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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명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인물론 선교(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3]
 자료출처  KWMC 고석희목사  성경본문  
 내용

 

인물론(人物論)선교

-<하나님의 사람운동>을 제창하며-


KWMC 고석희목사


사탄의 참소와 침탈로 절망의 심연을 배회하며 눈먼 사자처럼 포효하는 슬픈 사람 욥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으라!>(욥 38:3, 40:7)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욥 40:10)


하나님은 욥의 피흘리는 영혼을 어루만지시며 위엄(Majesty), 존귀(Honor), 영광(Glory), 화미(Splendor)라는 극찬의 어휘로 그의 상처난 인격을 꾸미시고 옷입히셨다.


그리고 너는 대장부라고 부르시며 흔들리는 수난자의 자존감을 붙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인간관(人間觀)은 이렇게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고난이 사람을 만든다는 인생의 심오한 법칙을 세우시고, 시련의 불길 속에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이렇게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전 6:11)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란 존엄한 호칭으로 불렀다. 에베소교회의 목회자이며, 선교운동의 동역자였으나 사역적 호칭이 아닌 존재론적 호칭으로, 기능적 호칭이 아닌 인격적 호칭으로 부른 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사역자 이상의 존재가 되라는 충고이며, 유능한 사역의 기술자보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사려깊은 당부가 아니겠는가.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왕하 2:2)


임종하는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이 유언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분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일 것이다.



1. 왜 인물론(人物論)인가.


왜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테제인가?

왜 인물론이 한민족공동체의 명운(命運)을 결정할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

왜 인물론이 한국기독교와 한인세계선교의 위대한 미래창출을 위한 최우선전략이 되어야 하는가?

 

(1) 한국기독교의 시대적 사명인 탁월한 민족지도자의 배출을 위하여 


한반도통일의 역사창출과 한민족공동체의 무궁한 번영을 견인할 탁월한 민족지도자 배출이 한국기독교의 시대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시련의 민족사에 나타난 저 선구자들 곧 유관순, 안창호, 이승만, 김구, 서재필, 이상재, 김규식, 이승훈, 조만식 같은 인물들처럼.


(2) <하나님의 사람운동>을 위대한 교회상정립의 견인차로 삼기 위하여


한민족선교 125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지난 100년간 놀라운 영적 부흥과 양적 팽창을 불러 일으킨 위대한 <성령운동>, 평신도의 각성을 통한 교회리더십쇄신과 성경연구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 위대한 <제자운동>, 그리고 찬송의 권능을 통한 예배의 회복과 갱신을 불러 일으킨 위대한 <경배와 찬양운동>을 계승, 병행하여 향후 사람운동, 인격운동 곧 <하나님의 사람운동>을 불러 일으켜 한국기독교가 민족사의 한 복판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나는 인격>으로 낙낙장송처럼 우뚝 서서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불기둥처럼 드러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며, 국민적 신망도(信望度)를 높여 복음전파의 위대한 대행진이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3) 젊은 세대의 교회이반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없는 교회는 미래의 새벽도 열릴 수 없는 교회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의 교회이반현상으로 인한 한국교회의 노령화현상, 차세대공동화현상, 이 위기상황의 타개책은 무엇인가?

젊은 세대가 그 인품(人品)을 흠모하고 그 도량(度量)을 배우고 그 삶을 따를만한 이른바 <큰바위얼굴>과 같은 인생의 멘토(Mentor)와 롤모델(Role Model)을 교회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면 인물론목회(人物論牧會) 곧 <하나님의 사람운동>이 최선의 타개책이 아닐까?


(4) 한국기독교의 세속화와 물질화 현상을 개혁하기 위하여


무엇으로 한국기독교의 세속화와 물질화를 막을 것인가?

무엇으로 한국기독교의 국민적 신망도(信望度)를 높일 것인가?

무엇으로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병리현상을 치유할 <빛과 소금>이 되겠는가?

한국교회의 영적각성, 도덕적쇄신, 인격운동, 그리고 역사관정립이 당면과제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운동>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5) 성육신선교를 통해 선교사 이상의 존재 곧 <하나님의 사람>의 인격화를 위하여


한인세계선교는 불타는 구령의 열정과 생사를 초월한 헌신, 그리고 위대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단기간에 유례없는 미증유의 양적팽창을 이루었고 지금도 질적성숙을 모색하며 오대양 육대주에서 기념비적 성과를 이루고 있다.

