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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7-31
 제목  “소연아, 가방 챙겨야지!”
 주제어키워드  선교사자녀의 글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503  추천수  15
제 유치원의 단짝 친구 오민교는 ‘지구 방위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유치원에 가면 “소연이를 지키자. 얍얍”하며 저를 다른 친구들이 괴롭히지 않도록 지켜 주었어요. 재미있게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날 “소연아, 가방 챙겨라”는 어머니의 말씀으로 유치원 친구들도 가끔씩만 보게 되었어요. 저를 항상 지켜주었던 단짝 친구 민교도요. 선교사훈련을 받으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서 저는 선교훈련원이 있는 가락동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던 부천집으로 주말마다 가방을 챙겨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무슬림 언니들과의 합창



“소연아, 이제 우리는 인도네시아로 가게 된단다.”라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씀에 무조건 흥이 났어요. 제가 이곳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에 제 동생 승연이가 태어났어요. 할아버지께서는 4대 독자인 승연이가 너무 어리다고 하시며 승연이는 한국에 두고 가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요. 승연이는 어머니, 아버지의 보살핌이 필요했고, 온 가족이 함께 가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저희는 조그만 바구니에 90일 된 승연이를 담아서 김포공항으로 갔어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공항에서 외할머니께서는 “소연아, 아기 바구니 두고 내리지 말고 잘 들고 다녀라.”하시며 눈물을 감추셨어요.

저희 가족은 비행기를 타고 중부 자바 쌀라띠가에 정착했어요. 저희는 오솔길이 있는 조그맣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았어요. 제 동생 승연이는 우리 동네에서 유명했지요. 매일 아침마다 승연이는 앙꼬딴(미니버스) 정류장에 서서 손을 들고는 “그로골, 그로골”(동네이름)하며 마을버스 차장 흉내를 내곤 했었지요. 아침마다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웃었습니다.

저는 앞니가 네 개나 빠진 귀여운 모습으로 CJIMS라는 선교사자녀학교의 유치원에 입학했습니다. 겁이 나고 무서워 아침부터 점심까지 울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창문 밖에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쌀라띠가 작은 마을에서 보낸 첫번째 크리스마스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선풍기에, 런닝셔츠, 슬리퍼, 쨍쨍 쬐는 햇빛, 한국에서 보내던 새하얀 눈 속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꿈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근하고 달콤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주셨어요. 저는 동네 무슬림 언니들과 함께 놀며 인도네시아어를 쉽게 익혔습니다. 저는 그 언니들에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가르쳐 주었어요. 언니들은 금방 배웠고, 우리들은 합창을 했어요. 기분이 참 좋았고, 큰 일이라도 한듯이 뿌듯했어요.



‘멘’자와 함께



우리 동네는 우기에는 전기가 자주 나갔어요. 하루는 깜깜한 집안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전기가 나갔어요. “소연이가 기도해라.”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전기가 나갔어요. 저는 숙제해야 되고, 아빠는 컴퓨터로 강의준비를 하셔야 돼요. 하나님 전기가 필요해요. 불이 들어오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멘’자와 함께 전기가 들어왔어요. 우리는 너무 놀라고 감사하여 손뼉을 치며 감사했습니다.

어느날 “소연아, 가방 챙겨야지!”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저는 너무 슬퍼졌어요. 우리 가족이 선교지를 동부 자바로 옮기게 되었어요.

섭섭함도 잠시, 어머니가 막내 동생 승혁이를 가지셨고 입덧이 심해서 우리집이 있던 신학교 캠퍼스 밖으로는 자주 나가지 못하게 되셨지요. 우리가 살던 말랑신학교 안에는 어린이 친구가 없었어요. 제가 학교에 가면 승연이는 캠퍼스에 다니는 커다란 개들과 어울려 네 발로 기어다니며 “으르렁, 으르렁” 소리지르고 맨발로 다녀서 발톱이 까져 피가 나기도 했지요.

제가 2학년 때에 귀여운 막내 동생 승혁이가 태어났어요. 저는 승혁이가 너무 귀여웠어요. 토요일이면 변함없이 말랑에서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 가셨다가 월요일 새벽에 오시는 우리 아버지, 털보선교사님은 저희들을 슬프게 하셨어요. 승연이는 아버지가 떠나신 토요일 밤에는 잠도 안자고 신발장에서 아버지 신발 한 짝을 꺼내서 가슴에 안고 앨범의 아버지 사진을 가리키며 “아빠, 아빠”하면서 울었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저와 승연이를 품안에 안으시며 “하나님, 아빠가 하나님 말씀 잘 전하시고 많은 사람들 구원받게 하시고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도로 인도해 주세요.”하고 기도를 하시면 승연이도 어머니를 따라 “하님, 하님, 아멘”하고 말했지요.



슬픈 이별



어느날, “소연아, 가방 챙겨라. 우리는 자카르타로 가야한단다. 그리고 소연이는 한인학교에 다니든지 예전에 다니던 중부자바 CJIMS학교의 기숙사에서 공부할 수도 있다. 네가 결정하렴.”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저는 “아빠, 내가 기숙사에 가면 내 도시락은 누가 싸줘?”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이렇게 웃음 반, 울음 반으로 저는 기숙사로 들어갔고 식구들과는 슬픈 이별을 했습니다.

기숙사에 있을 때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어요. 저녁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면 식구들의 얼굴이 생각나고 제 마음도 붉게 물들었어요. 어디에선가 어머니가 “소연아”하며 오시는 것 같았아요. 어느 날 어머니가 정말 기숙사에 오셔서 침대 모서리에 리본을 묶어 주시고, 운동화 끈도 든든하게 다시 매 주셨어요. 손때 묻었지만 풀지 않고, 빨지도 않았아요. 어머니의 손길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서였죠. 때때로 무서운 꿈을 꾸고 일어나면 ‘다시는 식구들과 떨어져 살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했었요.

저는 우리 어머니 별명을 “소연아! 가방 챙겨야지!”로 부른답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사가 왕진 가방을 챙기는 것같이 영혼을 구하시려고 어머니, 아버지가 가방을 챙기시는 모습은 보기 좋아요. ‘하나님, 제 소원도 하나님께서 “소연아, 가방 챙겨야지!”하시면 언제나 순종하는 의료 선교사가 되는 것인 줄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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