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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한국적 내부자 운동 사례(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3]
 자료출처  김요한-인사이더스  성경본문  
 내용 한국초대교회사에 드러난 내부자운동 사례와

한국초대교회사에 드러난 내부자운동 사례와

세계의 남은 과업을 향한 우리의 선교적 역할



김요한 (인사이더스 선교회 국제대표)




1.  선교의 내부자 관점(Insider Perspectives)이란?


주님의  지상 명령을 감당하는 사명자로서의 교회는 선교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이루신 결정판이 성육신이다.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들 가운데 의사소통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다. 성육신이야말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지상의 인간 세상 내부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사 소통하신 결정적 방법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기에 우리에게 원리가 된다.


현대 선교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바로 복음이 어떻게 하여야 왜곡됨이 없이 온전히 수신자에게 전해질 수 있으며 세워지는 교회들이 외래의 것으로 비추지 않겠는가 하는 이슈이다.[1] 이 문제는 근대의 네비우스 삼자원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도 논의 가운데 있는 상황화 및 내부자운동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2] 네비우스 원리가 자립, 자치, 자전의 삼자를 통한 현지교회의   토착화를 이야기 한다면, 상황화는 자신학화를 포함한다. 폴 히버트는 자신학화의 과정으로서 비판적 상황화(Critical Contextualization)를 그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상대적인 성격을 띠는 어떤 한 문화에 절대적인 복음이 들어 갔을 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신학적 이슈들에 대하여 말씀으로 하여금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작업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도권의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자신학화는 한 문화권 내부에 머무른 상태에서 복음을 받은 현지인들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된 이후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주님의 제자로서 성장해갈 때에 말씀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문화 및 세계관을 말씀에 합당하게 변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발제는, 아직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한 문화권 내부에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내부자(insider)라고 정의하고, 내부자가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할 때에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종교적인 상황은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를 구속하기 위한 신적인 목적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내부자 관점”의 전제로 하여, 한국의 교회역사 가운데 드러난 내부자 관점의 예수 운동 사례를 찾아보고, 이제 현시점에서 한국의 선교공동체가 새로운 전방개척선교를 위하여 구체적인 도약을 목표로 할 때에, 왜 그리고 어떻게 그 내부자관점을 적용해야 하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한국의 선교 공동체는 이미 “전방개척선교(Frontier Mission)”를 내용으로 하여 5차 5개년 계획을 세운 바 있다.[3] “Target 2030”을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하여 이제 2 차 5 개년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보다 구체적인 대안들을 세움으로써 그 목표를 향한 전진을 가속하고자 한다. 사실 한국의 세계 선교에 대한 고유한 역할을 찾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라틴 문화와 영국, 독일 및 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전통 기독교 왕국적 선교이해와 개인적 신앙의 자유를 찾아 그곳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청교도 정신을 기반한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후기-기독교 왕국적 선교 이해의 틈 바구니에서, 이제 개신교 선교역사 125 년을 지나가는 한국의 선교가 마치 구한말 다양한 외래의 영향력 하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 때를 재현해서는 절대 우리에게 주어진 고유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선교의 내부자 관점은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관점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한 문화권에서 내부자로서 살아가며, 그곳을 떠나서는 어쩔 수 없이 외부자가 된다. 우리가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하였지만 타 문화의 기독교인들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볼 때에는 역시 “한국적”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나름대로 우리 문화권 내부에서 복음을 받은 공동체로서 독특한 성장을 경험하였다는 말이 된다. 먼저 우리 자신의 경험을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감당할 역할에 대하여 고려할 때에 비로소 우리의 고유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2.  한국 초대교회사에 드러난 내부자운동 사례


한국 개신교 선교는 의사이자 선교사인 알렌이 미국서 보냄을 받아 공식적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 온 1884년을 그 원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미 그 이전에 한국에는 이미 천주교가 전래되어 있었고, 일부 쪽 복음의 성경번역 등이 이루어져 있었으며, 어수선한 국내외의 상황가운데 만주 일대에 흩어진 조선인 디아스포라 및 일본 유학생 들을 통하여 이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가운데 복음이 전해지는 상황을 추적해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초기 돌파는 이중문화적(Bicultural) 혹은 간문화적(intercultural) 인물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이 동남아시아에 전해진 경위를 추적해보면 그와 비슷하게, 전하는 자나 받아들이는 자 모두 어느 정도 이중문화에 노출되어 있던 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한국 선교의 초기 역사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사상을 포함한 타 문화의 요소가 또 다른 문화 내부로 들어가 정착하게 되는 데에는, 이중문화 혹은 간문화적 인물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4] 한국에 복음이 본격적으로 전해지던 19세기 말엽은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일본, 중국 및 러시아도 이에 합세하여 한반도를 중심으로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으므로, 복음을 받은 선구자들이 국운을 염려하며 간문화권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성공이라고 종종 이야기 한다. 그러나 네비우스 정책을 삼자원리로만 이해할 때에는 한국에서의 성공적인 결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가면서 복음이 전해지던 시대적 상황 가운데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내부자 정신을 가지고 예수 운동을 일으켜 갔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구한말 복음은 민족을 구하기 위한 절대 절명의 동기부여를 가졌기 때문에 운동으로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하여 조동진 박사는 미국 선교사의 한반도 입국으로 개신교 역사가 시작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한국인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내부자 정신이 실제적인 자국선교를 시작했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5]


