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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1
 제목  김창덕(1908. 2. 3~1951.?)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평남 안주군 용화면 용담리에서출생하였으며 용담교회에서 김익두 목사의 사경회에 참석, 중병이 치유되면서 예수를 영접하여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만학으로 동경제대를 거쳐일본신학에서 수학하였고 1946년부터 안주노회갈산교회 목사로 시무하였으며 공산당의 박해로안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4후퇴시 패퇴하는인민군에
의해 납치 희생되었다.

 

소학교 졸업.
일본 고등보통학교 졸업
동경제대 교육학과
1948년 일본신학교 졸업
만선교회 담임전도사
1946년 갈산교회 담임목사

 

김창덕은 1908년 2월 3일(음) 평남 안주군 용화면 용담리에서 진주 김씨 김순묵씨의 다섯 아들중 셋째 아들로 태아났고 당시 모친은 신실한 교인이었지만 일찍 소천하였다. 가세는 중농으로 생활하는데는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래서 김순묵씨는 두 아들을 정주 오산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아들들은 민족정신이 뛰어나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투옥되어 옥고를 치뤘다. 아들들이 옥고를 치루는 동안 부친의 마음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부친 김순묵씨는 셋째아들 창덕씨만은 소학교만 졸업시키고 농사일을 거들게 했다. 모친은 신실한 교인었지만 일찍 소천하였다.


결혼은 했으나 자신의 앞날에 아무런 서광도 없자 자포자기 술을 입에 대게 되었다. 그의 처 이옥녀씨는 결혼 후 맏동서의 권유로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남편의 술 기광을 반항하는 법 없이 순종만 했다.
김창덕이 술로인해 병들어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던 친모를 그리워하며 임종이 임박한 무렵 아버지가 병원에 와서 "먹고 싶은 것은 없느냐?" 고 아들의 손을 쥐자 아들은 주루루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바르르 덜며 아버지의 귀에 한 말은 "아버지, 저 마지막으로 예수나 믿다 죽고 싶습니다"하는 뜻밖의 말을 했다. 마침 용담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는 김익두목사에 설교를 듣고 안수기도를 받은 후 쾌차하여 열심있는 성도가 되었다.


아버지에게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가 "이 놈이 정신차려라 네 나이가 몇살인줄 아느냐 네겐 두 아이가 딸렸어 분수를 알아야지"하는 야단을 맞고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금고를 열고 20원(쌀 한가마니 1원 50전)거금을 흠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배달을 하며 낮에는 중등교육과정을 마치자 만주에서 정미소를 하는 형이 학비를 보내 동경제대 교육학과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해1942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김창덕은 명분없는 전쟁을 위해 일본의 총알받이가 되고싶지 않아 하얼빈으로 망명가서 재만 동포들을 위해 뜨거운 전도활동을 해 개척교회를 설립했다.
맏아들 동남을 하얼빈으로 불러 교육을 시키는 중 8.15해방을 맞아 아들과 함께 귀국하여 안주군 대림면 만성리교회 담임전도사로 시무하다가 1946년 안주노회에서 안수를 받고 갈산면 갈산교회로 부임했다.
강양욱의 기독교도연맹 가입을 거절함으로 교회 설교를 사찰하고 사택을 엿듣고 여차하면 투옥시키겠다는 협박를 하고 갈산교회 김영수를 시켜 교회를 떠나주기를 강권하는 등 박해를 하며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주일날 소년단에 안 나온다고 폭력을 쓰기도하였다.


동류목회자들의 월남 권유도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고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장남 동남과 함께 감금되었다가 김목사는 안주 감옥으로 보냈고 아들 동남도 인민군에 강제입대 당했다.
1950년 9월 28일 국군의 진격으로 풀려난 김목사는 1951년 1.4후퇴시 공산군에 체포되어 끌려간 후 소식이 없으니 그의 나이 43세였다. 한편 인민군에 징집되었던 아들 동남은 탈출하여 숨어있다가 국군이 평양을 점령하자 치안대원으로 근무하며 공산프락지를 섬멸하는데 앞장 섰다.
UN군이 후퇴할 때 모친과 함께 월남하여 1971년 1월 모친이 별세하자 병약했던 그도 그해 11월 젊은 나이로 소천했다.
큰 아들 동남씨의 부인 황영순은 평강교회 권사로 둘째아들 김신일목사는 천안지방에서 목회를 큰딸 둘째 딸도 목사부인이 되었고 큰 사위 장덕영목사는 미국 LA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했고 둘째 사위 김영덕 목사는 천안 동은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그는 파란만장한 짦은 생애였지만 어머니의 믿음의 그루터기가 긑내는 아들로 하여금 순교신앙으로 찬란히 피어나게 했으며 순교자의 후예들은 모두 주의 종들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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