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명목상 기독교인 선교를 위한 전략연구(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5]
 자료출처  남정우  성경본문  
 내용 명목상기독교인

선교전략 연구:

명목상 기독교인 선교를 위한 전략연구


남정우 박사(장신대)


1. 연구의 필요성


   도날드 맥가브란의 선교 정의에 따르면,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혀 충성을 바치지 않고 있는 자들에게 문화적 경계선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그들 자신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도록 하는 사역이며, 선교현지교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되게 하는 사역이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전도와 정의실현을 위하여 일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선교현장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협력하는 사역”이다.[1] 선교 사역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 즉 미전도 종족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혀 충성을 바치지 않고 있는 자들, 즉 명목상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1998년 로잔위원회에서 ‘명목상기독교인에 대한 연구종합보고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미전도종족만이 선교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결과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 비기독교지역이라고 여겨졌던 지역에서는 기독교인의 숫자와 비율이 증가하였지만, 전통적으로 기독교 지역이라고 여겨졌던 곳에서는 오히려 기독교인의 숫자와 비율이 감소하여 에딘버러세계선교사대회가 열리던 1910년에 비하여 2010년 기독교인의 비율은 약 1.4%가 감소하였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선교를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상유지도 못하고 있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선교전략적으로 앞으로의 선교가 기독교 외부세계를 선교하는 것 이상으로 기독교 내부세계의 결속을 강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정의


   명목상 기독교인 된다는 것은 이름뿐인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다.[2] 주로 기독교 전통이 있는 나라, 민족, 단체, 가문에서 생의 통과 의례로서 유아 세례, 결혼식, 장례식 할 때만 교회에 나오고, 평소에는 교회 예배에 거의 나오지도 않으며, 기독교 활동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여기에 해당된다.  기독교인들이 명목상 기독교인들로서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다. 이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기독교와 접촉을 가진 사람들이며,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며, 또 그렇게 불리운다. 그러나 순전한 기독교 신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세 가지 필수요소 ①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신앙고백,  ②규칙적인 교회 예배 출석,  ③기독교 신앙 활동(선교, 봉사,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 이런 것들은 결여되어 있는 그야말로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다.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는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심각하게 언급되고 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행치 않는 자들(눅6:46),”“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하는 자(딤후 3:5),”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계 3:1절 이하)” 등이 그것이다.


   1998년 12월 로잔대회(LCWE)에서 다룬 “노미날리즘에 대한 연구 종합 보고서”를 보면,[3] 전세계 기독교인 가운데 약 44%가 명목상 기독교인이라고 한다.[4] 이 보고서에 따르면, 명목상기독교인의 현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이제 서구 기독교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며, 자유주의적 신학노선을 지닌 교파에만 제한되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의 경우 두란노 서원에서 출판한 “한국 개신교인의 교화활동과 신앙의식(1999)”에 의하면, 한국인 개신교인 숫자는 전체 인구의 20.7%이다. 이 중에서 “교회의 주일 낮 예배에는 어느 정도 참석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매주 참석이 65.2%, 한 달에 2-3번이 18.0%, 한 달에 1번이 3.7%, 한 달에 1번 이하가 1.4%라고 응답하였다. 한국교회의 명목상 기독교인의 현상(주일대예배 참석을 기준으로)은 1998년에는 약 17.6%, 2004년에는 18.6%로 증가하고 있다.[5] 그러나 이것은 지역별, 연령별로 조사한 경우를 보면, 대도시로 올수록, 20-30대로 내려갈수록 더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미래에는 사회의 포스트모더니즘화(postmodernisation)로 인하여 한국에도 명목상 기독교인 현상이 증가하리라고 예상된다.


      

3. 선교와 명목상기독교인


   개신교는 1792년 근대 선교운동의 주창자 월리암 캐리(William Carey, 1761-1843년) 이후 약 200년 동안 어떤 기독교 교파들 보다도 적극적으로 해외 선교 활동에 참여해 왔다. 그 결과 20세기 말엽에 와서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 전 세계의 종교가 되었으며, 기독교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 명목상 기독교인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어서 이 명목상기독교인의 증가가 선교에 커다란 위협과 도전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만일 이 명목상기독교인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것은 21세기 기독교 세계선교에 가장 큰 위협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제정 러시아 말기에 러시아 정교회는 전국민의 80% 이상 되는 신자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명목상 정교회 기독교인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당시 새로운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지지자들로 변하여서 70년 동안 러시아 정교회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기독교회를 파괴하고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세력이 되었다.[6] 

 

