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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0-07-31
 제목  과거속의 한국, 사할린에서
 주제어키워드  선교하는 개인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316  추천수  7
과거 러시아 선교사는 영주권을 얻어 사역이 안정적이었다고 하는데 요즈음의 사할린은 비자연장을 위해서 사역지에서 일년에 한번은 한국을 나오게 된다고 한다. 역시 비자연장을 위해 잠시 귀국한 김수복 선교사 부부가 선교타임즈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어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더불어 김 선교사의 처음 선교지였던 타쉬켄트에서 사역중인 김영제 선교사도 함께 참여해 선교사역의 내용을 지면에 옮겨본다.



선교지로 그냥 믿고 떠난 길



1991년 소련이 개방되어 무엇보다도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 선교사들이 그곳을 향했다. 그당시 7명의 선교사가 떠났는데 그 일행중 김 선교사도 포함되었었고, 그는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로 1991년 4월 19일 가게 된 것이다. 소련선교회와 고려측장로교 파송으로 떠난 낯선 땅은 김 선교사에게는 처음의 선교지가 되었다.

“지금 제 나이가 54세인데, 그당시에 떠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모험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늦게 신학을 하고 경향교회 부목사로 섬기다가 주님의 인도로 필드사역이 시작된 것이지요. 신학교 다닐때 학우회 회장을 하였는데 그당시 기도회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우연히 캐나다 선교를 위해 기도중일때가 있었어요. 그때 캐나다를 통해 공산권 선교를 하자는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다가 헌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헌신한 이후 한동안 그 사실을 잊은채 목회자로서 사역하게 되었지만 그가 잊었다 해도 분명히 기억하고 계신 주님은 소련의 문이 열리면서 그의 서원을 이루신 것이다.

선교지로 떠날때 김 선교사와 부인 이 선교사는 용감했다. 그당시 자녀가 한참 학업중이던 때였고 외국은 낯선 상황이었지만 너무도 모른 상황이었기에 오히려 담대할 수 있었고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믿고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타쉬켄트로 가서 타쉬켄트경향교회를 건축하여 300~400여명의 출석교인이 모이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이 대개 반반 정도의 비율이었지요. 그러다가 총회의 명으로 97년에 사할린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고려인



김 선교사는 그곳에서의 고려인들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다. 우리가 흔히 알듯 강제이주당해 불행한 삶을 사는 고려인이 아니라 늘 성실하고 열심히 생활하여 부지런함으로 소문난 고려인들을 말해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러시아인들이 “Korea No. 1”을 외치는 것을 통해 우리에 대한 인식도 매우 좋은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러시아 경제가 매우 어려운 중에도 고려인들은 늘 열심히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국에서 사람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모두 교회로 모여들었고, 저희들 얼굴만이라도 보러 온 그 발걸음이 예수님을 알게 되어 영접하는 역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지요.”

마음아픈 부분도 있기는 하다고…. 우즈베키스탄이 독립국이 되면서 그동안 러시아어를 쓰던 것에서 우즈벡어를 강요하게 되었고, 국가기관에서도 공식적으로 우즈벡어를 쓰는 그 민족이 아니면 적응하기가 힘들고 따라서 그동안 공직에 있던 고려인들과 러시아인들이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기도 했다. 민족차별이 심한 그곳 상황이 매우 힘든 상태인 것이고, 그동안 이뤄놓은 집단농장이나 좋은 지위들도 우즈벡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떠나야 하니 민족차별이 매우 심각한 것이다.

따라서 김 선교사는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그들의 입지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한듯 하다고 말을 전한다. 또한, 선교사라는 직분도 많이 제약을 받게 되었는데 96년 이후부터는 선교사를 인정하지 않으니 교사나 구호단체, 비지니스로 들어가야 하는 제약도 따르게 되었다고.



시골교회 목회하듯…



“현재 사역하고 있는 곳으로 97년 11월에 오게 되었는데 지금의 사할린교회는 전임 선교사가 열심히 개척한 교회여서 저는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장년 200여명에 주일학교 100여명, 중고등, 청년부 대략 100여명이 모이고 있지요. 사할린에는 일제시대때 징역으로 끌려간 분들의 후손들이 많기에 우리와 의식과 언어, 풍습, 음식 등 유사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현재 러시아인들은 30%가량인데 앞으로는 그들을 향한 선교에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러시아에서의 선교는 정교회가 장애물이 된다. 97년 개정된 종교법은 50년 이상된 교회만을 등록받기 때문에 1년간은 선교사 비자도 나오지 않고, 재등록도 되지 않게 되었다. 노방전도 활동도 금지된 상태여서 선교사들의 많은 기도가 있었다고.

