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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3-26
 제목  김두석(1890.11.27~1950. 8.23)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890년 11월 27일 함남 서포리에서 출생했으며, 영생중학교와 연희전문을 거쳐 장로회 신학교를졸업하였다.
3·1운동으로 3년 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 영등포교회를 시무할 때 6·25를 만나 공산군에게 납북되었다.

 

영생중학교 졸업(2회)
연희전문학교 졸업.
평양신학교 졸업
함흥, 신포, 서호,
1942년 노회 파송 만수선교사
경기도 죽원리, 문산, 봉일천교회, 영등포 신길동교회

 

김두석목사는 1890년 11월 27일 함경남도 함흥시 서호리에서 태어났다. 영생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나왔지만 조국을 배신할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설곳이 없었다. 3.1운동 함흥만세운동에 관여했다고 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 옥고를 치루었다.
1926년 평양신학교를 입학하여 20회로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고향인 함흥을 중심으로 신포, 함흥, 서호등지에서 목회에 전념하였다.


숨막히는 일본의 감시를 견딜 수 없어 만주지방 나주 왕청을 선교사역지로 하고 이민 1세들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치고 잡기를 버리도록 하는 등 삶의 자세를 바로잡는 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해방 후 공산군의 점령하에 고향교회를 맞지 않고 서울로 내려와 봉일천교회를 개척하고 신길동에 월남한 피난민들의 요청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1년만에 교회를 신축했으나 1950년 6.25동란이 터졌다. 만주에서의 경험으로 민족도 배신할 수 있는 공산당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김목사는 6.25가 발발한 주일 아침 설교에서그는 북한공산치하에서 공산당을 피해 월남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월남한 사람들은 공산화되면 남한 출신보다 몇배나 공산군의 미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소중히 지킬 책임이 있으니 부디 피난하여 목숨을 부지하라고 성도들을 피난시키고 자신은 교회를 지키다가 8월 23일 공산군의 교역자 납치령에 의해 체포당하여 이북으로 끌려가다가 총살형을 당했다고 전한다.


유족으로는 김인자 목사(자) 김대영(자) 손자손녀 김충기 김준호 김송금 사위 이종영 연세대교목. 장남 김대현 작곡가 중대교수 등이 순교자의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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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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