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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9-12-18
 제목  홍경래 난(洪景來-亂)
 주제어  [농민봉기] [한국사] [난]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811년(순조 11년)  12월 18일(음력)부터 1812년(순조 12년) 4월 19일(음력)까지 홍경래·우군칙(禹君則) 등을 중심으로 평안도에서 일어난 넓은 의미에서의 농민 봉기이다.

 

한국 역사에서 19세기는 가히 '농민봉기의 시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크고 작은 농민들의 저항이 끊이질 않았다. 18세기까지만 해도 개별적인 조세 납부 거부나 신역(身役) 모면을 위한 도망 등이 저항의 전부였음에 반해, 19세기에 들어서는 저항의 형태가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변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저항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바로 1811년 12월 18일에 일어난 평안도 농민전쟁, 일명 '홍경래의 난'이다.


19세기 초 조선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을 중심으로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을 견제할 만한 정치 세력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자연 그 폐해는 민중들에게 고스란히 넘어와 그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평안도 용강 출신인 홍경래는 본디 양반 출신인데, 과거에서 여러 차례 떨어지자 그것이 서북(평안도)인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는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의 모순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하여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장차 큰 일을 꿈꾸며 산으로 들어가 병법에 관해 공부하였다. 그러던 중 평안도 가산에서 서얼 출신인 우군칙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뜻을 확인하고는 봉기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회 실정을 파악하는 한편, 자금 마련을 위해 평안도 내의 부농층·상인들과 자주 접촉하여 그들을 동지로 규합해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가산의 부호 이희저와 김창시를 포섭하여 봉기를 위한 재정을 마련하고 천혜의 요새인 가산의 다복동을 본거지로 삼았다.


이후 10여 년간 홍경래는 봉기에 동원할 병력을 충당하기 위해 운산 촛대봉에 광산을 열고, 그곳으로 유민들을 유인하여 비밀리에 군사 훈련을 시켰고, 평안도 일대의 지역 실력자 및 지방 관속들을 포섭하여 동조 세력을 광범위하게 조직하였다.


1811년(순조11) 극심한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하자, 홍경래는 그 해 12월 18일 마침내 군사 2천여 명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홍경래는 먼저 가산군 관청을 습격하여 군수를 죽인 다음, 박천·곽산·정주·선천·태천·철산·용천 등을 빼앗아 청천강 이북의 평안도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렇게 순식간에 여러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관군의 준비 부족도 있지만 각 지역에 사전에 조직되어 있었던 동조 세력들이 적극 호응해준 결과였다.


그러나 전열을 가다듬은 관군의 공격으로 패퇴하자 봉기군은 정주성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정주성을 빠져나가는 군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봉기군의 사기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런데 관군의 잔혹한 초토화 전술로 피해를 입게 된 농민들이 관군의 횡포와 무자비한 살육을 피해 정주성으로 몰려들어오자 봉기군의 사기는 다시금 높아졌다. 그리하여 봉기군은 보급로가 끊기고 장비나 숫자가 열세인 상황에서도 관군을 맞아 4개월간이나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벌였다.


마침내 관군은 성 밑에 굴을 파고 화약을 매설하여 성을 폭파시켰다. 이때 2,983명이 체포되어 여자와 소년을 제외한 1,917명 전원이 즉석에서 처형되었고, 지도자들은 전사하거나 서울로 압송되어 참수되었다.


홍경래의 난은 당면한 사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여 전개 과정에서 일반 농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는 못하였지만, 조선 후기의 사회 발전을 바탕으로 지배체제의 외부에서 성장한 지식인들이 모순에 가득찬 지배체제를 허물려는 시도를 하였고, 또 그 붕괴를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서 : 홍경래(洪景來)

박종화(朴鍾和)가 지은 장편 역사소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1954년 정음사(正音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홍경래〉는 홍경래의 난을 소재로 해서 우리 근대사의 영웅 홍경래의 일생을 그렸다. 이 작품은 상·하권으로 서장 왕자묘(王字墓)에서 부터 종장 성락동풍지뢰화(星落東風地雷火)를 통해서 민족적 영웅 홍경래의 일대기를 낭만적 필치로 소설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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