  그러므로 오늘날 선교와 복음전도와 관련하여 우리가 염려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노미날리즘이다.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지금 교회 다니고 있는 성도들이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히2;1)”하며, 성도들 중에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히3:12)”하며, “영원한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히4:1)” 염려하는 마음과 관심을 교회의 지도자들은 가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 선교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진 선교학도들도 해외선교, 불신자 복음전도에 주력하는 동시에 집안 단속도 잘하는 일에 지혜와 능력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선교적인 입장에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을 향한 전도도 시급하지만 이미 교회나 기독교 복음에 접한 사람들 중에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책마련도 시급하다. 이들이 먼저 변화됨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때, 바람직한 교회 성장(내적 ․ 외적 성장은 물론 질적 ․ 양적 성장)이 그만큼 앞당겨질 뿐아니라, 교회의 본래적인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명목상 기독교인들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 또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책임있고 신실하며 믿을만한 기독교인(responsible, faithful and reliable members of church)'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 또한 선교의 중요한 노력이 될 것이다.



4. 아주 오래된 문제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오래 전 구약시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명목상 이스라엘인의 도전이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불순종과 불신앙적인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을 위태롭게 하고 파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의 일탈된 행동들에 대한 선지자들의 권면, 경고와 심판 등의 메시지는 구약성경 안에 풍부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신약성경 안에도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를 의식하고 기록한 듯한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특별히 후기 서신서들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낸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 교회 안에서 영적인 일탈행위들로 인하여 교회 지도자들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


   교회사적으로는 주후 4세기초 콘스탄틴 황제 시대를 전후하여 노미날리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콘스탄틴 황제의 호의와 배려로 기독교회가 신앙적으로 커다란 자유를 누리게 됨과 동시에 교회와 세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하였다.[7] 따라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순전한 기독교인들과 명목상 기독교인들, 참된 신자들과 거짓 신자들을 구분 지워야 할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기 시작하였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소수 기독교인으로(as minority) 살아가면서 고난과 핍박을 많이 경험하던 시대보다는 풍요와 번영 속에서 기독교가 많은 혜택을 누리며 다수의 모습 혹은 강자의 모습으로(as majority)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던 시대에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를 심각하게 경험해 왔다.



5. 구약에 나타난 명목상 신자들


   우리는 명목상 기독교인들의 고전적인 유형들을 성경인물 연구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먼저 구약성경에서 세 가지 유형으로 명목상 신자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8]


    (1)롯


    창세기에 기록된 롯(Lot)은 가까운 친척이 훌륭한 기독교인이며, 그의 신실한 모습을 보며, 많은 도움과 후원을 입으며 성장하지만, 그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철저하게 흡수하지 못한 유형이다.[9] 그의 삼촌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과 많은 시간을 동행했던 그도 하나님을 믿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을 충실하게 살지 못하였다. 당시 대도시였던 갈대아 우르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롯은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 아브라함의 그늘 밑에서 살았지만, 유년시절에 형성된 세속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꾸지 못하였다. 나중에 그가 삼촌 아브라함과 분가 한 이후에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세상적인 아름다움과 편리함에 이끌려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세속적인 성 안으로 들어가서 살았다. 그는 아름다운 소돔 평원으로 가고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거하였다(창 11:27; 13:10-12). 그러나 소돔 성이 악하여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망시킬 때 의인 롯의 가족만 구원받았는데 그의 처는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19장; 눅 17:32). 이렇게 간신히 구원을 받지만, 자신의 신앙적 가치관이 주체적이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자신이 딸들과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되고, 암몬과 모압 자손을 생산하여 이후에 이스라엘의 민족을 괴롭히는 화근이 되었다. 창세기의 롯이라는 인물은 훌륭한 믿음의 친척 그늘 밑에서 오랜동안 살면서도 내면의 철저한 변화를 이루지 못하여 생겨나는 명목상기독교인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2)에서


   에서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이었고, 아버지는 이삭이었다. 그는 믿음의 가문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편애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하는 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으며, (출생 당시에 이미 예언된 바 있는) 에서보다 야곱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아버지 이삭의 유언 중에 확인되었다(창 25;21이하; 27:22이하). 이러한 상처와 실망이  원인이 되어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 사이에는 뿌리 깊은 원한이 싹트게 된다. 청년이 되면서 에서는 일시적인 이익이나 편리함 영원한 소망을 포기해 버린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히 12:16, 17). 이후 이삭의 장자 에서는 믿음의 식구들과 더불어 사는 생활에서 이탈되어 에돔 민족을 형성하는 원조가 된다. 청년의 때에 그는 육체적인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였으며, 이후 그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여인과 결혼하여 많은 자손을 낳아 에돔 민족을 형성하는 원조가 된다. 이 에돔 민족은 이후 이스라엘 민족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괴롭히는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에서라는 인물은 신실한 기독교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적절하지 못한 기독교 교육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명목상기독교인 현상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3)사울


