대중들에게는 도전 보고서(믿음으로 도전) 보다는 부정적 포기 보고서(어렵게 싸우지 말고 포기하자.)가 더 잘 먹히고 있다. 그날 밤 이스라엘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다가 새 지도자를 세우고 돌아가자는 절대 다수의 투표 결정이 있었다. 모세는 이를 말리려고 회중 앞에 몸을 던져서 엎드러지며 말렸다(민14:5).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면서 말리고 믿음의 보고서를 제시했으나 씨도 먹히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허위 보고의 명분을 씌워서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나타나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엄하게 책망할 때에야 백성들이 겨우 이성을 찾았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그들을 쓸어버리고 모세를 통해서 새민족을 만들려 하셨다.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를 통해서 겨우 이스라엘은 쓸어버림을 면하였고 하나님이 계속 인도하여 주실 것을 약속했다. 믿음 없는 죄로 정탐일수를 연(年)으로 덤터기로 쳐서 40년 광야 유랑의 선고를 받았다. 현재 20세 미만의 아이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허락하셨다. 열 명의 불신 보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재앙처형을 당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서 사십년 후에 약속의 땅에 같이 들어가는 입장권을 약속 받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된다(민 14장).

성경의 이 부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보의 상세성이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같은 사실을 보지만 정보 분석의 자세에 따라 결론이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정탐하는 믿음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사랑, 믿음, 소망의 눈으로 선교지를 보라



첫째, 사랑의 눈으로 선교지를 보라. 선교사는 복음을 들고 가는 사랑의 사도이다. 복음이 없는 자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 사랑은 모든 난관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을 준다. 복음의 필요성을 먼저 보라.

둘째, 믿음의 눈으로 정탐 지역을 보라. 복음의 가능성과 능력을 못 믿으면 현지의 어려운 모습이 돋보여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핑계가 많이 늘어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

셋째, 소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자가 되라. 주님의 명령이면 도전하여 뛰어들라. 개척자적인 도전 자세가 아니면 오지를 복음으로 정복하는 일에 뛰어들기 힘들다. 가서 보고 결정해 보겠다는 소극적인 마음이면 정탐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이 어려운 선교지로 가는 데 도움이 된다.

환란 사태 이후에 눈치를 보느라 정탐 여행이 많이 줄었다. 환란 사태의 자동 청소기가 선교에서 거품 정탐 여행을 많이 쓸어 담아서 날리던 먼지가 적어진 모습이다. 조금 사정이 풀리면 올챙이 시절 잊기 잘하는 건망증 때문에 다시 거품이 일 것 같아서 이 마음의 거품을 추적해 본다.

정탐 여행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실용적으로 규모를 줄이더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경제 형편 때문에 정탐 여행이 줄줄이 사라지는 것이 이제까지 한 정탐 여행의 거품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정탐 여행(“정말 탐내고 여기서 행하라.”)



정탐 여행을 하는 자는 다음 질문을 자기에게 스스로 해 보기를 바란다.



① 내가 정말 장기 선교사로 일하기로 결단을 하고 가는가? 아니면 단기로 슬쩍 다녀 보려고 하는가?

② 내가 선교지의 영혼들을 복음으로 탐내는 마음으로 가는가? 아니면 이 선교지에 나의 할 일이 어떤 것인가 알려고 가는가?

③ 내가 여기서 일하려는 결단을 내리고 선교지를 분석하러 가는가? 아니면 여러 선교지를 둘러 보고 선택하기 위해 가는가?

④ 복음 전파를 직접 행하기 위한 여행을 하는가? 아니면 분석 자료 수집이나 종족 입양 자료 수집을 위해 가는가?

⑤ 내가 보안 지역에 소규모의 준비한 동아리로 가는가? 아니면 개방 지역에 대규모 동아리로 참가하는가?(4인까지를 소규모로 인정함)



이런 질문의 ‘아니면’ 요소에 과반수 이상 넘게 해당되거든 아예 정탐 여행을 취소하라. 가지 않는 것이 선교 자원 절약에 도움이 된다. 왜 내가 이런 까다로운 조건이 붙은 질문을 자꾸 하는 것일까? 젊은이들이 정열이 넘쳐 나가는 정탐 여행에 무슨 시비할 것이 그렇게 많은가?

내가 보는 정탐 여행의 반대말은 어적 여행(어슬렁 적당히 여기저기 행할까 말까?)이다.

