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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0-06-21
 제목  기분좋게 살자! 기분좋게 일하자!
 주제어키워드  교회와 목회자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182  추천수  9
(취재 : 송명준 기자)



마을버스에서 내려 도보로 10분, 흑석동제일감리교회에 도착한 시간은 수요일 저녁 9시 10분이었다. 수요예배 후 성도들의 통성기도 소리가 성전 밖에까지 들렸고, 기도소리를 들으며 들어선 성전은 기도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기도회가 끝난 후 인사를 나눌 때 고수철 목사의 얼굴과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곧바로 64년 역사를 지닌 흑석동제일감리교회의 담임목사실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신앙의 시작



1943년생인 고 목사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6·25사변 때 군산으로 피난을 와서부터였다. 피난생활 중에,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를 따라 간 것이 교회와의 첫 만남이었다고.

“처음 교회에 갔을 때 목사님께서 성경구절을 외우면 연필을 준다고 하셔서 연필을 얻을 욕심에 열심히 외웠는데 처음 외웠던 구절이 마7:7-8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친구들을 전도하면 연필을 주신다는 말씀에 내가 받았던 연필들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며 친구들을 데려오고 저는 또 연필을 타서 쓰곤 했지요. 덕분에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연필은 늘 풍족했고 전도왕으로 뽑히기도 했었지요.”

이렇게 학용품도 얻고 선생님께 칭찬듣는 재미로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열심으로 다녔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새벽기도회를 빼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자리만큼은 국내에 있는 한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고 목사 자신이 직접 인도한다.

“생이 다할때까지 쉬지않고 새벽을 깨울 생각입니다.” 라고 고 목사는 그의 각오를 다짐하듯 말했다.



사명의 시작



“대학교 2학년 때 하루는 친구집에서 잠을 자던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잠을 깼지요. 이상한 것은 밖으로 나갔을 땐 찬송을 부르는 사람도 없고 찬송가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잠들었다가 들려오는 찬송소리에 눈을 뜨기를 몇 번. 문득 ‘내가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3km 떨어진 교회에 가서 동이 틀때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겠다. 신학을 하자’라는 마음을 품은 고 목사는 3학년 복학대신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후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취직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의 만족을 느끼지 못한 채 술을 많이 먹게 되었고 결국 몸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약 2주쯤 병원에 누워있었는데 당시 내과의사이시던 아버님 친구분께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셨다. 사형선고를 받은 고 목사는 그 말을 듣자 ‘내가 지금까지 무엇하나 잘나서 살아왔는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도움을 받기만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지금 생이 끝난다면 이 빚은 어찌하는가?’하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고 고백했다. 병명도 정확하지 않은 채 단지 위와 장에 문제가 있어 얼굴이 퉁퉁부은 상태에서 병원을 나와서 혼자 삼각산에 올라갔다. 바위에 엎드려 ‘빚 갚을 수 있는 시간만 제게 주시옵소서’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 4일째 되는 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주위가 환한 강렬한 빛을 느끼고 눈을 떴는데 오히려 캄캄한 밤이었다. 다시 기도를 시작했고, 환한 빛속에서 “내가 너를 붙잡았다.”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수시간 후 눈을 떠보니 한낮이었고, 산에서 내려오니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면서 붓기가 빠졌다며 놀라워하더군요. 제가 만져보니 정말로 무감각하던 얼굴이 다시 감각을 되찾아서 손끝의 촉감이 느껴지더군요. 그 후로 하나님께서 제게 사명을 주신 것을 깨닫고 바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병원에 가서 이상이 없이 건강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때면 하나님께 감사드리곤 하지요.”



뜨거운 젊은 날의 헌신



고 목사가 처음 목회를 시작한 곳은 성도 3명의 시골교회였다. 당시 문명의 그림자도 없던 마을에 전기도 끌어들이고 도로도 넓히고, 열심히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면장님을 비롯한 마을 분들이 밀가루를 지원해주시는 등 도와주셔서 3년 후에는 80명 이상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위의 권유로 인천 청장년관 관장으로 일하게 되었고, 결혼 후에는 부천 신광교회, 인천 신현교회 등 담임목사를 역임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정말 열정을 다해서 교회를 키웠습니다. 제가 배운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목회를 했지요. 신광교회에 있을 때는 목표를 주민의 80%로 정하고 일했는데 얼마나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심방하고 관리했는지 동네 동장님이 주민 정황을 물으러 찾아 올 정도였습니다.”

