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6
 제목  허은(1914. 2.28~1950. 7.25)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장로교] [목사] [순교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허은은 1913년 2월 28일 평북 철산군 여한면 연수동 316번지에서 애국지사였으며 교회건축을 위해 사제를 털어 예배당터와 목재를 들여 건축하였던 열정적인 신앙인 허석현 장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본대학교종교학과를 거쳐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풍천교회를 목회 하였으며, 기독교도연맹가입을 거절하고, 1948년 월남하여, 한국전쟁 때 서울 해방교회를 시무하다가 1950년 7월 25일 공산군에 의하여 납치되었다.

 

보통학교 졸업
선천성경학교 졸업
안동교회 조사(피어선 재직시)
1942년 닛본대학 문학부 종교학과 졸업
1944년 평양신학교 졸업
철산교회 조사(평신재적시)
1944년 풍천교회 목회
1946년 평북노회에서 목사 안수
1948년 고창읍교회 담임
1949년 해방교회 부임


허은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선천성경학교를 졸업 이어 서울로 상경하여 피어선신학원에 재적하면서 양반교회로 소문난 안동교회 조사로서 활동했다. 똑똑하고 총명하며 애국애족혼에 뜨거웠던 허은은 안동교회 윤보선 대통령의 후원으로 일본닛본대학 종교학과를 1942년에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청빙받았으나 사양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해서 1944년에 졸업했다.

 

평신재학중에는 철산교회 조사가 되어 겸손하게 섬겼고 졸업 후엔 평북 철산군 백량면 풍천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46년 평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6년 기독교도연맹가입거부, 11월 3일 주일선거 거부등으로 시련을 당하다가 1948년 5월에2남 3녀중 딸 하나만 데리고 38선을 넘었다. 가족은 9월에 월남하여 서울에서 만나 전북노회 산하 고창읍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영락교회 한경직목사의 요청으로 영락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은혜를 받아 해방교회 교우들이 허은목사를 당회장으로 초청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107평 2층 석조 교회당을 짓기 위하여 부흥회 인도로 받은 사례비를 봉투도 뜻지 않고 일꾼들 품삯으로 내 놓았고 친지들의 도움을 구하느라 하루도 집에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1949년 해방교회를 신축하고 헌당예배는 1950년 3월 중순에 드렸다.


헌당 후 한국전쟁이 터졌으나 교인들만 피난 시키고 두번 양떼를 버릴 수없다는 이유로 자신은 신축된 해방제단에 엎드려 낮밤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다가 1950년 7월 25일 정치보위부원의 손에 수갑이 채워져 가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을 향하여 "예수 잘 믿어야 한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겨주고 9월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교회에 불을 질러 허 은목사와 함께 한줌의 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한국전쟁, 장로교, 목사, 순교자

 



   


A-Z




  인기검색어
kcm  1836348
교회  984879
선교  941128
예수  888956
설교  777824
아시아  685836
세계  662574
선교회  635655
사랑  626776
바울  621952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