이 어적 여행은 거품 경제 시절에는 낑깡족이 헛돈 쓰는 것보다 나아서 양해할 수가 있었다. 환란 사태가 국가 경제를 뒤집어 엎고 선교의 뿌리를 흔드는 시기에 사치 허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차피 지원처에서 돈을 대주니 다녀오면 어떠냐 하는 생각이 드는가? 이런 여행의 경비와 시간 소모가 선교라는 전체의 일에 효과적으로 쓰여졌다고 생각하는가? 가는 사람의 자기만족 외에 무슨 효율성이 있을까? 정탐보고서의 내용은 거의 일반 정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는 어디서도 얻을 수 있다. 정탐 후에 그 지역에 장기 선교사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나왔을까? 이런 목적으로 정탐 여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많다. 단체의 입장에서 효율성이 있었다는 평가이면, 참가한 사람들을 다시 모아놓고 이 계산서를 내어놓고 그들에게 효율성을 질문해 보기 바란다.



어적 여행을 한 선교지로 가지 않게 되는 이유



이제까지 장기 선교사로 서원하고 정탐 여행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여행했던 선교지로는 장기 선교사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가보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올까?

정탐 여행의 목적이 선교지를 선택하기 위해 추진한다고 하는데 왜 이런 반대현상이 생길까?



ㅇ은 파송 단체의 선배 ㄱ이 일하는 아프리카의 ㅅ나라에 정탐을 갔다. 그곳이 종족 분쟁 내란 상태가 되어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다시 서아시아의 ㅌ에 가서 정탐 여행을 했다. 그곳에는 이미 선교사가 많이 들어와 있었고 현지인 교인 몇명을 놓고 동료간 현지인 끌어가기가 치열한 현상이 있음을 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새롭게 열린 ㅅ지역을 소개받았다. 근처의 선배에게 정보를 물었고 정보를 받아 본 후에 ㅅ으로 바로 들어가 사역을 하게 되었다. 소개해 준 선배인 ㄴ은 웃으면서 이렇게 그에게 말했다.

“너는 정탐 여행하는 돈은 다른 곳에 가서 다 쓰고 결국 여기 들어와 일하니 목적에 맞지 않게 쓴 정탐 여행 비용은 반납해야 되지 않니?”



ㅅ훈련원은 훈련 끝날 때 선교지 정탐 훈련 과정이 있다. 훈련생들이 여행을 계획해서 어느 지역에 가서 선배의 사역을 관찰하고 자극받아 선교지를 택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정탐에 참가한 자들이 여행한 선교지로 가지 않는 현상이 많이 생겼다.

이 정탐 여행 훈련 과정을 계속해야 하는가? 중단해야 하는가? ‘정말 탐내고 여기서 행하는’ 정탐 여행을 하라는 것도 이런 사례를 분석해보고 나온 말이다. 장기 선교사로서의 결단이나 선교지에 대한 결정을 이미 내리고 난 뒤에야 정탐 여행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선교는 시행착오라 하니 어적 여행인 경우의 부작용부터 생각해 보자.

장기 헌신할 선교지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고 어적 여행을 하면 다음의 현상이 일어난다.



1) 선교지 선배들의 사역에서 시행착오 부분이 많이 보인다. 내가 결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보면 이해보다 판단의 눈으로 봄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이 한 선교 서원에 대한 회의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선택의 여지를 남겨 두었으니 자신의 일생에 대해서 다음의 질문이 자꾸 생긴다.

· 내 장래가 저런 선교사처럼 마쳐야 하는가?

· 몇 명을 두고 하는 저런 사역에 내 일생을 투입해야 하나?

가나안 정탐 사건에서 믿음편은 소수이고 불신편은 다수였듯이, 여기도 불신의 조건이 믿음의 조건보다 더 많이 생기게 됨을 알라. 이것이 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믿음은 키우기 어렵고 불신은 빨리 자라는 것이 인간의 죄된 마음이다.



2) 여러 선교지를 보고 선택할 경우 선교지에 대해 비교하는 마음이 생긴다. 선교지마다 할 일을 찾으면 어디든지 할 일이 있다. 가서 현장을 보고 나면 스스로 비교하는 마음을 피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선택의 여지를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의 질문들이 마음 속에 일어날 것이다.

· 어디의 일이 내게도 보람차고 남에게도 좋게 보여질까?

· 어디가 자녀 교육 환경이 더 나은가?

· 어디가 적은 돈으로 좀 더 낫게 살 수 있을까?

· 어디가 나를 키워 줄 마음 좋은 선배가 있는가?

질문이 불신의 질문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환경이 낫고 일이 표나게 열매가 있는 곳을 택하려는 나의 이기심과 연결된 질문이다. 선교지의 필요성보다 나의 필요성에 선교지를 맞추려는 유혹의 질문이다. 믿음의 선택보다는 조건의 선택을 하게 나를 끌고 간다.

당신의 믿음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더 어려운 곳에 유혹을 느끼는 모험가 체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를 가진 가장이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볼 사연이 자꾸 증가한다. 차라리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인정하라. 그리고 아예 결단을 내려 놓고 봐야 선교지의 형편이 제대로 보이고 영혼들이 간구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여,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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