자기 민족을 새로운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나라 밖의 기독교를 자국의 정치, 법률적 금령을 어기면서까지 목숨을 가지고 들어온 평안도 의주인들에 이루어진 자국 선교의 역사는, 다른 나라에서의 서구 선교의 진입 역사와 구별하여 해석하고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중략) 그런 뜻에서 1870년대의 최초의 신도들인 이응찬, 백흥준, 이성하, 서상륜, 김진기 등이 복음을 가지고 중국 국경을 넘어 압록강을 건넌 때가 한국인의 자국선교운동의 시작이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중략) 1882년에는 이응찬, 서상륜, 이성하가 과감히 중국말 성경을 국내에 가지고 들어와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하였다. 자국인에 의한 자국, 자민족 선교는 이렇게 해서 1876년으로 1882년에 걸쳐 시작되었고, 평안도 의주와 황해도 소래에 동시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로 그 다음해이다. 한국 땅에 미국으로부터 선교사가 입국한 것은 자국인에 의해 자민족 선교가 시작된 1876년으로부터 10년 후, 그리고 한국어 성경 번역이 있는 1882년으로부터 3년이 지난 1885년 9월이다.


전택부 또한 같은 어조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6]


개신교의 동양선교는 영국의 런던선교협회, 네덜란드 선교회 등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개척되었으며 한국에도 런던선교회가 접근했으나 그 뒤 미국 외지선교협회 선교사들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영토 안에서의 선교는 한국인 자신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것이다. … 이것은 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에 벌써 한국 땅에는 복음의 씨가 뿌려져 있었고 그 씨를 뿌린 꾼이 또한 외국 선교사가 아니라 바로 한국인 토박이 신자들이었다는 말이다. 당시 한국은 대외적으로 완전히 닫혀져 있는 나라였다. 완전히 닫혀 있었기 때문에 나라 안은 암흑세계였다. 그만큼 고난의 요인은 크고 많았다. … 이러한 여건하에서 어떻게 기독교의 선교가 가능했던가? 어떻게 해서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 사상 유례 없는 빠른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되었는가? 그리하여 한국 개신교의 초대 선교사들은 결국 한국에 복음의 씨를 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뿌려진 씨의 열매를 거두러 온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 초기 복음의 돌파는 민족의 역사적 상황과 결부된 한국인의 자발적 선교 주도권이 바로 그 기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이루어진 이후 주요 선교정책으로서 선교지 분할정책과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들 수 있다.  선교지 분할정책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대하여서는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성공이라고 종종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네비우스 정책을 삼자원리로만 이해할 때에는 한국에서의 성공적인 결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1890년 6월 7 명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서울에서 2 주간 모여 수양회를 할 때에 미 북장로교 파송을 받아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죤 네비우스(John Nevius) 부처를 강사로 초빙하여 선교방법을 들으면서 장기 토의를 거쳐 아직 조직된 교회 구조가 없는 상태의 초창기 선교를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 채택되었다.[7] 네비우스 방법은 자립(Self-supporting), 자치(Self-governing) 그리고 자전(Self-propagating)으로 보통 대변되나, 사실 한국에서 네비우스 방법의 실제는 한국사람들의 주도적 성경공부 모임이 전국에 운동과 같이 퍼져간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성경공부 운동이야말로 중국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한 네비우스 정책이 한국에서 실효를 거둔 원동력이었다.[8] 간하배(Harvie M. Conn) 선교사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9]


네비우스 방법의 중심은 자립이 아니며 자치도 아니다. 그것은 성경을 모든 기독교 사역의 기초로 강조한 것과 성경연구 모임을 통한 훈련에 있다. 이것에 의해 성경은 연구되고 신자들의 마음에 적용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한 네비우스 정책이 성경연구 모임을 통한 훈련의 형태로 한국에서 실효를 거둔 것은 그 당시 개화기의 한국적 상황을 온전한 기독교 교육을 통하여 한국을 더욱 한국 되게 함으로서 자주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만열 교수는 이에 대한 방증으로 몇몇 학교설립자들이 주장한, “한국인을 더 나은 한국인으로 만들고…’, “한국인이 한국의 것을 자랑하며…”.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하여 완전한 한국을 이룩하고자”하는 설립 목적을 소개하였다.[10]