   사울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으로 인하여 신실한 믿음을 떠나는 명목상기독교인 현상의 한 유형이다. 사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삼상 9-3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서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고 성격이 어진 청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던  어느 날 사울은 자기 부친 기스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나왔다가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사울은 수도를 기브아에 정하고 모압, 암몬, 에돔, 브레셋, 아말렉 등 이스라엘 나라 접경에  있는 부족과 싸워 승리를 얻고 왕국의 기초를 튼튼히 세웠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여호와의 섭리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오만불손한 행위를 거듭하게 되어 하나님과 사무엘 선지의 눈에 거슬리게 되었다(삼상 13:8-14; 5장). 이때부터 사울의 행동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다. 충신 다윗에 대한 질투심이 증대하여 다윗의 생명을 노린 것이 그의 신임을 잃은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삼상 10:14; 18:10; 19:10; 22:10-18). 인기는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점점 옮겨갔다(삼상 16장).  그는 이스라엘 역사의 과도기를 그린 왕으로서 그의 최후는 비참하였다.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그의 세 아들을 잃고 자신도  큰 상처를 입고 길보아산에서 자살하였다(삼상 31장). 역대기에는 사울이 하나님의 버림받은 왕이라 해서 그의 죽음의 기록 외에는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았다(대상 10장).[10]


        사울 왕 이야기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세상의 높은 지도자가 된 사람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크고 위대한 일들을 많이 수행하다가, 중간에 초심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떠나는  명목상기독교인들의 현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6. 신약에 나타난 명목상 신자들


   (4) 가룟 유다


   유다는 교회 교역 핵심부에서 생기는 명목상기독교인의 유형이다.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며 공관 복음서의 제자 목록들에서는 항상 맨 나중 순서에 언급되며 대개 '예수를 판 자'라는 묘사가 뒤따른다(예. 막 3:19).  가룟이라는 성(姓)은 '그리욧 사람'이란 말에서 유래한 듯하며, 그리욧은 렘 48:24과  암 2:2에 따르면 모압에 속한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룟을 헤브론 남쪽 19km지점에 있는 그리욧 하솔과 연관시키기도 한다(수 15:25). 가룟 유다는 사도들의 돈 주머니를 맡은  자였으며 공금을 슬쩍 훔치기도 했다(요 12:6;13:29).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 가룟 유다는 그 돈을 구제금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 않느냐는 그럴 듯한  이유로 비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불과 돈 몇 푼에 대제사장들에게 몰래 팔아  넘긴  자가 바로 가룟 유다였다(막 14:4 이하; 요 12:3 이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길 기회는 최후의 만찬을 들던 날 밤에 찾아왔다. 요한과 나지막히 이야기를 나눈 후, 예수님은 충성을 호소하는 마지막 기회로  유다에게 한 조각의 유월절 떡을 주셨다. 그러나 유다는 마음을 고쳐 먹지 않았으며 사단의  지배에 사로잡혀 버렸다(요 13:27 이하). 그는 겟세마네에서 비밀스럽게 모임을  갖는다는 사실을 밀고하였으며, 이로 인해 일단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였다. 체포 당시에 유다는 예수님께 입맞춤으로써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도록 유도했다(막 14:43 이하).  성경에는 유다의 불행한 최후를 알려 주는 두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마  27:3 이하; 행 1:18,19). 그리고 행 1:25은 유다의 종국을 이렇게 묘사한다.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그를 택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따라서 예수님은 거듭 그에게 호소하셨다. 그러나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결국 그는 비참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는 예수님과 동행하기는 했지만 예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지 않은 자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참고. 롬 8: 9,10).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동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에는 탐욕, 질투,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자신을 구해 내려는 욕망,  예수님으로 하여금 메시아 사역을 속히 드러내시게 하기 위함, 그의 야망이 좌절된 데  대한 비통한 심정 등이 있다. 그러나 동기가 어떠했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시키지 않고, 끝까지 제 고집을 부린 사람이었다. 이런 유형은 흔히 똑똑하고 높은 재능을 지닌 사람, 최고 지도자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교회 교역활동에 있어서 핵심 지도자 그룹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이 빠지게 되는 명목상기독교인의 한 유형이다.[11]

    

   (5)마술사 시몬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은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능력있게 복음 전하는 모습을 보고서 외형적인 능력행사에 큰 매력을 느낀 나머지, 기독교 신앙의 내용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 외형적인 능력을 얻으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 다녔고,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의 목적과 주된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기도하고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그가 보고서 “돈을 두 사도에게 주면서 그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행8:19)” 부탁하는데서 그의 본색이 드러났다. 그는 기독교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기독교의 외형적인 능력과 화려하게 보이는 겉모습을 보고서 기독교인들과 함께  다니는 사람이었다. 초창기에 기독교가 한참 부흥하며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는 시기에 흔히 나타나는 명목상기독교인의 유형이다. 


