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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3-26
 제목  김방호(1887. 7. ?~1950.10.27)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887년 7월 경북 경산에서 출생했으며,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6·25당시 교회를 탈취 당하여 지하교회를 형성,집회하던 중 1950년 10월 26일 공산군이 난입하여 가족 7명을 몽둥이로 타살하였다. 그가 시무한 전남 염산교회에는 77인의 순교자가 있다.

 

한영서원 졸업
서천 한산 김제 장성 등지에 사숙에 교원생활
1933년 평양신학교 졸업(28회)
영광읍교회. 덕산리교회. 상촌교회 영산포읍교회

김방호는 1919년 3.1운동에 부자가 만세를 부르다가 부친이 총탄에 맞아 급서하자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그는 만주로 피난 용정에서 독립군에 가담하여 산악훈련을 하는 등 잘생긴 얼굴과 구변이 툭출하여 군자금 모집책이 되었다.


함경북도 삼수갑산 지방을 출장하든 중 찬송가소리를 듣고 부흥회하는 교회에찾아가서 처음 듣는 설교인데도 은혜로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 부흥회를 계기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부흥강사 목사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 순간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되며 나딩굴어져 온 밤을 울었다. "주여. 독립군이란 명목으로 무수한 생명을 살해한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제자로 삼으소서 당신의 아들로 삼으소서" 하며 많은 눈물을 흘리며 풍진에 찌든 때를 씻듯 눈물로 가슴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부흥강사의 소개로 한영서원을 졸업하고 전남지방 닫슨선교사의 조사로 많은 노력을 했고 소룡리교회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1933년 평양신학교 종업 후 영광읍교회, 덕사교회, 상촌교회를 시무하든 중 8.15해방을 맞았다.
김목사는 영산포교회에서 6.25가 일어나던 1950년 3월까지 시무하다가 염산교회로 옯겨 목회하든 중 6. 25를 맞아 교인들이 목선을 준비하고 피난을 권했지만 "목사가 어떻게 목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까?"막무가내였다.
김목사의 큰 아들은 목포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1950년 10월 27일 지방 빨갱이들에게 붙잡혀 매를 맞고 미제스파이로 몰려 김목사의 일곱식구 부인, 4남매, 손녀가 한날 한시에 숙명적인 죽음을 당한 것이다.
김방호목사가 시무하든 염산교회는 77명이 집단으로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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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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