이러한 한국인 스스로의 자발적인 주도성은 성경번역, 성경공부모임, 성경의 보급과 같은 일련의 활동과 동시에 한글 보급운동으로 전개되었고,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한글을 공부하도록 계기를 만들어주고 부인들의 성경공부 모임은 여성의 교육이 한정되어 있던 사회에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켜주었다.[11]


복음이 전해지던 초기 한국 선교 역사는, 그것이 성경적인 용어인지는 모르지만 소위  평신도 선교역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직 교단이나 신학교가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의 초기 돌파가 한국인 자신들의 주도적인 역할에 의하여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설명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초대 한국인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들, 예를 들면 1882년 서간도 한인 마을에 김청송의 전도로 시작된 교회, 1883년부터 이성하와 서상륜을 이어 백홍준의 전도로 의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 그리고 서상륜의 전도로 1884년 소래 마을 서경조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 등은 한국인들이 자체적인 주도권으로 새로운 예수 중심의 믿음 공동체를 기존의 내부적 상황 가운데 일으킨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12]


1884년 11월 중순께 한국말 성경번역에 관심을 가지며 만주 선교를 한 스코트랜드의 로스 목사는  이응찬, 서상륜 등에게 한글을 배우고 세례를 베풀었는데, 한번은 서간도 한인마을을 찾아간 방문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13]


… 해질 무렵 우리들은 첫 한인 마을에 도착하였는데, 약 30여명의 흰 두루마기를 입은 한인들이 우리를 반겨 맞아주었다. 우리는 그 중 가장 우두머리되는 사람의 집에 유숙하였는데, 그들의 호의와 친절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중략) 그런데 2 년 전에 그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킨 일이 생겼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골짜기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 백 명의 한인들이 구원의 길을 찾아 날마다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신앙의 동기와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생각하면 과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선교사도 찾아간 일이 없는 그 곳에 다만 한글 성서와 전도문서가 들어간 그곳에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전택부는 또한 한국의 초기 개신교 신자의 명칭이 예수쟁이, 예수꾼 등으로 불린 것에 대하여, 당시 양반, 중인, 상민, 천민들 가운데 개신교가 상민들과 천민들 가운데 풀 뿌리처럼 자리잡았고 기독교 신앙이 한 동네 가운데 들어가면 호열자 같은 전염병처럼 온 동네를 결단 내듯 무서운 세력으로 퍼져나갔으며 그들은 도전적이고 활동적으로 개화꾼 및 독립꾼의 구실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4]


복음이 사회적 하부구조 가운데 퍼져나가면서 “예수쟁이” 혹은 “예수꾼”과 같은 명칭을 얻기도 하였지만, 국운을 염려하던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1896년 창설된 독립협회의 운동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자주민권 자강사상”과 “자주민권 자강운동”으로서 서재필의 1897년도 1월 26일자 논설을 보면, “크리스도의 교를 착실히 하는 나라들은 지금 세계에서 제일 부요하고 제일 문명하고 제일 개화되어 하나님의 큰 복음을 입고 살더라”라고 복음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논지를 펼침을 알 수 있다. 서재필이 러시아 공사 웨버(Weber)와 친러파 보수정객들의 모략으로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을 때에, 독립신문 편집과 운영을 인계 받은 윤치호가 서재필의 “작별인사의 말”에 대한 답사 형식으로 1898년 5월 19일자 영문판 독립신문에 “정직한 고백(An Honest Confession)”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15]


독립신문의 영문판 국문판을 통한 서재필의 활동, 그 중에서도 특히 국문판을 통한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리 높게 평가하여도 과하지 않다. (중략) 한국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쳤음을 지적하고 싶다. 즉,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것, 이 진리는 앵글로 색슨족이나 라틴족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준 것이라는 것…, 그리고 외국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개인의 권리와 번영은(한국의 독립처럼) 길가에서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다년간의 노력과 연구와 투쟁을 거쳐 얻어진 것, 만약 앞으로 한국인들이 이러한 권리와 번영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노력을 하고 투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와 같은 독립협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소위 평신도들로서 국운이 경각에 달렸을 때에 복음에 기초한 사상으로 민초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살리려고 한 장본인들이다. 실제적으로 수만 명이 모인 대관민 공동회의 개막연설을 종래 가장 천대 받던 해방된 천민인 백정이 시작할 정도가 되기까지 이 민초운동은 확산되었다.[16]


