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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05-06
 제목  말콤 펜윅(Malcom C. Fenwick, 1863-1935) 선교사
 주제어  침례교 [침례회] [내한 선교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말콤 펜윅(Malcom C. Fenwick) 선교사

말콤 펜윅은 1889년, 약관 26세의 나이로 조선에 와서 한국 침례교회를 세운 초대 선교사이다. 그가 전성기에 개척한 교회는 250개 였고, 두만강과 시베리아까지 가서 교회를 세우는 열정을 보였다. 그 외에도 성경의 독자적 번역, 찬송가 간행 등 문서선교에 기여한 공이 큰 선교사이다.

펜윅은 1863년 캐나다 토론토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열 한 자녀를 낳은 후 펜윅이 다섯살 때 죽었다. 그는 신앙이 독실한 어머니와 여러 해 동안 그의 집에 같이 살았던 한 목사님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 "말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대개가 안식일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타락하기 시작한다." 목사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그는 죄에 빠지지 않고 주일학교에서 여러가지 직분으로 봉사 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펜윅에게 말했다. "아들아, 네가 예수님께 마음을 드린다면 너를 아무리 멀리 보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 일로 그는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찾고자 결심했다. 그 뒤 그는 2년 동안 산에 올라가 밤새워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온갖 노력에도 의로와지기는 커녕 시꺼먼 죄인임을 발견하고 좌절에 빠졌다. "주님, 저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입니다." 그는 절망 중에 토론토 시내 어느 거리를 방황하다가 주님의 인자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자격이 없지만 내게는 있노라. 나는 너를 살리려고 죽었노라" 이 사건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26세 되던 1889년 어느 날 한국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당시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왔던 헤론 박사의 아내가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감옥에 수감되었고, 조만간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캐나다 신문은 연일 그 소식을 다뤘다. 그 때 그 일을 들은 고향 집의 연로한 목사님이 슬픔 중에 회중 앞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말했다. "주여, 주께서는 한국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인 줄을 잘 아시나이다" 이 정도로 당시 지식인들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도 한국이 지중해에 있는 어떤 섬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가는 곳은 으례 무더운 지역인 줄로 알았다. 그러므로 한국에 연중 석달 동안 눈이 120센티나 쌓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편집자 주: 그가 살아야 했던 황해도 지역) 도대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명확한 상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는 보다 앞서 조선에 간 멕켄지 선교사와 아는 사이였다. 그는 멕켄지에게 신학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편지를 썼다. 또 외국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고 한 언어라도 제대로 말할지 자신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멕켄지는 말했다. "가서 예수를 위해 죽을 마음이 없습니까? 그들이 배척하더라도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면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 앞에 떳떳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선교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이아가라 사경회에서 ? 년간 성경공부를 했다. 그 당시 그는 철물 도매업을 했으며 직원 40명을 거느린 창고 책임자였다. 그는 저녁 시간을 이용해 성경을 공부하고 기회가 닿으면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나이아가라 사경회를 하는 중에 다시 한번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또 변명했다. "저는 사업가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목사도 아니고 신학교에 가본 적도 없습니다." 주님은 다시 "가라"고 명했습니다. 그날 저녁 인도에서 온 윌더라는 형제로부터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막에서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물을 담아 화려한 유리잔에 따라 주면 감사하게 마실 것이다. 그러나 더럽고 쭈그러진 양철통에 물을 담아 주더라도 역시 감사하게 받아 먹고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물이다" 이 말을 듣고 변명하는 마음을 버렸다. 적어도 찌그러지고 누추한 양철통은 되어 생명수를 전달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즉시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넉달의 항해 끝에 조선에 도착했다.

