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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한국 문화적 리더십의 모델과 한국 선교사 리더십(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3]
 자료출처  진재혁  성경본문  
 내용

한국 문화적 리더십의 모델과 한국 선교사 리더십

                                                  

                     

                                                                진재혁 

리더십이란?

21세기의 화두는 리더십이 아닐까한다. 어느 때 보다도 리더십의 중요함이 강조되고 있고 곳곳마다 리더십에 관한 서적과 리더십 세미나의 열풍이 불고 있다. 사회, 경제, 정치, 종교의 모든 문제는 바로 “리더십의 부재”라고 진단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로, 목회현장과 신학교에서도 리더십이란 주제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목회리더십이란 제목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강의와 세미나가 목회자의 리더십과 교회성장을 연결시키며 얼마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모른다. James McGregor Burns는 말하기를 리더십은 가장 주시하면서도 가장 잘 이해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Leadership is one of the most observed and least understood phenomena on earth”(Leadership, 1997).


그렇다면, 리더십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올바른 리더십의 사용을 위해서는 리더십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풀러신학교의 Bob Clinton은 리더십이란 권력이나 지위, 파워를 가르치기 보다는 영향력을 끼치는 과정 “Process to Influence” 이라고 정의한다. 즉 리더가 따르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리더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교사는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가라하신 그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맡기신 그 사람들과 사회와 문화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인 것이다. 즉,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A Christian “leader is one who with God-given capacity and God-given responsibility to influence a specific group of God’s people toward God’s purposes for the group” (George Barna 1997). 리더십의 주제로 유명한 John Maxwell은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도, 똑같은 헌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리더십의 역량에 따라 사역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1998). 그 말은 같은 노력을 더하면서도 리더십의 역량을 더 가지고 있다면 더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으며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리더십의 역량이 발전되지 않고 제한되어 있다면 많은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열매와 지속적인 좋은 영향력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지에서도 선교사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선교사와 리더십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선교사의 영성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선교사들의 영성 훈련과 영성에 대한 자격을 강조해 왔다. 그 후에는 선교지에 대한 문화적 이해라고 생각되어져서 선교지의 토착화와 문화 인류학적인 훈련을 강조해 왔다. 요즘은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 선교지에서 리더의 많은 역할을 감당해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를 리더로 보는 관점이 부족했고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경외시했다. 그러나 직접 선교지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해 보기도 하고, 선교사들을 훈련시키며 파송했던 선교목사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또 선교학을 공부하고 선교학을 가르쳐 오면서 선교사에게 리더십이 가장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선교지에 지속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리더십의 교육과 훈련을 통한 준비된 선교사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렇다면 왜 선교사에게 리더십 교육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져야만 하는가? 


첫째, 훌륭한 선교사가 되기 위한 모든 교육을 다 마쳐도 저절로 리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학교나 선교기관에서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는 모든 중요한 부분들 (조직신학, 교육학, 상담학, 선교학, 구약, 신약, 문화인류학, 설교학등)을 각각 교육해왔고 (리더십만 빼고) 그 후에는 사역 중에서 그동안 교육한 모든 부분들이 사역가운데 저절로 조화를 이루고, 이해와 경험 되어 그 사람을 한순간에 훌륭한 리더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가정해왔다. 그래서 리더십이 선교훈련 (신학교와 선교기관)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매우 적거나 거의 없지만 실제 상황가운데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리더십의 부재와 문제가 바로 그런 것들인데 리더십에 대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며 선교기관에서나 신학교에서도 예비선교사들을 훈련하고 준비시킬 때 리더십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사역을 하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선교사의 리더로서의 책임과 역할은 점점 더 커가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또는 책임이 증가된다고 해서 자연스레 리더십이 발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교사역이 계속 진행되면서 선교사의 파워와 영향력은 넓어지고 커지기 마련인데 제대로 된 리더십의 이해와 비전과 훈련이 없다면 리더십의 어두운 면을 통해오는 고통과 문제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사역을 많이 한다고 또는 선교지에 오래 있다고 해서 리더십의 역량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의 가능성과 함께 오는 책임은 그 영향력의 리더십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리더십의 훈련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셋째,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무조건 리더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선교지의 선교사는 모든 사람의 관심과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만큼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선교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선교지의 현지인들은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바라보고 있으며 평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도 인정해야한다. 어떻게 긍정적이고 의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선교사가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로서의 시각(관점 Perspective)을 가지고 그의 삶과 사역을 감당할 때 리더십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들을 살리고 사람들을 키우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하는 영향력, 그 리더십이 선교사역의 중요한 이슈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로서의 선교사를 이 시대는 필요로 하고 있다.