이에 금상첨화의 길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나는 인격의 향기>를 선교사 자신의 인격적 감화력으로 선교현장에 풀어내는 성육신선교, 하나님의사람선교가 아닐까?

우리도 윌리엄 캐리나 허드슨 테일러처럼 선교사 이상의 존재로, 곧<하나님의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6) <사역중심선교>에서 <사람중심선교>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


무엇으로 복음전파의 문을 열겠는가?

무엇으로 선교현장에서 이교도들의 마음을 열겠는가?

막강한 조직력도, 효과적인 전략도, 풍부한 재정적 지원도, 끝없는 프로그램, 프로젝트, 포럼, 선교대회, 세미나, 심포지엄도 마침내 이교도의 벽을 허물고, 복음의 문을 열고, 우상숭배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부어 예수 그리스도를 심는 결정적 힘은 되지 못한다. 오직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시며 성령은 선교사역자들의 영적쇄신, 신앙적 단련, 도덕적 무장, 복음적 설교, 구령의 열정, 기도의 헌신, 희생적 사랑 등을 통하여 그 일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사역중심선교>에서 <사람중심선교>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7) 선교현지의 인물양성과 종족지도자 배출을 위하여


선교가 My Kingdom이 아닌 Kingdom of God을 세우는 과업이라면, 우리는 사역과 리더십을 이양할 현지인의 지도자양성에 주력할 일이며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같은 멘토(Mentor)와 멘티(Mentee)의 관계를 설정하고 장인(丈人)이 도제(徒弟)를 훈련시키듯 치열한 인격형성훈련을 통해 그들 공동체의 신앙과 생존권과 진로를 책임지는 민족지도자, 종족지도자로 세워야 할 일이다.

언더우드나 아펜젤러가 한국의 교회지도자, 민족지도자를 세워놓은 것처럼.


(8) 팀선교(Team Mission)의 아름다운 인격관계 형성을 위하여 


인간관계는 인격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관계성의 철학은 선교사역의 대전제가 아닌가?

진정한 협력이 진정한 능력이다. 삼겹줄선교만큼 강력한 선교는 없다.

세계복음화(World Evangelization)의 약자가 WE인 것처럼 선교는<우리>가 하는 일이지 나 혼자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팀사역의 장애요소인 자기중심적 사고, 소아적 갈등, 경쟁, 대립, 분열, 분쟁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결국 인격의 힘을 기르는 인물론 밖에 없다.


(9)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인 인간소외와 비인간화(非人間化)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소외와 비인간화를 촉발시키는 병리현상들, 즉 물질만능주의, 맴모니즘, 기계문명, 획일주의, 거대한 조직사회구조의 대중화와 평준화로 인한 개성의 함몰, 주체성의 상실, 정체성의 혼란, 이유없는 반항, 군중의 고독, 정신적 인격적 가치하락, 기능교육의 편중과 인성교육의 실종, 인간평가의 기준이 인격적 관점에서 사회적 경제적 능력의 관점으로 타락,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고도로 정보화된 IT사회에서 인터넷이 사회교류와 소통의 매체로 부상하면서 가상공간의 피상적, 부분적, 기능적, 간접적, 상상적 가상관계가 본질적, 통전적, 인격적, 직접적, 현실적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문명공해현상 등 현대사회의 위기현상에서 탈출하는 길은 <하나님의 형상>회복운동, 존엄한 인간성회복운동, 신실한 인간관계회복운동의 관건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운동>에 있으며, <인물론목회>와 <인물론선교>의 지향점도 여기에 조준되어야 할 것이다. 


(10) 분열과 분쟁의 갈등구조를 치유하기 위하여


<유대인을 이길 사람은 한국인 밖에 없고, 한국인을 이길 사람도 한국인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의 개인적 우수성을 지적하는 말인 동시에 남북분열, 동서분열, 세대분열 등 분열과 분쟁의 갈등구조로 고통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 아닐까? 역사적으로 볼지라도 약관 37세에 전남 화순으로 귀양가서 사약을 받은 아까운 인물,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나, 약관 38세에 전남 강진으로 귀양가서 유배생활 18년에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3백여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등 사색당쟁의 희생자들을 볼 때 인물흔들기, 인물죽이기를 능사로 여긴 조상들의 전철을 닮지 않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11) 인물난(人物難)이 인물론(人物論)을 부른다.


