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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신학용어사전  작성일  2010-05-17
 제목  벨직신앙고백
 주제어  [신앙고백]
 자료출처  백영희 목사  성경본문  
 내용

제 1 조  
유일하신 하나님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으로 불리는 유일하시며 단일 본질의 영적 존재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 그는 영원하시며 다 알 수 없으며 보이지 않으며 불변하시고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완전히 지혜로우시며 정의로우시며 선하시며 모든 선이 넘쳐  흐르는 원천이다.


제 2 조  
하나님의 인식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을 두 방법으로 안다. 첫째는 우주의 창조와 유지와 통치를 통한 것인데, 이 우주는 우리 눈 앞에 있는 가장 훌륭한 책과 같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많은 피조물들이 글자와 같아서 그것들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롬 1:20)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과 같이 하나님에 관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우리가 명상하도록 인도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여 사람들이 변명할 수 없게 된다. 둘째는,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말씀으로 더 분명하고 충분히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알리신다. 즉 현세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에 관하여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만큼 우리에게 알리신다.


제 3 조  
성경에 관하여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뜻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고 사도 베드로가 말한대로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대로 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하나님은 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히 배려하셔서 자기의 종들, 즉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자기의 계시된 말씀을 글로 쓰도록 맡기셨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판에 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글을 성경이라고 부른다.


제 4 조  
성경의 정경들에 관하여 :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의 두 책으로 되어 잇고 이 책들은 정경이어서 이 책들에 대한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구약성경의 책들: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의 두 책들, 파라리포메논이라는 열왕기의 두 책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세 책들, 즉 잠언, 전도서, 아가서; 네 대예언자들, 즉 이사야, 예례미야, 에스겔 및 다니엘; 그리고 12 소 예언자들, 즉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신약성경의 책들: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바울의 14편지들, 즉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두 편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두 편지,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다른 사도들의 일곱 편지들, 즉 야고보가 보낸 편지, 베드로의 두 편지, 요한의 세 편지, 유다의 편지; 사도 요한의 계시록 등이다.


제 5 조  
성경의 권위에 관하여 : 우리는 이 모든 책들을 우리의 신앙의 조정과 토대와 확인이 되는 거룩한 정경으로 믿는다. 교회가 이 책들을 정경으로 받고 또 동의하였기 때문만이 아니고 그 책들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과 또 그 증거가 그 책들 자체 안에 들어 있음을 성령이 우리 마음에서 증거하기 때문이다.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구별에 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성경을 외경과 구별한다. 즉 제 3, 제 4 에스드라서, 토빗트, 유딧, 지혜서, 예수 시락, 바룩, 에스더 부록, 가마솥 속의 세 자녀의 노래, 수산나의 이야기, 벨과 용의 이야기,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의 두 책들이 외경이다. 이 모든 외경들은 정경의 책들과 일치하는 한 교회가 읽교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외경들은 우리가 그 책의 증거에서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어떤 요점을 확정할 만한 힘과 효과를 얻기에는 거리가 먼 책들이다. 더구나 이 외경들이 정경의 권위를 저하시킬 수 없다.


제 7 조  
성경의 완전성에 관하여 :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 할 것은 거기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대체로 기록되어 잇기 때문에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부당하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아니, 비록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어떤 것을 보태든지 혹은 거기서 어떤 것을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교리는 어떤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다. 사람이 쓴 어떤 신성한 책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성경과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고하기 때문에 관례, 대중, 고전, 연륜, 전승, 회의들, 법령들, 혹은 제도 등등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이며 공허 그 자체보다도 더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이 절대무오한 규칙과 조화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배격하는 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대로이다. "영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는지 시험해 보라". 또한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와서 이 교리를 전하지 않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라".


제 8 조  
동일 신성의 삼위일체에 관하여 : 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을 믿는데, 그는 하나의 단일 신성을 가지신 삼위이며,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 곧 성부, 성자 및 성령은 실질적으로, 참으로, 그리고 영원히 구별된다.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며 기원이시다.

성자는 말씀이니, 성부의 지혜이며 형상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 영원한 능력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별에 의하여 하나님이 셋으로 분리되지 않았으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부, 성자 및 성령은 각각 자기 품격을 가지시며 그들의 특질에 의하여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양으로 삼위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또한 성령은 성부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삼위는 나눠지거나 서로 혼돈되지 않는다. 성부는 육신을 입지 않으셨고 성령도 또한 그러하고 성자만이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성부는 성자 없이, 또한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삼위는 다같이 영원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첫 째되는 분도, 또 나중 되는 분도 없다.


제 9 조  
성경이 증거하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 모든 진리는 성경의 증거들은 물론 삼위의 역사, 특별히 우리 자신들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에 의하여 우리가 안다. 이 삼위일체를 믿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성경의 증거들은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을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 또 창세기 3장 22절에서 말하기를 "이제 이 사람들이 우리들처럼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로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 안에는 한 품격 이상의 품격들이 있는 듯하다. 또 그가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할 때는 통일성을 의미한다. 몇 품격이 계시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애매했던 것이 신약성경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된다.

