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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운동(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4]
 자료출처  정보애  성경본문  
 내용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운동



정보애 선교사(UPMA 대표)



Ⅰ. 들어가는 말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1993년에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3년을 기점으로 잡은 이유는 그 실행연합체로 AAP(Adopt A People, 한국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가 당시 4개 교단과 7개 단체를 중심으로 연합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 제 5차 세계선교전략회의 (NCOWE V)를 맞아 그동안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을 고찰해보는 기회를 통해 보다 미래지향적인 전망과 지향이 모색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와 관련 지난 2006년 7월에 FTT운동(Finishing The Task Movement:남은 과업 완수운동)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이후 지금까지 FTT Korea를 통해서 다시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이 주창되어지고 있는데 이는 세계복음화와 남은 과업 완수라는 측면에서 미전도종족선교 이슈가 여전히 시대적 과제이자, 이 시대의 가장 전략적인 선교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과제에 부응하기 위하여 우선 지난 17년 동안의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운동 개관과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사들의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살펴보고 제안함으로 보다 발전적인 방향이 모색되길 원한다.

 

Ⅱ. 지난 17년간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운동 평가


  

1. 200년 vs 15년― ‘이미’ 시작된 변화와 그러나 ‘아직’ 의 도전

1793년 윌리암 케리로 촉발된 근대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후 한국보다 앞서 선교를 수행했던 영국과 미국 등 서구선교사들은 거의 전적으로 국가중심적인(state-centric)선교를 수행해왔다. 이러한 국가 중심적 선교관 및 선교이해는 200년이 지난 21세기 현재까지도 한국의 선교이해및 실천의 주요 기반이자 분석틀(analytical framework)이 되어왔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사, 일본 선교사 혹은 가나 선교사라는 용어를 통해 선교와 선교사들의 사역을 보여주는 개념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한 번도 이러한 개념의 선교 용어 사용에 대해 재고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무비판적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해왔다. 그렇다면 이 개념은 세계와 열방을 복음화 하기 위한 성경적 개념으로는 적합한가?  이현모 교수는 국가단위, 국가중심의 선교개념은 성경신학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성경에 보다 접합한 선교 개념은 종족 단위라고 주장했다.1)

한국에서는 1993년 AAP(입양운동본부)가 발족되면서부터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이 실제화되었다. 이 운동은 연합운동으로 기독교 21세기 운동본부, 선교한국, 한국선교연구원등이 중심이 되어 ‘종족단위의 선교’가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동원해왔다. 그러나 이번 2010년 NCOWE V의 미전도종족 분야별 전략회의를 맞이하여 그동안의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고찰해본 결과 기대했던 만큼의 열매는 이루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지역교회의 이벤트성 입양, 선교 현장과의 괴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역교회-선교단체-선교현장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선교메카니즘 속에서의 패러다임 변화와 실천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지난 17년은 미전도종족선교의 목표인 선교지에 자생적이고 토착적인 현지인 교회가 개척되어 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체 메커니즘 프로세스로서 미전도종족선교는 2006년 한국에서 FTT운동의 소개를 통해 현장과의 네트워크와 그 필요성에 더 공감을 하고 전체 프로세스에 연결되어 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종족, 미전도종족 중심의 선교 개념은 한국에서 17년, 서양까지 포함하면 1989년 로잔대회 혹은 맥가브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등장한지 채 20~50년이 안 된다. 따라서 200 여 년이 넘도록 고착화된 국가 중심적 개념이 파기 혹은 변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 속에서 계속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는 마치 하나님 나라처럼 ‘이미’와 ‘아직’사이의 창조적 긴장을 통해 이제는 본격적인 전체 과정으로서 연결이 되면서 활성화가 가능한 단계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2. 지난 17년 역사 개관2)

1) 태동기(1992~1995): 선교한국과 GCOWE’95, AAP를 통해 소개

1992년 ‘선교한국 제3회 대회’에서 ‘기독교21세기운동본부’ 총재 토마스 왕 목사와 ‘미국세계선교센터(USCWM)’의 랄프 윈터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미전도족속개념 소개, 다음해 1993년 이 운동을 추진할 연합기구로 한국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AAP)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이로서 한국 내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이후 GCOWE ’95대회(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 1995)는 한국의 미전도종족선교 운동이 확산될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이 후 국내 교계 지도자들과 주요 교단을 통해 각 지역교회 단위까지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사실 1995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 확산기(1996~2000): 국내 지역교회 및 해외 디아스포라 한인교회 확산

1996년 이후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미주 한인디아스포라교회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미전도종족선교 제2시기로 2000년 까지 다음과 같은 일련의 활동으로 전개된다.  1996, 1997년의 목회자 미전도종족선교대회를 통한 동원,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GT를 위시한 미전도종족 중보기도 운동, 미전도종족 데이터 구축, 미전도종족 포커스의 선교훈련(정탐훈련, 캠프 여호수아, MP, PSP), 강의 및 세미나를 통한 지역교회 동원 사역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기는 미전도종족선교운동 확산기라고 볼 수 있다. 디아스포라 한인교회까지 확산되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3) 발전기(2001~현재): 선교현장과 연결되면서 나타난 도전과 반응

21세기의 변화하는 환경가운데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고민하기 시작한가운데,  미전도종족선교는 제3시기로 발전하게 된다. 이전의 두 시기와 비교하여 가장 큰 변화는 미전도종족 입양 이후 사역 문제와 선교현장이란 이슈 대두였다. 전자는 국내에서 그동안 미전도종족을 입양한 지역교회의 입양후 사역과 관련된 문제이고, 후자는 한국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는 선교현장과 미전도종족과의 상관관계에서 제기된 문제였다.

그전까지는 주로 서양선교사와 단체들이 조사한 서양 선교사 현황자료 및 미전도종족리스트에 근거하여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동원해왔다. 때문에 종족리스트 정보에 대한 사실 확인 및 해당종족으로의 정탐여행을 위하여 현장선교사와의 연결이 필요하게 되었고, 동시에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전략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선교사의 현황 파악이 필요했다. 선교 지도자들 사이의 이런 공감대 조성은 결국 2000년 대대적으로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의 사역 현황을 리서치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KWMA와 UPMA 광범위 리서치 조사 실시).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선교계는 지역교회(교단 포함), 선교단체, 선교 현장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이해가 가능케 되어, 이후 한국선교계는 미전도종족선교운동과 관련 보다 강한 도전을 시작했다. 곧 전략적인 선교,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 미전도종족입양운동과 전방개척선교, FTT(Finishing The Task)운동 등 주요한 이슈들이 제기되어, 이로 인해 각 선교지 별로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3. 평가

2000년 이후 8년이 지난 현재 한국교계는 미전도종족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혹자는 식상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의 실제는 과연 어떠한가? 한국에서의 지난 17년간 전개된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지 구체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1)  빛의 측면에서


(1) 대규모 동원운동으로 시작, 단기간 내에 급속하게 확산된 점

초기에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서양과 비교해 단기간 내 급속하게 확산이 될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GCOWE ’95대회 및 선교한국, AAP를 통해 주로 소개가 되었는데, 특별히 선교한국이 이 부분에 기여한 바가 크다. 선교한국은 지금까지 20년 동안 매 2년마다 열리는 선교한국대회와 또한 봄, 가을로 매년 각 지역교회에서 실시되는 관점훈련(퍼스팩티브즈)을 통해 남은 과업으로서 미전도종족과 전방개척선교를 확산시켜왔다. 이로 인해 각 지역교회에는 선교한국을 경험한 세대들이 전도사, 혹은 목회자, 선교위원회 지도자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더 통합적으로 전략적인 시각을 구비하고 선교의 방향으로 미전도종족선교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2) 선교훈련 특성화 및 이에 따른 영향

미전도종족이 주요 포커스인 크림(KRIM)의 캠프여호수아 훈련과 UPMA의 선교정탐훈련(METI)은 기존의 선교훈련과 차별화된다. 그 핵심내용은 선교지에서의 미전도종족집단 발견,  이들을 위한 기독교적 접근 방법 모색, 해당집단 내 토착적이고 자생적인 교회개척운동 이다. 따라서 훈련은 이를 성취하기 위한 안목과 스킬, 지역교회를 위한 동원자료 구축에 중점을 두고 실시되었다. 지난 17년간 이 훈련은 각 신학교에서 정규 수업으로 채택되었을 뿐 아니라, 각 지역교회 선교훈련에도 장단기 과정으로 실시되었다. 리서치 결과 이 훈련은 참여하는 멤버들의 선교훈련에 그치지 않고, 지역교회 공동체 전체에 중보기도와 종족입양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켜 다음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선교의 운동적 측면이 강한 것이 장점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각 교회들은 선교사의 기도편지 외에 실제 현지 종족의 자료(보고서, 사진, 동영상, 의복)를 다양하게 구축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3) 한국교회 선교전략 업그레이드, 리서치 관점과 연구 틀 제공