인물이 인물을 알고 인물이 인물을 만드는 것처럼 인물이 인물론을 말해야 말이 되는데 인물도 아닌 자가 인물론을 언급하는 이 슬픈 현실이 바로 인물난(人物難)의 한 단면이 아니겠는가?




2. 인물탐구(人物探究)의 범주


(1) 성서인물탐구

(2) 역사인물탐구

(3) 작중인물탐구 




3. 인물품평(人物品評)과 인물양성(人物養成)의 역사적 사례 [1]


(1) 한국적 사례 [각주-1]

    1) 단군조선 - 국자랑(國子郞)

    2) 고구려 - 태학(太學), 경당(扃堂), 조의선인(早衣仙人)

    3) 신라 - 화랑도(花郞徒)(통일이전), 국학(國學)(통일이후)

    4) 고려 - 국자감(國子監), 문헌공도(文憲公徒), 향학(鄕學)

    5) 조선 - 관학(官學) : 성균관(成均館), 4학(四學, 東學, 西學, 南學, 中學),

                         향교(鄕校), 서당(書堂)

              사숙(私淑) : 서당(書堂), 서원(書院)

    6) 근대 -  관학(官學) : 통변학교(通辨學校), 육영공원(育英公院), 한성사범학교, 

기독교계 사립학교 (배재학당, 이화학당, 경신학교, 정신여학교 등)

민간인계 사립학교 (흥화학교, 양정의숙, 보성학교, 중동학교 등)

흥사단(興士團)운동, 오산학교(五山學校), 용정(龍井) 명동촌(明東村)

 

(2) 동양적 사례 [각주-2]


    1) 덕행(德行)으로 인물을 품평하다

      ① 공자 – 군자(君子), 소인(小人)

      ② 맹자 – 군자(君子), 대인(대인), 대장부(대장부)

         선인(善人), 신인(信人), 미인(美人), 대인(大人), 성인(聖人), 신인(神人)

      ③ 순자 – 속인(俗人), 속유(俗儒), 아유(雅儒), 대유(大儒)

         중인(衆人), 소유(小儒), 대유(大儒)


    2) 재질(才質)로 인물을 품평하다


        ① 유소(劉邵)의 인물지(人物志) - 의사(依似), 간잡(間雜), 겸덕지인(兼德之人),

          겸재지인(兼材之人), 편재지인(偏在之人)


    3) 과거제도(科擧制度)로 인물을 품평하다


(3) 서양적 사례 [각주-3]


    1)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2) 스콜라학파

3) 중세 수도원운동

4) 중세유럽의 대학운동 



4. 인물(人物)의 지도자적 품성(品性)연구 [각주-4]


1) 자기정체감 (Sense of Identity)

2) 자기확신 (Self-Confidence)

3) 자기인식 (Self-Awareness)

4) 자기조정 (Self-Regulation)

5) 지능 (Intelligence)

6) 통찰력 (Insight)

7) 결단력 (Determination)

8) 완벽성 (Integrity)

9) 민감성 (Alertness)

10) 책임감 (Responsibility)

11) 솔선수범성 (Initiation)

12) 지속성 (Persistence)

13) 진취성 (Enterprising)

14) 모험성 (Venturesomeness)

15) 독창성 (Originality)

16) 자발성 (Willingness)

17) 준비성 (Readiness)

18) 영향력 (Ability of Influence)

19) 활력 (Vigor)

20) 사교성 (Sociality)

21) 정직성 (Honesty)

22) 추진력 (Drive)

23) 지도욕구 (Desire to Lead)

24) 적응성 (Adjustment)

25) 지배성 (Dominance)

26) 외향성 (Extroversion)

27) 보수성 (Conservatism)

28) 남성기질 (Masculinity)

29) 인내성 (Patience)

30) 협동성 (Partnership)

31) 양보성 (Consession)

32) 성취욕 (Desire of Task Completion)

33) 인식능력 (Cognitive Ability)

34) 동기유발 (Cause of Motivation)

35) 포용성 (Tolerance)

36) 성실성 (Sincerity)

37) 신실성 (Faithfulness)

38) 담대성 (Courage)



5. 누가 인물(人物, 하나님의 사람)인가?


