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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7
 제목  박종섭(1925.12. 7~1954. 1.24) 참위
 주제어  [대한민국] [참위] [구세군] [순교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25년 12월 7일 전남 영광군에서 출생. 1950년 6월 27일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 참위로 예산군대흥영을 담임하여 복음을 전하며 영문을 사수하였는데 공산군에 의해 영문은 강제 점령되고 병사들은 흩어지고 그는 체포되어 심한 고문으로 구세군 영동병원으로 옮겼으나 1954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

 

박종섭은1925년 12월 7일 전라남도 영광군 서면 보사리에서 아버지 박용안과 어머니 탁화녀의 1남 2녀중 외동 아들로 정읍에서 자랐다. 정읍에는 1927년 양만석 사관이 개척한 구세군영이 있었는데 박종섭의 부친은 바로 이 군영의 독실한 성도였다. 그는 부모의 신앙을 따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며 다윗을 좋아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면서기든 동서기든 금융조합이든 어디든 뚫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생활여유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학문하는 법을 가르쳐서 휼륭한 인재를 양성하려는 욕심에서였다. 그는 직장가기를 포기하고 교회에서 운영하던 야학을 운영하다가 8.15해방을 맞았다.


1948년 정연순과 결혼한 그는 이듬해 1949년에 동부인해 사관학교를 입학하고 그 이듬해 1950년 6월 27일에 졸업을 하고 예산군 대흥면 상종리 구세군사관으로 임명받았다.아침에 임명을 받은 박사관은 이미 한강다리가 끊어지자 광나루로 하여 나룻배를 타고 도강 피난민들과 합류하여 남으로 남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예산읍내로 빠져 들어갔을 때였다. 기관총을 든 인민군대가 총을 겨누고 누구냐? 뭐하는 놈이야?" "예, 저희 부부는 구세군 사관으로 서울서부터 파송을 받고 대흥영에 부임하기 위해 찾아오는 중입니다" 박 참위 내외는 임지에 부임해 보지도 못하고 예산 내무서에 구금돼 버렸다.


내무서 취조실에서는 벌써 많은 애국지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잡혀와 매일같이 고문으로 비명과 단말마의 외마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박종섭도 회유를 강요받았지만 일편단심 예수만 외치며 주님만이 살길이라고 오히려 전도하였다. 다행히 고문을 하던 사람이 이북에서 예수를 알던 사람이라 내무서에 갇혀 고문을 받던 2개월이 되었을때에 박참위를 방면하면서 몸 조심하라고 했다. 박참위는 내무서에서 나와 1950년 9월 말 대흥영에 부임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대흥분주소 지방 대원들이 총을 메고 찾아와 장운용 사관의 행방을 물었다. 박참위가 모른다고 하자 몽둥이로 두들겨팼다. 죽이려는 기색이었다. 박참위는 몇번이고 혼절한 후에 들것에 실려 대흥령에 도착했으나 보름을 정신을 읽고 앓았다.


1950년 10월 초순 서울이 수복이 되고 충서지방을 관활하던 전용섭 지방장관이 박참위를 찾아와 보고 예산군수를 엄히 항의하고 범인을 색출하여 엄벌할 것을 명했다.
몇일 후 프락치들이 줄줄이 잡혀와서 박참위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그들의 부모들도 통곡하며 빌었다. 그모습을 본 박참위는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탄원서를 경찰서에 올렸다.
박참위 내외는 대흥영을 위해 열심을 다하면서 전후 식량이 악화되어 굶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상부로부터의 보조를 받지 않았다. 박참위의 몸의 병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1953년 구세군 본영에서는 박사관을 강계영문 담임으로 전보발령했다.


박사관은 영문을 돌보며 마침 한창 건축중인 초강영 신축에 매달리고 성치않은 몸을 끌고 건축일을 하다가 1953년 12월 20일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둘러 영동 구세군병원으로 입원했으나 1954년 1월 24일 병원에서 소천했다. 주치의는 죽음에 이른 근본적인 이유를 태장의 독이라고 했다.
아들 박혁락은 대학을 졸업한 후 중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사관에 임관 라스베가스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고 딸 박현자도 미국에 거주한다. 미망인 정영순 사관은 군산홈, 서울여자과장, 혜천원장, 사관학교 교원으로 활동하다가 60세 정년을 맞아 참령으로 은퇴 아들과 함께 미국에 거주한다.


정참령은 한국의 구세군영이 자급할 수 있도록 1백만원의 자금을 보내오기도 했고 1975년 그녀는 만국대장으로 부터 사관근속 25주년 근속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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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대한민국, 구세군참위,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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