미전도종족선교의 또 하나의 기여는 바로 복음을 들어야하는 대상 즉 수용자에 대한 리서치의 중요성을 한국교회에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종족에 대한 종족 프로파일,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단 발견하기, 도시와 종족에 대한 상황적 ․ 기독교적 ․ 문화적 ․ 영적 리서치, 도시와 원거주지 연계전략 안목 제공 등이다. 이와 같은 리서치 안목은 각 선교단체와 교단의 훈련에도 반영되면서 지역연구 혹은 선교지리서치방법으로 제공되는 상승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4) 미전도종족/개척선교 초점의 신생선교단체 창출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이 한국에서 전개되는 가운데 이 방향에 주력하는 새로운 선교단체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한국 SIM 국제선교회(1997년), MVP(1999년 창립), GO선교회(2002년 창립), 컴미션(2003년 창립), 한국 프론티어즈 국제선교회(2004년 창립), 인사이더스(2005년)등 이다. 이 단체들은 무슬림 전문 단체에서부터 지역적으로 인도차이나, 동남아 미전도종족과 중앙아, 페르시아 지역, 아프리카 지역의 미전도종족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선교를 동원하고 있다. 이외 기존 선교단체 중 YM과 인터콥은 미전도종족과 전방개척을 지향하는 대표적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2) 그림자의 측면에서


(1) 저조한 미전도종족입양

GCOWE ’95대회 때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2,000개의 미전도종족을 2000년까지 입양할 것을 공동 결의하였다. 당시 여호수아프로젝트 2000의 우선 입양종족으로 1,685개 종족이 제시되었다. 이에 합동측 교단은 10년간 500개 종족, 통합측은 550개 종족 입양을 표명했으며, 다음해 1996년에는 미주의 디아스포라한인교회가 300종족 입양을 결의했다. 당시 AAP운동본부(2000년 UPMA로 개명)는 우선 입양종족 200족을 선정하여 기도지를 발행했다. 이런 고무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후의 입양 결과를 보면 목표치에 훨씬 못 미치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 17년간 UPMA에 의해 공식적으로 입양된 종족은 총 180개 이다. 이외 UPMA에 종족입양을 알리지 않고 사역하는 지역교회와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들의 미전도종족까지 포함하면  최소 200개에서 최대 300개 까지 한국교회가 입양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저조한 입양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제2시기 확산기(1996~2000년) 입양이 고무되던 분위기 그 이후가 문제로 드러났다. 당시 합동 측의 경우는 전체 선교를 실행하는 핵심 지도부의 교체로 미전도종족선교는 여러 다양한 선교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었으며, 이와 같은 상황은 미전도를 표방하기 시작한 해외선교단체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2) 미전도종족선교를 표방하는 대다수 선교단체들의 허와 실

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해외선교단체마다 미전도종족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 이후 더 보편화 된다. 이는 각 단체의 홈페이지나 홍보물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혹자는 미전도종족선교를 표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진 선교회로 보일 염려가 있다고 할 정도였는데, 문제는 미전도종족선교가 포커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선교회의 경우, 미전도종족선교에 대한 반응이 제각기 다르게 나타났다. 어느 단체는 긍정적으로 미전도종족부서를 신설하기도 했으며, 다른 단체는 기존의 사역 위에 다시 하나의 사역이 추가되는 과부하를 느끼기도 했다.  더욱이 KWMA 한국선교사 현황조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한국선교사 대부분이 오픈된 국가에서 교회개척이나 지도자훈련, 신학사역을 해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비록 선교회가 국내교회를 동원하기 위해 브랜드처럼 사용하기는 했지만 실제화되지는 못했다. 이유는 미전도종족에 대한 단체의 이해와 자(自)단체 선교사들과 공감대 구성, 발전적 방향정립이라는 중장기적 시간을 요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3) 현장 선교사들의 몰인식으로 현장과의 괴리 현상 발생

사실 처음 한국교회가 복음에 빚진 자로 선교사를 파송할 때만 해도, 아니 90년대 중후반과 실제 2000년이 될 때까지도 현장에 나가있는 한국 선교사들 대부분은 미전도종족선교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미전도종족은 소규모의 부족선교나 GBT 등의 성경번역이 필요한 종족 정도의 개념 이해 수준이었다. 이들이 훈련받을 때 미전도종족 강의나 전략적 선교란 주제는 거의 부재했다. 따라서 2000년 이전에 나간 선교사들이 미전도종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전방개척선교와 미전도종족에 대한 도전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주로 국내교회와 선교계 동원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장선교사들을 위한 훈련과 동원이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이후 현장 선교사들을 위한 방문 훈련과 이들을 통한 주변 미전도종족에 대한 입양전략 등에 있어 적극적인 협력이 요청된다.


(4) 실제 사역현장에서의 모델 발굴 미약

17주년 인터뷰 조사를 통해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를 포함한 몇몇 입양교회들은 입양 후 사역의 어려움에도 불구, 교회가 그 종족을 책임지고 선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보기도운동과 지속적 현장방문을 중단하지 않았다. 여기에 현지의 재난이나 어려움이 기회가 되어 강성으로 여겨지던 종족지역에 현지인교회가 개척되고 사역이 진전되는 사례를 보았다. 또한 중소형 교회라도 신림교회처럼 담임목회자부터 입양에 동원되어 매진하고 해당 종족으로 선교사가 파송되어 선교한 경우 역시 국내와 현지에서 지속적인 사역들의 진전과 열매가 맺히고 있어 추후 모델 사례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외 대부분은 아직 한국교회에 사역 모델로 소개할 만한 사례가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이미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통해 입양한 경우 오히려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예를 들어 이미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통해 종족을 입양한 경우, 현장선교사들이 아직 미전도종족개념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미전도종족사역을 부수 혹은 부가사역으로 여겨 잘 동원이 안 되기도 했다. 둘째, 미전도종족을 입양한 지역교회를 조사해보니 미전도종족입양을 입양식이나 입양예배 등 행사로 여기고 그 이후 선교사를 발굴, 양성, 파송하지 못한 경우 실패로 드러났다. 셋째, 미전도종족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의 경우 아직 언어를 배우거나 현지적응 단계, 혹은 이제 막 사역이 시작되어 지는 단계여서 아직 사례를 논하기에 시의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4. 과제


  지금까지 지난 17년 동안 한국에서 전개된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그 역사와 평가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런 과거 평가를 통해 현재 드러난 미전도종족선교의 최우선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계속적인 미전도종족선교운동 활성화

미전도종족선교는 계속적인 운동성을 제고시키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과거 평가에서 보면 운동이 가지는 다이내믹한 역동력이야 말로 미전도종족선교를 불붙이는 시발점이자 확산으로 작용했음을 재인식하여, 본질로 되돌아가 운동의 정신과 자세로 연합할 필요가 있다.


2) 현장 사역 및 사역도구 개발에 주력

이제는 현장 중심으로 사역 및 사역에 필요한 사역도구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주로 한국교회에 미전도종족을 알리는 종족프로화일 수준의 정보와 자료, 세계 미전도종족지도 등의 자료 구축 수준이었다면 향후는 현장에서 실제화되어 돌파를 이루기 위해 사역 및 도구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3) 입양과 입양후 컨설팅과 네트워크 강화

지역교회의 경우 입양후 사역관리의 부재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입양교회 현실에 맞는 컨설팅이 필요하다. 지역교회간 네트워크와 협력을 통해 서로 사례를 공유하도록 교량 역할들도 강화되어야 한다.