처음 열 달은 한국어를 배우려고 각종 교과서들과 지침서를 탐독했다. 그러나 암기하는 방식으로 실패한 후 한국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몇몇 한국 친구들과 함께 황해도 소래로 떠났다. 당시 한국에는 사냥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사냥꾼들의 낙원이었다. 다섯 종류의 오리떼들이 4-5km의 강을 빽빽이 뒤덮었고, 들거위들이 물댄 논에서 날아오를 때는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하늘이 까맣게 덮일 정도였다. 산에 들어가면 멧돼지, 흑곰, 표범과 호랑이 같은 큰 사냥감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소래 마을에서 소년반을 하나 만들고 마을 여성 중 유일하게 글을 깨우친 안선생 부인이 부인들과 소녀들을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성경을 가르칠 때 한국어로 찬송을 부르고 싶고 가르치고 싶었다. 짧은 어휘로 고생을 했는데 특히 문제된 문장은 "너희에게 생명을 바치신다" 였다. 한국어에는 하인이 상전에게, 백성이 임금에게 어떤 것을 바칠 때를 제외하고는 바치는 것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번역을 본 한국 친구들이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반발했다.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비천한 하인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우리 같은 진토의 벌레들을 높은 자리로 끌어올리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인이나 백성이 자기 임금에게 무엇을 바칠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바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인의 자리를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고백은 했지만 관습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펜윅은 일어나서 말했다. "선비 여러분, 빌립보서 2:5절을 보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종의 형상을 입으셨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하인들이 여러분에게 하듯 그분은 두 손을 뻗어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값없는 선물로 '바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선물을 걷어 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말했듯이 진토의 벌레들과 같은 우리들 앞에서 영광의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을 그분의 이름으로, 그리고 다음과 같은 찬송으로 다시 한 번 선언합니다. 생명을 여러분에게 바치시네, 아멘." 이 말을 들은 한 젊은이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걸어나갔다. 문을 열고 돌아선 그의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근처의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채소밭은 만들었다. 50명의 주민 중 팔을 걷어 붙이고 일하는 사람은 세 명 뿐이었다. 채소밭을 만들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서양인 선생이 겉옷을 벗고 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한국사상에서는 선생이나 선비는 노동을 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펜윅은 1893년 잠시 귀국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신학교육과 훈련을 받고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듬해 다시 내한해 보니 신자가 300명 가량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소래에서 원산으로 선교지를 옮기고자 했다. 그가 캐나다에 간 사이 소래에 프로테스탄트 선교부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래 사람들은 남아서 자기들의 목사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급료를 지불하고 더 큰 집을 지어 주고 하인들을 붙여주고 전도를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소래에 미련을 버리고 교회가 없는 새로운 선교지를 찾아 원산으로 갔다.