선교사역과 리더십

선교지에서도 전략적인 사역과 열매를 위해 선교 리더십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첫째, 선교지에서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선교지의 문화적 리더십 모델에 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선교사는 자기 모국의 문화적 리더십을 가지고 선교지에서 리더십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문화적 오해를 낳는지 모른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문화적 리더십에는 크게 추장중심의 리더십 모델과 연장자들이 모인 장로(Elder)들의 팀리더십 모델로 나누어지며 그 두 리더십은 리더십의 역할과 기대, 가치관에 대하여 매우 다르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들이 섬기고 있는 그 문화적 리더십 모델에 대하여 깊은 문화인류학적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선교지에서 효과적인 선교리더십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 한국의 리더십 모델로는 선교지에서 이해되고 필요한 문화적 리더십의 역량과 영향력을 다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타문화권 리더십에 관한 이해와 리더십교육이 준비되어져야만 한다.


둘째, 선교사 자신의 자기 리더십의 개발을 위하여 리더십의 이해와 훈련이 필요하다. 선교지에서는 설교를 자주 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원하는 책이나 자료들을 마음껏 구할 수 없는 곳도 많다. 어떤 선교지에선 인터넷도 겨우 쓸 수 있을 정도이기에 하는 사역들은 많지만 실제로 선교사 자신의 자기발전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유명한 선교대회마다 강사로 초청받는 선교사님들은 늘 거의 같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나게 하는데 그 만큼 자기 개발과 발전이 힘든 곳이 선교지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의 이해와 교육을 통하여, 비록 선교지에 있지만 꾸준하게 자기의 은사를 개발하고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장기사역의 열매를 위해서는 선교사역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리고 그에 따른 영향력이 커질수록 선교사 자신에 대한 자기 발전과 리더십 개발이 더욱 절실해진다.


셋째, 리더십 팀사역의 추세를 생각해야 한다. 선교지에서 사역을 오래할 수록 자신의 사역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역이 성장하면서 같은 선교기관이나 사역을 돕기 위해 또 다른 선교사들이 팀원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후원교회에서 단기나 여름선교단을 보내기도 한다. 선교사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혼자만하는 사역에서 팀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저절로 감당해야만 한다. 파송을 받을 때에는 리더십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을 받거나 관심을 가져 본적이 없었고 또, 이제껏 선교지에서도 마치 한우물만 파듯이 맡겨진 사역에만 집중하며 정신없이 뛰다가보면 어느덧 이제는 다른 선교사들이나 현지리더십들을 인도해주어야 하고 키워주어야 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즉, 선교사의 리더십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리더의 역할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리더의 영향력을 발휘해야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팀리더십의 이해와 훈련의 부족은 팀사역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많은 선교사들은 자기를 도와줄 사람들이 늘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선교사들이 자기와 함께 사역을 더 펼쳐나가기를 원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막상 그런 일들이 이루어질 때 리더로서 어떻게 그 팀을 인도해야 하는지 막막해 지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 선교지에서 리더십팀으로 모이지만 제대로 사역이 되지 않고 같은 팀으로 데려온 선교사들과 서로 싸우고 관계가 더 나빠져서 팀을 떠나 따로 독립하고 대화도 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단기 선교팀들이 오지만 그 팀들을 제대로 리드하지 못하여 단기 선교팀들이 선교사에 대하여 실망하고 상처를 입고 또 선교사에게 상처를 주고 선교지를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므로 선교사에게는 팀리더십에 대한 이해과 훈련이 꼭 필요하다.