4) 선교적 ‘돌파(Breakthrough)’에 대한 성찰과 공유

한국교회, 선교단체, 현장, 교단 등은 미전도종족선교를 위해 본래적 의미의 선교적인 돌파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교회의 물량주의 선교, 타문화 부적응과 현지종족어 미습득, 분리와 갈등, 누구를 위한 교회개척과 프로젝트인지 본말이 전도된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17주년은 우리가 돌파해야할 장애와 제한을 심사숙고하여 성찰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5) 자료구축과 연구개발의 업그레이드 필요

한국선교가 세계선교가운데 감당할 우선 지역과 사역대상을 중심으로 미전도종족사역을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자료를 구축하고 연구개발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현장사역과 접목된 후의 상황을 중심으로 하여 선교 실제에 부합하는 연구들이 지역연구 수준보다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전도종족 관련 지역교회, 사역단체, 연구소, 현장 간에 더욱 긴밀한 공조와 협력, 네트워크가 요구된다.



5. 전망 및 제언

 

미래 15년은 세계교회를 구성하는 한국교회로 서구교회, 2/3세계 교회들과 더욱 협력하고 동반자적인 자세로 섬기는 것이 강조되는 분위기이다. 이에 미전도종족선교도 이를 반영하여 한국교회의 몫 혹은 비교 우위나 우선순위를 점검하여 최우선 목표를 공동으로 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후 논의의 진전과 미전도종족선교활성화를 위해 우선시되는 몇 가지를 제안하는 것으로 미래 전망을 대신한다.


1) 한국형 미전도종족운동의 모델로 CAS운동 채택

CAS는 2003년 UPMA 10주년 기념대회 시 제기된 것으로 지역분담/도시선교(Comity/City)―종족입양(Adoption)―사역 특성화(Specialization)를 의미한다. 이는 UPMA가 93년부터 종족입양운동본부로 출발하여 미전도종족운동을 섬겨오면서 입양에 대한 오해, 한국선교사의 전략적 선교 등을 고민하면서 사역대상과 지역, 사역내용을 통합적으로 제시한 시스템운동으로 종족입양 보다 발전된 개념이다.

이 운동은 현장 선교사들에게 실제적으로 적용 가능할 뿐 아니라, 국내교회를 동원할 때도 전방개척지역과 그 지역의 종족, 그리고 필요로 되는 사역 등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안목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 12개 전방개척지역권과 CAS 의 연계

패트릭 존스톤은 선교 협력과 전략적인 통찰력 제공을 위해 세계의 모든 종족권을 15개로 나누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권, 남아시아권(인도 아리안문화권), 유라시아권, 라틴-코카서스 아메리카권, 사하라 종속 아프리카권, 말레이권, 아랍권, 동남아시아권, 북아메리카권, 투르크권, 인도-이란권, 아프리카 초승달권, 티베트 및 히말라야권, 유대권, 태평양섬주민권.

이 가운데 라틴-코카서스 아메리카권, 북아메리카권, 태평양섬주민권등 세 개 권역은 한국의 전방개척방향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제외하고 나머지 몇 개 권역의 명칭을 수정하여 한국선교사 현황조사에 근거, 12개 전방개척권3)으로 재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중국내지권

(2) 중국변방권

(3) 서남아무슬림권(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 무슬림)

(4) 힌두권(인도 힌두, 네팔, 부탄)

(5) 동남아무슬림권(말레이지아, 부르나이, 인도네시아 무슬림)

(6) 인도차이나권(소승불교권)

(7) 중앙아전방권

(8) 카스피해권

(9) 페르시아권

(10) 아라비아권

(11) 초승달권

(12) 북아프리카권(사하라 이북)

향후 이 12개 권역권과 국가, 지역, 종족, 사역을 연계하여 다양한 사역이나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면 한국선교의 전략화에 공동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3) 다각적인 방법으로 선교현장과 연결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이주자수가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향후 다문화현상이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인터뷰한 결과 공통적으로 지적된 부분 중 하나도 바로 이런 한국 속의 세계선교를 주목해야 한다는 강조였다. 따라서 미래 10년은 이 점을 반영하여 미전도종족선교를 접촉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닌 국내에서부터 해당종족을 목표 중심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미전도종족선교의 열린 창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4) 다양한 연합과 네트워크의 장 형성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어느 한 단체가 주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는 이 발제의 글을 통해 지난 역사와 평가 속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미래 10년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교회, 선교단체, 현장 선교사 등 선교의 주체들 간에 다양한 연합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대상 종족이나 혹은 대상 지역, 공동 사역을 위한 연합도 발전시켜 가야할 주요 부분이다. 2000년 이후 한국에 다양한 포럼을 통해 한국선교의 과제 해결과 통찰력이 제고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선교의 질적인 부분을 제고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미래 한국의 미전도종족선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선교를 섬기고 실천하는 다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을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형성해주고 이를 다시 자료화 하여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입양교회네트워크, 미전도종족선교연구네트워크, 전방개척선교네트워크, 비즈니스선교네트워크, 지역개발선교네트워크 등이다.



Ⅲ. 미전도종족선교 사례 소개


1. 은평교회 사례: 인도네시아 O족 입양 및 선교사 사례


인터뷰 일  시 : 2010. 6. 3

응답자 : 배윤호 선교사


• 성도 수: 출석 2000명

• 입양 종족: O족(1999년 3월)

• 선교현황: 5명의 주파송 선교사와 103명의 협력 선교사


입양교회와 선교사 관계

초창기 종족 입양에 함께 관여하였다. 월드미션(잡지)에서 처음으로 ‘입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후에 입양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받았다. 현지에서 부정적 사례를 보았다.

지역교회가 입양하는 과정에서 본 부정적 사례는 교회가 전문성이 약한데 전문성을 갖고 사역을 하다 보니,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선교사와 지역교회와의 갈등을 보았다.

지역교회에 선교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한데 현장까지 접목이 잘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기술적, 전략적 부분은 잘 모르겠다.

우리교회의 경우, 종족 입양을 먼저 결정 한 후에 종족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선교사를 찾은 케이스이다. 처음에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교회가 모든 사역에 대한 전략까지 만들어 놓고 시작을 한 것이다. 현장에 들어간 선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교회의 책임자는 교회의 전략을 따라 주지 않는 선교사에게 섭섭하고 선교사인 나는 교회가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사역하는 선교사가 한 리서치가 아니기에 사역하는 입장에서 교회 스스로 해 놓은 리서치에 맞춰 세워 놓은 전략을 따른다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아 힘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파송 전부터 은평교회와 오랜 시간 함께 한 경우였기에 서로간의 신뢰 관계로 인해 오해가 풀렸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비엣족 입양 준비를 하면서 나와 우리교회에서 결정한 것은 사역지에 들어갈 선교사가 결정되면 그 후에 리서치를 하자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리서치는 할 것이다. 비엣족에 리서치 팀이 5번이나 나갔다 왔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를 가지고도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비엣족 사역에 대한 필요성만 역설했지 전략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선교사를 통해 세우기로 결정했다.


입양교회를 일으킨다면

요즘 지역교회의 위치가 강해지고 있다. 선교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그전까지는 선교사, 선교단체/교단, 교회의 삼각관계에서 교회가 뒤따라가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의 파워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교회의 약점인 비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비전문적 입장에서 교회가 어느 정도까지 관여해야 하는지 AAP가 제시해 줘야 한다. 교회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야망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와 잘 협력하는 교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다. 한 사례를 들어보면, 인도네시아의 한 종족에 한국의 한 교회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교회의 생각대로 밀어붙인 결과 선교사가 전혀 그 종족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했다. 한국교회의 지나친 열성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이러한 균형을 잘 맞출 필요가 있다. 교회는 지역교회가 우선순위를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교사의 입장에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역교회는 언어가 안 되고 거리(한국에서 현지까지)가 멀어 정확한 리서치, 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 교회가 입양운동을 하되 교회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AAP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비엣족을 입양하려는 현 시점에서 교회는 성도 동원만 하지 전략 부분에 있어서는 현장의 선교사에게 일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평교회가 O족을 선택하게 된 과정