20세기 초 그러니까 1903년에서 1910년 까지 한국교회가 경험하는 전국적 부흥집회 운동 확산에 대하여 전택부는 몇 가지 특징을 이야기 하는데,[17] 외국의 선교사들에게는 이질 사회 가운데에 심한 자아분열, 패배의식, 우월감의 좌절의식 및 죄의식이 생긴 가운데, 한국의 초대 교인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는 중, 민간 신앙의 “신 내림”과 같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순절 성령강림의 체험이 전계은 및 길선주와 같이 깊은 유교윤리와 민간종교, 선교, 그리고 산신신앙에 심취되어 있던 영적 지도자들에게 이루어졌고, 마지막으로 민족 패망의식과 위기의식 가운데 급속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평양지방의 부흥운동의 불을 일으킨 길선주는 본래 선문에 들어가 산신차력주문, 옥경의 삼령주문을 배워 23세에 이미 신차력 및 약차력 등에 통달한 초인간적 인물이 되었는데, 1896년 28세 때 기독교 신자가 된 이후에 그러한 배경이 성령강림 은사로 바뀌고, 그의 동료 장로인 박치록과 함께 처음으로 1905년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다 한다. 우리 나라에 복음의 초기 돌파가 이루어진 상황을 살펴보면 비록 중국이나 일본이 유사 문화권에 속하였고 한국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욱 많은 외국인에 의한 선교적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한국과 같은 돌파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대하여 전택부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요소를 이야기 한다.[18]


그것은, 1) 유독 외침이 많은 우리 나라에 형성된 호국의식,[19] 2) 1700년 대부터 싹트기 시작한 개화의식, 3) 한국의 민족 신앙 가운데 이미 있었던 민족 고유의 “하나님 의식”,[20] 4) 민족 언어 의식 등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매우 개략적이긴 하지만 초대 한국 교회가 형성되는 시기에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주어진 상황과 역사적 시점 가운데에서 어떻게 복음 전파에 대한 주도권을 실천하였는가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만열 교수는 한국교회에 대하여 자주독립이 가장 큰 사명이라고 밝히면서, 1884년으로부터 기독교 100주년이 지나기까지 신학적 면이나, 교리면이나 예배형식이나 기독교문화, 심지어 유행하는 복음성가를 포함한 찬송가까지도 거의 수동적으로 받는 위치에 있음을 지적한다.[21]

본인의 생각에 초기 복음의 돌파는 사실상 한국사람들의 내부자 정신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미국의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본격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한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체적으로 성경번역과 교회설립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진 예수 신앙 공동체들은 아직 신학교나 기독교 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체적으로 자민족 복음화 운동을 내부적으로 이루어갔기 때문이다. 사실상, 전국을 휩쓴 부흥/사경회, 새벽기도회, 철야-금식 기도회, 및 성령강림/은사 운동 등은 한국인 고유의 심성과 신앙의 배경 가운데에서 복음으로 새롭게 정립된 한국형 신앙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의 기독교가 조직화 되면서 양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만열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내용 면에서 오히려 수동적이고 종속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만열 교수는 한국 교회 100주년을 맞이하였던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판하였다.[22]


지나친 말일지 모르지만 한국 교회는 2천년 동안 서양문화의 기반 하에 조직된 신학을 그대로 직수입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입원이 달라질 때 신학이 달라진 것이 아닌지. 좀 심하게 말해서 그 수입원이 달러 지역일 때에 ‘그리스도’이던 것이 마르크로 바뀌었을 때엔 ‘크리스티’가 된 웃지 못할 상태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해방 후 30년간을 한국 교회는 남의 신앙고백, 남의 신앙 위에서 자기의 신앙을 유지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한국 교회 100 주년 때 자가 진단한 것이 지금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자신의 내적 성숙을 향한 방향성 이외에도 세계 선교의 남아 있는 과업에 대한 시대적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서구 선교를 통하여 이루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한국적 선교가 진정 감당할 역할이 어디에 있는지 새로운 관점을 확립할 때이다. 이제 다음 장에서 간략하게 세계 선교의 변화와 남아 있는 선교에 대한 이해를 다시 확고히 한 이후, 한국인으로서 감당할 시대적 선교 사명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3.  세계선교의 변화와 남아 있는 과업에 대한 이해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지나 오면서 세계 선교의 변화 가운데 가장 극명한 것은 기독교 무게중심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비서구권 선교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는 것과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아직도 남아 있는 과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 무게 중심의 이동으로 비서구권 지도자들이 세계 선교에 주도적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1910년 에딘버러 대회가 세계 최초의 전지구적 선교대회였지만 당시 참석자의 1/10 정도만이 비서구권인 반면 에딘버러 대회 100 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5월 일본 동경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단지 1/10 정도만이 서구인인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비서구인들의 선교에 대한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이 이렇게 선교의 주된 인력자원 공급처가 단순히 바뀐 것 이상의 의미가 되기 위해서는, 비서구인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이 과연 남아 있는 과업을 어떻게 이해하며 그것이 시대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요구하는지 분명한 의사수렴이 필요하다.


