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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1
 제목  김진수(1901. 1.21~1950. 9.?)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01년 1월 21일 평북 선천 출생, 숭실전문을 거쳐 장로회신학교 졸업, 선천동교회에 시무하였다.
「일본기독교 조선교단」발족을 반대, 복역하다가 해방과 함께 출옥 해방 후 북한 5도 연합 노회회장으로 북한교리를 진리로 지켰으며, 1947년1월 체포되어 6년형의 언도를 받고 흥남 감옥에서살해되었다.

 

신성중학교 졸업. 숭실전문대학교 졸업
1934년 평양신학교 졸업(29회)
선천읍교회 담임
천진 한인교회

 

김진수목사는 1900년 1월 21일 평북 선천군 신부면에서 김기영장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기영 장로는 애국 정신이 투철한 분이었다. 거기에다 김진수는 선천의 신성중학교에 입학하여 애국혼이 뜨거운 교사들에게서 애국정신을 배웠다.
1919년 3.1운동에 앞장서서 운동을 주도했다가 6개월 옥살이를 했다
일경은 의식있는 김목사를 계속 감시하면서 괴롭혔다. 김목사를 못견디게 한 것은 일제의 신사참배로 종래 김목사는 교회를 사임하고 중국땅 천진으로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천진에서 한인교회를 돌보다가 모교회의 간청에 모교회로 돌아왔으나 일제 말기 김목사를 노엽게 만든 것은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조직된 조선혁신교단이었다.


혁신교단을 반대하고 종교는 한 국가에 꼭두각시가 될 수 없다고 하는 이유있는 그의 항변에 당하기만 하지 않는 일제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몰아 김목사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으나 해방과 함께 출소한 김목사는 선천읍교회로 돌아가 목회에 전념하다가 공산정권이 수립되자 교회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38선으로 남북한 교회의 교류가 단절되자 일제 치하에서 폐쇄된 교회를 시급히 재건하기 위해서 북한교회 지도자들은 모여 이북5도연합을 결성하고 김진수 목사를 연합노회장으로 선출했다.
1946년 11월 3일 주일날 선거를 실시하기로 하고 교회를 협박했다. 이북5도 연합노회는 즉각 회집하고 2천교회 30만 교우들에게 보내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김목사는 강양욱의 기독교도연맹에 반대하고 오히려 조만식 장로가 이끄는 조선민주당에 가입했고 선천군당 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1947년 4월 11일 김목사는 평양서문박교회에서 개최된 심령부흥집회에서 "여러분 붉은 용 세력인 사탄의 협공에 지지 맙시다 . 꺾일지언정 스스로 머리 숙이지 맙시다.라고 공산주의를 질타하고 집회 후 교회를 나오다가 내무서원들에게 체포되어 함경도 흥남감옥에 수감되고 흥남 시멘트공장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6.25사변시 유엔군 북진때 퇴각하는 공산군에게 사살되어 흥남감옥의 빈터에 쓰러졌다. 평소 그가 입버릇처럼 주장하던 '꺾일지언정 무릅꿇지 않겠다던 자기 주장을 죽음으로 실천한 것이다.
이북5도연합노회가 천명한 다섯가지 는 순교신서 4집 순교열전 제1)110쪽에 있음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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