98년에 담임목사가 다른 이웃교회의 입양 헌신예배에 참석했을 때 도전을 받았고 우리 교회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당회에서 장로님 한분을 임명하고, 그 다음해에 미전도종족부라는 부서를 만들었다. 해위 선교 위원회 안에 선교사 지원부, 미전도종족부, 외국인 사역부, 선교 교육부 등 4개 부서가 있다. 지금은 미전도 종족부가 해외선교위원회 안에 들어와 있는데 그 당시에는 미전도 종족부, 해외 선교부가 각각 분리 독립적이었다. 98년 입양예배 후, 99년에 미전도종족부를 독립한 것이다. 이어서 바로 미전도종족부서의 구성원들이 입양을 위한 리서치를 하게 되었다. 그 때 AAP를 통해 우선 입양 종족 리스트를 받았다. 거기에 O족이 있었고, WEC 유병국 선교사에게도 자문을 구해 자료를 얻었는데 그 자료에도 O족이 있었다. 이외 은평교회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던 선교사 한 분이 수마트라 남부에서 사역을 하셨는데 중부 쪽으로 신학교 사역을 하러 한 달에 한번 정도 가시는데 그때 O족 마을을 지나서 가곤 했었기에 선교현지의 선교사에게도 확인이 된 셈이다. 또한 담임목사님도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O족 마을을 지나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O족 환자를 위해 기도해 준 적이 있었다. 결국 은평교회는 위에서 이러한 정황들이 다 맞아 떨어졌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여기고 O족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먼저 리서치를 하게 되었다. 수마트라 남부의 선교사가 가이드를 해 주었다. 두세 번 리서치를 하고 확신을 가지고 O족 선교를 결정지었다. 이 선교사가 사역하는 신학교의 한 신학생이 O족에 관심 표명을 했다. 이 신학생과 더불어 사역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99년 입양 헌신예배를 드릴 때 O족 사람과 이 현지 전도사를 초청해서 예배를 드렸다.


O족은 99.5%가 무슬림이다. 교회는 선교를 시작했다. 청년들이 두세 번 단기사역을 했다. 선교사를 찾고 있는 중에 내가 나가게 되었다. 청년들을 데리고 2001년에 들어갔다. 당시 보고 느낀 것은 ‘이건 아니다’였다. 비록 민속 이슬람이라 해도 이들은 무슬림들인데 우리가 너무 오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1년에 파송을 받고 다른 지역에서 언어 훈련을 하고 사역을 하게 되었다.


왜 ‘이건 아니다’라고 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인도네시아는 5개의 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태어나면 주민등록상에 종교가 표시가 된다. 자신의 종교를 다른 사람한테 강요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는 공식적으로 700개의 종족으로 구성되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배 전에는 서로 별개의 소왕국이었다. 점령 되고 나서 화란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래서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언어는 말레이어를 공용어로 선택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국부인 대통령이 ‘반차실라’라는 법을 만들었다. 핵심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근간으로 두었다. 타종교 인에게 자신의 종교를 권하는 것이 그 나라를 유지하는 것에 위협이 되는 행위였다. 또 하나는 기독교인과 이슬람과의 갈등이다. 네덜란드가 무력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했다. 기독교는 식민지 종교이다.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그런 와중에 네덜란드의 정부로부터 자바족이 적절하게 협력을 했다. 그래서 자바족 가운데 기독교인이 가장 많다.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의 앞장이 이슬람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기독교인에 대한 감정이 안 좋다. 어느 종족은 철저히 100% 기독교, 100%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는데 O족은 자기들의 정체성이 100%로 이슬람이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장벽이 크다.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교사 혹은 교회에서 왔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O족을 직접 리서치 하기가 무리여서 리서치 작업을 아째족에 가서 했다. 아째족을 연구하면서 O족 연구방법을 배웠다. 일반적 인도네시아 무슬림 종족을 보는 눈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생각했다.


교회의 중장기 사역

교회는 막연하게만 사역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다른 선교사를 통해 교회가 땅을 먼저 샀다. 교회는 그 땅을 이용한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면서 교회에게 사 놓은 땅으로 무엇인가 해 볼 것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를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가서 백지에서 다시 시작했다. 선교는 첫 단추가 중요하다.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낫지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것이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교회가 전략까지 손을 대면 안 된다. 현지 조사도 정확하지 않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문서나 통역자의 통역 그리고 그의 견해가 전부이다. 그러므로 전략은 철저히 현지 선교사의 역할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비엣족 입양을 준비하면서는 내가 경험이 있는 지역이 아니기에 전략 부분에 있어서는 손대지 않는다.


교인들의 인식

입양예배도 드렸고, 현지 O족도 왔고, 리서치 보고도 하니깐 성도들의 반응도 좋았다. 저금통도 만들어 헌금도 많이 들어왔다. 파송까지 하니깐 교인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온 교회의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내가 나오고 다른 선교사가 후임으로 갔고, 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선교에 관련하여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교인들의 관심은 초창기만큼 열정은 아니지만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리교회에 미전도종족부가 있어 연2~3회 정도 현지를 방문하기에 가능하다. 지속적인 방문과 보고, 교역자로서 내가 강조하니깐 관심이 이어지는 것이다.

선교사로 우리 사람을 보냈다는 것, 미전도종족부가 꾸준히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 지속적인 관심의 주요 원인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선교부의 사람들은 상당한 전문가이다.


해외 선교부원들 계층 & 선교참여: 전 성도들은 헌금으로 선교에 참여하고 선교부원은 기존부원들이 지속하고, 다른 사람을 추천해 함께 하기도 한다.


O족 사역 진행 정도?

후임으로 들어간 선교사가 장기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없게 되었다. 나는 학생비자로 체류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관할 이민국이 바뀌면서 비자를 받을 만한 스폰서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대학 비자로 있었는데 이제는 비자를 받지 못해 철수를 했다. 제2단계를 들어가야 한다는 고민에 와 있다. O족 사람가운데 복음으로 세우고 양육했던 사람들 가운데 지도자 3가정이 형성되었다.

한 가정은 형제, 한 가정은 자매가 신학을 해서 이제는 지도권을 넘겼다. 이들을 중심으로 가정교회가 모이고 있다. 내가 연2~3회 들어가서 그들을 격려, 꾸준히 이메일로 상황을 주고받고 있다. 주일에 17~20명이 모이는 가정교회가 설립되었다. 예배처소를 교회(은평교회)에서 만들어 주고 있다.


다른 선교사를 보낼 계획은 현실적으로 비자문제로 어렵고, 이제는 더 이상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비거주로  들어가서 하면 될 정도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립이 되었다.


재정적 자립은 2003~2004년부터 자립훈련을 시켰다. 이들이 평신도들이기에 내가 비즈니스를 하면서 직원으로 그들을 받아 급여를 줬고 급여의 십일조를 교회에 내기로 했다. 십일조로 교회 운영이 되었다. 지금도 그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얻는 십일조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예배 처소만 구입을 해 줬지 그 외에 다른 경비는 교회 지원이 없다. 신학한 사람도 직업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있다. 자전까지도 되었다. 전도도 현지인들이 해서 교회로 인도되었다. 결국 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이 하게 되었다. 세례를 주는 일부터 현지인이 하게 하였다. 내가 하게 되면 외국인교회가 되기에 설교도 현지인이 하도록 하였다. 철저하게 리더십 입장에 서지 않았다. 사람을 발굴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만 하였다.


내가 있을 때는 12명의 현지지도자들 소그룹이 있었고 그들을 모아 예배를 드렸다. 8년 만에 이양이 되었다. 이것에 도움이 된 것은 현지에 있는 자국 선교단체와 협력이었다. 그 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내가 강의도 하고 그 단체의 사람을 리쿠르팅을 했다. 선교사들은 현지교회, 교단, 선교단체와 협력을 잘 해야 한다. 현지의 자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우리교회의 정책은 처음부터 ‘은평교회를 세우지 않는다’였다. 교단문제도 현장에 있는 교단교회를 세운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적이고 토착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현지인들에게 맞는 교회를 세울 것이다’라고 처음부터 충분히 설명을 하고 사역을 했다. 이것에 대해 현지의 교단, 선교단체에서도 동의를 했다.


이번에도 현지 선교단체 지도자들을 만나서 이제는 수마트라 O족이 원하는 데로 하자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것을 주입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례역시도 교회가 취하는 세례의 방법을 설명해 주고 선택은 현지인들이 하게했다.


나는 세례를 주는 사람이 아니다. 세례 받는 사람을 제자 삼은 현지인들이 세례를 주도록 하였다.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누구한테 세례를 받고자하는지 선택하게 했다. 완전히 우리교회라는 생각을 강하게 되었다. 아직 3가정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 한국 초창기에 미국선교사들이 지도력을 한국 목사들이 성숙해서 넘겨준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들의 교회니깐 당신들이 하도록 했다. 부족해도 넘겨야 한다.

