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21세기 한국의 선교신학을 위한 방향 진단(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1]
 자료출처  정흥호  성경본문  
 내용

21세기 한국의 선교신학을 위한 방향 진단


정흥호 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1. 들어가는 말


   1908년 조직신학자였던 마르틴 캘러는 “선교는 신학의 어머니”(Mission is the mother of theology)[1]라고 했다.  그는 이미 102년 전에 조직신학자로서 선교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신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연구이며 하나님을 연구하면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열정을 보게 된다.[2] 사실상 신학과 선교는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협력적이며 동반자적 관계에 있다. 잘못된 신학으로 바른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잘못된 선교의 방향에는 반드시 잘못된 신학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21세기에 들어서서 세계 선교의 선두주자 중 하나가 된 한국교회와 한국선교를 위해서 신학교육과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선교신학을 갖고 나아가야할 지 그 방향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10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150여 개국이 넘는 나라의 신학지도자와 선교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치를 높이 들고 한목소리로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학문과 실제의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2010년은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이런 세계복음화운동과 관련하여 한 세기 후의 한국교회가 선교의 열정을 지속시켜가기 위해 바른 선교신학의 기초를 제공해 주어야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선교의 최일선에는 선교사가 있다. 그 선교사들이 어떤 신학적 기반을 갖고 실제 사역에 임하느냐에 따라 그 선교의 방향은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 선교사들은 공식적 교육이든, 비공식적 교육이든 간에 어느 정도 신학의 배경을 갖고 현지에 나가게 된다. 또한 교회의 사역자들을 비롯하여 선교부에 관련된 사람들도 직접이든 간접이든 선교에 관하여 배우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총칭해서 “선교인들”(missioners)이라고 부를 경우, 이들이 어떤 선교신학에 기반을 두고 사역을 하느냐에 따라 세계복음화라는 “지상대위임”(the Great Commission, 마 28:18-20; 막 16:15; 행 1:8)을 온전히 수행하게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 방향성이 결정되기에 선교신학에 대하여 논의해 보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2. 선교신학의 경향 인식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선교학의 기초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와 구원, 그리고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는 기본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으로부터 선교에 관한 성경적인 이해가 신학적인 진리의 전제와 더불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선교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선교는 신학과 연관성이 별로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신학이 세계복음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생각들은 신학과 선교를 구분 지으려는 이원론적 패러다임으로부터 오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경향과 아울러 한 가지 지적해 볼 점은 선교를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사회과학으로부터 우선적으로 얻어진 방법론과 통찰력에 관심을 지나치게 쏟음으로써 선교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신학적인 강조점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일부의 학자들은 선교학이 지나치게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사회과학화되어간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3] 실제 사역현장에서도 테크닉과 경영기술적인 차원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현 상황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무분별한 실용주의적 접근방법을 적용함으로써 성경 말씀을 통한 교육이 약화되어가고 신학적 근거가 불분명한 방법이나 프로그램을 분별력 없이 도입해 사용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선교를 바라볼 때 사회과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많은 도움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적인 학문의 방법이 결코 기독교 선교를 위해 확실하고 궁극적인 안내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음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세계복음화의 과정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사회과학적 연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실천해 가기 위한 신학적 기초에 있다는 기본적인 대전제를 놓치지 말아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루어 보아야할 문제는 첫째, 신학적인 전제(theological presuppositions)가 무엇이며 어디에 기초해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일이 될 것이다. 둘째, 사역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할 성경적인 개념(a biblically informed concept of ministry priorities)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점들이 분명하게 세워지지 못한다면 신학교육 또한 “비신학화의 패러다임”(de-theologized paradigm)[4]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기본적인 대전제는 잃어버리고 실제로 유용한 것처럼 보이는 방법론에만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소위 성공을 위한 인간의 성취욕구가 동기유발을 가져오게 되면, 사람들은 선교에 관한 신학적인 기초는 보류하거나 유기한 채, 성공에 대한 방법론적 보장을 찾아 세상적인 접근방법마저도 마다하지 않고 사용하게 될 것이다.  성경 말씀을 상고하고 석의(exegesis)를 하기보다 오히려 사회를 “석의”하려 하고 선교전략을 결정하는데도 신학적 근거보다는 사회학적 방법론을 더 쉽사리 받아들이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결실의 생산성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사회과학적인 운영방법에 관한 기술적인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본질적인 신학의 문제는 간과해 버리기도 한다.[5] 