넷째 선교사역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사역이다.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제자로 삼아 현지교회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계속 길러 내기 위한 사역이다. 그러므로 리더십 훈련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리더십을 어떻게 키워주고 개발해 주는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제자를 삼는 사역이나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무엇이 리더를 리더가 되게 만드는가를 이해하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훈련하고 코칭(coaching)하는 리더십의 이해가 장기사역을 위해 필요하다. 많은 한국선교사들의 사역을 보면 주로 어린아이들이나 중고등부을 위한 학교/교육사역이나 교회개척을 위한 신학교 또는 목회자훈련등의 사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두 사역 모두 리더십개발에 관한 이해로 훈련과 교육의 커리큘럼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평가되어지지 않는다면 의도된 교육과 훈련의 결과는 이루어질 수 없다. 현지의 필요에 의해 교육과 훈련의 사역은 시작하지만 과거의 경험에만 의존하여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리더십개발과 커리큘럼 디자인에 대한 전체 그림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실시되는 교육체재와 훈련프로그램, 학교운영은 문화적충돌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생활비를 제공해야만 겨우 가능한 학교/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전락하며 진정한 리더를 키우는 장기적인 사역으로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앞으로는 선교지에서도 리더십이다. 개인이 뛰어나고 헌신되어 있다 해도 훌륭한 리더십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은 이루어질 수 없다.

문화와 리더십

리더십의 영향력을 발휘하는데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의 공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L= l,f,s. L은 리더십을 말하고 l은 leader를 f는 followers를 s는 situation을 가리킨다. 즉 리더십의 영향력은 리더와 따르는 사람들 (followers)이 상황가운데에서 연결되어지고 이루어지는 결과임을 생각할 때 선교지에서 문화와 리더십 관계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선교지에서 선교사가 리더라고 한다면 그 영향력을 끼치고 인도해야할 따르는 사람들은 선교지의 현지인이라고 한다면 선교지의 타문화권 상황에서 리더의 리더십문화와 따르는 사람들의 리더십문화가 다를 때 생길 수 있는 문화적 오해와 시행착오,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들을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타문화권인  선교지를 생각할 때 문화와 리더십의 관계에서 최소한 세 가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차이에 따른 엄청난 변화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는 리더와 따르는 사람들의 다른 문화에서 오는 세계관(world view)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세계관에서 오는 이해와 전제(Assumptions), 감정과 판단기준의 차이는 리더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거나 부정적인 관계와 오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둘째는 문화마다 다른 리더십의 역할과 그 역할에 따른 리더십의 모습과 기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케냐교회의 담임목사는 설교자라기보다는 매니저의 역할이 강조되어있다. 몇 달에 한두 번 설교할 정도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의 설교와 강단 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설교하지 않는 담임목사는 그 리더십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이처럼 문화마다 그 리더십의 모양 (Forms)과 기대의 역할 (Functions)이 다를 수 있다.


셋째는 문화마다 리더십의 가치관이 다른 것이다. 문화마다 리더십에 요구되는 가치가 다르고 리더십 실행의 기준이 되는 가치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타문화권에서의 리더십은 그 문화의 리더십가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열매있는 리더십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렇게 선교사가 타문화권에서 리더십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선 세 가지의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성경적인 리더십에 대한 이해이다. 둘째는 선교지의 리더십 모델에 대한 이해이다. 그리고 셋째는 선교사 자신의 문화적 리더십에 대한 이해이다. 이 발제는 바로 세 번째인 선교사의 문화적 리더십에 대한 이해와 연구에 제한되어져 있다. 문화는 마치 안경에 있는 렌즈와도 같다고 한다. 남들은 그 안경의 렌즈를 볼 수 있지만, 정작 그 안경을 낀 사람은 렌즈를 통하여 모든 사물을 밝히 보면서도 그 렌즈 자체는 보지 못한다. 우리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고 접하고 있으면서도 그 문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문화자체를 좀 더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되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리더십의 또 다른 Ethno-centrism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선교지의 리더십모델에 대한 연구와 존중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리더십 영향력은 쇠퇴하거나 오해되거나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선교사의 리더십모델의 뿌리