우리 주님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의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성자가 물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이 형식은 또한 모든 신자의 세례의식에 쓰이도록 그리스도가 제정하셨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라."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이라, 우리 주님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아가씨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또 같은 모양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그리고 "하늘에 기록된 자,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세 분이 계시며 이 세분은 곧 한 분이시라." 위의 모든 곳에서 보면, 세 품격이 계시되 한 거룩한 본질을 가지신 것을 충분히 가르친다. 그리고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되 내세에 하늘에서는 완전한 지식과 은총을 향유할 것을 기대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 삼위의 우리를 위한 특수한 직책과 역사(役事)를 살펴야 한다. 성부는 그의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아들은 그의 피에 따라 우리의 구주이며 구원자로,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재하심에 따라 성화자라고 불리운다. 사도시대 이후로 바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참된 교회는 유대교인, 마니교인, 어떤 거짓 크리스찬들과 이단들, 즉 마르키온, 프라키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태누스, 아리우스와 그리고 정통교부들로부터 정식으로 정죄된 사람들에 대항하여 이 삼위일체 교리를 언제나 변호하고 보존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사도신조와 시케아 신조와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받아들인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의 교부들이 합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인다.


제 10 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신성에 따라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서 지음을 받지 않고(만일 그렇다면 그는 한 피조물일 것이다) 영원부터 탄생하셔서 아버지와 같은 본질을 가지시며 같이 영원하시니 그 아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형상이시며 그의 영광을 환히 드러내셨으며 모든 것에 있어서 그와 평등하심을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우리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때부터 만이 아니고 영원버이니, 이러한 증거들을 함께 비교해 보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그대로이다. 모세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다. 요한은 만물이 말씀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한다. 또 사도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통하여 세계를 지으셨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이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으셨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아들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그가 만물이 창조되던 그 때에 존재하셨다. 그러므로 예언자 미가가 말하기를 그의 근본은 태고에, 영원으로부터이니라. 사도는 말하기를 그는 생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참된, 영원한, 그리고 능렷 있는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그를 찾고 예배하며 섬기는 것이다.


제 11 조  
성령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
우리는 또한 성령이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으므로 그는 지음을 받거나 창조되거나 또는 탄생하신 분이 아니고 다만 성부와 성자 두 분에게서 발생하신 분임을 믿고 고백한다. 그는 삼위일체의 순서에 있어서는 세 째의 위격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같이 하나의 동일한 본질과 존귀와 영광을 가지신 분이며,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듯이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제 12 조  
세계의 창조와 천사에 관하여 : 우리는 성부가 그의 아들인 말씀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무에서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개개의 피조물에 존재와 형태와 모습과 창조주를 섬길 몇몇 직책들을 주셨다고 믿는다. 또 그는 인류에게 봉사하며 사람이 자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그의 영원한 섭리와 무한한 능력으로 피조물들을 지금도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고 우리는 믿는다.

하나님은 또한 천사도 선하게 창조하셔서 자기의 사자가 되어 선택된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어떤 천사들은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탁월한 성질에서 타락하여 영원히 멸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다른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종 여일하게 본래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악마들과 악령들은 타락하여서 자기들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 하나님과 모든 선한 일의 원수가 되어서 교회와 교회의 개개 회원을 유린하려고 지켜보며 또 그들의 악한 획책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살인자들처럼 행한다.

그리하여 자기들 자신의 악 때문에 영원한 정죄를 받아 날마다 무서운 고통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물들과 천사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의 과오와 또한 악마들은 독자적인 기원을 가진 존재라든지 또 부패된 것이 아니고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하는 마니교도들도 우리는 배격하며 혐오한다.


제 13 조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 우리는 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것들을 저버리시거나 혹은 운명과 우연에 맡기시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그것들을 지배하시고 통치하셔서 그의 작정 없이 아무것도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으나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아니시며 또 범행된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는 분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그의 능력과 선은 너무도 위대하고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이며 악마와 악인들이 비록 불의하게 행할 때일지라도 그는 가장 탁월하고 정의로운 모양으로 자기 일을 정리하시고 실행하시기 때문이다. 또 그가 사람의 이해를 능가하여 행하시는데 대하여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능력이 허락되는 한도를 넘는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려 하지 않고 오직 우리는 최대의 겸손과 존경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리워진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며, 우리로 이러한 한계를 넘지 않고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만을 알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으로 족하게 생각한다.