본인은 21세기 선교와 남아 있는 과업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는 글을 발표한 바 있다.[23] 그것은 전방개척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의미하였다. 사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복음 전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폭발적 성장은 최소한 250여 년 동안 가정과 사회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 공동체 형식으로 존재하였다. 그것은 탈기관적이었고 자연스러운 전통 사회 관계를 이어가도록 한 반면 내면으로는 전혀 새로운 영적 공동체로서의 변혁을 이루어 갔다. 사실 그것이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 조차도 변혁을 위한 새로운 각성의 장으로 초대한 한 실제였다. 그러나 국가와 하나가 되어 기관화한 기독교 형태인 소위 서방 기독교 왕국(Christendom) 형태의 영토적 확장이 역사의 무대 가운데 주연 역할을 한 반면 동방 기독교는 소달리티 및 수도원 운동의 형태로 복음을 확산 시켜나갔지만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에 파 묻히고 말았다. 서구 중심의 식민지 확장과 신대륙 개척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를 지배했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이제 전 세계가 경제와 기술의 무한 경쟁 가운데 비서구권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적 특징들의 국제화 및 서구권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가 서로의 주도권을 주장하면서, 다양한 종족-사회계층 및 종교적 구조들이 나름대로의 색깔을 내면서 전체를 구성하는 모자이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더라도 이러한 흐름에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주님의 대위임령인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선교적 노력에 있어서 남아 있는 과업은 명백하다. 하나님의 공평하신 치리하심은 모든 족속에게 실현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직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백성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은 미전도된 종족들은 나라나 영토적 한계를 뛰어 넘는 남아 있는 선교과업으로 너무나 명명백백하게 주어진 상태이다. 또한 지금도 지속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새로운 사회계층적 게토 집단들 또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지 못한 새로운 선교 영역들로서 남아 있는 과업이다. 사실 이러한 남아 있는 과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북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현대 선교운동이 전방개척선교(Frontier Mission) 운동이라 할 수 있다. [24]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과업을 향한 전방개척선교의 선두주자로서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세력이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지금의 전방개척선교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주된 선교세력이 선교역사를 통하여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상식적 수준에서 살펴보더라도 이해될 수 있다. 그레꼬-로망 및 북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의 표현이 기독교왕국의 구조 가운데 제한될 때에 청교도들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신개척지에 형성된 신앙공동체는 선교의 이해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개척자적인 정신이 자유롭게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과업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전방개척선교 운동을 시대적으로 이끌게 된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은 선교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앞서 이만열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유럽의 전통적 선교 틀에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면 북미의 남아 있는 과업의 새로운 이해의 틀 가운데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서 너무나 다른 선교적 관점을 갖게 되어, 마치 세계 선교의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 경합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선교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자 함에 있어서 진정 한국적이지만 하나님 나라 확장의 전세계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것들을 이제는 재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다.[25]      