   (6) 산헤드린 공회원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세상에서 높은 위치와 자신의 위신 때문에 자신이 신자임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유형이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의 숨은 제자였다.[12] 그들은 당시 부자였고, 이스라엘에서 유명인사들 이었으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니고데모는 예수가 사역을 시작할 때 찾아와서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으로 고백하였다(요3:2). 그러나 낮에 찾아오지를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어두운 밤중에 예수를 은밀하게 찾아왔다. 아리마대 요셉도 ‘예수의 제자’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자’(or 존귀한 자, 눅 23:50),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자’(막 15:43)였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저주에 동의하지 아니한 사람이었다(눅 23:51). 그러나 요셉은 침묵으로 항의하였지, 드러내 놓고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못하였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신약성경에 다시 언급이 없으며, 초대교회 성도들과 계속 교제했다는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의 12 제자들이 모두 도망간 상태에서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돌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12제자들의 실패를 말한 것이지, 요셉과 니고데모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요 19:38-42). 그들에게 정말로 믿음이 있었다면, 예수의 장례식에 나타나 눈물이나 흘리고 있는 것으로 그들의 산 신앙이 해명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늦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밝히 증거해야 할 때에 침묵하였다. 진리가 박해를 당할 때에 다 숨어있다가 풍랑이 다 지난 다음에야 나타나서 위로와 슬픔의 눈물(?)이나 흘리는 모습은 또 하나의 서글픈 명목상 신자의 모습이다.


   요셉과 니고데모가 왜 명목상 신자가 되었는가? 주된 이유는 유대인들을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요 19:38). 그리고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 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요12:42).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위신과 체면을 주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였고, 오순절 다락방에 같이 있지도 않았다. 교회 공동체와 계속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가지지 않았다. 단지 예수의 죽은 시체를 메어가는 일을 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살아계신 주님과 교제를 해야지, 죽은 시체와 무슨 교제가 가능하겠는가!  이런 유형에는 로마 총독 빌라도도 속한다. 그도 예수를 존경하고 의로운 자로 알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보다 가이사 황제를 더 두려워하였고, 백성들의 인기를 잃을까 걱정하여 결국 자기 영혼을 지옥에 보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상 구약과 신약에서 발견한 여섯 가지 인물 유형들은 명목상의 신자가 발생하는 맥락(context), 명목상의 신자가 발생하여 진행되는 과정과 그 좋지 못한 결과들을 가르쳐 주는 성경적 실례들이다.

 

        

7. 오늘날의 명목상 기독교인들

        

        오늘날 명목상 신자의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실재하고 있다. 로잔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13가지의 모습으로 오늘날 전세계 명목상 신자들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13] ①인종적-종교적 정체감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14] ②제 2세대 기독교인들,[15] ③의식주의자들,[16] ④혼합주의자들, 즉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다른 종교, 다른 세계관의 영성, 도덕적 가치 등도 수용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⑤시들어버린 자들(disillusioned), 즉, 교회 다니면서도 기독교가 증거하는 바 몸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 천국과 영생에 대한 기대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 진리가 증거하는 소망과 비젼을 공유하지 못한 이들이다. ⑥탈진된 사람들, 즉, 교회 직원으로서, 기독교 기관의 직원으로서 어떤 의무로서만 기독교 일을 하는 사람들, 개인적인 신앙고백도 없으며, 주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 없이 일반 직장인처럼 기독교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⑦두 갈래로 나누어진 사람들(bifurcated), 즉, 삶의 우선 순위를 기독교적으로 확립하지 못한 채, 세상풍조에 이끌려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다. 주일 교회 안에서는 기독교인,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직장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의식없이 살아간다. ⑧취미생활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 평소에 취미생활 하듯이 매일 아침 약수터에 올라오듯이 자주자주 교회 출석하지만 자신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어려움이 생기면 교회출석을 그만두는 사람들이다. ⑨불순종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한국 선교 초기에 교회 출석하다가 일부일처제에 대한 설교말씀을 듣고 첩들을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교회를 떠난 이들이 있다. 술 담배를 끊어야 하지만, 끊기가 어려워 교회출석을 보류한 이들도 있다. ⑩개화교인들, 한국선교 초기에 이광수, 양주동과 같이 소위 개화교인들이라 불리우던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교회 출석은 하지 않았지만, 성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민주주의, 남녀 평등, 근면한 생활, 합리적인 생활 등, 기독교의 가치와 생활원리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을 지지하고 확산시키는 일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⑪사회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견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socially distanced). 아리마대 사람 요셉, 산헤드린 공회원 니고데모와 같은 이들이다. 멀찌기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유명인사들, 부자들, 학자들 중에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많다. ⑫소외된 기독교인들. 교회 안에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적응을 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있다. 시골교회에서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였다. 그러나 대도시 교회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하여 소극적인 모습으로 전락한 경우이다. 동일집단인 군대에서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다가 제대한 이후에 교회출석을 중단한 이들이 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기독교 진리에 대한 다른 견해가 생겨서가 아니라, 어떤 환경의 변화로 문화적 사회적 소외감을 느낀 나머지 교회출석을 그만둔 기독교인들이 있다. ⑬ 상처받은 기독교인들. 교인들 상호간에 무례한 언행으로, 오해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고 교회출석을 중단한 자들이다. 그 밖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역적인 차별성, 학벌중심적인 편견,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대우 등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영혼들이 교회출석을 중단하는 경우들이 있다.