이 교의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는데 그 까닭은 어떠한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닥치지 않고 오직 가장 은혜로운 하늘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생기는 것임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배려로써 우리를 염려하여 주시고 자기에게 속하는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시며 우리의 머리털 한 가닥도(왜냐하면 그 털들은 모두 헬 수 있기 때문에), 또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참으로 신뢰할 수 있다. 그 까닭은 그는 악마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제압하셔서 그의 뜻과 허락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무 것도 상관하시지 않고 모든 것을 우연에 맡겨 두신다는 에피큐리안들의 사상의 저주할 만한 과오를 우리는 배격한다.


제 14 조  
인간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부패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시되 자기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지으시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뜻에 일치되게 사람이 뜻하도록 하기 위하여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지으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이 영예로운 가운데 있었으므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또 자기의 탁월한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죄에 복종시키고 그 결과 죽음과 저주를 받게 되고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받은 생명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또 죄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기의 본성이 전부 부패되어 자기 자신이 육체적으로 또 영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악하고 왜곡되고 그리고 자기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부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받았던 자기의 탁월한 소질들을 다 상실하고 다만 몇 가지만 남아 있으나 이것으로써도 사람이 변명할 수 없게 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인간 안에 있는 모든 빛은 어둠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대로이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그 빛을 알지 못하였다. 요한은 사람을 어둠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모든 교훈을 배격한다. 사람은 죄의 노예에 지나지 않으므로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예수가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셨으므로 누가 스스로 어떤 선을 행할 수 있다고 감히 자랑할 수 있을까?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누가 자기 자신의 뜻을 찬양할 것인가? 자연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하는 것을 얻지 못하므로 누가 자기의 지식을 말할 것인가? 요컨대 우리 자신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그런 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알면 누가 감히 어떤 사상을 암시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사도가 말한 것을 올바로 그리고 확고하게 주장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자기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도록 뜻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이해에 일치할 수 있는 뜻과 이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것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실 때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제 15 조  
원죄에 관하여: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미쳐간 것을 믿는다. 그 죄는 인간성 전체의 타락이며 유전적인 병이며, 이 병 때문에 유아라 할지라도 모태 안에서 전염되는 것이며, 사람 안에서 모든 종류의 죄를 만들며 그 죄가 뿌리를 박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모든 인류를 정죄하시기에 넉넉하다. 이 원죄는 세례의식으로도 박멸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나듯이 죄가 이 무서운 원천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가되어서 멸망하게 못하고 그의 은혜와 자비로 그들은 용서를 받는다. 이것은 그들이 죄 가운데서 안주하지 않고 오직 타락을 의식하고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을 받고자 신자들을 이따금 탄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다만 모방하고 생긴다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파의 과오를 배격한다.


제 16 조  
선택에 관하여: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 이처럼 우리의 최초의 부모의 죄로 인해 멸망과 파멸로 떨어졌지 깨문에 하나님은 자기 본연의 존재, 즉 자비롭고 정의로우신 분으로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신 것으로 믿는다. 그는 자비로우셔서 자기의 영원한 불변의 뜻과 선의에 따라 사람들의 행위를 돌보지 않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출하시고 보존하신다. 그는 정의로우시므로 그 밖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개입된 타락과 멸망에 그대로 버려 두신다.


제 17 조  타락한 인간의 회복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놀랄 만한 지혜와 은혜로써 이렇게 육체적 및 영적 죽음에 떨어져서 자신을 전적으로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인간을 살펴보시고 자기의 목전에서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에 즐겨 찾으시고 위로하시며 자기의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아들은 여자에게서 나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실 분임을 믿는다.


제 18 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옛날에 조상들에게 거룩한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그가 정하신 때에 자기의 독생자이신 영원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이것을 이루신 것을 믿는다. 그 아들은 종의 형상을 취하셔서 사람과 같이 되셨고, 모든 연약함을 지닌 참된 인간성을 취하셨으나 사람의 방법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태내에서 수태되었다.

그는 다만 몸으로만 인간성을 취하신 것만이 아니고 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참된 인간의 영혼도 취하셨다. 그가 몸과 영혼을 다 구원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다 취할 필요가 있었던 까닭은 영혼과 함께 몸도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의 어머니의 몸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재세례파 신도들의 이단설을 반대하고 그리스도는 어린이들과 같은 몸과 피를 공유하고 계심을 믿는다.

즉 그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어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씨, 여자에게서 나서 다윗의 후손 이새의 뿌리에서 나셨고 유다의 지파이다. 육신으로는 유대인에게서 나셨고, 아브라함의 씨를 받아 모든 것에 있어서 죄를 제외하고는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리하여 참으로 그는 우리의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다.


제 19 조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연합과 구별에 관하여:
우리는 이 수태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품격이 인간성과 불가분리적으로 연합된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둘이 아니며 또한 두 품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두 본성이 단 하나의 품격으로 연합되었다.