   사역의 효율성을 논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판단력과 분석에 우선권을 두게 된다면 자연히 신학의 비중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신학교에서 선교를 비롯한 신학교육 체계는 그 중심에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신학적 기초가 먼저 놓여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신학의 기초가 선교에 있고, 선교는 신학을 통해 방향성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한 예만 들어보아도, 세계복음화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소위 “지상대위임”은 성경에서 그 신학적 근거를 찾아 실제 현장에서 사역을 통해 입증하는 것이다(마 28:18이하; 막 16:15; 행 1:8).


   신학교가 교과과정부터 신학교로서의 목적과 특성을 살려나가지 못한다면 결국 신학교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며, 선교 또한 그 힘의 공급원을 상실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함과 동시에 선교적 관점에서 신학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제시할 것이냐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다루어할 필요가 있으며 신학교육에서 우선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작업도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


3. 신학교육의 경향 인식


   데이비드 헤셀그래이브는 복음주의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 가운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학문적인 경향 네 가지를 지적하였다.[6]  첫째로, 복음주의 신학 교육에서도 사회 과학적 방법을 우선시함으로써 정작 기독교인들로서 먼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관의 혼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실천행동을 정당화해 줄 수 있는 바른 신학의 기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과 신앙이 올바르지 못하면 그로 인해 나타나는 행동이 올바로 될 수가 없다. 신앙은 가시적인 결과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어떤 신학적 근거를 갖고 행동하는가를 판단하는 것도 기독교가 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다. 


   둘째는 중요한 신학의 통합 작업이 소홀해 져가는 면이 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이루어 가야할 세계 선교의 당위성, 성경신학, 해석학, 조직신학, 설교학 등등, 강조해서 가르쳐야할 부분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교과목이 선정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그와 관련된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는 과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학과간의 이기주의로 인하여 신학교육의 중심 사상을 뒤로 한 채, 실용적 현실주의에만 맞추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셋째로, 사역에 대해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행하기보다는 “직업의식”이 점차로 팽배해 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분명히 과거에 기독교 사역을 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목회나 선교 사역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점차로 소명의식이 약해지고 직업의식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믿음 선교”(faith mission)라는 용어가 차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 대신에 실제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예를 들면, 후생, 자녀교육비, 연금, 은퇴 후에 생활하는 문제 등등, 소위 세상적인 관심사와 같은 문제들이 사역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관심의 정도가 강하면 강해질수록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신학적 기초가 목회와 선교 사역에 우선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이차적인 조건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넷째로, 세계 복음화에 대한 비전이 점차로 약화되어갈 수 있다.  서구 선교사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은퇴하는 선교사들의 숫자를 채워주어야 할 신세대 선교사들이 은퇴 숫자만큼 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현재의 선교동향이 장기 사역자로 헌신하기 보다는 단기 선교를 “즐기는” 경향이 있으며, 전문인 선교사라고 하는 용어가 모든 선교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런 것은 비단 서구의 문제만이 아니라 벌써 한국의 선교에서도 그런 경향이 점차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학교에 따라 차이점이 있겠으나 벌써부터 신학교에서 선교학과에 대한 수요가 점차로 감소해 가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는 경영논리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흐름이 전체적인 신학교육을 주도하게 될 때 앞으로 신학과 선교를 연계시킬 수 있는 통합적인 장치의 기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학 교육에 있어서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강화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는 교회 교육으로 이어져 목회자들 자신부터 선교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생활 가운데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도 있게 된다.