   


8. 원인 분석


   현대 기독교인들이 명목상기독교인으로 변하는 현상의 원인이 무엇일까? 로잔위원회는 교회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 원인을 분석하였다.


   (1) 사회


   20세기 말 사회 문화 생활양식이 전반적으로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다. 게다가 무신론적인 사회 분위기와 하나님 없는 과학발전 만능주의 시대를 꿈꾸는 시대 분위기가 노미날리티를 만들어 내는 토대역할을 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오랜동안 진행되어 온 과학과 종교의 분리선은 점차로 무너지고 대신에 통전적인 시각이 강조되고, 聖, 俗 개념이 변하고 있다. “ 믿음”이라는 낱말의 개념도 “기독교 정통 교리를 수용” 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이고 영적인 그 무엇에 대하여 개방적인 삶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거룩한 것이 세속적인 것을 빌려오던 시대였다면, 1990년대에는 거룩한 것이 세속적인 것에 의하여 강탈당하는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17]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치닫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 분위기가 기존의 기독교 신앙생활을 크게 위협하고 있으며, 명목상 기독교인의 현상을 촉진시키고 있다.[18]

 

   (2) 교회


   Kosmin Barry는 교회를 “명목상기독교인의 배양소(Incubator)"라고 하였다.[19] 그 표현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거의 2000년 동안 기독교 역사는 기독교 공동체가 계속 흩어지고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교회 그룹들이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어떤 경우에는 경쟁도 하게 되고,  심지어는 배타적인 주장을 고집하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혼란을 초래하였고, 기존의 신앙전승에서 이탈되게 만드는 결과를 기독교회 자체가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교회 공동체에서 이탈된 그들은 이제 어떤 그룹이 순전한 교회이며, 정통이며, 어떤 그룹이 신앙 생활의 표준에서 벗어나 있으며, 수준 이하의 제자교육을 시키고 있는지를 비판하며 의심하는 말을 하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즉, 명목상기독교인의 증가를 부채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명목상기독교인의 성장 배경에 대하여 교회 자신이 책임감을 느껴야 할 부분이 매우 크다.[20]


   결과 점진적으로 기성 교회에 대하여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일반 신도들은 교회가 자신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교회 예배에 싫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교회 안에서 신도들 간에 정직성과 순전함이 점차로 약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교회 안에서 진실한 기독교인의 모습 보다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이고 처세적인 모습들을 대하면서 교회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신뢰감을 점차로 줄여 나간다. 그런가 하면 소수 그룹들은 교회 중요한 일들이 다수 그룹에 의하여 결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소외감과 분노를 느낀다. 여성들은 교회의 많은 부분들이 남성들에 의하여 결정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하여 발생해 온 병리적인 현실의 교회상과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교회 모습 사이에 간격이 점차로 커지게 느껴진다. 이러한 간격을 점차로 심하게 느끼는 기독교인들은 기존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고 교회 공동체로부터 이탈될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3)개인


   개인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성도들이 떠나게 된 이유들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보고서가 있다. Leslie Francis와 Philip Richter가 1997년 작성한 보고서에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21] ①교회에 출석하면서 가졌던 기대에 만족을 얻을 수 없어서(28%), ②생활 환경이 바뀌어서(이사, 이혼, 질병, 등)(26%), ③믿음을 잃어버려서 (23%), ④사회적인 가치관이 바뀌어서(11%), ⑤개인의 신앙과 출석하는 교회의 입장이 달라서(8%), ⑥기타 다른 이유들(5%), 등.


   호주에서 Peter Kaldor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①이사간 경우(38%), ②교회 신학적 입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22%), ③자신의 필요가 변해서(19%), ④교회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11%), ⑤교회 지도자와 갈등 때문에(11%), ⑥결혼했기 때문에(9%), ⑦기타 다른 이유들 때문에(15%).     