한국선교사의 리더십 모델은 한국교회의 리더십 모델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으며 한국교회의 리더십 모델은 한국의 문화적 리더십 뿌리에서 근간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적 리더십모델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의 문화관, 또는 세계관을 볼 때는 세 가지의 연합된 종교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유교와 불교,  무교의 영향이다. 무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위세가 강하든 약하든, 다른 문화적 정치적 이념이 성행하든 안 하든, 계속해서 시민적인 마음속에서 연명해온 한국의 문화적 이데올로기다. 불교는 고려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웠고, 유교는 조선시대에 그 많은 영향을 끼치고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최근에는 기독교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적 리더십 모델에 큰 영향을 준 종교적 영향은, 유교와 무교를 손꼽을 수 있겠다. 불교는 무교와 섞여서 한국인의 정서와 사회적 측면에 그 영향력은  크지만 리더십모델에 한해선 유교나 무교에 비해 적다고 이야기 할 수 있고 기독교는 아직 기독교적인 그 영향이 미약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리더십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본다면, 한국인 개인의 종교적 리더십의 심성은 상당히 무교 적이며, 한국적 리더십의 사회 조직과 관계는 유교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를 더할 수 있다면, 한국의 근대화 변화에서 그 실력을 발휘해 온 군사적 리더십 모델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앞세운 강력한 군사정권은 사회, 정치, 경제는 물론, 종교에까지도 두루두루 영향을 끼쳤고, 이런 문화와 사회적 리더십의 모델들이 어우러져서 지금 현재 우리 가운데 보여 지고 있는 한국 교회의 리더십의 현주소를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리더십의 뿌리가운데 태동된 한국 문화적 리더십의 모델은 어떤 모습인가? 한국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한국교회까지 두루 근본이 되고 있는 한국의 문화적 리더십모델의 모습을 더듬어본다.


첫째, 한국적 리더십모델의 한 가지는 카리스마의 절대적 리더십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리더십은 절대적 1인 체제이다. 정치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단어와 경제 분야의 재벌총수 1인 중심의 리더십, 한국교회 담임 목사의 권력은 절대적이고 신적인 1인 체제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 그 한사람만이 바로 리더이고 다른 사람들은 리더의 역할에 들어가지 못한다. 비록 그들이 어떤 리더십의 특성과 자격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리더는 한 명뿐이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다 그 리더를 돕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 절대로 그 리더가 될 수 없다. 한 명의 철저한 카리스마적인 1인 체제, 그리고 그 주위를 맴돌며, 그 리더를 보필하는 다른 사람들. 그것이 바로 우리 한국인의 리더십 모습중 하나이다. 한 명의 리더는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회의를 해서 다른 의견이 나와도 결국 그 리더의 마지막 한마디로 모든 결정이 바뀔 수도 있다.