   위에서 지적한 것을 선교 교육적 관점에서 요약해 본다면 두 가지 문제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사회 과학적인 차원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가려는 경향과 그런 것들이 세계 복음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관심에 지나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선교는 당연히 문화인류학적 방법과 사회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효율성 있는 사역의 방향을 찾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론적인 부분에 집착하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를 의지해야하는 믿음의 간과로 이어지게 되고 눈에 나타나는 현상에 의존하게 된다. 둘째는 선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성경신학과 교리의 중요성을 알고 교회를 선교사역에 동원시키며 선교사역도 과학적으로 경영해 나가야 한다는 심각성을 간과해 버리게 된다.[7] 첫 번째 지적의 보완점으로 두 번째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분야이든 일방적인 한 쪽의 강조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선교신학은 실천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신학적 교리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 가운데 복음전파의 효율성을 갖기 위해서 과학적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방법론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전에 분명한 신학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상호간의 점검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신학과 선교의 통합적 사고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논의하게 되는 배경에 있어서 모더니즘의 부정적인 영향이 신학교육에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다시금 선교적 관점에서 신학교육의 재강화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선교에 있어서도 그 우선성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어나갈 것이냐에 대한 재발견은 작금의 신학교육의 경향과 결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을 직시하고 성경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가려할 때 바른 신학교육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된다.


   복음주의 신학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무오한 계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학 자체가 무오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고백적인 요소로서의 신학은 항상 무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신학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해 점검되고 그에 충실하게 전개해 나갈 때 바른 신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8]


   무엇보다도 신학이란 분리된 개체로서의 학문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교회 안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하는 상호 공동체적인 성격이 있다.  따라서 신학의 목적은 단지 지식을 증가시키기 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바로 양육하는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학은 신학자나 신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이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 요소와 더불어 신학화 작업(theologizing)을 함께 해 나가야 한다. 토착화 과정에서 강조하는 것이 삼자원칙이었다; 자립행정(self-governing), 자립재정(self-supporting), 자립전도(self-propagating). 이에 신학과 선교의 관계성을 요약하는 선교적 적용은 “자립 신학”(self-theologizing)이라 할 수 있다. 각자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어떤 신학을 어떻게 적용해 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있어야 한다.


