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 181-451년 경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여러 교부들의 신학적 특색을 대변하는 말이다.
학식 있고 참된 대표자라 할 수 있는 클레멘트와 오리겐을 통해 특수한 알렉산드리아 신학이 나타났다. 이 신학은 한편으로 필로를 통한 알렉산드리아 유대 종교철학의 새로운 기독교 양식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반 세기 전부터 알렉산드리아에 정착된 이교 영지주의에 대한 적극적 반박이다. 이 신학은 객관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와 철학의 화해를 목표하였고 주관적으로 말하면 신앙과 지식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이 연합의 중심점을 성육 전후에 걸쳐 모든 이성과 진리의 총체가 되는 로고스에서 찾는다.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다 기독교 철학자로서 전자는 독창적인 반면 후자는 보다 조직가였다. 그들에 앞서 이 도시 출신이었던 필로가 유대주의와 헬라 문화를 결합시키려 한 것 같이 그들은 헬라문화를 기독교에 끌어들여 기독교적 해석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