조선 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교는 강한 가부장제도를 가지고 있다. 가정에서의 가부장의 권한과 힘은 절대적이다. 그것이 효(孝)라는 중요한 유교적 인품으로 강조되어져 왔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직 한 명의 아버지가 있을 뿐이고 가정의 모든 권한은 바로 그 가부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의 어느 누구도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없고, 비록 다른 의견이 나왔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한번 결정으로 모든 의견들은 묵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그 부모에게 말대꾸를 할 수 없었고 그냥 무조건 순종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녀가 아무리 부모가 나쁜 짓을 하거나 부족하더라도 그 일에 대하여 언급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절대적인 금물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완강하게 효를 이야기하면서도 부모가 자녀를 향한 자애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집안에서의 강력한 가부장제도가 나라에서는 왕을 향한 충(忠)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유교문화권에서의 왕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왕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법까지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왕의 이런 절대적인 권한은 그 권력이 하늘에게서 왔다는 왕권신수설의 영향 때문이다. 원칙적인 유교 전통을 보면 왕은 하늘이 내려 보낸 하늘의 아들로서 위에 있는 파워와 아래에 있는 세상을 연결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은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치리 할 책임이 있고 모든 백성들은 신에게서부터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왕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승도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자식들이 효도해야 될 아버지처럼, 스승은 그 학생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왕은 그 백성들의 아버지로 존경과 순종의 대상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교의 리더십 모델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이야기하며, 왕과 스승과 아버지는 그 권한과 힘이 절대적이며 같다는 지도자적 통치 이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교의 리더십 모델들은 다 철저한 1인 체제를 가리키고 그 한 명의 리더에게 집중적인 힘과 권한을 부여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무교의 리더십 모델인 무당도 역시 철저한 1인 체제로 그 한 명의 리더에게 집중적인 힘과 권한을 부여한다. 무당은 굿을 통하여 개인의 축복을 빌고 무교의 귀신들을 설득하여 양쪽이 다 만족하는 흥정을 해내는 것이다. 그 흥정에서 만에 하나 귀신들을 섭섭하게 한다면 복은커녕 악운이 덮친다는 두려움을 항상 잊지 않도록 상기시킨다. 이렇게 무교에서 무당이 가지고 있는 힘은 절대적이다. 무당의 말 한마디에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 있는, 마찬가지로 철저한 1인 독재체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을 받아 왕이 되어 하늘과 땅의 백성을 연결하고 있는 유교의 왕의 모습이나, 영적인 세계와 인간 세계 가운데 서서 귀신들과의 흥정을 통해 악운보다는 복을 가져다주는 무교의 리더십 모델은 신적인 영향을 받은 강력한 권위주의적 리더십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강력한 권한,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반문하거나 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파워의 리더십. 바로 그것이 한국적 권위주위인 카리스마의 실체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군사정권을 근대화 동안에 겪었다. 철저한 군사정권도 역시 1인 체제이다. 그 부대에는 단 한 명의 최고 상관, 그리고 더 큰 부대에는 더 상위 계급의 단 한 명의 상관이 있을 뿐이다. 완전한 계급의식, 철저히 1인의 명령이 하달되는 리더십의 모델이 바로 군대의 리더십 모델인 것이다. 이등병이 병장에게 말대꾸를 할 수 없고, 의견을 전달할 수가 없다. 명령은 항상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고 그것을 순종치 않을 때에는 거기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군대의 리더십 모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몸에 밴 리더십 모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적 영향 가운데 우리는 어느덧 1인이 가진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한 리더십에 대하여 별 문제가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자연스레 허용하게 되었고 확실한 1인 체제의 리더의 모습이 보여야만 불안감이 없어지는 경우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최근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이런 리더십에 대한 반발은 심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리더십문화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1인체제의 카리스마 리더십의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다.


둘째로는 서열식 리더십(Hierarchical leadership)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서열 따지기를 참 좋아하는데 서열을 따지지 않으면 괜히 누가 위인가 추측만 하면서 더 조심스럽고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도 나이나 학번, 군번 등을 이야기하면서 상하관계를 먼저 가리기를 원한다. 일단 상하관계가 결정되면 그 관계는 이미 서열로 결정되어지고 그 두 사람의 마음은 편안해진다. 당연히 나이 많은 사람이나 서열상 윗사람은 더 많은 기득권을 갖게 되고, 어느덧 두 사람은 무의식 속에서 서열로 결정된 계급의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많은 직함들 역시 철저한 서열의식과 계급의식을 반영한다. 정부조직이나 기업은 물론 대부분의 교회를 보더라도 평신도-집사-안수집사-장로-목사라는 서열이 있다. 성경적인 역할에 관한 부분들이 한국의 문화적인 영향으로 인해 계급의식이나 서열의식으로 변질되어질 때가 많다. 평신도에서 하나 올라가면 집사가 되고, 집사에서 인정받으면 안수집사가, 그리고 그 후에는 장로가 되고, 장로는 평신도가 될 수 있는 최고의 권한과 위치를 갖게 된다고 생각된다. 사회의 여러 모임에서도 회장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식 서열중심의 체제인 것을 쉽게 관찰해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부회장이 서열에 의하여 다음 회장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이미 다 구성원들의 무언의 약속으로 짜인 각본이다. 미국에서는 어느 모임에서 회장을 했다가도 그 임기가 끝나면 다시 회원으로 돌아가는데 그것은 회장을 역할로 여기는 그 문화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리더십문화에서는 회장을 했던 사람이 다시 회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철저한 계급과 서열의식이 있는 가운데 한번 올라갔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어서 생긴 것이 바로 자문 위원회 내지는 고문이라는 타이틀이 아닐까? 또는 원로, 명예라는 타이틀도 있다. 그러므로 회원-임원-회장-자문위원회/원로/고문 등으로 이어지는 서열중심의 조직은 마치 유교에서 아들-아버지-할아버지-조상님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제도를 빼어 닮았다. 