그러나 각 본성이 그 자체 독특한 자질을 보유한다. 그리하여 그의 신성이 언제나 비피조물로서 남아 있어서 시작하거나 끝나는 날도 없이 하늘과 땅을 채우시는 것처럼 그의 인간성도 그 자질을 잃지 않고 피조물로서 남아서 유한한 존재로서 시작하는 날이 있고 실질적인 몸의 모든 자질을 보유한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여 그의 몸을 불멸하게 하였으나 그러나 그의 인간성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정도로 우리의 구원과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사실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의 신성과 인간성은 한 품격으로 아주 밀접하게 연합되었으므로 그가 죽었어도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죽으실 때 그의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신 것은 그의 몸에서 떠나던 진짜 사람의 영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의 신성이 그의 인간성과 연합하여 그가 무덤 속에 누워 있었을 때에도 함께 하였다.

그리하여 신격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재하신 적이 없었으니 그의 유아기에는 그 신격이 비록 얼마 동안에는 크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역시 같이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임을 고백한다. 즉 자기 힘으로 사망을 정복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자기 육신의 연약함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을 수 있던 참 사람이시다.


제 20 조  
그리스도의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에 관하여:
우리는 전적으로 자비로우며 또 전적으로 정의로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본성을 취하시고 그 본성으로 죄의 값을 치르도록 가장 괴로운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죄의 벌을 짊어지게 하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자기에게 돌리셨을 때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대하여 자기의 정의를 발휘하셨고, 그리고 죄를 짓고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단순하고 완전한 사랑으로 자기의 자비와 선의를 쏟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음에 넘겨 주시고, 그리고 그를 통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게 하셨다.


제 21 조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서약을 통하여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에 임명되어서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서 십자가의 제단에 자신을 바쳤을 뿐더러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값진 피를 뿌리시고 아버지의 진노를 가시게 하기에 충분한 보상을 치르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그것은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상처를 입으셨으며, 우리의 악생 때문에 찢기셨고 그가 징벌을 받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고 그가 매를 맞고 우리를 고쳐 주셨고 그는 어린 양처럼 도살장으로 이끌려 가서 사형 죄수들의 손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가 처음에는 그의 무죄를 선언하였으나 범인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빼앗아가지 않았떤 것을 찾아 돌려 주셨으며 또 불의한 자를 위하여 의로운 분이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의 몸과 영혼이 다같이 우리의 죄 값에 해당하는 무서운 벌을 경험하셨으며 그의 땀은 땅에 쏟아지는 핏방울처럼 되었다.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립니까고 부르짖으셨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죄의 용서를 위한 일이었다.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ㅎ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존귀함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고 또 쓰레기로 여겼다고 말할 수 잇다.

그의 상처에서 우리는 온갖 모양의 위로를 얻는다. 신자가 영원히 완전할 수 있도록 된 그리스도의 바치신 또 한 번만의 이 희생 밖에는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을 찾거나 발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가 르를 예수 즉 구주라고 불렀으니 그 까닭은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 22 조  
믿음으로 의롭다 함에 관하여:
성령은 이 위대한 신비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참된 신앙의 불을 붙이심을 우리가 믿는다. 신앙은 모든 공로를 가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며 그를 소유하며 그 분 밖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든지 아니면 모든 것이 다 그 분 안에 있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믿음을 통하여 그 분 안에 있는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느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대단히 큰 모독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반구주(半救主)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믿음만으로, 혹은 행위 없는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잇다. 그러나 보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믿음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그 까닭은 믿음은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거나 우리를 대신해서 행하신 많은 거룩한 공로와 일들을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가 그의 모든 은총 안에서 그와 계속 교통하도록 해주는 도구이니, 그 은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 그것들은 우리의 죄를 사면하기에 충분하다.


