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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02-02
 제목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1468. 2. 3)
 주제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활판 인쇄술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독일의 인쇄술 창시자이자 기술자. 근대 활판인쇄술 발명가로 마인츠에서 1398년경에 출생했다.

그는 1434년에서 1444년경 슈트라스부르크에 체재할 때 금세공인으로 훈련받고 귀족들과의 마찰로 쉬트라스부르크로 추방되었다가 1449년 경 마인쯔로 돌아왔다. 1450년경에 금은세공사 J. 푸스트와 함께 인쇄공장을 설치하고, 주석과 납의 합금으로 활자를 주조하여 천문력(天文曆)·면죄부(免罪符)·성서(聖書) 등을 인쇄하였다. 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성서 《36행 성서》와 《42행 성서》는 유명한데, 이것이 바로 《구텐베르크 성서》이다.

 

구텐베르크는 마인쯔의 금융업자 후스트(J. Fust)의 재정지원을 받아 1453-55년 사이에 42행짜리 마자린(Magarin) 성경을 인쇄해 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1455년 둘 사이에 소송이 벌어져 동업관계가 깨졌다. 소송에서 이긴 후스트는 사위 쉐퍼(P. Schöffer)의 도움을 받아 구텐베르크의 인쇄시설을 갖고 라틴어 성경 인쇄에 착수해 1457년 8월 14일에 시편을 인쇄해 냈다. 이것이 유명한 《구텐베르크 성경》이다. 이후 구텐베르크는 독자적으로 36행짜리 성경과 단어집(catholicon)을 인쇄했다.

 

구텐베르크의 꿈은 중세의 전례(典禮)에 관한 필사본들을 그 색깔이나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전연 손상하지 않고 기술적으로 재생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스트가 그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기자 그의 꿈은 완전히 깨졌다. 이 사실은 괴팅겐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1455년 11월 6일자 헬마스페르거 공증문서에 일부분이 기록되어 남아 있다.

 

그러나 1455년 사업이 파산하게 되어 출자자인 푸스트에게 부채의 보상으로 인쇄공장을 양도하였다. 그 후에는 푸스트와 그의 사위 P. 쇠퍼가 활자주조기술의 개량을 계속하였다. 구텐베르크가 파산한 뒤, K. 후메리가 인쇄도구와 설비를 빌려주었다고 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기구들이었으며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전기에 의하면 거의 실명하게 된 말년에 아돌프 폰 나소공(公)이 그를 조신(朝臣)으로 삼아 안정된 생활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실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텐베르크 성경 원본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져 성경관련 학자들뿐 아니라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영국의 BBC는 22일 디지탈 스캔을 이용하여 문서를 원본대로 재현하는 전문 업체인 옥타보(Octavo)사가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15세기 중반에 제작된 성경을 원본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성경은 현대 인쇄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제일 처음 인쇄한 책으로 인정되고 있는 희귀본으로 그동안 일반인들은 쉽게 볼 수 없었다. 현재 구텐베르크 성경을 완벽하게 재현한 사본은 동물의 가죽에 인쇄되어 있는 성경으로 전 세계적으로 3개뿐이며 이 또한 소수의 학자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됐다.

옥타보사는 구텐베르크 성경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고해상도 카메라와 디지털 스캔을 활용하여 성경 표면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정확히 캡쳐할 것으로 알려졌다.

옥타보사의 사장인 체즈로 쟌 그리츠씨는 "구텐베르크 성경은 쇄술과 문화사의 표상이다"라고 말하고 "이 성경은 세상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현재는 의사소통 기술과 인터넷의 합작을 고무시키는 중세시대 활판인쇄술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1999년 말,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타임지는 지난 1천 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발명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를 선정했다. 구텐베르크는 ‘지난 1천 년간 10대 인물’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지구촌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금속 활자와 이를 발명한 구텐베르크를 소개한다.
 

13세기 중반 중세 독일의 어느 수녀원. 수녀 한 명이 양피지에다 열심히 성서를 필사(筆寫)하고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로부터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수십 권에 달하는 성서 한 부를 한 사람이 모두 필사하려면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을 들여야 한다.
수도사나 수녀들이 이렇게 필사한 성경은 로마 카톨릭 교회 일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러나 2백 년이 지난 1455년, 구텐베르크는 자신이 발명한 금속 활자를 이용하여 3년 남짓한 기간에 성서 180부를 찍어냈다.