4.  한국인으로서의 세계 선교를 향한 시대적 역할


우리 나라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운이 기울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개화 시기에 복음에 자주적 주도권을 가지고 반응하여 이미 저변에 하나님 나라를 확산시켜나갔다. 이렇듯 이미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 나라의 뿌리가 내려진 상황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선교사들이 비로소 한국에 들어왔고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이루어진 기독교의 구조 가운데서 나름대로의 성장을 경험하여 왔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은 제쳐두고라도 믿지 않는 수 많은 한국인들이 과연 전통적 교회 구조 가운데 지금과 같이 들어오는 방법으로 완전한 복음화를 꾀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회의적이며 실제 한국의 개신교 성장은 현 상태대로라면 이미 포화점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현재 우리 나라가 취할 시대적 선교 사명을 읽는 시각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첫 째, 서구가 감당하다 떠나가는 기독교왕국의 구조 가운데 세워진 비서구권 선교를 우리가 채워가야 한다는 것과, 둘 째는 소위 기독교세가 기울어져 가고 있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과거 선교주도국가들을 이제는 피선교국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새로운 부흥을 위하여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며, 마지막으로는 아직 서구 선교가 이루지 못한 남아 있는 선교적 과업을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 시대적 부름이라는 시각이다. 물론 각자가 나름대로의 당위성이 있지만 우리는 세계 선교역사의 후발 주자로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쪽에서 타문화 선교에 대한 상황화의 중요성을 세미나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상황화의 위험성을 열띠게 홍보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어떤 곳에서는 이슬람이 악마가 지배하는 최후의 요새이며 무슬림들은 그 졸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반면, 어떤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예비해 놓으신 집단적 구원의 계획이 성취될 또 다른 하나의 문화/종교집단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차이는 대체적으로 유럽의 전통 기독교왕국적 선교 이해의 틀 가운데 교육 받고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면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후기 기독교왕국 형태의 보다 개척적 성향의 교육 및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서 자기들의 주장을 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에는 참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 국내의 선교이해 상황인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세 가지의 시대적 선교 사명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는 개인적, 교단적, 단체적 취향 및 국제적 관계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지만, 본인은 우리 나라의 심성에 보다 강조점을 두어야 할 것은 세 번째 즉, 남아 있는 과업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앞선 장 가운데 살펴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기독교 초기 복음확산을 되돌아 보면, 그것이 바로 현대의 전방개척선교적 목표인 “선교적 돌파(Missiological Breakthrough)”, 혹은 “그리스도께 향하는 대중운동(People Movement to Christ)”, 혹은 “어떤 사회-종교적 전통 내부에서 일어나는 예수 운동(A Jesus movement within a socio-religious tradition)”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아 있는 과업의 완수는 “아직 미전도된 모든 종족들과 사회계층” 가운데 위와 같은 운동이 일어날 때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미 복음의 돌파를 경험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사실 우리가 엄청난 부흥과 교회성장의 경험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서구 유럽교회와 거의 같은 기독교구조 가운데 이루어졌고, 이제 그러한 구조 가운데 성장 자체가 스스로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쇠퇴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 국가적 부흥과 기독교왕국의 구조를 경험하며 선교의 엄청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한 이들 서구/유럽 교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자가당착적 교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사실상 한국인들에게는 선교의 남아 있는 과업 완수를 위한 결정적인 장점들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는 많은 서구 선교지도자들의 입에서 한결같이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다.[26] 1) 기도, 2) 개척정신, 3) 용감함, 4) 장기헌신, 5) 관계중심의 교제, 6) 이타심 등이 있다. 사실 이러한 요소들은 아직 예수공동체 운동이 일어나지 못한 전방개척적인 상황 가운데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사역자적인 자질들이다. 한국의 초대 교회가 형성되던 시기의 복음전도자들은 이러한 기질대로 한국이 처한 시대적,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의 내부에서 복음을 전하여 실제로 돌파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사실 한국이 초기 복음돌파를 경험하고 있을 때에 처한 상황은 많은 미전도종족들이 현 시점에 처하고 있는 상황들과 유사하다. 우리는 실용적인 선교의 방법을 개발하기에 앞서서 먼저 시대를 관통하는 영적 필요의 유사성을 먼저 이해하고 초기 복음돌파를 위하여 우리가 가졌고 실천한 바 있는 내부자 정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본인이 존경하는 한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교회 내에서는 어떻게 신앙이 부족한 사람들을 온전히 세우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목회하여왔고 교회로 막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교회 안의 용어들을 가지고 복음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가정교회를 하면서 교회라는 문턱을 없애고 한번도 복음의 접촉을 가져보지 못한 ‘쌩짜배기’들을 접하고 보니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주님께 인도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임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대화가 되어야지요. 그러나 들어 온 물고기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아마도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 선교의 남아 있는 과업을 감당한다고 할 때에, 이미 신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성숙으로 이끌 것인가에 초점을 둔 방법들을 아직도 선교학적인 돌파가 전혀 일어나지 못한 미전도종족들이 있는 곳에서 무비판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남아 있는 과업을 향한 시대적 선교사명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한국형 선교방법의 개발에 앞서서, 전방개척선교정신을 먼저 공유하고자 하는 인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현장에서 많은 시간과 열정을 들여 사역하는 내용 가운데 신학교육의 이슈가 있다. 본인은 2010년 2월 홍콩에서 ‘아시아 신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모였던 아태아신학교육포럼에서 “선교지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신학교육 모델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받아 발표한 바 있는데 전방개척선교 패러다임 구축과 더불어 우리가 구체적인 한국적 선교의 기여를 위하여 선교교육 및 훈련의 영역에서 어떠한 모델을 개발 할 수 있는지 소개하는 차원에서 발표된 내용의 일부를 여기 소개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새로운’ 선교지의 이해이고 거기에 요구되는 선교교육 및 훈련에 대한 모델 개발을 위하여 현대선교의 시대 구분을 통한 서로 다른 필요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27]



