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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6
 제목  조희렴(1885. 2.20~1950.10. 9)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장로교]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조희렴은 1885년 2월 20일 함남 함흥에서 출생했다. 경신학교를 거쳐 토론토와 닉스대학에서 신학공부를마쳤다. 원산 마르다여자신학교에서 교수하였으며, 해방 후 남부교회 목사로 종사하면서 1950년10월 9일 공산군에게 연행되었고, 원산 감옥에서 총살되었다.

 

경신학교 졸업.
카나다 낙스 칼리지 졸업.
토론토대학 신학과 졸업.
원산 마르다 월슨신학교 신학부장. 함흥 YMCA총무.
1930년 8월 5일 제 8차 세계CE(세계기독청년면려회)총회 한국대표
원산 남부교회 설립 목회
원산 부시장. 조선민주당 원산시 당책임자

 

남한정부의 이승만대통령이 보낸 밀사가 원산남부교회 사택을 은밀히 찾았다. "목사님. 월남하시지요. 각하께서 친히 목사님을 모셔 오라는 분부이십니다" "뜻은 고맙습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곳을 떠나겠습니까?" "어떻게라니요?" 밀사는 의아하여 눈을 치켜떴다. "목사에게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 양을 버리고 어떻게 목사가 도망을 치느냐는 것이지요" "그래도 죽음이 지척에 이르렀는데..." "아닙니다. 저는 양들과 함께 생사를 함께 하겠습니다" 밀사도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지만 조희렴목사의 뜻이 완강하여 더 이상 입을 떼지 못하고 물러났다.


조희렴은 어려서는 서당에 가서 한문을 읽었고 그의 나이 20세에 카나다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되고 그 선교사의 도움으로 서울에 경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어학에 뛰어난 그는 경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여선교사 멕클린의 도움을 받아 19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카나다 유학의 길에 올라 카나다 낙스 칼리지에서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토론토대학에서 신학을 전공 신학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내친김에 박사학위까지 받으려고 미국 시카고로 가서 공부하면서 한국 유학생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하든 중 그를 유학시켰던 카나다 선교부에서 "귀국하셔서 귀하의 힘을 신학교육에 보태주시기 바란다"는 요청을 받고 1924년 귀국 원산에 있는 마르다 윌슨신학교 신학부장으로 교수하면서 함흥 YMCA총무직을 겸임하였다.


농촌을 지극히 사랑해서 농촌계몽과 사회운동을 하는등 나아가 기독교강연을 위해 국내는 물론 만주 북간도지방까지 순방했다. 그런 그의 애국심은 일경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어 일거수 일투족 감시받게 되었다.
1930년 8월 5일 제 8차 세계기독청장년면려회 총회가 독일의 베를린에서 열렸을 때에 한국측대표로 참석하여 고난받는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순서에 한국의 사정을 알리고 조선 해방을 위해 기도해 줄것을 요청했으나 일본의 집요한 방해로 묵살당하고 이로 인해 귀국하자마자 함흥경찰서에 연행되 악랄한 고문을 받으며 옥고를 치러야 했다.
출옥 후 동아일보에 유럽러시아를 순방한 여행기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 글에서 천황이 신이되어 예배를 받는 모순을 지적하는 등 정의를 짓밟는 폭력은 끈내 폭력의 제물이 됨을 강조했다. 집필중단을 강요당하는 등 몇 차례의 일경의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목이 꺾일지언정 붓을 꺾지는 못한다"고 버티었다. 나라잃은 슬픔을 그런 식으로라도 발산한다는 국가 잃은 지식인의 저항이기도 했다. 일제 말엽 장로교 신학교가 폐쇄되면서 김재준 등과 뜻을 같이해 조선신학교 설립에 힘을 모았으나 남북분단으로 갈리는 바람에 강의 한번 해보지 못했다.


해방 후 원산 부시장에 추대되었다. 평양에는 조만식이 있듯이 원산에는 조희렴이 있었다. 원산시민들이 그를 행정관으로 초빙한 것이다. 그러나 이내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주의 이념에 동조할 수 없어 사임하고 원산 남부교회를 설립하고 목회에 전념하게 되었다.


조선민주당에 힘을 보태달라는 조만식장로의 요청에 조선민주당 원산시 당 책임자가 되어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밀사를 보냈으나 거절하고 양떼를 돌보았다.
공산당에 전혀 협조를 하지 않는 조목사는 눈에 가시였다.
1950년 7월 6일 투옥되어 혹독한 고문끝에 국군의 선발부대가 원산에 입성하는 UN군의 진격으로 패색이 짙어진 공산군은 10월 9일 새벽 원산 형무소 뒷산에서 총살하였다. 다음날 남부교회 청년들에게 발견된 조목사의 시신은 총에 맞아 숨진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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