(1) 천명(天命)을 깨달은 자

(2)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높이는 자

(3) 하늘을 움직일 지성(至誠)이 있는 자

(4) 사람을 얻고, 세우고 움직이는 덕망(德望)과 도량(度量)이 있는 자

(5) 신의(信義)와 충절(忠節)을 지키는 자

(6) 자신을 낮추고, 이기고, 버리는 겸양군자(謙讓君子)

(7) 하루를 한평생같이, 한평생을 하루같이 <영원(永遠)한 현재(現在)>를 사는 자

(8) 민족의 명운(命運)을 자신의 운명(運命)으로 짊어진 자

(9) 미래창출(未來創出)의 비전(Vision)과 도전(Challenge)의 열정(Passion)이 있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10) 고난(苦難)을 뚫고 환희(歡喜)로 나가는 자

(11) 때로는 승자(勝者)보다 아름다운 패자(敗者)

(12) 예수 그리스도를 전존재(全存在)로 사는 자



6. 어떻게 인물(人物, 하나님의 사람)은 만들어지는가


(1) 성령(聖靈, Holy Spirit)과 말씀(Word of God)이 인물을 만든다.

(2) 믿음(信仰, Faith)과 기도(祈禱, Prayer)가 인물을 만든다.

(3) 사랑(Love)과 희생(犧牲, Sacrifice)이 인물을 만든다. 

(4) 관계성(關係性, Relationship)과 포용성(包容性, Tolerance)이 인물을 만든다.

(5) 고난(苦難, Hardship)과 인내(忍耐, Patience)가 인물을 만든다

(6) 훈련(訓練, Discipline)과 수신(修身, Self-Discipline)이 인물을 만든다.

(7) 비전(Vision)과 모험(冒險, Venture)이 인물을 만든다.

(8) 집중(執中, Concentration)과 지속(持續, Continuity)이 인물을 만든다.

(9) 고독(孤獨, Solitude)과 독존(獨存, Self-Existence)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0) 지식(知識, Knowledge)과 지혜(智慧, Wisdom)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1) 영감(靈感, Inspiration)과 노력(努力, Effort)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2) 사상(思想, Thinking)과 행동(行動, Doing)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3) 지성(知性, Intelligence)과 열정(熱情, Passion)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4) 오성(悟性, Understanding)과 직관(直觀, Intuition)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5) 담대성(膽大性, Boldness)과 유연성(柔軟性, Flexibility)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6) 남성성(男性性, Masculinity)과 여성성(女性性, Femininity)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7) 역사의식(歷史意識, Geschichtlichkeit)과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8) 현실주의(現實主義, Realism)과 이상주의(理想主義, Idealism)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19) 내부자관점(內部者觀点, Insider Perspective)과 국외자관점(局外者觀点, Outsider Perspective)의 조화가 인물을 만든다.

(20) Globalization(세계화)과 Localization(지역화, 민족의식)의 조화인 Glocalization이 인물을 만든다

 


[각주-1] 인물양성의 한국적 사례


    1) 단군조선


① 국자랑(國子郞)

신라의 화랑제도가 시작되기 2,500여 년 전인 단군조선 시대에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며 심신을 단련하던 미혼의 자제들을 국자랑(國子郞) 이라 했으며(11대 단군인 도해단제 재위 57년 -단기 3891년, 서기 전 1891년), 그들이 출행할 때에는 머리에 천지화(天指花: 무궁화)를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했다한다.(13대 홀달단제 20년- 단기 3763년, 서기 전 1763년).


    2) 고구려


① 태학(太學)

고구려의 학교 교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을 세워 자제를 교육했다”고 한 데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에 관한 기록 중 최초의 것이다.

태학의 조직에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영양왕 11년에 이문진(李文眞)을 태학박사(太學博士)로 삼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고구려의 직제에 관해서 “장래에 관에 나아갈 사람을 조의선인(早衣仙人)이라 하고, 그를 감독하고 교습시키기 위하여 조의두(早衣頭)라는 벼슬아치를 두다”라고 한 것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이 기록을 통해 태학의 총책임자는 조의두, 가르치는 사람은 박사, 배우는 학생들은 조의선인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태학을 설립해서 자제를 교육했다는 단편적인 기록만 있을 뿐, 교육 목적과 내용 등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고구려가 전진의 제도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 태학의 교육내용은 중국의 기록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북사(北史) 주서(周書)에는 오경(五經), 삼사(三史), 삼국지(三國志), 진춘추(晋春秋) 등 중국 고대의 경서(經書), 악서(樂書), 병서(兵書) 등도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학은 고급관리의 양성을 목적으로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태학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관학이며 동시에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이라는 교육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② 경당(堂)

경당(堂)은 한국 최초의 사학(私學)교육기관으로 연대는 미상(未詳)이다. 경당에 관한 기록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간단하게 나타나 있다.

