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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5
 제목  장석팔(1894. 6.15~1950. 9.11) 장로
 주제어  [대한민국] [장로]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장석팔 장로는 1894년 6월 15일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1933년 장로가 되어 응봉교회에서 봉사하였다.
해방 후 응봉면장, 국민회 회장 등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던 중 한국전쟁을 만났다. 교인명단을 제출하라는 공산군의 요구를 거절하여 1950년 9월 11일에 돌에 맞아 숨졌다. 1976년 응봉교회에 순교기념비가 세워졌다.

한문수학. 홍성농업전수학교 졸업
홍성군청 행정직으로 근무
1933년 장로 안수(본처 전도사)
응봉교회 설립 전도사
응봉면 면장. 국민회회장.학교후원회장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석팔은 한문을 수학한 뒤 홍성 농업전수학교를 졸업하고 농업기사로 홍성군청에 근무하였다. 일제의 수탈로 나날이 피폐되어가는 조국의 농촌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한없이 괴로웠다. 갈산면에서 근무할 때 갈산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번민이 계속되더니 사표를 제출하고 자영농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행정직원을 사임한다는 것은 특권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았다.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예수믿어 사람 버리고 집안 망한다면서 어머니의 반대는 극심하였다.

 

농민들을 보호하려고 정미소를 차린지 알마 안되어 부농이 되자 주민들과 가족의 인식도 달라젔다. 1925년 선교사 사프에게 세례받고 1933년 장로(본처전도사)가 되었다. 응봉교회를 설립하여 지역복음화에 힘썼고 특히 빈민구제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해방을 맞아 응봉면장, 국민회회장, 학교후원회장 등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전력하는중에 6.25전쟁을 맞았다.

 

교회와 주민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는 공산군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지주였고 교회의 장로인 그를 그대로 둘리 없는 공산당은 체포하여다가 신앙포기를 강요하였다. 면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를 쉽사리 제거할 수 없음을 알자 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교인명부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 자기가 직접 다니며 전도하여 예수를 영접케 했던 양들을 그들에게 내어 줄리 없었다. 이에 해방된 조국에게 비협조하는 반동으로 단죄하여 모진 고문을 가하고 돌로 쳐서 죽였다. 평생을 열심히 일하면서 농촌의 삶을 변화시키며 예수의 가르침대로 가난한 사람들과 교인들을 보살피던 그는 선한목자의 모습으로 양떼들을 위해 피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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