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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1
 제목  김창화(1915. 1. 9~1950. 8. 4) 교사
 주제어  [대한민국] [교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15년 1월 9일 평북 의주군 피현면 채마동 출생했으며, 1946년 월남하여 영락교회 중등부와 서울 사대부속중학교에서 기독학생회 지도교사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때 공산당의 인민재판에 회부되었으며,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기도하는 자세로 1950년 8월4일 살해되었다.

 

로하보통학교 졸업
신성중학교 졸업
평양사범학교진학
비현보통학교에서 교사
신의주 남고등여학교 교사
사대부중교사
영락교회 집사

 

부농이며 피현교회 영수인 김미련의 3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창화는 선천 동면 로하보통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를 1937년 27회로 졸업하였다. 신성학교 시절은 그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였고 나라없는 민족의 모습을 선배와 선생들을 통해 배웠다. 성적이 뛰어난 장학생인 그는 동족의 처참한 모습을 가슴아파하면서 번번히 깊은 사색에 빠져들곤 하였다. 드디어 2세를 깨우치려는 마음으로 평양사범학교로 진학하였다. 졸업 후 의주 송장, 비현보통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안타까움으로 정열을 쏟는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된 기쁨과 함께 여성을 깨우쳐 민주조국건설의 기틀을 마련코자 신의주 남고등여학교 교사로 봉직하였다.

 

그러나 공산당의 유물론주의 교육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었던 그는 1947년 3월에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다. 당시 은사인 서울사대학장 장리욱의 권유로 사대부중교사로 있으면서 종교부를 담임하였다. 공산당의 생태를 잘 알고 체험했던 그는 학교내 우익진영교사로써 좌익의 표적이 되었다. 좌.우익 대립이 첨예하여가면서 신변의 위협이 가중되었으나 그의 신념은 조금도 꺾기지 않고 수많은 좌익학생들을 좌익사상에서 벗어나게 하자 마침내 1949년 8월에는 피습을 받아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영락교회집사로 교회에 충성하였던 그는 언제나 성서를 중심하여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생활자체가 경건한 삶이었기에 학생들의 존경과 동료교사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다. 공산군의 남침으로 서울이 적치하에 놓였으나 자신의 갈길을 알았음인지 파난가지 않은 그를 체포하여 온갖고문을 가하다가 8월 4일 젊음을 쏟았던 정든 학교 뒤뜰에서 제자들에게 총살당했다. 조용히 기도한 후 “대한민국만세!”를 힘있게 부르며 총알을 고스란히 가슴으로 받아냈다. 그 때 그의 모습은 스데반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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