둘째, 사도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장로들을 불러 주와 은혜의 말씀을 부탁했다. 우리도 주님과 말씀에 부탁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르친 말씀이 그들을 가르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양을 했다.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면 불안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고 잘 하고 있다. 너희들이 잘하면 O족 교회는 세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했다.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선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지도력 이양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직은 내가 잘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은평교회 입장에서는 생활비 지원은 없지만 다른 사역부분에서는 재정이 갈 것이다. 성경번역을 위한 컴퓨터, 지도자 훈련을 위한 재정은 도와준다. 마지막 일은 그들이 원할 때 예배당을 지어 줄 것이다. 나는 부지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 역시도 기다리는 입장이다. 우리가 너무 많은 재정을 쓰면 싸움이 나기에 그들이 성숙할 때까지 기리는 것이다.

현지 사역자가 재정 면에서 많이 어려워지면 비즈니스를 열어 월급을 주는 것은 할 것이다. 이런 식의 재정 지원은 계속 할 것이다.


입양에 대한 공동체내의 부정적 측면은 별로 없었다. 교회는 리더십의 관심이다. 교회 리더십의 열정과 관심에 따라 공동체의 인식은 달라진다. 108가정을 후원하고 있다. 선교에 관련한 어떤 것도 긍정적이다.

매년 가을에 바자회를 해서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선교대회를 했는데 현장에서 100여명이 왔다. 이들의 숙식, 교통비를 지원하는 등 선교에 대한 열의가 있다. 선교의 생명력은 리더십의 관심이다. 실무자가 리더십에 잘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 담임목사를 통해 움직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에 대한 인식도와 실무자들이 정보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타교회, 선교단체의 협력의 필요성?

교회적 차원에서는 크게 필요성이 약하다. 대신 현장의 선교사에게는 오픈을 하라고 한다. 중국에 모종족을 입양 준비 중인데 현장 필요에 따라 누구를 막론하고 협력하라고 한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손닿는 곳은 모두 협력을 했다. 나는 이런 부분을 교회에 설득을 했다. 종족이 클수록 여러 교회가 협력을 해야 한다. 국내 교회는 협력의 필요성을 많이 못 느낀다. 내 경우 선교지로 가면서 적절한 선교단체를 못 찾았다. 현장에 나가서 교회에 이야기 했다. 현장에 가서 선교단체를 찾겠다고 하여 OMF 안에 있는 동남아시아 미전도종족 사역 부서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서 김요한 선교사를 만났다. 이러면서 영국, 미국 등과 네트웍을 형성해 나갔다.


종족을 입양 하려는 교회에 권해 주고 싶은 것은?

단독적 선교단체도 필요 없고 우리가 모든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선교사를 그 종족과 연결되는 교단, 선교단체와 접목을 시켜야 한다. 선교사가 그 종족에 들어가 그 종족 안에서 필드 리더십 아래에서 사역하도록 그 전문 단체를 찾아 사역하도록 했으면 한다. 그 지역에 오랜 경험이 있는 선교단체와 협력을 했으면 한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교회마다 미전도종족 사역을 할 때 소외된 지역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생각이 나쁘진 않다. 이렇게 했을 때 팀으로 보내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한 가족은 장기, 한사람은 단기로 이렇게 보냈으면 한다. 비엣족을 그렇게 보내려 생각하고 있다. 두 가정을 같이 보낸다. 한 가정과 싱글(2명)이 좋은 팀 구성인 것 같다.


입양 사역의 위기 극복이 중요하다

교회와 현장간의 소통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이 우리교회 안에 정말 헌신 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장로님 한분이 그런 분이시다. 교인들안에 불씨가 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현장에만 맡겨 놓으면 안 되고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온 교회가 인정하는 선교에 미친 사람을 발굴을 해야 한다. 현장 선교사에게만 맡기지 말고 한국에서 사명을 가지고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열정이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이것을 감수하고 이런 사람을 세워야 한다.


이후 입양사역을 하려고 하는 선교사와 교회에 하고 싶은 말은?

선교지 교회의 자립은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주입을 시키면서 해야 한다. 다행히도 내 경우는 내부자 운동을 사역 들어가기 전에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미션 statement를 만들었다. CPM, 인사이더 movement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목적은 O 패밀리 그룹에게 나가는 것이었다. 우리팀은 O족에게 언젠가 중동에 가야 한다는 미션 플랜팅을 심어줬다. 처음부터 이런 것을 주입시키면서 시작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변 종족을 리서치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지도를 세워놓고 제2의 베이스를 세워 사람들을 보내 땅밟기를 했다. 비전을 계속 심어줬다. 언젠가는 선교사가 필요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선교사가 해줘야 할 가장 큰 일은 미션 플랜팅을 세워주는 것이다. 나의 관심은 선교사들의 열매로 선교사가 된 케이스가 있는가였다.


300명 미만의 교회에게 입양을 권한다면?

300명 미만의 교회의 선교의 키는 담임목사님이다. 선교를 모범적으로 하는 교회를 탐방한 적이 있다. 한 교회를 직접 탐방했다. 녹번역 근처에 있는 교회였다. 선교세미나를 하는데 청년 5명이 한 교회에서 왔다. 너무 열심히 질문을 하고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했다. 교인 수가 100명 정도 되는 교회였다. 그 교회를 찾아갔다. 담임목사가 친구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파송을 부탁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자훈련을 착실하게 잘하는 교회였다. 제자훈련의 열매가 선교로 간 것이었다. 제자훈련과 선교라는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었다. 선교를 프로젝트로 간다면 1000명이라도 지속적으로 가지 못한다. 담임목사의 분명한 목회철학 중요하다.


담임목사와 청년부 담당의 목사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게 한 계기였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결국 담임목사의 교회 관이다. 우리교회의 담임목사는 개척 첫 예배의 헌금을 선교에 드릴 정도로 선교가 분명하다. 사실 숫자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회의 존재목적인 선교관이 핵심이다.


입양 선교를 위한 정기적 행사가 있는가?

매월 셋째 주가 선교의 밤이다. 홀수는 국내, 짝수는 해외이다. 국내는 농어촌 목사, 해외는 선교사가 와서 설교를 한다. O족으로 매년 2회 정도 가는 것은 2010년에 결정되었다. 청년들이 O족 뿐만 아니라 5가정의 파송 선교사 지역에 간다. 중국 3가정, 일본 1가정, 인도네시아 1가정


전체 재정에서 선교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예산의 10%가 해외 선교비이며 개인 작정 헌금이 선교비로 나간다. 입양선교는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생활비 등 모든 것을. 파송선교사의 경우는 선교단체와 협약한 일정한 분량만을 한다. 입양선교는 본인들 모금과 별도로 한다.


기존선교사 & 입양 선교의 장단점에 대해서?

기존선교는 국가와 단체를 본인들이 결정하게 한다. 선교사를 보고 후원을 결정한다. 이분들에게 최대한 협력을 하지만 사역결정에 있어서 의사결정에 동참하지는 않는다. 소극적이다. 미전도종족은 교회가 지역을 결정, 사람을 결정한다. 장점은 세계 복음화라는 초점에서 미전도종족을 복음화시킨다는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장점이다. 단점은 책임져야 된다는 것이다.


입양 사역을 해야 하는 이유?

정체성을 잃은 종족, 유지하려는 종족이 있다. 한 종족을 복음화시키는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도행전의 다수가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것을 믿는다. 맥가브란 박사의 연구를 보더라도 종족끼리 가지고 있는 결속력은 한 종족을 복음화 시키는데 전략적으로 효과적이다. O족은 흩어져 있지만, 빨램방(Palembang)의 큰 도시에 살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이들을 복음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것은 종족 포커스를 맞추는 방법밖에 없다. 일반적 접근 방법은 눈에 잡히는 전도의 성과를 보기는 어렵다.

선교현지에서 빠울루스 학교를 했다. 다들 종족 사역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소수만이 부정적으로 본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모른 척 한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에게 접근할 때 해당 종족어로 접근할 때 효과는 훨씬 더 크다. 종족 사역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전략이다. 미전도종족 사역이 그것이 아니라면 대안이 없다. 도시에 흩어진 종족을 한 종족으로 본다는 것은 어렵다. 다만 전략적으로 더 발전을 해나가야 한다.