뿐만 아니라 군사 정권 이후에 공무원의 일상적인 캠페인조차도 무슨 무슨 작전으로 표현 될 정도로 상명하달의 군사문화가 각계에 뿌리 깊게 파고들었다. 군대의 계급은 사회문화적 서열의 개념보다도 훨씬 더 강한데 상관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되는 그런 분위기에서 상관의 눈에 들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냉정한 명령하달 체재인 것이다. 이런 철저한 수직적 관료문화가 군사정권의 잔재로 아직도 우리의 리더십 뿌리가운데 깊게 남아있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1인 체제로 시작된 강력한 리더십의 모델은 철저한 서열의식의 옷을 입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위치와 권한이 급격히 감소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조직 사회에서는 큰 권력의 거리가 당연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네덜란드의 호프 스테드 (Hofstede,1997)는 위에 있는 사람과 밑에 있는 사람의 차이를 권력의 거리(Power Distance)라고 하였다.  그의 이론을 통하면 각 나라와 문화마다 다른 권력의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권력의 거리가 크면 클수록 윗사람은 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고 밑에 사람은 그런 윗사람의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이론이다. 내가 전에 가르쳤던 아프리카의 대학원에서도 이같이 권력의 거리가 큰 것을 느낄 수 있다. 학생들이 교수를 보는 눈은 매우 높아서 교수가 가지고 있는 권한은 학생들에 한에서는 가히 절대적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학교의 건물 중에서도 학생들이 쓰는 화장실과 교수 전용화장실이 구분되어져 있다. 중, 고등 학생들처럼 화장실을 더럽게 쓰는 것도 아닐 텐데 대학원생들에까지 교수 전용화장실로 구별 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현상은 아프리카의 상황에서 교수와 학생의 권력의 거리가 큰 리더십 문화의 한 현상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이런 권력의 거리가 무척이나 큰 나라이다. 유교적 집단 사회적 특성과 군사 정권으로 발전된 기득권의 강력한 권력 행사에도 우리는 평화(?)를 지키는 민족이었고 그러한 독재에도 별 문제없이 오히려 우리 자신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위로를 삼으며 문제없이 받아들였던 모습이 바로 그 증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1인 체제와 서열의식이 팽배된 조직체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으나 모든 결정은 위에서 하달되는 것이고 밑에 있는 사람들의 인격과 의견이 존중되지 아니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1993)는 21세기의 이런 서열식-사다리형-하달형 리더십 문화에 대하여 세 가지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제시한다. 첫째는 높은 교육과 같이 결정하는 민주주의적 문화의 변화에 따라서 위에서 명령이 무조건 하달되는 식은 흘러가는 경향에 반대되는 물결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직접적으로 통제되고 지배되는 사람들 외에는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순종하고 따라올 수 있게 하는 리더십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서열 중심의 하달형 리더십은 항상 그 파워를 잘못 사용하거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남용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교지에 있는 한인 선교사회도 보면 회장을 뽑는 것을 그 선교지에 들어온 시간대로 선출하는 것을 선교지에 제일 먼저 들어온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선교사회 회장을 하게 되니 아무런 불만이나 불평이 없다고 한다. 결국 선교사회를 위한 능력이나 리더십보다는 서열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정이 우리 리더십문화에는 더 무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로는 지위적인 파워 (Positional power)에서 오는 리더십문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리더십의 모델은 우리가 가진 지위가 곧 리더십이라는 이해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위치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느냐에 따라 리더십의 영향이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리더십의 역할보다는 지위가 리더로서의 더 중요한 자격으로 생각하는 리더십의 문화인 것이다. 리더십에서도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힘을 보게 되는데, 첫째는 바로 지위나 타이틀에서 오는 힘이다. 이것은 철저한 서열의식 가운데 쉽게 나타나는 권위적인 리더십의 모습이다. 이러한 힘은 자기가 가진 위치나 지위 때문에 사람들이 그 리더를 따라주는 힘을 이야기하고 겉으로는 순종하고 따라주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속 다르고 겉 다른 조직체를 만들 수 있다. 또 하나의 힘의 근원은 개인적인 것으로 그 리더가 가진 개성이나 또는 개인적인 관계를 통한 힘을 말한다. 