펜윅은 자서전에서 한국인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인들의 생김새는 중국 사람들과 다르고, 일본 사람들과는 딴판이다. 일본 사람들보다 키가 훤칠하고 몸집도 크고, 지적으로 더 우수하며, 일본 사람들에게 가득한 잔인한 말레이족의 피가 조금도 흐르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명민하여 어떤 가르침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창의력이 있고, 근면하고, 고생과 시련을 초인적으로 잘 참아 내며, 적자가 생존하는 야생 동물들과 비슷한 활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에게 아주 예의바른 태도를 보이고 심지어 웃음을 띠고 목례를 할지라도 속으로는 메스꺼워하고 경멸하고 싫어한다. 속으로는 '백인은 무례하고 거만하다. 비누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한다." 펜윅은 이렇게 백인을 야만인으로 경멸하는 그들에게 몇 달이고 주일마다 찾아다니면서 설득했고, 눈물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 보혈로 자신의 죄를 씻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무거운 죄짐을 벗고 마음에 얻은 평안을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웃었고 "그것이 서양인인 당신에게는 좋겠지만 우리들은 한국인입니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가 그토록 열변을 토해가며 전한 예수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이 흰둥이 야만인처럼 만든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예수와 일절 관계를 맺지 않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펜윅 역시 처음에는 황인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을 갖고 있어서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지치고 좌절에 빠졌다. 그러나 어느 조선인 형제의 증거를 통해 자신의 말에는 꿈쩍도 않던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가 조선에서 첫 예배 드릴 때 7명이 신앙고백을 했다. 펜윅은 성경학교를 개설하여 은혜받은 청년들을 목회자로 양성하고자 하였다. 네 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교육과정을 마친 후 모두 돈과 이단에 빠지고 지쳐서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이렇게 철저히 실패했지만 그 후에 본토인 목사를 통해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첫예배 때 신앙고백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펜윅에게 단 몇 주간 성경을 배운 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480km떨어진 곳의 지역 책임을 맡아 떠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신명균으로 그가 백인(편집자 주: 펜윅 자신)과 접촉하여 더 효과적으로 쓰임받지 못하기 전에 하나님이 섭리로 타지역으로 데려가신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발견한지 열 흘만에 주께 무릎을 꿇고이제 자신의 인생을 주께 드리고자 결단했다. 맨처음 그가 한 일은 귀신 들린 청년을 고치고 집중적으로 보살피는 일이었다. 이 청년의 부모는 고침받은 청년을 보내 제자가 되게 했다. 한 번은 펜윅이 신선생에게 집수리비로 15달라를 보냈는데 나중에 보니 집수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그돈을 조사의 전도비용으로 주고 자신과 가족과 학생들은 묽은 죽으로 연명했기 때문이었다. 신선생은 열 두 곳에 교회를 개척한 훌륭한 목자였다. 그는 조랑말을 타고 정해 놓은 시간에 교회들을 방문했다. 심방 때는 제자들을 여럿 데리고 다녔는데 그들은 종종걸음으로 조랑말 뒤를 따라갔다. 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신체적, 영적, 실제적 강의를 동시에 받았다.

그는 출입이 허용된 지역들을 철저히 전도했다. 먼저 성경반을 열고, 성경과 쪽복음을 비치하고 경험있는 사람에게 공부반을 맡기며 그를 그 지역 지도자로 삼았다. 그 지도자에게 10-20명의 전도자들이 배속되었다. 전도자는 한 달 동안 팔 수 있는 분량을 짊어지고 자기가 맡은 군으로 가 읍과 촌락들을 방문했다. 빠지는 집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되도록 모든 사람을 만나며, 만나는 사람에게 간절히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며 복음을 전했다. 한 권에 0.5센트나 1센트하는 복음서를 그들이 사지 않으려고 할 때는 요한복음 3장이 적힌 전단이나 성경본문을 적절한 주제에 따라 배열해 놓은 전단을 건네줍니다. 관할 구역을 다 돌아보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일을 되풀이합니다. 이렇게 해서 펜윅은 31교회를 세웠다. 교회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십인 순장, 오십인 순장, 백인 순장(총장)들을 두었다. 이들이 맡은 일은 집사들을 보조하는 것이다. 집사들은 그들을 감독하고 교회 재정을 관리하며 신앙감독도 하였다. 집사들 위에는 조사들이 있었는데 조사들은 목사들의 감독하에 담당교회들을 돌보았다. 목사들 위에는 감목, 또는 치리목사가 있었고 목사들은 석 달에 한 번 담당 지역들에서 성경공부 및 행정적인 일을 위해 모임을 가졌다.

신목사는 두 명의 목사와 두 명의 필사자를 배출하였다. 손선생은 책 외판과 필사를 하던 사람으로 영혼들을 얻고 교회를 세우는데 탁월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여덟 교회를 세웠다. 손선생은 한 달에 5달라인 자신의 급료를 쪼개서 쓸 각오를 하고 성경 짐꾸러미를 가득 진 한 형제와 함께 파송되었다. 그는 여섯 주가 못 되어 2개의 교회를 세웠다.