그러나 이것도 주님의 관여하심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50년 넘은 교회가 러시아 침례교와 러시아 오순절교회, 그리고 복음주의 교단이 미리 있었기에 그 밑으로 한국 선교사들이 등록되면서 더욱 더 안정적으로 종교비자를 받아 사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교장애 중 또다른 것 하나는 러시아 사람들의 인식에는 당연스럽게 자신이 ‘정교회 교인이다.’라고 믿고 있기에 개념을 바꾸는 것이 조금 어렵고 아직까지 러시아인들 즉 백인우월주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사무실에 방문한 김영제 선교사는 지금의 김 선교사와 사할린교회의 칭찬에 말이 끊이지를 않는다.

늘 성경공부와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 66권을 돌아가면서 강해설교하는 김 선교사의 목회와 선교지침을 칭찬하며 특별히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위주로 사는 것과 공산주의에 물든 이들에게 늘 주님만 바라보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원칙하는 김 선교사를 자랑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개혁주의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말씀중심입니다. 늘 변함이 없고 신실하셔서 선교사들끼리도 많이 의지하는 분이기도 하지요.”



용감하게 가기는 했는데…



김 선교사의 사모는 사역의 뒷받침을 하는 즐거움을 늘 경험한다고 한다.

“선교지로 갈 때 제 딸이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애가 유난히 적응하기 힘들어 하더군요. 사춘기때 후진국에 가게 되니까 콜라 한 잔 먹을 수 없고 백화점에 갔는데 전혀 물품이 없이 열악하니까 심한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어요. 외국인이 신기해서 근처 아이들이 찾아 와 함께 놀자고 해도 방에서 꿈쩍도 하지 않더라구요. 그러던 애가 둘째 오빠가 한국에서 오니까 조금 나아졌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물설고 낯선 이곳으로 자녀들과 함께 남편을 따라 찾아오게 만든 것이다.

김영제 선교사는 타쉬켄트에서 김수복 선교사가 사역할 당시에 선교사들 간의 연합을 위해 누구보다 애썼으며 모든 것을 나누고 팀을 이루는 좋은 전통을 남겨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 이면에는 늘 손님접대와 대접에 깍듯하며 음식솜씨까지 좋은 사모가 든든히 있음을 덧붙인다.

“「우즈베키스탄선교사협의회」를 창설하시고 첫 회장으로서 저희 선교사들의 색깔을 늘 성경적이고 보수적인 기틀로 만들어 놓으신 것은 김 선교사의 업적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선교사는 현지에 파송되어 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결코 아니다. 그 파송후에는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물질적인 후원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통례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선교사를 보낸 후, 그냥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그것이 선교사에게는 위기가 되는 것이라고.

“선교사는 전투하는 병사입니다. 병사 뒤에는 후방에서 폭격기, 대포, 식량, 총알, 의료 등등 지원되어야 할 것이 매우 많아요. 따라서 후방에서 지원과 기도가 없다면 전투에서 선교사는 사역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좀더 장기적인 시선으로 선교사를 바라보아 주었으면 합니다.” 김 선교사는 늘 사역에 있어 자신이 한 것은 없고 오직 주님이 하신 것만 있다고 고백한다. 주어진 현장에서 주님이 주신 것에 대해 충실히 뿌리고 가꾸는 것이 그의 몫이라고 말해준다.



청소년을 바라볼 계획



“앞으로는 청소년선교에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사할린에 와서 보니 청소년 문제가 너무 심각한 것을 알았어요. 보통 먹고 살기가 급급한 상황이니 아이들끼리 모여서 안좋은 담배나 마약 등을 하고 아파트 지하 등등의 장소를 아지트로 삼아 음란비디오를 보거나 싸움을 하지요. 마피아에게 이용당하기도 하구요. 초등학생 1, 2학년 아이들이 어른에게 담배불을 빌려달라고 하는 실정이니 이들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라며 김 선교사는 러시아의 청소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따라서 김 선교사는 앞으로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는 작년부터 기도중인데 청소년문화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유도를 가르쳐 체육적인 면을 보강하고 목공예나 이발기술 등을 통해 적응하도록 하며, 그 기틀위에 신앙을 부각할 것이라고.

그러다보면 그들 사이에 소명자가 있을 것이고 그들이 헌신하여 복음을 위해 쓰임받게 될 날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춥고 매서울 듯한 북쪽 지역에서의 선교사역이지만 그들은 시골처럼 순박한 그들을 위해 일생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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