   그러면 교회를 떠난 그들이 어디로 갔는가?  Peter Kaldor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뉴에이지 운동, 환경주의 운동, 소비자 운동, 향략주의(hedonism), 혹은 다른 가치나 의미를 추구하는 단체나 운동에 끌려가고 있다고 하였다.[22]



9. 해결책을 찾아서

        

   명목상 기독교인들의 문제를 가장 밀도 있게 취급하고 있는 성경은 아마도 히브리서일 것이다. 히브리서는 명목상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권면하고 가르치는 교역의 역할에 대하여 풍부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히브리서” 성경의 저자, 저술시기, 진정성(authenticity), 수신자 등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서 당시 수신자들이 순전한 기독교 신앙생활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려는 유혹을 많이 받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교회 출석 숫자가 줄어들고, 믿음 생활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교회에 나와서도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성도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목자의 심정으로 이 편지를 썼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와 관련하여 오늘날 현실 속에서 어떤 자세로 어떻게 교역활동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 그 하나의 성경적 모델을 히브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23]


   (1)명목상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염려하는 마음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히 2:1),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 15-16).


        우리는 위의 본문에서 “은혜에서 떨어지는 자들, 이탈되어 나가는 자들”에 대하여 깊이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교역자의 심정을 읽는다.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 나가는 첫번째 단계는 명목상기독교인에 대한 깊은 염려와 두려움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역자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염려와 두려움이다.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성령님과 같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염려하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염려할 것을 마땅히 염려하고,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2)주일 성수를 강조함


   히브리서는 주일 성수와 교회 출석을 강조한다. 이것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주일 예배에 출석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교역자는 성수주일을 잘 가르쳐야 한다. 청교도 선교사들의 선교를 받은 한국교회는 성수주일을 무척이나 강조하는 좋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지켜나가야 한다.[24] 심리학자들은 교인들이 3개월만 교회 출입을 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느낌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3) 견고한 신앙생활을 권면함


   히브리서는 견고하며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하자고 반복하여 권면한다. 교역자가 아무리 유능하고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 자신의 입장에서 끝까지 인내하며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 가운데서도 주님만 붙들고 나아가리라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결심을 가지도록 자주 권면하는 일이 교역자의 사명이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4)계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독려함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생활의 계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독려한다. 진보가 퇴보를 막는 적극적인 대안이며,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힘쓰는 생활이 이탈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5)피차 권면하는 생활


   히브리서는 성도들 간에 피차 권면하는 생활을 가르친다. 신앙 공동체의 열심은 어느 개인의 노력이나 모범만으로는 안 된다. 서로 권면하고 서로 돌아보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신앙 공동체로부터 이탈되는 불행한 일들을 방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25]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6)무서운 경고


   히브리서 기자는 명목상의 기독교인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서운 경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교역자로서 진리에 대한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이탈되어 나가는 자들을 엄격하게 경고하고, 무서운 결과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경고와 심판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노예를 대하듯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징책하듯이 경고하는 교역자의 모습을 가르친다. 마음이 여린 교역자들이 이 부분에서는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탈되어 나가는 자들에게는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 뒤로 물러가거나, 이탈되면 곧 지옥에 가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서 경계로 삼아야 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5-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27),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함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9),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히 12:5-6)


10. 나가는 말  


        1910년 에딘버러세계선교사대회를 주최한 영국교회를 비롯한 서구의 교회는 빅토리아시대의 가치관과 확신을 가지고 이 세대 안에 세계복음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분위기로 충만하였다. 선교지와 선교의 대상은 서구 밖에만 있다고 생각하여 비서구를 향한 서구의 일방통행(One Way)의 선교에만 집중하며 선교전략을 의논하였다. 그런데 불과 50년이 지나기도 전에, 2차 대전 이후 서구에서 명목상 기독교인 급증으로 인하여 교회가 약화되었고, 이제는 서구지역이 새로운 선교지가 되고 있음을 볼 때,[26] 에딘버러 100주년대회를 주최한 한국교회도 그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외부를 향한 선교전략 뿐만 아니라, 내부를 향한 선교전략을 점검하고 재정립하는 일에도 에너지를 쏟아야 함을 배운다.


   한국 교회는 선교 25주년이 되던 해인 1910년 영국의 에딘버러에서 있었던 세계선교대회가 표현한 것처럼  지난 100년 동안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개교회로서는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한국에 있는 교회가 거의 반을 점하기에 이르고, 전체 기독교인 숫자만 해도 한일 합방을 전후한 1905년에는 불과 1만 명에 불과하던 기독교인이 1990년대 초반에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힘차게 성장하던 한국 교회가 별안간 그 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하였다.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1% 이상 성장한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며, 그나마 그 자료조차도 신빙성의 문제가 제기 되는 등 최근 상황에 대하여 한국 교회의 교세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27]   