당시 민간에 유행한 경당의 교육사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개국한 후 차츰 일반대중에게 널리 사학(私學)교육이 보급되었다는 것,

둘째, 교육을 받는 시기는 소년기로부터 청년기에 걸쳐 실시되었다는 것,

셋째, 당시 고구려 국내외의 정세에 비추어 문무일치(文武一致)의 교육을 했다는 것, 특히 활쏘기(習射)를 배웠다는 점은 고구려의 경당이 신라의 화랑과 마찬가지로 교육 기관인 동시에 군사적인 훈련장으로서도 사용되었다는 것,

넷째, 교과내용의 범위가 넓고 그 정도가 높은 것으로 미루어 경당은 초등교육 정도부터 고등교육 정도까지를 겸한 기관이었다는 것 등이다.

이 경당은 그 뒤 고려와 조선시대에 나타난 서당(書堂)의 기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③ 조의선인(早衣仙人)

조의선인(早衣仙人)이란 '검은 빛깔의 조복(早<검은 비단 조, 검을 조, 사실은 白밑에 十또는 七임>服) 을 입은 선인'이란 뜻으로 선배 또는 선비라 불렀다. 사냥과 가무, 무예 등의 여러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 불렀고 이들은 국가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서 무예와 학문을 갈고 닦았다. 전시에는 이들이 자체부대를 조직하고 전장에 나가 정예군으로 활동했다. 선배는 머리를 박박 깍고 검은 옷을 입었으므로 전형적인 무사를 연상시킨다. 선배는 화랑보다도 훨씬 오래되었다.

화랑은 원화(源花)라는 여성에서 비롯되어 나중에 좋은 가문의 청년 중에 덕행 있는 자를 곱게 치장하여 화랑으로 만든 것에서 보듯이 외모와 몸치장을 중시하여 여성적인 반면 선배는 매우 남성적이다. 선배의 독특한 외양 때문에 고구려와 전쟁을 하였던 수, 당의 병사들은 이들을 승군(僧軍)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조의선인은 선비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문무겸전의 인재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유년의 어린 나이에 선발되어 신체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을 통하여 보다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갖게 된다.

조의선인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들이 부딪치는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조련된다. 을파소나 명림답부, 을지문덕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모두 조의선인들이었고, 우리 문화전통에서 말하는 선비란 바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덕성과 실천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3) 신라


① 화랑도(花郞徒)

화랑도(花郞徒)의 기원은 신라의 고대 씨족사회로부터 형성되어 온 무교(巫敎)[3]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랑(花郞)은 본래 소도(蘇塗) 제단의 무사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이며 그때 선(仙)이라 하던 자들이 화랑이다. 화랑은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고, 정신수양을 통하여 도의심을 기르는 한편, 무도(武道)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였다. 이와 같이 신라의 고유한 사상을 기반으로 조직된 화랑도는 삼국통일 이전까지 하나의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한 것에 그 의의가 크다. 화랑도가 양가와 귀족출신의 청소년으로 조직된 민간단체로 제도화·형식화한 것은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부터이다.

화랑도의 총지휘자로는 국선(國仙)이 있었다. 그 밑에 덕망과 용의(容儀)를 중심으로 13세 내지 18세의 청소년 3인 또는 8인 내외의 화랑[4]을 추대하고, 또 그 아래에는 문호(門戶)라는 편성이 있어 수백·수천의 낭도(徒)가 결속되어 있었다.

국선화랑→화랑→문호→낭도(총단장) (각급 단장) (단부) (단원)

여기서 국선 또는 화랑이라 하는 것은 일종의 모범 사범(師範)으로, 많은 낭도들도 하여금 화랑을 사범으로 삼아, 그를 수행하는 동안에 아름답고 선량한 인격을 양성하려고 하였다. 화랑도의 출신성분은 귀족지배적인 국가체제와 또 화랑도를 운영함에 있어서 소요되는 막대한 경비 문제가 있어서 귀족 출신이 아니면 안 되었다. 이리하여 단장인 화랑은 귀족 중에서 선출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낭도는 이와 달랐기 때문에, 신라의 귀족과 평민과의 교량적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신라의 고유한 전통사상에서 출발한 화랑도는 이리하여 점차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되었다.