구텐베르크 이전의 유럽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 이 유명한 격언은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잘 말해준다. 중세까지 문자를 읽고 쓰며 책을 소지하는 이들은 귀족과 수도승 같은 소수 권력층이었으며, 지식에서 소외된 대중들은 하층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지식을 집합하여 보존하는 ‘책’이 대중에게 보급되기 위해서는 문자와 종이, 인쇄술이 필요하다. 문자는 일찍이 문명권에서 발명되었고, 종이도 A.D.105년 중국 후한시대 채륜이 발명하여 예전에 쓰이던 죽간과 비단을 대체하여 퍼져나가면서 11세기에는 아프리카 북부와 지중해 연안까지 제지술이 전파되었다.
인쇄술은 7∼8세기 중국에서 발명되었다. 처음 고안된 인쇄술은 글자 여럿을 한 목판에 파는 기법의 목판 인쇄술이었다. 새로운 페이지마다 글자를 새로 조판할 수 있는 ‘금속 활자’는 14세기 한국(고려)에서 발명했다. 한국의 활판 인쇄술은 조선조에 이르러 크게 발전했지만 폐쇄적인 조선의 대외정책으로 인해 세계에 전파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15세기에 이르도록 유럽은 동방에 비해 인쇄 기술이 부진하기 짝이 없었다. 성서와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위주로 한 대부분의 책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필사하여 보관했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카톨릭 수도원은 지식의 창고가 되어 지식을 보관, 전수하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 보관된 서적을 통해 왕실과 귀족, 수도승들만이 지식을 공유하였으며 특히 성서를 교회와 수도원이 독점하고 있었으므로 일방적인 신앙을 강요하며 유럽 전체에 거대한 종교권력을 행사하였다.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발명

구텐베르크 당시에는 중국에서 시작된 목판인쇄술이 전래되어 14세기 이래로 사용되고 있었으나 유럽에서 목판 인쇄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목판 인쇄는 수명도 짧고 글씨도 선명하지 않았다. 유럽의 종이는 아시아의 종이보다 더 부피가 크고 부드러워서 강한 압력을 가해 눌러야만 인쇄가 가능했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필요없었던 인쇄기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게다가 중세 유럽의 책은 접은 선을 따라 주름을 잡으며 제본을 하였으므로 목판 인쇄물을 이렇게 제본하면 인쇄된 두 페이지 다음에는 항상 두 장의 백지 페이지가 생긴다는 문제도 있었다.
목판 인쇄의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점차 성장한 시민층의 지식에 대한 열망은 금속 활자 발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네덜란드의 로렌스 코스터를 금속 활자의 창시자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독일의 구텐베르크를 근대 인쇄술의 아버지로 보고 있다.


요한 구텐베르크의 생애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는 대략 1398∼1400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마인츠에서 태어난 그는 1430년경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보석세공과 유리 만드는 일을 했다. 금속 활자에 대한 초기 실험은 이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속 활자로 인쇄한 인쇄물은 그가 마인츠로 돌아간 1450년 이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금은세공사인 요한 푸스트의 자본을 빌어 인쇄공장을 만들고 본격적인 활판 인쇄를 시작한다. 금속 활자로 인쇄한 가장 뛰어난 업적물은 1452년경 시작하여 1455년에 만들어진 ‘42행 성서’다. 42행 성서는 한 페이지가 42행씩 두 줄로 되어 있는 라틴어 성서로, 대략 180부가 인쇄되어 시장에서 모두 팔려나갔는데 현재까지 48부가 발견되었다. 42행 성서를 제작하는동안 그는 교회의 의뢰를 받아 면죄부, 달력, 문법서 등 단편물을 제작하여 재정적인 손실을 최소화하려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사업은 성경 인쇄 직후 완전히 파산하고 출자자였던 푸스트가 부채의 보상격으로 인쇄기를 뺏고 인쇄공장을 인수해버렸다. 푸스트와 그의 양자는 인수한 인쇄공장에서 활자 주조 기술을 계속해서 개량하여 큰 돈을 벌어들였다.