    이는 외형적인 성장이 곧 교회 성장이라는 오해로 말미암은 물량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의 추구로 본래적인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의 현실태와 그 심각성을 깊이 자각하여 참다운 교회 갱신과 목회갱신을 통하여 명목상기독교인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목회적인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외형적인 숫자 증가와 교회당 크기와 숫자 증가에 만족하다가는 정교회가 80-90% 차지하던 러시아가 공산주의 혁명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비극이 여기서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생활은 단순하지 않다. 인격적인 생활이며, 영적인 생활이기 때문이다. 전도나 선교도 간단하지 않다. 한번 전도하고, 거리에서 소리 높여 예수를 전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의 씨앗이 영혼 안에 심겨져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자라난다는 증거가 동반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단순한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기독교인의 모습은 자신의 삶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고, 매일 말씀을 실천하여 점진적으로 ①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하는 모습 ②지역교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과 교제하는 모습 ③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실천해 나가는 모습이 성장해 가는 기독교인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모습과 비교해 볼 때 100%는 아니라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노미날리즘의 모습을 다소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일은 일평생 게속 수행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롬8:29, 벧후 1:3-11).


   이를 위하여 계속해서 스스로 성장해 가며, 부단히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교역자가 되는 동시에 교회에 등록된 성도들도 계속 성장하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성실하게 독려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복음 선교와 교회를 위협하는 명목상기독교인의 누룩을 방지하는 최선책이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선교전략이며, 오늘날 우리 교역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역적 명령(Ministrial imperative from Lord)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Davie, Grace. 1944. Religion in Britain since 1945. Oxford, UK: Blacwell.

Fanstone, Michael J. 1993. The Sheep that Got Away. Eltham, London : MARC.

Francis, Leslie and Richter,Philip.1997. Gone but not Forgotten. HarperCollins.

Kaldor, Peter. 1994. Winds of Change. Homebush West, NSW, Australia:

        Lancer Books, ANZEA Pub.

Kosmin, Barry A. and Lachman, Seymour P.  1993. One Nation Under God. New York:      Harmoney/Cwowin.

McGavran, D.  A. Glasser, Contemporary of theologies of mission,

        고환규 역,『현대선교신학』, 성광문화사, 1987.

Wraight, Heather.(ed.) 1998.  They call themselves Christian, papers on                 Nominality  given at the lnternational Lausanne Consultation on               Nominalism, Lausanne Committee.

김승연,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생명의말씀사, 2009.

김인수,‘소비에트 철학의 역사적 배경 小考,’『장신논단 제2집』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1986), 335-369.

                ‘교회와 혁명과의 관계에 대한 소고,’ 『교회와신학 제28집』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86), 77-117.

이관직, 『목회상담학자가 본 성경인물과 심리분석』,한국목회상담연구소,1999.

이광순, 『한국교회의 성장과 저성장』, 미션아카데미, 2005.

이형기,『세계교회사1』, 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채수일, ‘오늘의 서유럽 교회, 어디로 가고 있나?’ in 『선교신학 18호 vol. Ⅱ』

        (한국선교신학회, 2008)

한미준, 『한국 개신교인의 교회활동과 신앙의식』, 두란노,1999.

       한국교회 미래 리포트』(서울:두란노,2005),





남정우 박사 프로파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육군군종목사(1988-1993)

러시아선교사(1993-1997)

서울여대 대학교회목사(2000-2005)

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2005-2009)

장신대 선교학과 교수(2009-현대)





[1] D. McGavran, A. Glasser, Contemporary of theologies of mission, 고환규 역,『현대선교신학』(성광문화사, 1987), 50.

[2] Rev Dr Eddie Gibbs, "Introduction and Literature Review," in They call themselves Christian, papers on Nominality  given at the lnternational Lausanne Consultation on Nominalism, ed. by Heather Wraight(Lausanne Committee, 1998), 10.

[3]. 위의 자료.

[4]. Ibid., p.81. 1995년 유엔에서 사용되어진 대륙별 자료에 따른 통계표이다. 관념적 기독교인들이란, 실제로는 교회 출석도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한 구체적인 헌신도 없으면서 관념적으로 ‘나는 기독교인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말한다.

[5]. 한미준,『한국 개신교인의 교회활동과 신앙의식』(서울:두란노,1999), 35, 81. 『한국교회 미래 리포트』(서울:두란노,2005), 146-149. 한편 천주교인의 주일미사참석율은 59.8%, 불교인의 법회참석율은 17.5%였다.

[6].참고. 김인수,“소비에트 철학의 역사적 배경 小考,”『장신논단 제2집』(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1986), 335-369. “교회와 혁명과의 관계에 대한 소고,” 『교회와신학 제28집』(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86), 77-117.

[7]. 로마제국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번영하기 시작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수도원운동의 발흥과 도나티즘 논쟁을 언급할 수 있다. 이형기,『세계교회사1』(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263-283.

