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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05-28
 제목  루이스 아가시(Jean Louis Rodolphe Agassiz, 1807. 5.28~1873.12.14)
 주제어  [스위스] [생물학자] [동물학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스위스 출신의 미국 지질학자 · 생물학자로 어려서부터 동물학에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취리히에서 의학·자연 과학을 배우고 뉘샤텔의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 184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미국에 귀화하여 하버드 대학 교수로 근무하였다.

 

빙하기라는 용어는 스위스 해양 생물학자 루이스 아가시(L. Agassiz)에 의하여 최초로 제안되 었다. 본래 아가시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스위스 대학의 촉망받는 교수이자 박물학자로서 어류 화석의 몇 안되는 권위자의 한 사람으로 이미 인정받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박물학의 선배이자 스승인 샤르팡티에의 초청을 받고 그는 1836년 샤르팡티에의 고향인 벡스의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수십 내지 수백 km나 떨어진 곳에서 운반된 거대한 표이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이한 지형에 매료되었다. 아가시는 그렇게 거대한 표이석은 아무리 많은 물일지라도 운반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지금까지 빙하에 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으며, 마치 개종자처럼 열렬하게 빙하 이론을 믿게 되었다.

 

그는 많은 조사와 연구를 발전시켜 빙하 이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1837년 6월 24일, 아가시는 그 가 회장으로 있는 스위스 자연과학협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거대한 미아석이 1만8천년전 스위스를 덮고 있던 대 빙하의 전진으로 운반되었다가 빙하가 녹아 없어짐으로 현재의 위치에 있 게 되었다”고 발표하면서 이 지구 규모의 사건을 칼 심퍼가 1년전에 사용한 용어를 채택하여 빙하기 (Eiszeit: Ice Age)라고 불렀다. 후에 ‘누샤텔의 강연’으로 유명해진 그 날의 강연에 대해 청중들은 단지 몰이해로 인한 침묵으로 응하였다.

 

그후, 아가시는 빙하기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보다 자세한 연구를 통해 1840년 “빙하의 연구”(Studies on glaciers)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전에 빙하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의 북방을 전부 덮고 있었다는 사실을 더욱 철저하게 주장하였다. 계속 많은 반대자들의 저항에 부딪혔지만 아가시는 그의 주장에 대한 확신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많은 지질학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마침내 라일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그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 그래서 루이스 아가시는 빙하설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1846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바드 대학의 동물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저서로 《어류 화석 연구》 5권과 《비교 동물학 박물관》이 있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스위스

>> 연결고리 : 스위스,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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