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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9-10-23
 제목  에지힐전투(Battle of Edgehill)
 주제어  [영국] [전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스코틀랜드 장로 교회에 대한 찰스(Charles) 1세의 종교 정책 담당자 로드 주교의 국교회 기도서 강요, 로드 주교 탄핵 문제 등을 둘러싼 의회와 왕정의 갈등, 찰스 1세의 하원 무장 침입 등의 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1642년 영국 내전이 발발했다. 1642년 10월 23일 발생한 에지힐 전투(Battle of Edgehill)는 찰스 1세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와 의회파간에 진행된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1642년 10월 12일 찰스 1세가 14,300여 병력을 이끌고 런던으로 진군하자, 의회파의 군사령관인 에섹스(the Earl of Essex) 백작 역시 약 14,900명의 군을 이끌고 워세스터(Worcester)에서 런던으로 향했다. 10월 21일 11k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왕당파와 의회군이 대치하게 된다. 


10월 22일 찰스 1세는 워윅크셔(Warwickshire)의 밴버리(Banbury) 근처로 이동해 진을 형성했고, 의회파의 에섹스 백작은 키네톤(Kineton)에 자리를 잡았다. 이 날 찰스 1세는 니콜라스 바이런(Nicholas Byron) 경에게 4,000여 병력으로 밴버리 함락을 명령하고자 했다. 그러나 루퍼트(Rupert) 왕자는 찰스 1세에게 전령을 보내 '키네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략 요충지인 '에지힐' 봉에 먼저 군사를 이동 집결 시킬 것을 제의했다. 찰스 1세는 루퍼스 왕자의 의견을 수용, 에지힐에 군을 집결시킴으로서 의회군의 밴버리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동시에 의회군의 주력군 주둔지 '키네톤'에 대한 효과적 정찰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10월 23일 아침, 의회군의 에섹스 백작은 에지힐을 마주보고 찰스 1세와 대치했다. 왕당파의 루퍼스 왕자와 헨리 윌모트(Henry Wilmot)가 좌우 선봉을 그리고 찰스 1세가 중앙군을 맡아, 공격을 개시했다. 왕당파의 좌우 공격대가 의회군을 밀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찰스 1세의 기병대를 지휘했던 존 바이런(John Byron) 경이 중앙군의 위치를 이탈해 키네톤으로 밀고 들어가던 루퍼스 왕자를 지원하기 이해 이동하는 바람에 왕당파의 중앙군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날 전투로 의회군은 약 1,000명, 왕당파가 약 5,00명 가량 전사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찰스 1세의 승리였다. 이날 전투의 승리로 찰스 1세는 런던 입성 기회를 맞이했지만, 지나친 조심성으로 인해 런던을 장악할 유일한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찰스 1세가 리딩(Reading) 근처로 군을 이동한 사이, 전열을 정비한 에섹스 백작이 런던에 진입, 왕당파 공격에 대비한 군보강 작업을 끝냄으로서 찰스는 런던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영국

>> 연결고리 : 영국,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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