파산한 구텐베르크는 그다지 부유하게 살지 못했다. 1457년경에는 42행 성서의 활자 이전에 만들었던 활자로 다시 ‘36행 성서’를 출판하고 몇 가지 인쇄물을 제작했지만 여전히 재정난을 겪었다. 1460년 그는 콘라드 후메리의 원조로 인쇄공장을 재건하고 소책자 등을 찍어내다가, 주교자리를 놓고 벌어진 정치적인 혼란 중에 인쇄기가 파괴되는 불운을 겪는다. 그러나 그의 활판 인쇄술은 마인츠에서 독일로, 전 유럽으로 보급되어 나갔으며 신속하게 개량되고 발전하였다. 만년에 그는 마인츠의 대주교 아돌프가 지급하는 연금을 받아 생활하다가 1468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속 활자가 가져온 종교개혁과 시민혁명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이후 수백 년 가량 거의 변함없이 사용될 정도로 실용적인 것이었다. 활판 인쇄술은 그의 견습공들에 의해 빠르게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1464년에 로마로 전파되었고 1500년까지 유럽 260개 도시에서 인쇄가 진행되었다. 1500년에 당시 성서를 비롯한 종교서적, 그리스·로마의 고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보고서 등 50만 부 이상의 인쇄된 책이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바깥으로 전해진 활판 인쇄술은 1539년 멕시코에서 처음 시작되어 1556년 인도, 1584년 페루, 1590년 일본, 1602년 필리핀, 1639년 미국, 1640년에 이란까지 전파되었다.
책의 보급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우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당시 시작되고 있던 르네상스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게 되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들은 종교암흑기 중세 이전의 자유롭던 고전시대를 꿈꾸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책’은 소수의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식에서 소외되었던 대중을 위한 것이 되었다. 학문상의 활발한 토론도 활판 인쇄술의 도움으로 싹이 트기 시작했고, 이는 다시금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나아가 역사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쇄술의 발달 없이는 종교개혁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1517년,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활판 인쇄술에 힘입어 불과 2주 만에 전 유럽으로 파급되었다. 루터는 인쇄술을 가리켜 “복음 전파를 위해 신이 내리신 최대의 선물”이라고까지 극찬했다. 당시 인쇄술의 발달은 루터의 사상을 빠르게 지식인들에게 알릴 수 있었고 판화를 통해서 글을 모르는 농민들에게도 이해시킬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 성서 등 라틴어 성서의 인쇄에 이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를 비롯해서 각국의 언어로 성서가 금속 활자로 인쇄, 출판되어 대중에게 보급됨으로써 대중은 지금까지 카톨릭 교회가 이야기한 것들이 성경과 동떨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종교개혁을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출판물들이 생산되었고 종교개혁과 이에 반발한 카톨릭 교회의 반종교개혁이 팽팽히 맞서면서 이들 인쇄물은 정신적·정치적 투쟁의 도구, 선전·선동과 교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인쇄술에 의해 지식과 정보가 대량 복제되면서 대중들의 힘은 점점 커졌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쏟아져 나온 책과 여러 인쇄물을 접하며 이제 대중들은 지식이라는 권력을 지배층과 공유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시민혁명을 거쳐 근·현대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었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맥루한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구축된 도서문화의 세계를 ‘구텐베르크 은하계’라고 표현했다. 그 자신도 몰랐겠지만, 구텐베르크는 그의 발명을 통해 유럽과 온 세계를 ‘정보의 홍수’에 빠뜨렸고 인류는 오늘날까지 인쇄물이 제공하는 지식과 정보를 통해 사고하고, 토론하고, 요구하며 변혁을 꿈꾸어 왔다.
어떤 이는 컴퓨터와 정보통신 분야의 발전으로 미래에는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무너질 것이라고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바다’를 누비는 것을 보면 일면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서 무한히 지식과 정보를 섭렵한 ‘네티즌’이 ‘넷맹’ 위에 새로운 지식 권력층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구텐베르크는 지구촌의 역사를 이제까지도 바꾸고 있다. 교과서와 신문, 잡지, 그 외의 인쇄물들은 아직 건재하며 TV, 컴퓨터 등 새로운 미디어와 더불어 날마다 지식과 정보를 쏟아낸다. 과거보다 몇 갑절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는 이제 그 진위(眞僞)와 가치를 분별하는 것이 관건이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1455년 완성된 이 성서는 한 페이지가 42줄의 2단으로 이루어져 42행 성서라고 한다. 이 성서를 인쇄하기 위해 구텐베르크와 그의 직공들은 대·소문자와 약어, 복합문자와 마침표 인쇄를 위해 290개의 다른 활자를 만들었으며 활자 조판을 위해 적어도 10만 개의 활자를 주조했다.
그의 금속 활자는 납, 주석, 안티몬 등의 합금으로 이루어졌다. 녹여낸 합금을 정교하게 제작된 활자 몰드(주형)에 부어서 만드는 것이다. 주조된 활자는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상자에 보관했다가 한 페이지를 찍는 데 필요한 것들을 뽑아 작은 나무틀로 만든 조판막대 위에 올리고 조판막대가 꽉 차면 교정쇄 위에 올려 묶어서 조판형태로 정돈했다.
구텐베르크는 검은잉크, 테레핀과 린시드유를 혼합해서 번지지 않는 잉크를 조합했다. 붉은색의 표제나 제목, 붉은색 또는 금색 장식과 유색 삽화는 나중에 인쇄소 밖에서 수작업으로 처리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42행 성서는 모두 48부로 이 가운데 12부가 양피지에, 36부가 종이에 인쇄한 것이다.

출처 : 월간지구촌, 2001. 6

 

 

>> 바깥고리 : 오하네스 구텐베르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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