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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9
 제목  오덕삼(1897. 6.16~1950. ?)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성결교]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오덕삼 목사는 1897년 6월 16일 평안남도 용강군 오신면 도하리에서 출생했다. 1930년 경성성서학원을 졸업, 여러 교회를 시무하였는데 1943년 일제 탄압으로 성결교회 해산과 함께 평양경찰서 유치장에서 11개월 옥고를 치루었고 해방후 목림교회 시무중 공산당에 체포되어 학살되었다.

 

1918년 숭실학교 졸업(14회)
1930년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 졸업.
대구제2성결교회. 평북 양시교회. 진남포 성결교회. 진지동 성결교회. 진남포 광양교회 목림교회 등에서 목회


선교 초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뿌리깊은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 신앙의 지조를 굳게 지켰다. 1937년 성결교회 해산과 함께 각교단을 혁신 교단 통합할 때 이에 반발한 이유로 평양경찰서에서 11개월동안 옥고 끝에 풀려났다.
옥에서 풀려난 후 교회는 폐쇄되고 군수픔 납품을 위한 가마니 공장으로 변하자 오목사는 설자리가 없었다.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진남포 지방 광양교회에서 목회하던중 6.25가 발발. 그 후 목림교회에서 시무하던 중 공산당의 탄압으로 교역자들의 설 땅을 잃고 말았다. 그는 기독교도연맹 가입 권유를 끝까지 거부함으로 반동으로 몰려 숙청대상이 되었다.


오목사는 우리나라 선교 초기부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기독교 가정에서 뿌리있는 신앙으로 그 숭고한 신앙의 지조를 굳게 지켜 목림교회 시무중 가족의 생존까지 위협하듯 숨통을 조였고 극심한 박해중에도 나봇이 조상의 유업인 포도원을 사수하는 심정으로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가족들의 생계가 염려되어 연명할 식량이라도 좀 구해보려 어느날 시장터에 나갔다가 그를 알아보고 오목사님 하는 여신도의 소리를 들은 공산당 정치보위부원에 의해 체포되어 무자비한 투쟁방법의 하나인 "참혹한 난도질"에 무참히 학살되어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다.
굶어도 죽어도 신앙의 절개만은 지켜 살다가 피흘리며 내민 그의 손을 주님의 피묻은 오른 손으로 잡아 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그의 뒤를 이어 차남 오능권은 감리교 목사로 30여년간 목회하였는데 지금은 1947년부터 목회와 함께 해오던 "한국교회 속회연구원"원장으로 열과 성을 다해 일하며 선친의 고귀한 순교유산을 이어가면서 "참삶을 위하여"등 많은 글을 계속 집필하고 있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성결교, 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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