   선교신학적 관점에서도 상황 가운데 어떤 행동신학을 위하여 더 나은 방법이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대화되어가는 이 세상이 가져다준 급격한 변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고 또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성경 안에서 찾아 신학적 근거를 제시해 주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학이냐 선교냐 하는 이원론적 논의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비록 모든 신학적인 관점에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선교의 일치를 위해 협력관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고 정의하고 있는 신학적 문제, 예를 들면 창조주 하나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관, 죄의 문제 등등을 경시해 버리면서 서로가 일치되는 것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곧 인본주의적 통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 선교교육의 문제점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였고 그것을 듣고 영혼이 살게 된 것과 그렇지 않은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구약의 역사를 보더라도 노아와 아브라함(창 8; 12)을 통해서 언약을 내려주셨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따르고 지켜야 하는 신성한 명령이었던 것이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며 어떻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은 “지상대위임”에 대해 순종하고 성경 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실천하는 깊은 관계성 안에 있는 것이다.[9] 현대 선교역사에 있어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많은 헌신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교에 관심 있다고 하는 자들이 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인본주의적 발상으로 선교에 대해 가르치려했을 때 선교에 엄청난 손실과 부정적인 요인을 초래했던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선교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학생자원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의 중심 인물이었던 존 모트가 중심이 되어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the World Mission Conference at Edinburgh)가 개최되었다.  그때 선교사역의 목적은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어디든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고 그 사회의 문화적인 요소를 가장 잘 대변하는 그 나라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10] 복음을 더 잘 전하기 위해 별다른 신학적 논쟁이 없이 한 목적을 위한 일치를 보여준 모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1921년 국제선교대회(IMC)를 비롯하여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가 태동되고 소위 에큐메니칼 운동이 전개되면서 논쟁점들은 복음전파의 시급성 보다는 사회 정치적 논의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선교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선교의 열정이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선교신학의 변화가 있게 됨으로써 전통적인 개념에서 보는 선교의 열정이 약화되었다. 이런 경향에 속한 교회들은 전도와 선교보다는 사회적 봉사에 관심을 갖고 사역의 방향을 이끌어갔다.  전통적인 전도의 개념은 “개종”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 다원적 차원에서 거부되었고, “회심”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관심을 전환시키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화가 선교의 목적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세속화된 복음을 전하고 교회의 선교를 사회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였다.  결국 전통적으로 강조해 오던 선교의 개념은 사라져버리고 인간 삶에 초점과 관심을 쏟으므로 성경적인 선교관으로부터 궤도를 달리 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위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찾기 위한 전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정을 갖고 사역에 임하기보다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하는데 그 우선성이 있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의 문제보다 인간 상호간의 화목을 강조하였고, 선교사역의 초점도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교회를 세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 연합, 투쟁 등 새로운 세계질서라는 정치 사회적인 차원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죄의 용서함을 받고 구원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복음의 메시지와 전통적 의미의 교회의 존립 목적을 약화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자연히 신학교의 교과과정 자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2/3세계 신학교에서 인간의 권리나 계발 및 계급 없는 사회와 같은 연구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내용에도 선교, 전도, 회심, 구원, 계시, 교회와 같은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지난 과거에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던 의미를 크게 벗어나고 말았던 것이다.[11]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을 통해 믿어져야만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이 메시지는 선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라는 성경적인 개념과 더불어 신학과 선교학은 개인적인 회심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기독교의 명제이며 어떠한 목적을 이루려 하든지 간에 이것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양보하거나 실패해서는 안 된다.[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이며 윤리적인 변화와 더불어 하나님의 구속적인 활동을 보여준 것이었지, 단지 로마의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나 억압과 부정의한 세금을 종식시키고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선포수단이 아니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했던 것이다.[13]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전하여할 복음이며 신앙의 중심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세상이 아무리 다양한 문화로 둘러싸여 있더라도, 이 원리의 중심에는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곧 기독교 신앙 가운데 본질적으로 선교의 속성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과 동시에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다양한 문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역동적인 하나님의 선교(요 14:6)를 발견하고 전파하는 것이 선교를 확장해 가는 근본적인 사역이라 말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 안에서 각자의 문화가 존중되어야 하나 문화 자체가 하나님의 초월적 진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14] 우리가 어떤 문화이든지 존중하는 자세로 대해야 하지만,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문화 안에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죄악된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 안에는 인간들의 문화적인 요소와 타협할 수 없는 초문화적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이든지  복음이 문화적인 형태를 탈피하게 되면 그것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음 그 자체가 어떠한 문화적 형태에 제한받는다는 것은 아니며, 복음은 모든 문화를 초월한 진리로 존재한다는 이중적이고 동시적인 면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신학과 선교 교육에 있어서도 이런 점들이 부각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현 세상의 물결에 견디지 못하고 다원주의화, 혼합주의화될 가능성에 노출되는 것이며 작금의 몇몇 신학교에서는 이미 그런 양태를 보여 왔다.  신학교 교육에서부터 하나님관, 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성경관(the authority of the Bible)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지 못하다면 선교의식이 사라질 것이고 이것은 또한 교회성장에도 많은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이미 서구 유럽의 신학교들과 교회들이 역사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성장과 선교의 성장은 반드시 정비례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보며 현 한국교회의 선교적 위치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문화적 상황 가운데서 말씀하셨고, 지금도 변화하는 세계와 인간 문화의 모든 형태 안에서 성경을 통하여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다. 동시에 끊임없이 “교회는 개혁하는 것이며 또한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 것”(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15]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선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의 개혁적 선교행위의 활성화에 따라 교회의 성장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선교의 방향에 가장 심각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신학교육과 선교교육은 밀접한 관계성을 갖고 있다.

