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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5
 제목  임종현(1906. ?~1950. 9.28)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장로교] [기장]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임종헌은 1906년 충남 부여군 수원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군산 영명학교를 거쳐 조선신학교를 졸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고창읍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으며 1950년 9월 28일 공산당에게 뒷산으로 끌려가서 총살되었다.

 

영명학교 졸업
1944년 조선신학교 졸업
시흥교회, 대전제일교회, 용산교회, 화호교회, 고창읍교회


머리가 총명한 그는 고학으로 군산 영명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일본에 갔으나 고생만하고 대학도 들어가지 못한 채 귀국하든중 친구 김인배의 중매로 그의 여동생과 결혼을 하고 강경에 점포를 마련 포목장사를 시작했으나 허구헌날 술타령만 했다. 그의 꿈이 남달리 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제하에 한국 인테리들은 학문도 마음대로 못하고 취직도 못해 좌절과 실의에 빠져 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놀음에 빠졌다.


술타령으로 사업에 실패한 그는 아내가 포목을 팔아 모아놓은 돈을 강제로 빼앗듯이 하여 몇날 몇일이고 그 돈이 다 떨어질때까지 퍼마시고 한번 나가면 며칠씩 소식을 끊고 돌아오지 않았다. 빚만 지고 고향 충남부여군 홍산으로 돌아온 그는 부인의 기도 덕으로 정신을 차리고 홍산교회 집사로 봉직하든 중 1944년에 조선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노회에서 안수를 받고 대전제일교회에서 시무하다가 해방 이듬해 황등 용산교회로 옮겼다가 신태인 화호교회로 이전했다. 이무렵 임목사가 전개한 일이 식량비축운동과 음주투전추방운동 등 절제운동을 전개해서 영적 부흥과 함께 농촌부강을 이룩해야함을 강조했다.


농촌목회를 하던 임목사가 고창읍교회에 부임한 것은 1950년 2월이었다. 45세 중년기를 맞은 임목사의 목회의욕은 대단했다. " 우리 농토에 풍년을 오게 합시다"가 그가 즐겨 외치던 강단 언어였다. 임목사의 목회 특징은 몸은 농촌에 있었지만 마음은 한국전체를 포함한 민족선교에 있었다. 임목사의 목회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것으 그의 유고(설교본문- 히 11:24-25)에 잘 나타나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 모두 몸을 숨길때 "하나님의 가슴만큼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소"하며 새벽기도와 가정예배를 쉬지 않다가 내무서원에 의해 체포당해 공산주의 우산에 모이자고 선전방송을 할 것을 강요하는 내부서원의 요구를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하는 말로 거절하고 3개월간 유치장에서 혹독한 옥고를 치루다가 9.28수복이 끝나고 퇴각하는 공산당들에 의해 고흥 뒷산 솔밭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장로교, 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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