제 23 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의 의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죄의 용서에 있으며, 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우리의 의도 그 사죄에 있다고 믿는다. 다윗과 바울은 이것이 사람의 행복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로를 묻지 않고 의를 넘겨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바울은 또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하여, 또 그에게 있는 구원을 통하여 거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며 우리 자신이 그 앞에서 겸손하여 이 튼튼한 터전을 언제나 견지하며,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러함을 인정하고 우리 안에 있는 아무 것에도 혹은 우리의 공로에도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순종에만 의지해야 하나니, 우리가 그를 믿을 때 그의 순종은 우리의 것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죄과를 가리우며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갈 자신을 우리에게 주기에 충분하다. 즉 두려움과 떨림에서 해방되어 우리의 처음 시조 아담의 모범을 따르지 않으니, 그는 두려워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우려고 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려 할 때, 우리 자신이나 또는 아무리 작은 다른 피조물에라도 의지하면 우리는 멸망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윗처럼 기도해야 한다. 오 주여 당신이 당신의 종을 심판하지 마소서, 당신 앞에서는 살아 있는 아무도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제 24 조  
사람의 성화와 선행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써 또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사람이 얻는 이 참된 신앙이 사람을 중생시켜서 새 사람을 만들어서, 새 생활을 하게 해 주며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의인(義認)의 신앙이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든지, 또 반대로 의인의 신앙 없이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으로서 아무 것도 행할 수 없고 다만 자기애(自己愛) 때문에, 혹은 저주가 무서워서 행한다는 견해는 진실에서 아주 멀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신앙이 사람에게 있어서 결실이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그 까닭은 우리는 헛된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참된 믿음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니 이 믿음은 사람을 격려하여 하나님이 자기 말씀으로 명령하신 일들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이 행위들은 신앙의 좋은 근원에서 생긴 것이므로 선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상할 만한 것이니 그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성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위들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데는 아무 효력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행을 행하기 전일지라도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의한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나무 자체가 선하기 전에는 그 나무의 열매가 좋은 것이 될 수 없는 사실 이상으로 우리의 행위가 선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되 그것으로 공로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무슨 공로를 세울 수 있겠는가?). 아니,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선행을 위하여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이고 그가 우리를 바라보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그의 기뻐하실 일을 뜻하게 하시며 또한 그 일을 행할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경청하자. 너희가 명령대로 이 모든 일을 다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때가 오면 하나님이 선한 일에 보답하실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으나 그러나 그가 자기의 선물을 자기의 은혜를 통하여 갚으신다. 더구나 우리가 선행을 행하여도 그 일에서 우리의 구원을 찾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욕심으로 오염되어서 벌을 받을 만한 일 밖에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행할 수 있을지라도 한 가지 죄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하나님이 그 일들을 배격하시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언제나 아무 확실성 없이 의심을 품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할 것이며, 또 우리의 빈양한 양심이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제 25 조  
의식의 율법의 폐지에 관하여, 구약과 신약의 일치에 관하여:
우리는 율법의 의식과 표상들이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 폐지된 것과, 또 모든 그림자가 성취된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크리스챤들 사이에서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진리와 실체는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복음의 교리를 우리가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생활을 정직하게 조정하기 위해서 율법과 예언자들에게서 취하여 낸 증거들을 여전히 사용한다.


제 26 조  
그리스도의 중보에 관하여: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변호자이신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음을 믿는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사람이 되어 한 품성으로 신성과 인간성이 연합되었고 그리하여 사람이 거룩하 주제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 접근을 방해할 것이 없다. 그런데 성부가 자기와 우리 사이에 임명하신 이 중보자는 그의 위엄으로써 결단코 우리에게 겁을 주거나 혹은 우리가 공허한 생각으로 다른 중보자를 찾도록 만들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늘이나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리가 더 사랑하는 피조물이 없기 때문이니, 그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셨으나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사람과 종의 형상이 되어서 모든 것에 있어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다른 중보자를 찾는다면 누가 우리를 사랑하여 줄 것이며, 또 비록 우리가 원수일 때라도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희생시키신 그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여 줄 것으로 믿겠는가? 또 만일 우리가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를 찾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에 비할 수 있겠는가? 또 누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보다 더 빨리 우리의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그러므로 성도들을 존경하기보다는 모욕하는 실천상황을 소개하여 가지고 그들이 실시해 본 적도 없고 또 요구한 적도 없고 오히려 자기들의 저서들에서 나타나듯이 자기들의 의무에 따라 시종여일하게 거부했던 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다만 자신의 결핍을 통하여 온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의 무가치성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고려하여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공로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그의 의로움이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도는 우리의 어리석은 공포심이나 혹은 불신을 우리에게서 제거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올바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 분(예수 그리스도)은 모든 점에 있어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만 했다. 그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그분은 친히 고난을 당하시고 유혹을 받으셧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 주실 수 있다.

또 우리를 격려하기 위하여 더 말씀하신다.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계심을 알고 우리는 그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자. 우리의 대제사장은 연약한 우리를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이다. 그러나 죄를 지으시지 않았다.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나아가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또 같은 사도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의 덕분으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제사장직은 영구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완전히 구원해 주실 수 있다. 그분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해서 중보자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우리의 변호자로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가 다른 변호자를 찾겠는가? 우리가 찾을 수도 없는 다른 변호자를 취하거나 찾고 또 찾기 위하여 그를 저버리지 말자. 하나님이 그를 우리에게 주셨을 때 우리가 죄인들이었음을 그가 잘 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주의 기도에서 가르치시는 대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아버지에게 부르짖을 수 있다. 그의 이름으로 우리가 아버지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제 27 조  
공동 교회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의 카톨릭, 즉 공동(共同) 교회를 믿고 고백한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성령으로 성화되고 인침을 받아 구원받을 것을 바라는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하나의 거룩한 회중이며 회합이다.

이 교회는 세계의 시작부터 있었고 또 세계의 마지막까지 있을 것이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시므로 백성 없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교회는 온 세상의 격렬한 박해를 막으시는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지원하신다. 교회는 한 때 사람들 눈에는 아주 작고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은 아합의 위험한 통치 기간을 보기로 들 수 있으나 그러나 그 때에도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7천명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셨다.

