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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12-08
 제목  시벨리우스(Sibelius Jean, 1865.12. 8~1957. 9.20)
 주제어  [핀란드] [작곡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핀란드의 작곡가. 법률에서 음악으로 전향하여 헬싱키· 베를린· 빈에서 수학하였다. 1890년대부터 민족적 대서사시 〈칼레발라〉에 바탕을 둔 《크레르보 교향곡》을 발표하여 성공하고, 1900년부터 지휘여행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민족정신에 입각한 걸작을 많이 작곡하여 거국적인 존경을 받았다. 초기의 작품은 낭만파와 국민음악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중기 이후에는 간결하고 고전적인 경향을 보였다. 작품에 7개의 교향곡, 교향시 《핀란디아》 《4개의 전설》 등이 있다.


란드의 목소리라고 불리우는 잔 시벨리우스는 핀란드 국민악파 음악의 창설자로서, 그는 위대한 교향곡의 작곡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모국의 민족 음악의 특징을 살려 독특한 멜로디와 리듬을 마련해 낸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본명는 요한 율리우스 크리스티안(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으로 헤멘린나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5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15세 때부터는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배워 이 무렵부터 점차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음악가가 되려는 그의 희망을 반대하여 1885년 헬싱키대학에 입학, 법률을 전공하는 사이사이 헬싱키 음악원에서 베겔리우스에게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습니다. 그 후 음악을 전공하기 위하여 대학을 중퇴하고, 당시 음악원 교수로 있던 명피아니스트 부조니에게 사사받았습니다.
시벨리우스는 본래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뜻을 품었으나, 무대에 서면 상기하는 성격 때문에 연주가를 단념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1889), 빈(90)에 유학하고, 빈에서는 브람스를 만나 가곡에 호의적인 평을 받았습니다. 민족적인 소재를 통속적인 묘사에 빠지지 않고, 유럽풍인 지적 묘사로 처리한 그의
작풍은 유학시절에 쌓은 지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초기의 작품은 교향곡 '클레르보', 관현악곡 '옛 사가(전설)'가 있고, '투오넬라의 백조', '레민카이넨의 귀향',
'불의 기원', '칼레발라(Kalevala)' 등이 있습니다.
다음의 '교향곡 제1, 2번', 모음곡 '카렐리아(Karelia)', '핀란디아(Finlandia)' 등의 작품은 러시아 음악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897년 핀란드 의회는 연금 200마르크를 그에게 연구비로 수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904년 봄에 헬싱키로부터 20마일 떨어진 아르벤파우라는 호반에 집을 지어 그 곳에서 많은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그의 기법은 주로 베토벤과 그 밖의 고전 작가에 가까운 감이 있었습니다.
형식미에 세련된 구성, 아이디어의 유기적인 발전 등은 가장 중요한 성격으로 되어 있어 내성적인 표현이 점차 강해졌습니다.
이같은 독일 낭만파 후기의 영향을 받았는데, 북쪽 나라 고유한 어두운 하모니에 그의 조국의 특징 있는 리듬을 사용하여 향토적인 개성을 강하게 나타냈습니다.                                                                                


그는 표제음악과 교향곡 등을 많이 작곡하였는데, 그의 7개의 교향곡, 교향시 '핀란디아', 바이올린 협주곡 등은 대표적입니다. 그의 음악에 넘치는 본질적인 비애와 우수는 북극의 자연 환경과 피정복국으로서의 괴로움을 참고 나가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벨리우스야말로 진정한 국민적인 특색을 가진 작곡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살아있는 현장인 라흐티, 그가 사랑했던 고향 하멘린나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반세기 이상을 살았던 예르벤페, 그리고 그의
음악적 영감 '칼레발라'의 근원지 카렐리아를 찾아 그가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던 핀란드의 자연과 신화, 그리고 민족적 정서를 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시벨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500개 넘는 쇠조각으로 만든 조각가 Eita. Hitumen의 1967 작품 조형물

 

장 시벨리우스, 얼굴 주변에 떠도는 것은 그의 영감을 나타내는 것임.


핀란드 국민 음악의 창설자이며 위대한 교향곡 작곡자인 얀 시벨리우스(Sibelius, Jean:1865-1957)는 표제음악과 교향곡 등을 수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는데, 7개의 교향곡, 교향시 ‘핀란디아’, 바이올린 협주곡 등의 핀란드의 민족적 색채가 강한 음악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인생의 전환점을 여러 차례 맞았던 것입니다.
첫 번째 전환점은 러시아 통치하에서 핀란드어를 처음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학교에 입학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핀란드의 문학을 배웠습니다. 그때 배운 신화들은 뒷날 시벨리우스의 음악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의 전환점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발견된 음악적 재능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피아노의 단조로운 손가락 움직임을 싫어한 그는 곧 잘 즉흥 연주를 하곤 했는데 바이올린은 이러한 그의 소질에 맞는 악기이었습니다.

세 번째 전환점은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작곡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흥분하기 쉬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그는 같이 흥분하다 바이올린 연주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작곡가로 변신한 후에는 흥분 때문에 작품을 망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네 번째 전환점은 그의 결혼이었다. 베를린에서 유학 동안 고국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돌아왔고 그 무렵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있었으며 그의 처가는 독립운동에 큰 영향력을 끼친 집안이었습니다. 뿐 아니라 신혼 여행지인 카렐리아 지방에서 핀란드 민속음악을 듣는 순간 그가 가야할 음악적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이러한 여러 차례의 인생의 전환점을 거쳐 성공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생은 커다란 화강암과 같다. 자신이 얼마나 단단한 화강암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의지라는 정으로 화강암을 그가 원하는 모양으로 조각하는 것이다".

 

KCM 예화에서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핀란드

>> 연결고리 : 핀란드,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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