    


5. 선교적 신학교육을 위한 제안


   먼저 모든 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우선해야할 것이라면 교회와 선교 사역에 있어서 성경 신학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이런 것이 교육에 반영되어야 한다.


   윌버트 쉥크(Wilbert Shenk)는 사회변화에 대해 직선적이거나 진화론적인 모델에 근거하여 현대화의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개발도상 국가들에서조차 거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지적한다.[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사회적, 경제적 개발 프로그램은 이렇게 결점을 보여준 모델에 기초하여 세계 이차 대전 이후 더 늘어나고 있다.  사회의 이런 의식이 교육 현장에 적용되어 직선적인 발전모델에만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정작 인성교육에 관한 점은 자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교육의 “hardware”에 초점을 맞추고 평가기준을 두었지 정작 “software”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제대로 두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선교적 신학교육에 있어서 사회의 발전모델, 혹은 경영방법을 적용하게 되면서 성경신학에 기초한 원리와 전제를 경시하게 되고, 시대의 조류에 부합해야 한다는 명목 아래 사회학이나 인류학에 더 비중을 두어 신학교육을 이끌고 간다면 결코 한국선교의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 없다.  앞서 지적한대로, 기독교 역사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이것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현재의 교회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소위 복음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신학교의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정립될 수 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하나님 중심성의 역사와 신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회 인류학적 학문의 접근방법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요 3:16)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성경 신학에 굳건하게 기초되어있을 때 비로소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고 지금도 그렇게 역사하고 계신다.  그에 대한 분수령은 바로 성경의 권위를 지속시켜나가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며 신학교육의 성패 또한 성경에 담겨있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순종하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신학교는 우선적으로 학자를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목회자와 선교사를 양육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 가운데 학자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는 교육의 기초가 전적으로 성경의 권위에 서 있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다.  성경은 구원의 “복된 소식” 그 자체이다.  성경이 곧 효과적인 선교전략 그 자체이다.  이런 믿음 위에 다른 보조물이 세워져야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모두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계획이며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지상대위임에 순종함으로써 이것을 가르치라는 선교 사역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 세계에 전할 수 있는 기초가 신학교육에서부터 이루어져야한다.


   선교적 신학교육에 있어서 요체는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을 갖고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인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행 20:21)을 증거함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함에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기 위한 복음전파와 교회의 사역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학의 연구와 교육도 이 세상 가운데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가르침이 그 근본 원리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며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기초되어 있어야함을 말한다.  따라서 모든 신학연구는 세계복음화라는 기치에 초점이 맞추어져야하며 이 과제는 교회의 사역을 통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학교육이 지원해 주어야 한다.  교회성장과 신학교육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올바른 신학교육을 펼쳐나가지 못한다면 교회가 성장할리 만무할 것이며,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면 신학교가 바로 서 나갈 수 없다는 증거를 이미 서구의 많은 교회들이 보여주었고 지금도 그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6. 결 론


   앞으로 나오게 될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위한 훈련에 책임을 지고 있는 신학교육과 세계선교의 진전을 위해서도 올바른 신학교육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방향을 전략적 차원에서 제시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인류학에 대해서, 사회학에 대해서 잘 모른다할지라도, 선교는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선교가 올바른 신학에 근거해 있지 못한다면 그 선교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많은 분야에서 제각기 방안을 강구하여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획하면서 선교전략을 세워나가고 있다.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들인 것만 틀림없지만, 반드시 있어야 할 “최고 최대의 전략”이 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런 것들은 근본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부분적인 전략이 되는 것들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최선의 전략은 최고의 전략가로부터 반드시 나와야 한다.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선교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문화의 형태에 따라 전달과정 속에서 다른 옷을 입고 포장될 수는 있어도 그 속에 변질될 수 없는 독특한 신학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17] 성경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가 언제나 중립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문화이든지 성경적 세계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으며 각각의 문화 안에는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죄악된 요소들이 있게 마련이다.