개인을 통한 존경과 사랑이 그 리더에게 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동기부여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문화속에 있는 서열중심의 유교나 계급중심의 군사정권에 영향은 우리로 하여금 지위로부터의 힘 때문에 윗사람이 되어야 힘이 있다는 의식을 주입시켜 놓았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 위에 서기 원하고 곧 그런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힘은 곧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넷째는 두려움의 리더십을 생각할 수 있다. 종교학자들은 무교는 두려움의 종교라고 하는데 무교에는 어떤 가치나 도덕성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무교가 원하는 대로 가게 만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돼지머리도 삶아 올려야 되고, 점을 봐도 복채를 많이 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정서 가운데 무교나 근대화 역사 가운데 있었던 군사정권은 우리의 리더십을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두려움의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역대 대통령들은 강력한 파워를 가진 절대적인 통치 기구를 최대한으로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경찰과 관료기구, 군과 군사 정보부, 보안 사령부, 검찰청, 국세청, 경찰청 등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고 국민을 위하여 움직여하는 이러한 기관들을, 강한 권위주의적인 억압적 성격과 강제성을 띈 독재의 도구로서 두려움을 조성하는데 이용하였다. 강력한 힘의 상징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The Prince by Niccolò Machiavelli,1531)은 군주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자질을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용맹함으로 설명한다. 그의 군주론에 보면 사랑과 두려움, 이 두 가지가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인데, 마키아벨리는 이 두 가지 중에 자기에게 우선적으로 사용할 선택권이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두려움을 택하는 강력한 군주론을 펼쳤다. 즉 사랑보다는 따르는 자들을 두려움으로 위협하라. 그러면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절대적으로 리더를 신봉하며 순종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마키야 벨리를 향하여, 리더십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제임스 번즈는 마키야 벨리는 국민들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물건으로 보았다고 비판하며 그렇게 함부로 권력이나 휘두르는 사람은 진정한 리더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섯 번째는 한국 리더십문화에 만연한 도덕성의 결여를 생각해본다. 한국인의 정신문화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의 개념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한(恨)과 복(福)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와 같이한 무교는 과거에 맺힌 한을 오늘의 복으로 풀어지는 앞날을 약속하면서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주도해왔다. 복이란 단어를 우리는 좋아한다. 밥 먹는 그릇, 문, 그림, 베개, 이불, 심지어는 요강에까지도 우리는 복 자를 새겨 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복의 개념은 무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이 복은 단순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복이며 이 복을 얻기 위해서는 무교의 귀신들과 흥정을 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의 뜻대로 살 때 물질적인 행복과 현실의 복과는 다른 영혼의 구원과 영적인 축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무교는 생존을 위한 종교이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교에서는 무교의 영적인 존재들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무교의 굿은 악운과 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힘 있는 귀신들과의 흥정인 셈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가치나 원칙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영적인 힘에 대한 구걸과 반발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오랫동안 무교의 영향가운데 도덕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따지지 않고 귀신들과의 흥정을 통한 현실의 복을 구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형성이 우리가운에 도덕성의 궁핍을 만들어 놓았다.