미전도종족운동을 하면서 CPM을 말하고, FTT를 연결해야 하며 내부자 운동을 연결하는 전략적 발전을 해야 한다. 미전도종족이 근간이 되어야 CPM, FTT, 내부자 운동이 가능해 진다. 그러므로 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 CPM의 게리슨 박사는 종족을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CPM의 단위가 종족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종족에서는 어렵다. 그러므로 AAP는 트랜드가 아니다. 그것이 근간이다. 선교전략으로 미전도종족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전방개척, CPM 사역은 미전도종족 사역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AP에서 이런 전략들을 끌어들여 물을 타야 한다.




2. 중동교회: 중국 Y족 입양 및 선교사 사례


인터뷰 일  시: 2010. 6. 1

응답자: 김선희 전도사


• 교회 소개

성도수: 출석 인원 900명, 재적 1,400명.

74년 설립되었다. 기존에 선교를 많이 돕다가 10/40창 이야기와 함께 입양 사역에 대한 비전을 보고 산발적으로 흩어진 선교비를 입양으로 모았다. 98년에 입양 해, 99년 1차 김온유 선교사 영입을 했다. 2002년에 1차 선교사가 훈련받고 쿤밍에서 언어 후 계림으로 가서 Y족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청에서 사역을 했다.

3차 선교사까지 보내려 했었다. 1차 후, 2차 선교사 파송을 했으나 한텀만 하고 사임하였다. 2차 진호 선교사를 2003년에 파송되어 운남성 쿤밍으로 갔다. 김온유 선교사 사임 후 3차 선교사가 사역을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


1차 선교사의 사임이유?

선교사를 보내놓고 너무 믿었다. 파송교회의 지원 없이 마을을 다니면서 마을을 여는 사역을 했다. 사역이 너무 힘들었다. 시골 등을 방문했는데 시간, 체력 상으로 너무 지쳤다. 주변 협력 선교사가 없었다. 안식년 중에 기도 하면서 사임하게 되었다.

교회입장에서는 선교사 케어의 사역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1년에 한차례 가을에 목사와 선교위원, 어른들이 방문을 한다. 선교사들에게 쉼을 주는 목적으로 방문한다. 항주, 쿤밍, 계림을 순차적으로 방문한다. 심천, 항주 등 교회 출신 사역자들을 모아서 관광, 영적 공급 등의 시간을 갖는다. 전략회의를 통해 목사님과 함께 한해의 사역을 의논한다.


현지의 변화?

공청: Y족 28만 명 중 300명에게 복음을 전해 100여명이 영접했다. 정기적 참석 모임이 어린이 35~40명, 장년이 25명이 모인다. 4군데 마을에서 정기적 교회 공동체 모임이 있다.

장학금 사역을 통해 하고 있다. 마을마다 초등학교가 있는데 아이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장학금을 준다. 46명에 장학금을 지급. 장학금을 들고 선교사가 마을을 열어간다. 15개 마을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 아이들을 한 번씩만 방문해도 1년이 간다. 그들을 도시로 모으기가 어렵기에 선교사가 찾아가는 형편이다. 지금까지는 대중교통으로 갔으나 선교위원회에서 헌금을 해 차로 방문이 가능하게 되었다. Y족만을 위한 사역이다.


운남성: 중국에서 10년을 공부한 사람을 선교사로 영입했다. 지도자 사역을 하고 있다. 3명의 선교사와 협력을 해 다민족 지도자 사역을 하고 있다. 어린이 사역, 도서관 설립을 하고 있다. 지도자들이 세워져 교회가 열려지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른다. Y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신학교 사역을 하고 있다.

교인들의 인식 정도?

인식 면에서 초창기보다 약해졌다. 교회 이전 후 신도시 특성상 교인 물갈이가 빨리 된다. 1차 선교사가 사임할 때 성도들의 상처가 많이 남았다. 선교위원회는 선교비 보내는 정도였다. 선교위원회가 선교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선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 전임 전도사가 생기면서 선교위원회 대상으로 Y족과 선교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파송/협력 선교사들의 자료를 매주 보여주는 것을 2010.4월부터 했다. 선교비도 구좌제로 했다. 공식적인 기도는 계속했으나 Y족의 위치 등 깊이는 모르고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올 4월부터 본격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Y족 사역을 위한 중장기 계획?

2010년 봄부터 선교학교(10주)를 만들었다. 이 학교를 수료하면 선교지 가는 비용의 10%를 교회에서 지원한다. 청년들이 계림으로 단기팀을 갈 예정이다. 작년에 선교위원회에서 계림쪽으로 갔었다.

현장 선교사를 도울 수 있는 단기선교사를 보내려는 계획이 있다. 계림선교사는 문화센터 비자를 가지고 있다. 문화센터비자를 통해 문화강좌 개설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글, 한국요리, MK의 홈스쿨링을 도울 수 있는 단기 사역자들을 보낼 계획이 있다.


선교지 방문 횟수?

비전여행을 통해 마을을 방문하고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작년에 갔을 때 장학금 받는 학교와 마을을 방문했다.

가기 전에 6주 정도 모여 기본적 인사말(중국), 사영리 연습, 글 없는 책을 연습, 풍선아트, 종이접기 등을 훈련시켰다. 사전 훈련이 있었기에 너무 즐겁게 사역을 했다. 현장 선교사도 너무 즐겁게 동참했다. 담임목사가 소수와 동행을 한 것은 있었으나 모집해서 간 것은 2009년이 처음이었다. 이후에 연2회 정도는 방문을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올해는 청년들이 가지만, 겨울에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갈 계획이 있다. 2005년에 주일학교에서 비전트립을 갔었다. 앞으로는 부서를 구분 짓지 않고 함께, 가족별로 함께 가면 또 다른 감동이 있을 것이다.


과도기 극복?

중간에 4년 동안 외국에 갔다 왔다. 4년 동안 1차선교사와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목사님이다. 담임목사가 중심을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결같이 처음의 목표를 놓지 않고 선교사를 지속적으로 보냄으로 수습을 했다.

특별하게 은혜를 주신 것은 선교사뿐만 아니라 선교위원회의 장로님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중국에서 시작했다. 선교사를 돕는 비즈니스 사역의 비전을 갖고 중국으로 갔다. 계림의 경우 일손이 부족할 때 장로님의 회사 직원을 훈련시켜서 선교사를 돕는 역할들을 하는 것을 계획 했다. 인적, 물적 자원 공급을 소망했다.

부교역자들이 중국으로 가서 한인교회를 열게 되었다. 한인교회를 하던 사역자들이 장학금 지원 등 사역의 네트웍이 형성되었다.

선교사와 본부 목사간의 소통이 자주 이뤄졌다. 장로님은 현지에서 관리를 해 주고 있다. 선교위원들이 깊이는 몰랐으나 제일 잘 모이는 팀이었다. 이들로 인해 추진력이 빨랐다.


선교사들의 보고?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선교위원장 장로님이 현지에서 바로 해결을 해 준다.


입양 선교에 대한 비전공유?

담임 목사의 비정기적 설교이다. 1995년부터 비전을 4가지로 세웠다. 2005년에 2015비전 중 4번이 ‘Y족에 100명의 지도자를 세우자’였다. 다음세대 지도자, 목장, 개척교회, 선교였다. 이것을 주보에 지속적으로 실으며 강조했다. 낮 예배 때 통성기도를 1~4주까지 4가지 비전의 기도를 매주 하고 있다.


입양을 처음 시작하는 교회에 권하고 싶은 말?

산발적으로 돕는 것도 좋지만, 전략차원에서 종족을 입양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1) Y족을 입양을 하고 나서 정보가 없었다. 직접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정보를 다양하게 수집하는 것이 좋다. 직접 발로 뛰는 것이 가장 좋다. 교회가 함께 뛰어줘야 한다.

2) 현지에가 있는 선교사들이 번 아웃(burnout) 되지 않도록 격려와 케어가 필요하다. 현지선교사와 교인들의 마음이 함께 가야 한다.


입양 사역의 장점?

집중할 수 있고 사역이 깊이 있어진다. 선교의 초점을 잡을 수 있다.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구심점이 생겨 우리의 대상은 Y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초점을 함께 맞출 수 있는 것이 있다. 열매를 기대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생긴다.


입양 선교를 할 때 어려웠던 점?

내가 대답하기 어렵다. 선교사가 중간에 그만 둔 것이다.


