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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3-26
 제목  김영주(1899. ?~1950. 8. 23)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899년 함북 영천에서 출생했으며, 일본관서학원신학부를 졸업하였다. 남대문교회를 거쳐 1944년부터 새문안교회를 시무하면서 6·25전란을 만났다. 1950년 8월 20일 공산군에게 체포, 납북 되었다.

 

1938년 신사참배문제로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자 김영주목사는 1939년 차재명, 김대현, 함태영, 김재준 목사와 함께 서울 승동교회에 모여 조선신학교를 창설하였다.
김목사는 모세저작 설 모세의 기적 등 창세기는 신화 등 의 문제로 1934년 한국 장로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총회에서 제명 위기에 놓였으나 김목사의 자기 신학적 발언을 철회함으로 목사직 면직 사태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1941년 일제는 미국의 선교사들을 첩보원으로 몰아 강제 추방했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교회는 문짝에 대못을 박아 폐쇄했다. 보수파 장로회 지도자들은 교회를 버리고 감옥으로 가거나 해외로 망명해 버리고 새문안교회도 폐쇄 위기에 처하자 1944년 김영주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해서 부임해 교회를 사회속에 개방하였다.


김목사는 교회를 장,감협의회 사무실로 제공했고 초교파 기독청년운동의 대화의 광장으로 개방해 주일마다 청년들이 모여 열띤 토론회를 갖게 했으니 평양의 보수 장로교회 지도자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되어서도 교회개방정책은 변함이 없었고 '시대의 등불이 되자는 표어'아래 시대를 이끌기를 소망해 그의 목회도 민족에게 비젼을 주자는 것이었다.
1950년 6.25사변이 터지고 서울에 잔류해 교회를 지키던 김목사는 그해 8월 23일 공산군에 끌려간 후 소식이 끊겼다. 김영주목사의 생애는 무엇이 교회를 위하는 참 자세인가를 살필 수 있게 했다는 것이 사가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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