더구나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에게 국한되거나 구속되어 있거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퍼져서 확장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힘으로, 또 하나의 같은 성령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다.


제 28 조  
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교통에 관하여:
우리는 이 거룩한 회중과 회합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회합이며 그 밖에서는 구원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지위나 상태의 인물이든지 그 회중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살기 위하여 자신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이 그 회중에 들어가서 일치하며 교회의 일치를 보존하며 교회의 교훈과 훈련에 복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목을 굽히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같은 몸의 공통된 지체와 같이 형제들의 건덕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보다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분리되며, 어디든지 하나님이 설치하신 회중에 가입하는 일은 시장이나 군주의 칙령이 반대하거나 죽음이나 육체의 형벌을 과하는 일이 있더라도 모든 신실한 신자들의 의무이다.
이렇게 하여 교회에서 후퇴한 사람이나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다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하게 된다.


제 29 조  
참된 교회의 표지에 관하여:
우리는 열심히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식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오늘 세계에 있는 모든 분파가 이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교회 안에 선한 자와 함께 섞여 있어서 외부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사실은 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위선자의 무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참된 교회의 몸과 교제는 자칭 교회라고 부르는 모든 분파들과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참된 교회를 인식하기 위한 표지는 다음과 같다. 교회가 순수한 복음의 교훈을 설교하고 있는지 않는지,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바와 같은 순수한 성례전을 베풀고 있는지 않는지, 교회의 훈련이 죄를 벌하기 위하여 사용되는지 않는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않는지, 그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격되는지 않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되고 있는지 아닌지, 이러한 표지로써 참된 교회를 분명히 알며, 이 교회에서 분리되어도 좋을 권리는 아무도 갖지 않는다.

또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에 관하여서는, 그들을 크리스챤의 표지로서, 이를테면 믿음으로 알려져야 한다. 또 그들이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죄에서 해방되고 정의를 구하며 참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그들의 육을 그들의 업적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큰 과오가 없는 바가 아니다. 그들은 성령의 힘으로 그들의 생애의 모든 날에 그 과오와 싸우며 쉬지 않고 주 예수의 피와 죽음과 수난 및 복종에 의지하며, 예수에 의하여 그들은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

거짓된 교회를 논한다면 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자체와 교회의 규정들에 더 큰 힘과 권위를 돌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에 교회자체를 복종시키지 않으려 한다. 또 이 교회는 그의 말씀으로 지정된 성례전들을 집행하지 않고 그 성례전을 자의로 가감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의존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며 그 교회의 과오와 탐욕과 우상예배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박해한다.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는 쉽게 알 수 있고 서로 구별이 된다.


제 30 조  
교회의 행정에 관하여:
우리는 이 참된 교회의 영적 정책에 따라 통치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 주님이 자기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으로 믿는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며 성례전을 집행할 목사들이 있어야 한다. 또한 목사들과 함께 교회의 제직회를 구성할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참된 종교가 보존되며 참된 교리가 어디서든지 전파되며 또한 범죄자들이 처벌되며, 영적 방법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 안에서 질서 바르고 겸손하게 모든 것이 실시되면 그때에는 성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시한 규칙에 따라 신실한 사람들이 선택된다.


제 31 조  
목사, 장로, 집사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역자들과 장로와 집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시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구하며 질서에 따라 교회의 정당한 선거로써 각기의 직무에 피택되어야 하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각자가 부정한 수단으로 자기를 밀어 넣지 않도록 주의하고 자기가 부름받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소명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여 확신하기 위한 증거를 갖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의 교역자는 어떠한 지위에 있든지 그들은 다 유일하신 총감독 또는 유일한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역자라면 동일한 권력과 권위를 가진다.
또 하나님의 이 거룩한 규약이 침해되거나 혹은 경시되지 않도록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들의 사업을 보고 아주 높이 평가해야 하며 또 불평이나 경쟁이나 혹은 싸우는 일이 되도록 없이 하여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고 우리는 말하는 바이다.


제 32 조  
교회의 질서와 기강에 관하여:
우리는 교회의 지배자들이 자기들 사이에서 어떤 규약을 만들어서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 유익함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유일한 주이신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들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발명한 것과 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도입하여 그러므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양심을 구속하고 강요하는 법률들을 배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치와 통일을 신장하며 보존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순종하게 하는 것만을 인정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출교처분, 혹은 교회 기강과 또 여기에 속하는 몇 가지 경우들을 필요로 한다.