여섯 번째는 마지막으로 멘토링(mentoring)이 어려운 리더십이다. 신학교에서 리더십 과목을 가르칠 때 학생으로 들어온 부교역자들의 동일한 호소가 있다. 제발 자기들을 좀 키워주는 리더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 현재 한국교회의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더들의 연령은 50대 후반, 60대 이후들이다. 바로 이들은 이런 철저한 유교와 무교, 군사정권의 영향가운데 컸던 리더들이며 대부분 농촌에서 태어나 이런 문화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스스로 노력하여 지금의 리더십에 이른 자수성가(自手成家)의 세대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세대가 그 다음 세대를 키우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전 세대로부터 하나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리고 키워짐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그들이기에 그 다음 세대를 키우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문화적 리더십모델은 한국교회의 리더십모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한국 선교사의 리더십모델을 이런 한국교회의 리더십모델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선교사의 리더십문화를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한국리더십 모델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선교사 리더십모델의 긍정적인 평가

다소 부정적으로 보이는 한국리더십의 뿌리에서 우리는 한국 선교사의 리더십모델에 긍정적인 평가를 고려해본다. 물론 거기에는 한국교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선교사의 헌신적인 리더십모델이다. 1인중심의 책임의식과 주인의식, 그리고 한국교회의 영성과 희생정신은 선교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국 선교사의 헌신적인 리더십의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어렵고 힘든 지역과 남들이 들어가지 않는 외진 곳에도 복음을 가지고 들어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한국선교사들의 투철한 개척과 도전정신은 한국선교역사의 자랑스러움일 것이다.


둘째는 빠른 성장과 성취를 생각할 수 있겠다. 다른 외국 선교사들이 가서 몇 년을 걸릴 사역들을 한국선교사들은 일 년 안에 끝낸다고 한다. 집중된 노력과 생존에 관한 훈련, 그리고 빠른 센스는 한국선교사의 사역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세계에서 2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낸 한국교회의 선교사역은 선교사역의 전략과 결과에서 세계 선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셋째는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창의력이다. 한국 리더십의 모델은 장기적인 것보다는 단기적인 계획과 성취, 변화에 더 전략적인 것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선교현장에서 강한 리더십과 신속한 결정은 새로운 변화와 전략에 쉽게 발맞출 수 있어 풍성한 수확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미래 한국 선교사 리더십을 위한 제언

이젠 선교지에서도 리더십이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축복하셨고 한국 선교사를 사용하셨다. 이제 한국선교가 세상을 향해 타문화권 선교리더십의 모범을 보여줄 때가 왔다. 앞으로의 한국 선교리더십의 업그레이드(upgrade)를 기대하며 한국선교의 성경적이고 효율적인 타문화권 리더십모델의 창출을 위해 5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선교는 우리의 문화적 리더십을 이해하며 성경적 리더십에 더욱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문화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을 청지기리더십을 통하여 성경적인 카리스(Charis)가 있는 리더십모델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둘째, 선교지의 리더십문화 모델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섬기는 문화의 리더십 모델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 리더십 모델의 토착화 (Contextualization)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예비 선교사를 위한 선교훈련과 기존 선교사를 위한 재훈련에서 끊임없이 리더십의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리더십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과 통전적인 훈련, 리더십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가 훈련 중에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선교사역의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발전을 위해 실제적인 선교 리더십에 관한 주제와 자료를 다룬 세미나와 선교대회나 포럼들이 필요하다. 리더십 개발을 위한 커리큘럼 디자인과 선교리더십 이양, 선교멘토링, 팀리더십을 위한 구체적인 리더십 세미나들이 준비되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팀리더십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이젠 다른 선교사과들과 글로벌 문화에서 선교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는 글로벌리더십을 개발해야한다. 한국선교역사가 깊어져감에 따라 축척된 리더십의 영성과 전략으로 세계 선교 사역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 목차고리 : [발제] 한국 문화적 리더십의 모델과 한국 선교사 리더십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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