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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1-20
 제목  밀레(Millet, Jean-Francois 1814.10. 4~1875. 1.20)
 주제어  [프랑스] [화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프랑스의 비르비종파 화가. 노르망디 지방 그뤼시(Gruchy) 출생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밀레는 마을에 있는 두 개의 교회에서 개신교 목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밀레는 라틴어와 근대의 문학 작가들에 대해 배웠다.

 

19세쯤 장학생으로 파리에 가서 한때 들라로슈에게 배웠다. 1833∼1836년 셰르부르에서 그림공부를 하였다. 루브르미술관에서 푸생, 르냉, 샤르댕 등의 영향을 받았으나, 도미에의 작품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1848년 살롱에 출품한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은 그 후 농민생활을 그리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1849년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대지와 맺어져 있는 농민생활의 모습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그렸다.
이 시절에 루소, 코로 등과 친교를 맺고, 빈곤과 싸우면서 진지한 태도로 농민생활에서 취재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여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과는 달리 풍경보다는 오히려 농민생활을 더 많이 그렸다. 그런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종교적 정감이 감도는 서정성으로 친애감을 자아내고 오늘날까지 유럽 회화사상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만년에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 화가로서의 영광을 누렸으며, 1868년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형식주의에 반발하고 소박하면서도 경건한 삶을 사는 농민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작품에 〈이삭 줍기 The Gleanes〉(1857, 루브르 박물관), 〈만종 The Angelus〉(1855~57, 루브르 박물관),〈저녁기도〉 등이 있다.

 

 

연혁

1814년 10월 4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근처의 농촌에서 출생. 부친은 가난한 농부. 밀레는 8남매 중 장남.
1837년(23세) 이제까지 고향에 가까운 셀세르르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가 장학금을 얻어 1월에 파리로 진출. 파리의 들라로시 화숙에 입문. 영국 화가, 콘스터블 사망.
1840년(26세) 처음으로 살롱에 초상화 출품. 조각가 로댕, 화가 모네 출생. 전년에는 세잔, 시슬리 출생.
1841년(27세) 포리느 오노와 결혼. 신접 살림을 파리에 차림. 화가 르노와르 출생.
1844년(30세) 가난한 가운데서도 작품에만 전념했는데, 3년만에 결혼한 부인이 죽자, 실의에 빠진 나머지 고향으로 돌아간다.
1845년(31세) 카트리느 루메르와 재혼. 다시 파리로 나가 디아스, 상시에 등과 알게 됨.
1848년(34세) 파리에서 2월 혁명 발발. 루이 나폴레옹 대통령에 취임. 고갱 출생. 마르크스, 엥겔스 공산당 선언 발표. 2월 혁명 후에 생긴 무심사 살롱에 〈키질하는 사람〉을 출품, 이 작품이 테오필 고티에에게 인정되어 로랑에 매입한다.
1849년(35세) 가족과 함께 파리를 떠나 바르비존 촌으로 이사. 농민들의 생활을 소재로 제작 활동.
1850년(36세) 〈씨 뿌리는 사람〉, 〈건초를 묶는 사람들〉을 살롱에 출품.
1851년(37세) 바르비존에서 농사를 지으며 작품 활동. 영국의 풍경화가 터너 사망.
1852년(38세) 밀레, 바르비존에서 전원 생활. 교회 일도 맡아 보면서 그림을 그림. 루이 나폴레옹은 스스로를 황제로 선언, 프랑스에 나폴레옹 3세에 의한 제 2제정이 시작됨.
1853년(39세) 화가 고호 출생. 크리미아 전쟁 발발. 〈풀베는 사람들의 식사〉를 제작. 모친 사망.
1854년(40세) 〈모이를 주는 여인〉제작.
1855년(41세) 〈접목을 시키는 남자〉를 만국 박람회에 출품, 호평을 받으나 가난은 여전히 계속된다.
1856년(42세) 빵을 사지 못할 형편.
1857년(43세) 〈이삭 줍기〉를 살롱에 출품하나 비평가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 이따금 그림이 팔렸다.
1859년(45세) 〈소와 농부〉, 〈만종〉,〈죽음과 초부〉는 낙선.
1862년(48세) 〈삽을 든 사람〉을 내놓았는데, 이 작품이 평론가들과 상류 계급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1863년(49세) 〈어린 양치기 소녀〉제작.
1867년(53세) 만국 박람회에 〈이삭 줍기〉, 〈만종〉, 〈죽음과 초부〉등을 출품했고, 살롱에는 〈제비를 돌보는 소녀〉와 〈겨울〉을 출품하여 일등 상을 받음.
1868년(54세) 프랑스 최고 훈장 레죵 도뇌르 훈장을 받음.
1870년(56세) 독불 전쟁의 전화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인 세르브로 돌아갔는데, 밀레는 이때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물통의 물을 옮기는 여인〉제작

1871년(57세) 11월, 바르비존으로 귀환. 밀레의 명성이 높아져 그림 주문이 많았으나, 건강이 좋지 못해 충분한 작업을 하지 못한다.
1873년(59세) 〈〉제작.
1874년(60세) 〈그레빌의 교회〉제작.
1875년(61세) 1월 20일, 바르비존의 집에서 향년 61세로 사망. 경건한 신앙심을 지녔고 문학을 좋아한 밀레의 작품에는 농촌 풍경, 농부, 교회 등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프랑스 

>> 연결고리 : 프랑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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