교육목적

“위로 임금을 돕고, 아래로 만백성을 잘 다스리는 어진 재상이 여기서 발탁되고, 나라를 지키는 억센 장수와 용감한 군사가 이로 인하여 생겨났다.” - 김대문(金大問), 『화랑세기(花郞世紀)』

첫째, 용감한 병사를 양성하는 데 있었다. 신라는 화랑도를 통해 국가를 다스릴 중심인물을 양성하면서도 필요한 경우에는 군인·무사가 될 수 있는 국방의 인재를 양성하려 했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개과천선케 하여, 아랫 사람은 윗 사람을 공경하게 되고, 따라서 5상·6예(五常六藝)와 3사·6정(三師六正)이 세상에 널리 행하여지게 된다.”  - 일연, 『삼국유사』

둘째, 화랑도를 통해 종교적·도덕적 교육을 실시하려 했다. 화랑도는 유취군유(類聚群遊)로서 그 사이에 도의를 상마(相磨)하고, 또 교우(交友) 사이에 생활의 규범을 배우게 했다. 화랑도의 종교·도덕교육의 바탕은 유교·불교·도교의 힘이 컸다.


교육과정

화랑도의 교육과정에서는 지적인 면보다 행동적인 면이 많았다. 따라서 도덕적·정서적·신체적·사회적·군사적 훈련을 교육면에서 강조하였다. 이를테면, 첫째 무술, 둘째 이성도야, 셋째 정서도야, 넷째 심신단련과 직관(直觀)도야 등이 강조되었다. 특히 화랑도는 시가(詩歌)와 음악을 즐겼는데, 이는 건전한 감성을 발달시키기 위한 정서도야의 방편이 되었다. 또 화랑도는 그들의 풍류(風流)로서 한꺼번에 수백·수천명씩이 떼를 지어 원근을 가리지 않고 산수(山水) 좋은 명승지(名勝地)를 찾아가 세속의 티끌을 털고 자연의 품 속에서 맑은 마음으로 즐겁게 한때를 보내곤 했는데, 이를 통해 심신단련과 직관교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이상과 같이 화랑도는 우리 고유사상에서 설립된 신라사회의 청년교육기관이며, 화랑은 그 시대가 추구한 모범적 인간상으로서, 이를 위해 신체단련, 무술연마, 도덕훈련, 인재양성 등에 중점을 둔 교육을 전개하였다.


② 국학(國學) – 통일신라

신라 최초의 관학으로 당시 당(唐)의 국자감을 모방하였다. 국학의 입학 자격 은 15~30세의 귀족 자제들로서 12관등인 대사로부터 무위자까지였으나 국학의 교육 대상은 주로 6두품의 자제들이었고 수업 연한은 9년이었다. 유학의 박사와 조교들은 학생들을 세 과로 나누어 가르쳤으며, 유학의 기본 이념인 충과 효의 덕목을 강조하기 위해 논어와 효경을 필수 교과로 채택하였다.

- 제 1과 : 논어, 효경, 예기, 주역을 가르쳤다.

- 제 2과 : 논어, 효경, 좌전, 모시, 춘추를 가르쳤다.

- 제 3과 : 논어, 효경, 상서, 문선을 가르쳤다.

통일 이전에는 화랑도 교육과 궁전법(기마와 궁술로써 시험하여 선발)으로 관리를 선발하였으나, 독서출신과 이후부터는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게 되면서 학문적인 능력으로 시험하여 관리로 등용하는 과거 제도의 효시가 되었다.


3) 고려


① 국자감(國子監)

고려시대 관리임용을 위하여 중앙에 설치하였던 교육기관의 하나이며 과거시험은 2차시험 합격자와 국자감 3년이상 수학자를 대상으로 하여 최종시험을 실시하였다. 국자감에는 국자학(國子學: 3품 이상의 자제), 대학(大學: 5품 이상의 자제), 사문학(四門學: 7품 이상의 자제·서인)과 율학(律學)·서학(書學)·산학(算學) 등 전문학과가 있었다.


② 향교(鄕校)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교육기관.


③ 문헌공도(文憲公徒)

고려 시대에, 십이 공도(十二公徒) 가운데 최충이 세운 교육 기관.