   칼빈이 그 당시 부패한 사회를 향하여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증거하고 선포했다면 오늘날 현대사회의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외치고 선포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무지와 허무, 빈곤과 연약함, 타락과 부패를 보았다. 그에 반해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 모든 선한 것의 부요하심과 순결하심, 의로우신 분임을 복음을 통해 보았던 것이다. 서구 사회를 비롯하여 범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살인, 자살, 알콜중독, 마약, 동성연애 등등, 사회적 부도덕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삶의 방법이나 추구하는 목적이 결코 물질적인 번영이나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실재(res ipsa)이다.


   인간은 이미 과학적 발달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인류의 타락과 부패가 늘어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서구의 물질문명을 추구하고 있는 2/3 세계에 있는 나라들조차 서구사회가 겪고 있는 실수를 그대로 답습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경제적인 만족이나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영적 갈급함을 결코 채워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18] 선교에 헌신하는 자들은 복음의 능력을 믿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3:2; 4:17)고 외쳤다.  마가복음 기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하면서 복음을 알고 믿게 되는 전제를 회개에 두고 있다.  인간은 예외 없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여기에 복음의 기초가 놓여있고 복음의 능력이 들어있다.  따라서 이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사도행전 16:30-32에 근거하여 쉐이퍼는 풀이하기를, “신앙의 참된 기초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다. 내가 믿는 행위는 구원받게 하는 기초가 아니다. 그 기초는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기독교 신앙은 밖에 있는 어떤 객관적인 인격을 향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19]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것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명제(proposition)인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하며 죄인인 것을 고백해야 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에는 복음에 대한 핵심적인 네 가지가 들어있다고 쉐이퍼는 풀이하고 있다.[20]


     첫째,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단지 낱말이나 개념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믿느냐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죄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단지 죄책감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도덕적 죄를 포함하는 것이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그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담당하였으며 그 대속적 사역이 완전히 성취되고 완성된 것을 믿느냐는 것이다.  넷째, 우리와 의사소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믿으며 자신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핵심을 증거한 것이나 칼빈이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복음이나 쉐이퍼가 보고 있는 복음의 내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증거한 복음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행 20:21).  바울은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가장 먼저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복음을 전달하는 사역자들은 가장 먼저 복음에 담겨있는 “구원의 심각성”을 자각해야 하며 이 구원이라는 하나의 공동목표를 가지고 “구원의 대한 소망”(earnest desire of salvation)을 이루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21]


   무엇보다도 선교신학의 근간은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열정을 항상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구원론의 동기는... 선교연구의 불타는 심장”[22]과도 같은 것이다. 이 구원론에 대한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신학의 유형이 달라지고, 선교의 방법론이 좌우되며, 선교를 수행해 가는 방향이 크게 다르게 된다.

 

   분명한 구원론에 입각한 복음의 본질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선교신학의 방향 자체가 흔들리고 만다. 이에 기초하지 않은 사역은 하나의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으로 끝나버릴 우려가 있다. 이 구원의 복음은 “복음의 진리”(h` avlh,qeia tou/ euvaggeli,ou, the truth of the gospel, 갈 2:5, 14)로써,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타협할 수도, 양보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본질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의 열심은 전적으로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는데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23] 이는 잘못된 신학이 범람하는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시금 되새겨보고 적용해야할 선교신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총체적 차원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면 교회와 선교 사역에 있어서 성경신학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이런 것이 교육에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성경신학의 기초에는 선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학교의 정체성을 찾으려한다면 모든 교과과정의 중심에는 반드시 선교적 신학교육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내려주신 지상대위임(the Great Commission)이기 때문이다.







참고도서 목록


Bosch, David J. Transforming Mission. 재인용. New York: Orbis Books, 1991.


Escobar, J. Samuel. "Mission Studies Past, Present, and Future."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Vol. XXIV, no. 1(January 1996).


Glasser, Arthur. "The Whole-Bible Basis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3.


Hesselgrave, David J. "The Role of the Academy in Current Evangelical Malaise."       In Trinity World Forum (Winter 1995).