제 33 조  
성례전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자비로운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결점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성례전을 제정하시고 그것으로 우리에게 그의 약속을 표시하시고 우리를 향한 그의 선의와 은혜의 징표가 되게 하시며, 또한 우리의 신앙을 기르며 강화하시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복음의 말씀에 성례전을 보태서 연합시키시고 그의 말씀으로써 우리에게 상징으로 주신 성례전과 우리 마음 안에서 내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다 잘 우리의 감관(感官)에 제시하여서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을 보장하시며 확실케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성례전은 볼 수 있는 상징들이며 또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방편이 되는 내적인 보이지 않는 표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례전의 상징들은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속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들이 제시하는 참된 대상이며 그분 없이는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성례전의 수를 만족하게 생각하니 그것은 세례의 성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찬의 단 두 가지뿐이다.


제 34 조  
세례에 관하여:
우리는 율법의 종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를 흘림으로써 사람들이 죄의 보상으로서 삼을 수 있었던 혹은 삼으려던 모든 피 흘림의 종말이 된 것을 믿고 고백한다. 또 그는 피로써 행한 할례를 철폐하시고 그 대신 세례의 성례전을 제정하셨는데,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 용납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타종교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며, 우리가 전적으로 그에게 속하게 되며 그의 기장(旗章)과 깃발을 지니는 것이며,

그는 영원히 우리의 은혜로운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이심을 우리에게 증거로 삼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순수한 물로 세례를 받을 것을 명하셨다. 세례가 우리에게 상징하여 주는 것은 마치 물이 세례받는 사람의 몸에 뿌려질 때 몸의 때가 씻겨 없어지듯이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세례 받는 사람의 영혼에 내적으로 뿌려져서 죄를 씻어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우리를 진노의 자식들로부터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중생 시킨다.

이것은 외부적인 물의 힘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아들의 고귀한 피를 뿌림으로 효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홍해이니, 우리는 이 홍해를 통과하여 바로 왕 폭군, 즉 악마를 피하여 가나안의 영적인 땅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성례전을 행하며 그것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이 세례의식으로 우리에게 보장하여 주시는 것은 여러 가지 은사들과 보이지 않는 은혜, 씻음, 정화, 아주 더럽고 불의한 것들을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제거하는 일, 우리 마음을 새롭혀서 모든 위로로써 채우는 일,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선의에 대한 참된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 우리에게 새 사람을 입히고 옛 사람을 모든 행동과 함께 벗겨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이 세례만을 받아야 하되 같은 세례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가 두 번 중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세례는 우리에게 물을 뿌리고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 만이 아니고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서도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세례파의 과오를 배격한다.

그들은 그들이 전에 받은 단 한 번의 세례에 만족하지 않으며 또 신자들의 유아들의 세례를 정죄하지만 우리는 그 유아들도 이전에 이스라엘의 어린 아이들이 우리의 유아들에게 주신 같은 약속으로 할례를 받았듯이 계약의 상징으로서 세례를 받고 인침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또 사실은 그리스도는 장년들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어린이들의 정화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유아들도 그리스도가 그들을 깨끗하게 하신 일의 상징과 예전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명령하신 대로 유아들도 출생 직후에 그들을 위하여 어린양을 제물로 바치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성례전을 받도록 되어야 한다. 더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할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세례와 같다. 그리고 이 이유 때문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다.


제 35 조  
성만찬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중생하여 그의 가족, 즉 그의 교회에 연합된 사람들을 먹이시며 유지시키기 위하여 성만찬의 성례전을 제정하신 것을 믿고 고백한다. 이제 그들 중에 중생한 사람들은 이중의 생활을 하는데, 한 가지는 육신적 또는 현세적인 생활인데, 이것은 그들이 처음 출생했을 때부터 하는 생활로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영적이며 천상적인 생활인데, 두번째의 출생이며 이것은 복음의 말씀에 따라 또 그리스도의 몸과의 교제를 통하여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후자의 삶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특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육신적인 지상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상적이고 일반적인 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빵은 육신 생활에 유익하며, 삶 그 자체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영위하는 영적이며 천상적인 삶의 유지를 위하여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니, 신자들이 그를 먹을 때, 즉 성령안에서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일 때 그가 그들의 영적인 삶을 풍부하게 하시며 강화하신다. 우리에게 이 영적인 하늘의 떡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자기 몸의 상징으로서 지상의 보이는 떡을 제정하셨고 또 그의 피의 상징으로서 포도주를 제정하셔서 이것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손에 이 상징물들을 받아 쥐고 입으로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삶이 나중에 살찌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신앙(이것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이 된다)으로 우리의 유일한 구주의 참 몸과 피를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에서 분명히 받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성례전을 공연히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아님이 분명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듯이 그는 우리 안에서 마치 성령의 역사가 감춰져 있어서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성례전의 이러한 상징물들에 의하여 우리에게 그가 제시하시는 그 모든 일을 우리 안에서 행하신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가 먹고 마신 것은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몸과 본래의 피였다고 우리가 말할지라도 잘못된 말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이 성례전을 받는 모양은 입으로서가 아니고 신앙을 통하여 성령으로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언제나 하늘에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여전히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교통하게 역사하신다. 이 만찬은 영적인 식탁이며 거기서 그리스도가 자기의 모든 축복을 가지고 우리와 사귀시며 거기서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고난과 죽음의 공덕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그것을 즐기게 하시며, 그의 살을 먹음으로 우리의 가난하며 위로가 없는 영혼들을 먹이시고 강화하시며, 또 그의 피를 우리가 마심으로 그 영혼들을 살리며 소생케 하신다.