4) 조선 

 

서울에 있는 성균관과 학당(4학)은 중앙 정부에 직속되고 향교는 각 주현(州縣)에서 관할하던 관학(官學)으로서, 상호간에 상하의 연락 계통이 서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각각 독립된 교육 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성균관의 입학 자격은 생원(生員)·진사(進士)였지만 생원·진사는 사학이나 향교를 거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또 성균관의 유생(儒生)에게는 문과(文科)[1]에 응시하는 자격과 기타 여러 가지 특전을 주었으나 그렇다고 성균관을 거쳐야만 문과의 응시 자격이 부여되었던 것은 아니고 그밖에 사람들도 얼마든지 시험은 치를 수 있었다. 이들 관학 가운데서 성균관만은 말기까지 줄곧 최고 학부로서의 시설과 권위를 유지하였으나 사학과 향교는 후세에 점점 쇠퇴하여서 유명무실하게 되고 그 대신 사숙(私淑)으로서 서당(書堂) 이외에 서원(書院)이 기세를 떨치게 되었다.



5) 근대


① 기독교계 사립학교 / 선교계 학교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근대학교는 사립학교로서 '배제학당(培材學堂)'과 '경신학교(儆新學校)' '이화학당(梨花學堂)' '정신학교(貞信學校)' 등이었다. 초기 선교사의 활동을 보면,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고, 그 이듬해 여름 전권대사 자격을 주어 민영익(閔泳翊) 일행을 친선사절로 미국을 방문케 했다. 이때 뉴욕 감리회(監理會) 선교 본부는 민영익으로부터 당시의 한국사정을 청취하고 선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에 머물던 감리회 선교사 매클레이(R. S. Macley)로 하여금 한국을 방문, 사정을 알아보게 하였다. 이런 임무를 띠고 매클레이 부처는 1884년 6월 한국에 도착하여 김옥균의 안내로 고종을 알현하고,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允許)를 받게 되었다. 동년 9월 의사 앨런(H. N. Allen)부처, 1885년 언더우드(H. G. Under wood)·아펜 젤러(H. G. Appenzeller.)·스크랜턴(Mrs, M. F. Scranton) 등의 선교사들이 입국하게 되었다. 이들은 내한하자 곧 교육과 의료를 선교의 수단으로 삼아 의료로 한국인의 불행을 구제하고, 교육에 의해 계몽하려 했던 바 광혜원(廣惠院)·배재학당(培材學堂)·경신학교(儆新學校)·이화학당(梨花學堂)·'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등이 바로 이런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② 흥사단(興士團)

흥사단(興士團)은 1913년 5월 13일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민족운동단체이다. 무실,역행,충의,용감을 기본정신으로 삼고있다.

흥사단의 결성은 1911년에 발생한 105인 사건에서 비롯된다. 이 사건으로 신민회가 해체되고 서북 지역의 항일 인사들이 대거 투옥되었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 관련자들은 크게 두 방향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승훈과 안창호 등은 준비론에 입각하여 실력양성을 시작하였고, 이시영, 이동휘, 김좌진 등은 만주로 이동하여 무장 항쟁을 준비하였다. 이때 안창호 계열이 실력양성론에 따라 창단한 단체가 흥사단이다.

흥사단원들은 안악사건, 105인사건, 3·1운동, 수양동우회 사건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되었다

해방이후 1948년에는 본부를 국내로 옮기고 재조직되었다. 본부는 서울 대학로에 있다. 잡지 《새벽》을 발간하였으며, 현재까지 배출된 회원수는 10만명에 달한다.


③ 오산학교(五山學校)

1907년 12월 남강(南崗) 이승훈(李昇薰)이 민족운동의 인재와 국민교육의 사표(師表)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학교이다.

오산학교는 예사로운 학교가 아니라, 사관학교·훈련원·정치학교·인문중학교 및 특수모범자 양성소 등을 겸한 학교였다. 소정의 교과과정 외에 남강의 훈화와 직접적 훈도를 통한 민족정신의 고취와 민족성 개조에 치중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 교직원과 졸업생들이 많이 월남하여 전란을 겪고, 1953년 전통의 회복을 위해 부산에 학교를 재건했다가 9·28수복과 함께 서울 보광동에 현 교사를 신축, 오산고등학교와 오산중학교로 발족하였다.