 

 


 

 

 


 

 

위의 표를 간단히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기존의 선교지에서는 교육의 주체가 가능한 현지인에게 이양되어 자신학화를 이루어 가도록 해야 하며, 선교사는 패러다임을 다루는 재교육이 필요하고, 현지인 사역자에 대한 교육은 선교개척에 대한 새로운 이슈를 중심으로 하되, 현지인 사역자와 외부의 선교사들이 동역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선교지에서 대부분 지식전수 및 구조유지를 위한 자체 시스템 사역자 준비에 집중하였던 페다고지적 교육은 비형식적이고 전인적인 앤드라고지적 방법들을 적극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사역자들을 올바로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교육의 많은 부분이 교회개척적 관점의 사역자 준비에서 선교개척적 차원의 “제 십일 시의 일꾼들”[28]을 동원하고 준비시키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실제적으로는 많은 선교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외부선교사들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서 발현되어야 할 것이다.


(2) 이전에는 닫혀 있다가 이제 개방되어 전통적인 기독교 왕국의 형태와 양식으로 이루어진 선교에도 많은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 곳은, 기존 선교지에서 실수 하였던 경험들을 교육적 차원에서 다루고 나눔으로써 반복적인 실수를 가능한 줄여야 할 것이다. 외부의 선교사들은 가능한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현지인들을 동역자로 여기고 구조적-영토적 패러다임에서 이루어진 “교회개척” 혹은 “교회성장”을 목표로 하는 신학교육을 지양하고 속히 “선교개척”적인 모델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몽골과 같은 곳은 예외라 하더라도 다른 지역들에서는 서구의 전형적 기독교 양식의 팽창에 대한 반작용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며, 이는 기존에 식민지하에서 이루어진 선교의 결과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종교적 양식의 대립상황을 재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지금 개방되어 추수지역으로 열매가 맺혀가고 있는 곳에서 결정적인 “제 십일 시의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3) 이슬람/불교/힌두교 지역과 같은 전방개척선교지에서는 처음부터 선교개척과 내부자운동을 목표로 하는 교육적 준비와 실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완전한 앤드라고지적인 교육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하므로, 선교훈련으로서도 앤드라고지적인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곳은 처음부터 자신학화를 포함하는 상황화에 대한 이해와 실제적 실천을 위한 준비가 선교사 교육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곳은 선교적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환을 이룬 곳일 뿐만 아니라 신학교육이나 선교교육 그리고 훈련의 차원에서도 이전에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던 방법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곳은 외부선교사의 창의적인 접근과 창의성을 극대화한 그러나 성경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극단적으로 민감한 비형식적인 선교개척과 내부자운동을 위한 훈련이 주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5.  맺는 말


“예수께서…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 여자가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 예수께서 이르시되 …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요 4 장 중에서).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행 8:4-6)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 8:14-15; 행 8:25)


사도들이 사마리아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어떠한 일이 과연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려 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을 포함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이미 주님과 함께 할 때에 사마리아 땅에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지 자신들의 눈으로 목도한 장본인 즉 사도들이다.(요 4장 참조) 이제 복음이 사마리아 땅에 대위임령을 받은 자들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전해질 것은 이미 주님께서 예언적 명령형으로 제자들에게 확증하신 것이었다.(행 1:8)


예루살렘만 아니라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임에도 실제적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소문에 대한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자세는 기독교왕국의 전통적 선교 이해 가운데 갇혀서 다른 사회-종교적 전통의 내부로부터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도께 향하는 운동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각하지도 못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로스 선교사 등이 초기 한국 교회 성장 시기에 아무 선교사가 들어가지 않은 곳에 이미 복음이 확산되어 믿는 자들의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에 무척 놀랐던 것처럼, 모든 선교사들이 떠난 이후 공산 치하에서 지하교회라는 믿는 자들의 소규모 공동체 네트워크 형식으로 엄청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낸 중국을 보고 놀랐던 것처럼, 아마 우리는 무슬림, 힌두 그리고 불교도들 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예수운동으로 말미암아 놀라게 될 날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본 이후에야 이제 우리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에는 이미 하나님의 촛대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땅에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목도하면서,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예수께서 직접 시연하신 천국 사역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사마리아 마을에서 자신들이 직접 복음을 전하는 열심을 보였다.