장선생은 기독교식으로 결혼한 최초의 청년이었다. 한국에서는 처녀가 친정과 부모를 떠나 시댁으로 갈 때는 아내가 아니라 하인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펜윅은 신랑의 부모에게 신부를 하인이 아닌 딸로 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결혼시켰다. 한 선교사가 말했다. "펜윅 선교사님이 그 약속을 받아낼 때 신부가 얼마나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보셔야 했습니다." 펜윅이 장선생에게 설교를 부탁하고 그 지역을 맡긴지 약 8일만에 도시 전체에 복음이 전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장선생이 사용한 방법은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그는 성경을 펼쳐 하나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 같이 회개하자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방법은 모든 경우마다 똑같은 결과를 일으켰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면서 간구하게 만들었습니다. 장선생의 설교로 인해 교인들은 예배당과 마당에 발디딜 틈도 없이 들어찬 인파 때문에 밖으로 밀려나가 밖에 서서 예배를 드릴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이에 분노한 선비들이 포졸을 이끌고 와서 장선생의 옷을 벗기고 매우 쳤습니다. "무슨 놈의 양반이 서양 예수 교리를 가르치냐" 그들은 장선생의 뼈를 부러뜨리고 살얼음이 낀 도랑에 내던져버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부러지고 상처난 몸으로 마지막 집회에 참석했다. 이렇게 하여 불과 몇 달 사이에 그를 통해 36개의 새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펜윅은 한국에서 25년간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 때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외로움에 시달렸다. 1899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어머니께로 갔다. 그러나 병이 회복된 후 또 작별하게 되었다. 이때 어머니는 담대히 말했다. "아들아, 괜찮다.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게고, 그날이 오면 서로 다시 만나 영원히 더 이상 작별하지 않게 될 거다." 정거장에서 어머니를 뒤로 한 채 한국으로 오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후 한 아편 중독자를 회심시켰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은 귀신들이 그를 좇아 다니며 식구들을 죽일 것이라고 위협했다. 얼마 후 그들의 말대로 할머니가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큰 굿을 벌여 귀신들을 달래라고 재촉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뤘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그의 어린 자녀들 중 둘이 악성 열병에 걸려 갑자기 죽게 되었다. 동네사람들은 다시 귀신 달래는 장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나는 예수식으로 장례를 치를 거요. 아이들이 죽기 전에 예수에 관해 들은 것을 참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는 열달만에 교인 수 평균 45명이 되는 열 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런 역사에 힘입어 펜윅이세운 교단은 1년 6개월 동안 교회수가 162개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여덟사람이 성경을 배우러 80km나 되는 길을 걸어 왔습니다. 이들 중 여섯명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들은 말했습니다. "고향 주변에 신자가 한 사람도 살지 않는 마을이 100군데가 넘습니다. 저희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재원이 없었던 펜윅은 "성경을 팔도록 대주겠다. 그러면 한 달에 75센트나 1달라 비용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기쁨에 겨워 할렐루야 외쳤다. 그들은 성경을 잔뜩 짊어지고 특권에 자부심을 갖고 길을 떠났다. 얼마 후 3곳에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또 한 번은 일곱명이 산촌에 성경을 보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에 75센트만 주면 된다고 하였다. 손선생이 다시 방문해보니 임무를 받은 일곱 명이 고생중에도 일을 잘 해내고 있으며,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종종 나뭇잎으로 연명했다고 합니다. 한 할아버지 교인은 예배당을 지을 돈이 없었습니다. 지붕을 못얹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못하여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를 팔아서 예배당을 완공했습니다. 그는 이로인해 손으로 쟁기질을 하느라 온 몸이 땀투성이로 젖었습니다. 이처럼 조선인들과 수많은 선교사들의 고결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한국 땅에 복음이 심기워지게 된 것이다.

출처 : 한국대학생선교회(이 글은 예영에서 나온 책을 편집부에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캐나다

                     단체 > 교단 > 기독교한국침례회

>> 연결고리 : 침례회, 내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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