이 학교를 거쳐 간 교사와 학생들을 살펴보면 한 사람이 심은 밀알이 얼마나 창대한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고당 조만식, 단재 신채호, 춘원 이광수, 다석 유영모, 함석헌, 주기철, 한경직, 소설가 염상섭, 벽초 홍명희, 시인 김소월, 화가 이중섭 등이 모두 오산학교 출신이며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출처 : 조현‘울림’)


④ 용정(龍井) 명동촌(明東村)

나라가 망해가던 때에 국내에선 남강 이승훈 선생이 평북 정주에 용동촌과 오산학교를 세워 미래를 준비했다면 간도에선 규암(圭巖) 김약연(金躍淵) 선생이 한민족기독교공동체인 명동촌(明東村)을 세워 민족의 앞날을 밝혔다. 서전서숙(瑞甸書塾)이 발전한 명동학교에서 문익환, 윤동주, 나운규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와 우국지사들이 자랐다. 일제가 명동학교를 폐쇄한 후, 용정 은진중학교로 이동, 미국프린스턴신학교를 나온 장공 김재준을 성경교사로 초빙하여 규암(圭巖)과 장공의 영향을 받아 이곳에서 길러진 인물들이 강원용, 안병무, 문동환, 이상철 등이다. (출처 : 조현 ‘울림’)



[각주-2] 인물품평의 동양적 사례 – 김철운,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인물론: 그 철학과 역사>


[각주-3] 인물양성의 서양적 사례


1)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들을 거의 완성하던 시기, 즉 기원전 387년경에 아테네 근교에 아카데미아 학원을 세웠다. 그때 그의 명망은 정점(頂點)에 있었고 그의 나이도 마흔에 이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 학원은 서구의 역사상 최초로 출현한 대학이었다. 플라톤은 20년 동안 그 곳의 학장으로 여러 가지 일을 관장했다. 아카데미아의 주요 목적은 본원적인 탐구를 통해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플라톤의 주요 관심은 정치가들의 교육에 있었지만, 정치가들의 교육은 엄격한 지적 훈련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들에게 수학, 천문학, 화성학(和聲學) 등을 포함한 과학적 탐구 방식을 교육하였다.


2) 중세 수도원운동


   수도원은 중세의 정신생활이나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수도원은 중세교회가 타락하고 속화했을 때, 이를 정화하고 개혁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중세 초기의 문화적 암흑기에 희미하게나마 문화의 등불을 유지하고, 그럼으로써 중세 후반기에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하였다.

수도원은 중세를 통해 저명한 교회지도자를 배출하였다. 수도원은 부속학교를 운영하고 도서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으므로 중세사회에 있어서 교육 및 학문연구와 같은 문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 사회적으로 수도원은 자선을 베풀었고 새 농경법을 가르치고 육체노동의 귀중함을 알려주는 사회사업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경제가 화폐경제로 발전함에 따라 수도원도 부의 축적으로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이단운동의 배격과 종교재판의 피해는 많은 반발을 초래해서 결국 종교개혁을 연 원인이 되었다.


3) 중세유럽의 대학운동 


중세전기의 교육사상은 기독교 사상에 기초한 초자연주의, 내세주의, 주정주의로서 이것이 교육의 실제면에 반영되었다. 중세교육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적인 완전에 도달하는 교육이다.

둘째,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교육이다.

셋째,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교육을 엄중히 감독하는 교육이다.

대학의 초기 형태는 “수도원 학교”였다. 오늘날의 대학을 연상시키는 도서관이나 기념관 같은 특징들도 없이 단지 교사와 학생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14, 15세기에 가서야 생겨났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교사와 학생들만은 학문에 대한 정열은 대단하였다. 원래 공회의 부속 기구인 대학들은 공통적인 신학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곧 신학, 법학, 의학, 예술 중에서 신학이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각주-4] 인물의 지도자적 품성연구 – P.G. Northhouse, <리더십>

 

고석희(高錫熙) 목사

1993-2010    기독교 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 사무총장

                   Korean World Mission Council for Christ

                  한인세계선교대회 (3, 4, 5, 6차)

1995-2000    북미주 기독교21세운동 본부장

                  AD2000 & Beyond Movement for Korean-American

1975-2010    세계복음화기도동맹(WEPA) 대표

                  World Evangelization Prayer Alliance

2003           하와이이민100주년기념 세계선교대회 준비위원장

1976-1986    뉴욕기독대학생운동

1975-2010    지구촌선교교회 (뉴욕)

2007-2010    예수아카데미아 -「하나님의 사람」인물사숙원(人物私淑院)

 

저서     세계복음화 비상기도운동

           제3세계 한인선교사 사역과 전략

           제2차 로잔마닐라세계복음화국제대회


 

>> 목차고리 : [발제] 인물론 선교 -> 응답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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