사실 한국적 선교모델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가는 모델일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이해나 적용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 유형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 남아 있는 과업을 향한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민감성과 복음전도에 대한 긴박성을 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모델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시 한번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남아 있는 과업을 바라보며 전방개척선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촉구한다. (끝)



[1] 이는 대화의 원리로서 소위 상황화의 기초를 제공한다. 혹자들은 상황화를 하게 되면 혼합주의의 위험성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상황화의 정의에 의하면 상황화를 하지 않을 경우에 혼합주의가 된다. 상황화와 혼합주의는 그러한 의미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참조: 김요한 등 역, “적합한 기독교” (생명의 말씀사, 2007))

[2] 상황화와 내부자운동 대한 전반적인 자료들은 다음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IJFM(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n), KJFM(Korean Journal of Frontier Mission: 한국전방개척선교저널), EMQ(Evangelical Mission Quarterly), etc. 

[3] 참조: www.kwma.or.kr / 질적 내용으로는 전방개척선교를 그 핵심으로 하여, 양적으로는 2030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4]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의 세계선교 상황을 살펴보면, 신유목민 시대를 이끌어가는 세계화의 추세 가운데 이중문화 및 간문화권에 형성된 수 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있다는 것은 남아 있는 과업을 이루기 위한 시대적이고 전략적인 선교동원의 통찰력을 제공하고도 남음이 있다. 비교적 근래에 흩어진 한국인 디아스포라들과 일찍이 흩어진 중국의 조선족 및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 까지 포함한다면 엄청난 선교자원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5] 조동진, “민족과 종교 – 서구 식민사에 얽힌 선교사의 해부” (도서출판 별: 1991), p. 315-317.

[6] 전택부, “한국교회발전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p. 14.

[7] 김영재, 한국교회사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p. 92.

[8] 박용규, 한국장로교 사상사 (총신대학출판부: 1992), p. 110-120.

[9] 재인용, ibid., p. 113.; Conn, “Studies in Theolog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29.

[10] 이만열, 한국 기독교와 역사의식 (지식산업사: 1981), P. 18.

[11] Ibid., p.21.

[12] 전택부, 한국교회발전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p. 98-103.

[13] Ibid., p. 99.

[14] Ibid., p. 117-118.

[15] 재인용, ibid., p. 136; 이광린, 기독교개화사상연구(일조각; 1979), p. 139.

[16] Ibid., p. 137.

[17] Ibid., p. 159-160.

[18] Ibid., p. 163-165.

[19] 이는 1300여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수 나라 침략시 을지문덕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외침을 물리친 것을 시작으로 고려 시대 몽고족 침공과 이조 시대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등을 통하여 호국의식이 더욱 견고해졌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리 정부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개혁의식과 더불어 굳게 다져졌다. 이는 현대에도 2010년 현재 외환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외환 위기 시에 거국적으로 금붙이를 모아 그 위기를 극복하였던 공동체 행동 가운데에서도 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20] 유동식 교수 등은 이에 대하여 한국인에게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한 데에는 유교의 성리학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민족 신앙인 샤마니즘이 더욱 큰 역할을 하였다고 단언한다. (한국종교와 기독교 (대한기독교서회, 1973), p. 93) 

[21] 이만열, 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 (지식산업사: 1981), p. 135.

[22] Ibid., p. 136.

[23] 2006년 11월 GMS 필리핀 지부에서 모였던 아태아신학교육포럼에서 발제하였으며 그 전문과 김활영 선교사의 논찬은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KJFM, Vol. 9, 3-4, 2007 혹은 아태아신학교육포럼집(2008, 선교타임즈사).

[24]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김요한, “내부자관점과 비즈니스선교전략을 위한 교회 리더용 훈련교재” (도서출판 인사이더스: 2009).

[25] 사실상 여기서 재발견이라고 한 것은, 우리는 이미 우리 스스로가 초기 복음의 돌파를 주도적으로 경험한 비서구권 선교주자라는 면에서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지 못하나 실제적으로는 이미 적용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들을 다시 확증함으로 서구인들이 이루지 못한 남아 있는 과업을 향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6] 본인은 본 대회의 발제자 가운데 한 사람의 부탁을 받아 서구의 여러 지도자들에게 한국인 사역자들의 장단점과 그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선교적 역할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자 개인적으로 질문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여기 본인이 소개하는 한국인 사역자들의 결정적인 장점들이야말로 세계 선교의 남아 있는 과업을 위한 한국적 선교 모델 창조의 요소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27] 두 가지 상반된 교육 패러다임 내용은 다음 자료를 참조하였다: Chong Kim, “Empowering Creativity”, AFMI/ASFM Bulletin, No. 2, Jan-Mar 2010, p. 8. (전문은 www.insiders.or.kr 에서 구할 수 있다.)

[28] 김요한 역, 제 십일 시의 일꾼들(도서출판 인사이더스: 2008) (원저자: 벤 나자)


 


 


 

 


 

>> 목차고리 : [발제] 한국적 내부자 운동 사례 -> 응답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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