더 나아가서, 성례전들은 그것들이 상징하는 것과 연결 되지만은 그 두 가지 성례전을 모든 사람이 받지 않는다. 즉 불경한 사람은 실은 성례전을 받고서 정죄를 받는 자리에 나가게 되지만 성례전의 진리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마법사인 시몬이 성찬을 받았으나 실은 그 성례전이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받지 않았다. 신자들은 단지 그리스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찬을 겸손과 존경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의 회합에서 받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신앙과 우리 크리스찬 종교를 고백하고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들 사이에서 거룩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미리 올바르게 자신을 반성해 보지 않고는 이 식탁에 와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이 떡을 잘못 먹고 이 잔을 잘못 마심으로 스스로 멸망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이 성만찬 예전을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감격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전들에다가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나 또는 혼합시킨 모든 혼합과 저주를 받을 새 의식들을 성례전의 모독으로서 배격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제도로 만족해야 하며 그 성례전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대로 말해야 할 것을 확언하는 바다.


제 36 조  
관공리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운 하나님이 인류의 타락 때문에 왕과 군주와 관리들을 지명하시고 세계가 어떤 법률과 정책으로 통치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 결과 사람들의 황폐가 저지되고 모든 것이 질서 있고 보기 좋게 운영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집정관에게 무기를 쥐어주셨으니, 악행자들을 벌하시며 선행자를 상주시기 위함이다. 그들의 직책은 단지 국가의 복지를 존중히 여겨서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고 거룩한 목회사업을 보호하며, 모든 우상숭배와 거짓된 하나님 예배를 제거하며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적 그리스도의 왕국이 파괴되며 그리스도의 왕국이 신장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정관들은 어디서든지 복음의 말씀의 설교를 경청하여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령된대로 모든 사람에게서 존귀와 예배를 받게 되어야 한다.

더구나 어떤 지위나 신분이나 조건의 사람일지라도 집정관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즉 세금을 바치며, 그들에게 존경심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면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에게 복종하는 일이다. 또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집정관들을 지배하시며 그들의 모든 길을 인도하시도록 그들을 위하여 대신 기도할 것이며, 또 우리가 경건하고 정직하여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세례파의 과오와 그 밖의 선동적인 사람들과 또 일반적으로 높은 권세와 집정관들을 배격하며 정의를 파괴하며 물질사회를 유도하며 하나님이 사람들을 위하여 제정하신 고상하고 선한 질서를 혼란시키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제 37 조  
최후심판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께서 지정하신 때(이 때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가 오면, 또 선택된 자의 수가 찰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가지고 보이게, 즉 그가 크신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승천하셨듯이 하늘에서 오셔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심판을 선포하시며, 세계를 정화하기 위하여 불과 불꽃으로써 이 낡은 세계를 태워버리실 것을 믿는다.

그때에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여들어서 세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신 대 재판관 앞에 직접 나타날 것이다. 모든 죽은 자들이 땅에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영혼이 전에 있었던 본래의 몸들과 연합될 것이다. 그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었던 사람처럼 죽지는 않을 것이되 순간적으로 변하여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는 책들(즉 양심들)이 펼쳐지고 죽은 자들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이 세상에서 그들이 행한 일에 따라 재판을 받을 것이다. 아니,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는 한갖 오락과 농담으로만 간주되던 자기들의 쓸데 없는 말에 관하여 일일이 설명해야 할 것이다. 또 그 때 사람들의 비밀과 허위가 드러나서 모든 사람들 앞에 공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재판을 생각한다는 것은 악한 자와 불신자에게는 바로 무서운 것이지만 의롭고 선택된 자들에게는 가장 바람직하며 통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들의 완전한 해방이 성취될 것이며, 그들이 짊어졌던 노고와 고난의 열매들을 거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백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것이며 이 세상에서 그들을 가장 잔인하게 박해하고 압박하고 괴롭혔던 악인들은 하나님이 처벌할 무서운 보복을 받을 것이다. 또 그들은 자기들 양심의 증거에 의하여 고발된 것이며, 또 불멸할 것이므로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신실하고 선택된 사람들은 영광과 영예로써 보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가 택하신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밝힐 것이다. 모든 눈물이 그들의 눈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 세사엥서 지금 많은 재판관들과 집정관들에게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건들이 그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것으로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은혜로운 보답으로서 주께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한 영광을 그들이 가지도록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위대한 날이 와서 드디어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기를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 연결고리 :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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