입양 종족을 위한 정기적인 기도모임?

선교위원회가 월 1회 모여 기도한다. 주로 선교위원회 사람들이 기도한다. 4월에는 각 부서마다 선교위원회 집사를 파송해서 설명을 했다. 같이 선교할 것을 권했다. 선교위원회에서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그들이 할 수 있도록 한다.


AAP의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입양선교를 하면서 좋은 방향제시를 해 주면 좋겠다. 타교회에서는 선교 동원을 어떻게 하는지 좋은 자료를 공유하면 좋겠다. 선교사를 돕는 방법 등 구체적 안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 중국 Y족을 입양한 외국의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 Y족을 입양한 교회끼리의 네트웍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부분을 AAP가 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입양 선교를 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

1차 선교사 외에는 크게 없었다. 2차 선교사도 완전히 바닥까지 갈 뻔했으나 회복을 했다. 쿤밍 내에서 같은 사역을 하려는 동역자를 만났다. 2명의 선교사를 만났다. 이 세분이 현지에서 만나 사역의 방향이 맞아서 협력을 하게 되었다. 이 2명이 우리교회의 협력선교사가 되었다.


- 간행물: 없음

- 선교예산: 전체 예산의 10%가 선교비. 협력선교사 21명이 있다. 10%의 예산이 y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10%의 50~60%가 y족을 위한 것이다. 21명은 y족을 입양하기 전의 선교사들이다. 입양 후는 협력 선교사 영입하지 않았다.

- 선교모금: 선교 구좌제로 함. 어른은 5,000/어린이 1,000이 최소 단위.

- 선교지 방문: 정탐은 지속적으로 있었다. 훈련은 2010년부터 했음. 선교위원회 자체에서 외부선교사 초청은 있었으나 초청된 선교사 위주로 했다.

- 선교훈련: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선교사(MP)"요약 책을 10주에 걸쳐 훈련을 했다.(선교학교)

- 교회내 헌신자: 현장에 직접 가고 싶어 하는 성도가 몇 명 있다. 문화센터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MK 사역을 위해 가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있다. 평신도 1가정이 선교를 가고 싶어 한다. 계림 지역에 초등학교가 집중한 곳에 분식(김밥)집을 하려는 비전이 있다. 남편 분은 정비소 관련 직업을 하고 있기에 이것을 활용한 선교를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신경은 쓰고 있다.


- 종족 자료를 얻는 곳: 종족 자료 얻는 곳이 없고, 발로 뛰신다.

- 입양 후 공동체 변화: 선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가족적인 선교 문화. 1~3차 선교사들은 중동교회에서 1~2년 사역을 경험하고 갔기에 성도들과 본딩(bonding)이 더 잘 되었다.


300~500명 규모의 교회에 입양 사역을 권하고 싶은 말?

관점의 문제이다. 목회관, 교회관의 문제이다. 선교한국의 PSP훈련을 통해 선교에 대한 정립을 다시 했다. 교회 존재 목적을 몰라서 그런 것 같다. 목회자가 선교를 부흥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선교관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낳아야 하는 것이기에 돈이 없더라도 몸으로 할 수 있다. 선교하면 돈을 채워주신다. 이런 것을 경험해 봐야 한다. 교회와 선교사의 선교에 대한 목적이 맞지 않아, 선교사가 사임을 한 경우도 있다. 교회가 선교 부흥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는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종족에 대한 정보는 정확했으면 좋겠다. 초창기 때 시행착오가 많았다. 받은 정보와 현지에서 직접 본 정보가 달랐다.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었으면 좋겠다. 가능성이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 했으나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교회마다 선교전담 교역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통해서 선교지와 교회의 소통을 잘 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겼다.



3. 현장 선교사 사례: 중국 쭈앙족


인터뷰 일시: 2010년 6월

응답자: 여호수아 송 선교사


개인소개; 신반포 교회 파송 선교사.

1995년, 97년 AAP 훈련 받으면서 운남성, 광서성 리서치를 하게 되었고, 사역자가 없는 쭈앙족을 알게 되고 품게 되었다. 1998년도에 파송 받고 현재까지 12년 동안 쭈앙족 사역을 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신반포 교회가 입양을 하기로 하고 파송 되었는데 교회 담임 목사님이 불어를 전공하시고 불어권 사역에 관심이 많으셔서 더 이상 입양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었다.

2002년부터 쭈앙족 사역자(OMF, 남침례교, YWAM, SIL) 컨설테이션 미팅이 시작되었고, 2004년도에 쭈앙족 기도 책자가 영어, 한국어, 중국어, 태국어로 태국에서 발행되었다. 태국에서 발행되는 이유로 인해 한국에 늘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다.

OMF 내에 메콩 팀(디렉터:샘 운드리)이 있는데 태국 북부지역, 미얀마, 베트남, 중국 서남부의 소수 민족을 타겟으로 사역하고 있다. 송 선생님 팀은 5가정이 국제 팀으로 쭈앙족 사역을 하고 있다. 세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난닝, 운남성(쭈앙족 자치주)의 원샨, 찡시(베트남의 농, 다이와 같은 언어 사용)


사역;

쭈앙족 교회 개척 사역. 쭈앙족 대학생 사역(그룹 생겼음). 리서치 사역.

쭈앙족 중국어 자료 책, 비디오 자료를 포함해서 거의 다 가지고 있다. 문제는 자료는 많은데 자료를 정리해 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다. 장, 단기 사역자가 필요하다.

운남 대학교에서 민족자료 공부를 해서 대외적으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장학(쭈앙족) 민족 연구 센터 학회에서 정보도 얻고 사람들과 교제 하고 있다. 이런 루트를 통해 많은 정보 확보를 하고 있다. 기도 책자를 서양 사역자들과 함께 발행했는데 한국인 사역자와 서양 사역자들 간에 사역에 대해 서로 다른 포커스와 관심 분야 때문에 내용이 충분치 않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한국 사역자들이 새롭게 업데이트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기도 책자를 가지고 중보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고 큰 격려를 받았고, 이 기도 책자를 통해 더 많은 중보 기도자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7월말에 업데이트 된 기도 책자 나올 예정이다.


지역교회에 쭈앙족 소개를 한다면;

리서치 팀(정탐팀), 중보기도 팀이 오면 좋겠다. 대학생 사역(쭈앙족 대학생)을 위해 단기팀이 왔기에 가능했었다. 단기팀이 와서 사역자들이 미리 컨택해 놓은 믿지 않는 쭈앙족 대학생들과 함께 교제하고 관계를 형성한 후에 그 가운데 관심 있는 쭈앙족 청년들에 대해 사역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역이 시작되었다.

장기적 사역으로는 쭈앙족 경제 공동체 사역을 하고 있다.

쭈앙족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 한 후 창업을 하는 것이다. 유치원 개설, 김밥집, 안마기 판매 중개상.

유치원은 쭈앙족 청년이 원장(27세 정도). 유치원은 2년 정도 되었는데 60여명 정도 되고 자립이 된 상태이다. 경제적 이윤이 생기고 있다. 유치원 시작은 쭈앙족 형제가 시작했고 그 이후에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다. 중국에서는 누구든 유치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치원을 선택한 이유는 시골부터 도시까지 포괄적으로 사람들을 포함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즉,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해 와서 일하는 사람들의 아이들을 맡아 주는 탁아의 개념이 더 어울린다. 즉, 맞벌이 부부를 위한 개념의 유치원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과 학교를 시작하려 계획 중이다.

유치원 원장은 대학에서 시장 경제를 전공한 청년. 유치원이 쭈앙족 사역의 한 그룹이다.

유치원은 영어와 중국어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현재는 학교를 사려고 계획 중이다. 땅이 거의 허가 된 상태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시작하려 계획 중이고, 800명 정도의 학교인데 약 200명 정도를 쭈앙족 아이들을 데려와서 초등학교부터 시작하려고 계획 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위해서는 사역자 이름이 전혀 개입되지 않고, 뒤에서 투자나 돕는 역할만 하고 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국제 학교는 없고, 초등학교는 홈스쿨링 센터, 중학교 과정은 크리스천 스쿨 커리큘럼 따라 인터넷을 통해 교육하고 있다.