        . "To Whom Are We Listening?" In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ns. Vol. 11:1 (January 1994).  


McGavran, Donald. "New Mission: A Systematic Reinterpretation of the Concepts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1.


Netland, Harold A. "Theology and Missions: Some Reflections on an Ambivalent       Relationship" In Trinity World Forum (Spring 1994).


Redding, Graham. "Global Challenges that Affect Theological Education Today."        http://www.pcusa.org/today/believe/past/may04/reformed.htm.


Rommen, Edward. "The De-Theologizing of Missiology." In Trinity World Forum       (Fall 1993).


Scherer, James A. "Church, Kingdom, and Missio Dei." In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New York: Orbis Books, 1993.


Schenk, Wilbert. "The Role of Theory in Mission Studies."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Vol. XXIV, no. 1 (January 1996).


Verkuyl, Johannes. "The Biblicl Notion of Kingdom." In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eds. Charles Van Engen and others. New York: Orbis Books.           1993.








[1] 재인용. 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New York: Orbis Books, 1991), 16.

[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3] Harold A. Netland, "Theology and Missions: Some Reflections on an Ambivalent Relationship" In Trinity World Forum (Spring 1994), 2.

[4] Edward Rommen, "The De-Theologizing of Missiology." In Trinity World Forum. (Fall 1993), 2.

[5] Ibid., 3.

[6] David J. Hesselgrave, "The Role of the Academy in Current Evangelical Malaise." In Trinity World Forum (Winter 1995), 3-4.

[7] David J. Hesselgrave, "To Whom Are We Listening?" In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ns. Vol. 11:1 (January 1994), 7.

[8] Harold A. Netland, "Theology and Missions: Some Reflections on an Ambivalent Relationship" In Trinity World Forum (Spring 1994).

[9] David J. Hesselgrave, "To Whom Are We Listening?" In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ns. Vol. 11:1 (January 1994), 3-5.

[10] James A. Scherer, "Church, Kingdom, and Missio Dei." In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New York: Orbis Books, 1993), 83.

[11] Donald McGavran, "New Mission: A Systematic Reinterpretation of the Concepts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1), 50-53.

[12] Johannes Verkuyl, "The Biblicl Notion of Kingdom." In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eds. Charles Van Engen and others(New York: Orbis Books. 1993), 73.

[13] Arthur  Glasser, "The Whole-Bible Basis of Mission." In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3), 37.

[14] J. Samuel Escobar, "Mission Studies Past, Present, and Future."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Vol. XXIV, no. 1(January 1996), 24.

[15] Graham Redding, "Global Challenges that Affect Theological Education Today", http://www.pcusa.org/today/believe/past/may04/reformed.htm.

[16] Wilbert R. Shenk, "The Role of Theory in Mission Studies."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Vol. XXIV, no. 1(January 1996), 37.

[17] 정흥호, 『복음과 상황화』(서울: CLC, 2004), 29.

[18] Ibid., 45

[19] 프란시스 쉐이퍼, 『기독교 철학 및 문화관』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3), 205.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행 16:30-32)

[20] Ibid., 207.

[21] 한철하, “ACTS 신앙운동에 있어서의 ‘구원의 심각성’ 공동자각의 위치” (Unpublished, 2000), 1.

[22] J.D. Gort, "Human Distress, Salvation and Meditation of Salvation," in Verstraelen, Camps, Hoedemaker and Spindler, 195. 재인용. 스티븐 B. 비반스 & 로저 P. 슈레더,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 124.

[23]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avna,qema e;stw, a curse let him be)Å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9)



 
>> 목차고리 : [발제] 21세기 한국의 선교신학을 위한 방향 진단 -> 응답
                    신학선교
                    신학교회사한국교회사 > 성회(기독교 집회) >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단체 > 선교단체 >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A-Z




  인기검색어
kcm  321544
설교  165897
교회  119887
아시아  95444
선교  91680
세계  81500
예수  79186
선교회  69624
사랑  65811
바울  65555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