[8] Rev Tom Houston, "Bible Character Studies," in They call themselves Christian, papers on Nominality  given at the lnternational Lausanne Consultation on Nominalism, ed. by Heather Wraight(Lausanne Committee, 1998), 120-135.

[9]. 참고. 이관직, "비운의 삶을 살다 간 롯," in『목회상담학자가 본 성경인물과 심리분석』(한국목회상담연구소,1999), 9-16.

[10] 삼상 9-31장, 마 9장 13절, 12장 7절, 계 3장 1절

[11] 요한 12:1-8절, 13장:21-30절.

[12] 니고데모에 관하여는 요 3:1-36, 7:50-51, 요 19:38-42,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하여는 마 27:57-60, 막15:43-45, 마27:57, 요 19:38-42 등을 보라.

[13] Rev Dr Eddie Gibbs, "Introduction and Literature Review," in They call themselves Christian, papers on Nominality  given at the lnternational Lausanne Consultation on Nominalism, ed. by Heather Wraight(Lausanne Committee, 1998), 15-16.

[14]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 보다는 인종적, 민족적 연대감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인들은 교회 다니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정교회 신자라고 말한다. 앵글로 색슨족도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성공회 신자라고 간주된다.

[15] 부모의 신앙이 기독교이므로,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 없이도 자연히 기독교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

[16] 부활절, 성탄절, 장례식, 결혼식, 추도식 등 기독교 종교 의식에는 참여하지만, 내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 일본에서는 누구든지 결혼식은 교회당에서 하기를 좋아한다.

[17] Grace Davie, Religion in Britain since 1945(Oxford, UK: Blacwell, 1944), 41.

[18] Rt Rev John Finney, "Evangelism in the 21st Century," in They call themselves Christian, papers on Nominality  given at the lnternational Lausanne Consultation on Nominalism, ed. by Heather Wraight(Lausanne Committee, 1998), 116-117.

[19]. Barry A Kosmin and Seymour P.Lachman, One Nation Under God(New York: Harmoney/

Cwowin, 1993),289

[20]. 이밖에도 오늘날 계속하여 명목상기독교인을 증가시키는데 가세하고 있는 교회 자신의 원인들에 대하여 로잔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언급하였다. ①회중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적절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②성경의 권위를 흔들어 놓고 있다.③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적인 분위기와 어조로 전하고 있다. ④상대방에 대한 민감성이 없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복음을 전한다. ⑤교회 소그룹 활동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⑥교회 예배가 문화적으로 상관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⑦교역자가 너무 자주 바뀐다. ⑧새신자가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채널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⑨교회가 개인적인 고민과  갈등을 풀어주지 못한다. ⑩제도적으로 뒤떨어지고 있다.

[21]. Leslie Francis와 Philip Richter, Gone but not Forgotten(HarperCollins, 1997), Table 11.

[22]. Peter Kaldor, Winds of Change. (Homebush West, NSW, Australia:Lancer Books, ANZEA Pub. 1994), 202-203. 만일 이들이 변하여 제정 러시아 말기에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처럼 공산주의자들이 된다면, 기독교회와 기독교 선교를 가장 위협하는 무서운 反기독교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에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강양욱 같은 이가 김일성 지지자가 되어 북한 교회를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핍박하는 무시무시한 주동자가 된 예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3] Michael J. Fanstone, The Sheep that Got Away (Eltham, London : MARC, 1993), 241-260.

[24] 참고. 김승연,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생명의말씀사, 2009), 6.

[25]. 필자가 5년 동안 담임목사로 섬긴 교회 성도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새신자들이 우리 교회를 선택하여 출석하게 된 주요 동기를 조사하였더니, “메시지가 좋아서.....” 라는 대답이 제일 많았다. 등록한 지 1년이 지난 성도들에게 다시 설문조사를 하였다. “왜 우리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까?” 물었더니, “친구가 있어서....” 라는 대답이 제일 많았다. 이런 현상은 여성보다 남성의 경우 더 심하게 나타나며, 젊은층 보다는 나이가 든 성도들의 경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서로서로 돌아보고 신앙적으로 격려해주고 우정을 증진시키는 모든 종류의 활동이 교회 안에서 계획되고 추진되는 것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본다.

[26] 채수일, ‘오늘의 서유럽 교회, 어디로 가고 있나?’ in 『선교신학 18호 vol. Ⅱ』

(한국선교신학회, 2008), 301.

[27] 참고. 이광순, 『한국교회의 성장과 저성장』(미션아카데미, 2005)


 

>> 목차고리 : [발제] 명목상 기독교인 선교를 위한 전략연구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A-Z




  인기검색어
kcm  525478
설교  252545
교회  218043
아시아  169588
선교  165449
예수  149148
세계  136684
선교회  123026
사랑  118540
바울  117812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