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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6
 제목  주영진(1919.10.25~1950. 6.25) 전도사
 주제어  [대한민국] [장로교] [전도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주영진은 1919년 10월 25일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서 아버지 주기철 목사와 어머니 안갑수 사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루터 신학교와 일시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신사참배 거부로 수난 당했고 해방 후에는 북한 공산정권에게 박해를 받았다. 장현교회 전도사로 있으면서 1950년 6월 25일 행방불명 되었다.

 

창신소학교에서 퇴학.

숭덕학교, 오산학교 졸업.

일본 루터신학교 자퇴.

일본 일치신학교 퇴학.

 

주기철 목사의 아들 주영진이 일본 일치신학교에서 주기철목사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퇴학당하자 허탈한 감정이 앞섰다. 주영진은 이미 여나믄 어린 나이에 마산 창신소학교에서부터 퇴학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조회를 주관하는 선생은 학생들로 하여금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한 후 고개를 속여 절을 하게 만들었지만 주영진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개숙인 전체학생들 중에 한눈에 드러났다. "어느 놈이냐! 저리도 방자하게 우뚝 서있는 녀석은."주영진은 우악스런 남선생에게 뒷덜미가 잡혀 끌려갔고 그날 온종일 복도에서 벌을 섰다. 학교가 파할 무렵 교장이 그를 불러 "군은 왜 천황 폐하께 고개 숙이지 않는거냐?"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우상?" "그렇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누구냐." " 주기철목사입니다." "오 그 악질 대역죄인..."

 

결국 15년전 그 전철이 일본에서 반복되고 있으니 느끼는 그 감정이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평양으로 돌아왔다. 산정현교회 담임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거대한 악령 일제와 숨막히는 대결을 하고 있었다. 이른바 주목사의 목회철학이요 일사각오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는 평양 감옥으로 끌려갔다. 목사의 사택까지 내놓으라고 압력까지 행사하고 있었다. 주영진은 매정한 현실 앞에서 더운 눈물을 쏟았다.


주영진은 주기철목사가 마산 문창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할 때 창신소학교에서는 동방요배를 안한다고 쫏겨나고 주목사가 평양으로 이주하면서 수덕학교를 거쳐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를 진학하게되었다. 그가 애국애족의 사람이 된 것은 오산학교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학교이고 아버지 주목사가 나온 학교였고 산정현교회 장로였던 조만식이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고 오산학교 출신들이 한결같이 애국애족의 사람이 된 것은 이사장 교장 이하 선생들이 애국정신이 투철했던 지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오산학교를 마치고 일본에 건너가 동경에 루터신학교에 진학했다. 평양신학교가 이미 폐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영진이 다니던 루터신학교에도 그가 4학년으로 접어들자 신사참배가 강요되어 주영진은 더 이상 루터신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자퇴하고 일치신학교로 전학했다. 그러나 일본 경시청의 사주를 받은 학교는 주기철의 아들 주영진으로 하여금 반국민의 아들이기에 더 이상공부시킬 수 없다고 나가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가 일본 일치학교에서 퇴학당하던 1938년은 그의 아버지가 평양형무소에서 수형을 살던 때였다.


귀국하여 갈데가 없는 그는 애린원에가서 부친 주기철목사의 영향을 받은 원장의 호의로 총무일을 보았으나 일경의 압력으로 쫓겨났다.
평양근교 이기선목사가 경영하는 농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동래군 기장에서 어장을 하는 장봉기장로의 전보를 받고 내려가 어장을 돌보며 가족들의 끼니를 이었다.
장봉기 장로는 주영진을 후원한다는 이유로 동래 경찰서에 끌려가 사흘간 똥물까지 토해낼 정도로 치도곤을 맞을 정도로 압력을 받았다. 주영진은 그의 상처를 보면서 스스로 그 어장을 나와 평양으로 돌아갔으나 1944년 4.19일 아버지 주기철목사는 옥사했다.


8.15해방 후 주영진은 산정현교회 전도사로 일하다가 장현리에 소재한 장현리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1946년 11월 3일 주일선거 반대로 고문을 당하였고 1950년 5월 신의주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고 귀가하는데 내무서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끌려간 한달후 6.25의 불꽃이 전국을 불사를 때 가족들이 월남할 때도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으니 그의 나이 3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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