이런 사역들을 한국 교회가 협력해서 하면 좋겠는데, 한국 교회는 교회 자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너무 크기에 문제가 있다. 만약에 한국 교회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교회 자체적으로 어떠한 프로젝트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동의만 있으면 협력 사역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쭈앙족 경제 공동체 사역의 목적은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크리스천의 단계에 이르기 까지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시작하게 되면 커리큘럼은 영어와 품성 교육(성경적으로)으로 짤 생각이다.


난닝 인구 60% 이상이 쭈앙족이고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외부인들도 거의 쭈앙족이다. 즉, 학교를 통한 시골부터 도시까지의 포괄적 접근성과 사역이 가능한 상태이다.


많은 사역자들이 처음에 사역지에 왔을 때의 목적과 비전은 소수 민족 사역이었다. 그런데 소수민족 사역이 어렵고 여러 가지 다른 사역에 대한 유혹 때문에 본래 목적이었던 소수 민족 사역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는 한국 교회의 사역에 대한 열매를 보고자 하는 압력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열매를 위해 오랜 인내가 필요한 소수 민족 사역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목적인 소수 민족 사역을 위해 많은 아픔을 겪기도 했고 유혹도 있었다.

쭈앙족 청년을 리더로 세우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다. 그래서 청년들 12명을 양육해서 그 가운데 쭈앙족 청년을 리더로 세우려 하다 보니 나머지 청년들은 우리 그룹을 떠나 삼자교회나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 아픔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쭈앙족 청년 리더자가 세워지게 되었다.

팀이 깨지기도 했다. 쭈앙족 사역을 위해 팀에 조인을 했던 사람들이 쭈앙족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떠난 적도 있었다. 참 아픈 기억이다. 그리고 이 사역을 하면서 비즈니스에 대한 유혹도 많이 있었다.

2000년부터 시골 사역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청년 사역도 하고 있다. 청년 리더를 세우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양육을 시작했던 아이들이 지금 대학교를 졸업했다. 즉, 10년 이상이 걸린다.


CPM에 대해서;

나는 CCC에서 사역을 하면서 캠퍼스 순모임을 통해 제자훈련을 받았고 해 왔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로 보지는 않았다. CCC는 Para-Church라는 개념이었다. 교회는 교회이고 캠퍼스 순모임은 순모임이라는 개념이다.

CPM 은 너무 얇다. 이것은 남침례 교단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CCC의 순모임을 하나의 교회로 본다. 그것은 시작은 좋지만 장기적인 안목이 없다. 번식은 하는데 다른 요구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가 없다.

나는 작은 교회들의 연합 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 교회가 활동력 있게 사역하지만 그 가운데서 연합해서 할 사역이 있다는 것이다.

가정 교회가 CPM의 대안(보완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룹은 생겨서 자라가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 확 튀어 오르는 폭발적인 시점이 없다. 이것이 가장 고민점이다.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해서 어느 정도 자라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CPM의 가장 큰 강점이다. 선교사들이 믿지 않는 사람을 키워서 교회를 개척하려고 생각지 않고, 믿는 사람들을 키워서 교회를 시작하려 한다. 즉, 시작은 좋지만 보완책이 필요하다.


리서치에 관해;

리서치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위해 한동대에서 단기팀이 계속해서 왔었다. 그런데 단기팀이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리서치만 하게 되었다. 기존의 리서치 내용을 뛰어넘지 못 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리서치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그 다음 단계를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 했다는 것이다.

나는 리서치가 그들의 문화와 세계관까지 알아내는 정도에 이르기를 바라고 그로인해 그 민족에게 맞는 복음을 제시하는 정도까지 발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 묘족; 약 60-70%가 복음화 되었지만 그들의 삶은 복음화 되지 않았다. 즉, 삶의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관이 변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리서치가 이 부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데까지 발전해 가야 한다.

상황화, 재신학화까지 갈 수 있는 리서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한 민족의 가치관 자체를 변화 시킬 수 있는 복음으로 자리 잡기까지 도울 수 있는 리서치로 발전해야 한다.


넓게는 중국 대학생. 좁게는 쭈앙족 대학생을 대상으로 그들의 삶, 가치관에 관한 것들을 리서치 할 수 있는 팀이 필요하다.

한 특정 지역에 대한 리서치가 필요하다. 쭈앙족에서도 전략적으로 여덟 지역이 있다. 향후 선교사가 배치될 지역에 대한 폭넓고 전문적인 리서치가 필요하다.


현장 리서치에 대해 한국의 선교 본부에서 기획을 하고 리서치에 대한 전체 틀을 가지고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리서치가 이루어지면 더 좋을 듯하다. 현장에서는 본부에서의 요구가 있으면 글을 쓰거나 리서치를 할 수 있지만,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서 하기에는 여력이 없다. 이것을 통해 본부에서도 리서치나 전략에 대해 현장성을 키워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 필요하다.



IV. 나가는 말

지난 17년간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전도종족 포커스를 가지고 교회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돌파를 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중동교회, 은평교회, 신반포교회 중국 쭈앙족 외에도 대전의 늘사랑침례교회, 신림교회, 온누리교회 몽골 브리야트족, 빛의교회, 창원가음정교회 등이 건강한 현지 교회 개척을 이룬 경우이다. 이후 이런 교회들 간의 네트웍크 활성화와 함께 향후 입양할 교회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실패와 시행착오도 종족을 입양했던 교회와 현장 선교사들에 의해 정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각 유관 단체와 UPMA의 협력이 필요하다.

어느 선교학자는 “한국선교사들에게 글쓰기를 요청함”이란 글을 통해, 선교학자와 현장의 괴리를 극복할 뿐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통한 건강한 한국선교를 위해 현장 선교사들에게 필수적으로 글을 남기고 이론화 할 것을 요청하였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선교를 수행하면서 성공하기도 하고 열매를 맺으며, 때로는 아픈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정리한 것이야말로 한국 선교사들에 의한 선교 사례로 이것이 바로 “한국적 선교”, “한국형 선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난 17년 동안 서양에서 제기한 12000개, 6천개, 3000개, 639개 종족 등 종족 리스트로 미전도종족을 보면서 이로 인해 발생한 불필요한 소모성 논쟁이나, 그 뒤 다시 서양의 FTT운동이 제시한 UPG(Unreached People Group)혹은 UUPG(Unengaged Unreached People Group)등 용어의 정의 수준 혹은 AAP를 파기하고 대신 FTT로 대체하려는 혹자의 단절로서의 미전도종족운동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동안 17년 동안 개념과 용어 정의, 미전도종족 숫자 논쟁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한국선교사들이 파송된 현장과 이후 한국이 전략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선교지의 실제 필요에 의해 한국에서 이를 발전시킨 종합적이고 회통적인 CAS(Comity-City/AAP/Specializa

tion)시스템으로 한국선교사들이 나가있는 국가 및 도시를 중심으로 현지의 미전도종족관문도시와 미전도종족이 조사되어지고 이를 중심으로 각각의 다양한 사역들이 전개되어질 수 있도록 연합하고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종목표는 한국교회와 같은 자생적이고 토착적인 현지인 교회들이 처음부터 Missional Church가 되는 비전을 가지고 세계복음화 완수를 함께 꿈꾸기 때문이다.


1) 이현모, “미전도종족선교의 성경적 고찰”, 미전도종족선교대회 발표 논문, 1995.

2) 서양에서 시작된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은 90년대에 한국선교계에 소개, 확산되면서 발전했다. 2008년에 한국에서는 이 선교운동 15주년을 맞아 11월 28일 감사예배와 함께 미전도종족선교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작업을 진행했다. 사전에 이같은 취지로 지난 15년간의 미전도종족운동 관련 자료수집 과정및 인터뷰 조사(교단측: 합동측 GMS 강대흥 선교사, 지역교회: 사랑의교회 유승관 선교목사 및 전욱 목사), 온누리교회 김창옥 선교사님, 선교한국측: 한철호 상임총무, 기타 단체 및 연구소: KRIM 문상철 원장 )를 시행하였다.

3) 본인이 섬기고 있는 선교연합체인 UPMA에서는 지난 2008년 12월에 ‘전방개척미전도종족선교지도’를 제작하여 한국교회의 선교사들이 이후 더 나아가야 하는 권역을 전방개척12개 권역(FA12:Frontier Areas12)으로 구분했으며, 이 권역의 미전도종족숫자와 주요 미전도민족들의 사진도 함께 지도에 첨부 제작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www.upma21.com 참조 할 것.


 

 

>> 목차고리 : [발제]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운동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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