또 고 목사는 기독교 백주년 아펜젤러, 언더우드선교사 기념탑건립 총무를 맡아 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기념탑 제작에 무척 많은 노력을 쏟았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온 정성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무척 애착이 갑니다. 지금도 인천에 가면 반드시 그곳을 들립니다. 늘 감회가 새롭지요.”



기분좋게 살자! 기분좋게 일하자!



목회철학이나 신조가 무엇인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고 목사는 크게 겸손과 노력, 그리고 중용의 덕을 이야기 했다.

“어렸을 적 유도를 배울 때 사범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기술을 걸어올 때는 기분좋게 넘어가 주라는 것이었죠. 그렇지 않고 저항을 하면 오히려 크게 다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는 동안 나름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기술을 거실(?) 때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넘어졌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뜻에 반대되는 길로 가고자 저항하면 결국 더 크게 다치게 되는 것이죠.”

또 고 목사는 “희생의 대가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매사에 노력하지 않고 얻는 기쁨과 열매는 참된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하며 희생의 대가를 지불할 때 생기는 기쁨이 바로 참기쁨이라고 역설했다. 또 그는 ‘중용의 도’를 강조했다. 무슨일이든지 한쪽으로 치우치고 고집을 부리면 불화가 일어나고 싸움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일을 할때는 힘있게,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지만, 사람간에 고집을 부려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양보하고 노력하며 “기분좋게 살자! 기분좋게 일하자!” 이것이 핵심내용이었다.

또한 기독교인은 믿지않는 사람보다 더 일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지도자 된 사람은 더욱 낮아진 마음으로 일해야 함을 말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고 힘써 일할 줄 아는 모습을 모델로 제시하며 모델화에 필요한 나름대로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교육을 통해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마인드를 키워야 합니다. 자신을 정립시키고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의식을 뜻하지요. 민족정신 없는 세계화는 자아상실일 뿐입니다. 또 보다 합리적인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사장된 표어, 겉치례가 아닌 실제 삶에 있어서 함께할 수 있는 말씀을 통해 비전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흑석동제일감리교회



1936년 11월에 첫 개척예배를 드렸으니까 현재 역사가 60년이 넘은 흑석동제일감리교회. 흑석동제일감리교회의 역사가 곧 민족의 수난사이자 감리교의 수난사라고 고 목사는 말한다. 분열이 있고, 여러가지 환난으로 그 때마다 많은 상처를 입어왔지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그런 아픔들을 잘 이겨내고 오늘까지 왔다며 얘기하는 고 목사의 얼굴에는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듯 했다.

“우리 교인들은 목사인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특히 새벽기도회는 150∼200명 정도가 꾸준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여러 장로님들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소신있는 목회를 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많이 협력해 주십니다. 때문에 우리 교회는 전반적으로 평신도사역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상징이 『생수』인 것도 그런 취지와 일맥상통하지요.”

어린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성도들이 생수의 역할을 하고자 애를 많이 쓴다며 자랑스럽게 말을 전했다. 매달 첫주에는 성도들이 모두 함께 나가서 일을 한다. 나이드신 분들은 축호전도를 하고, 젊은이들은 지역 청소를 함으로써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헌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교회가 마을 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뿐만아니라 선교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여러곳과 국외로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 스리랑카 등을 개척하여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경건하면서도 생동적인 예배 인도, 새신자를 환영하고 말씀을 확신하며 순종하는 교인육성, 말씀에 삶의 뿌리를 내리는 창조적인 목회 등을 지표로 삼고 달려가는 흑석동제일감리교회의 부흥을 기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흑석동제일감리교회

(156-073)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3동 80-3

Tel : (02) 817 - 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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