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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10-30
 제목  피의 일요일
 주제어  [러시아혁명] 10월선언 니콜라이2세 피의일요일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피의 일요일

 

1905년 1월 22일, 여느 때라면 성당에 갈 시간에 굶주림에 지친 노동자들이 황제에게 급료를 올려달라고 청원할 생각으로 성가를 부르며 눈길을 걸어 황궁으로 갔다. 청원서를 가지고 행진하는 대열은 점점 불어나 급기야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 행렬 앞에는 이콘과 황제의 초상이 게양되어 있었다. 그 행렬 선두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가폰 신부가 있었다. 브치로프의 공장에서 노동자 3명이 부당해고를 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 가폰 신부 아래 노동자가 결집하게 되었고, 이들이 황제에게 제출할 청원서를 들고 행진하게 된 것이다. 이 파업은 이미 1주일 전에 발생하여 계속되다가 이날 22일에는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직접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비상수단을 쓰게 된 것이다.

 

청원서 행렬은 오후 2시, 광장에 집결했다. 이 대열 앞에는 “병사들이여, 인민들을 쏘지 말아라”고 하는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막아선 황제의 군대는 대열을 향해 일제사격을 가했다. 뒤이어 대포도 여러 발 발사되었다. 이 일제사격으로 1천 명 이상의 노동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 행렬에 대해 마지막으로 황제의 기병대가 돌진하여 칼을 휘둘렀다. 이리하여 거룩한 주일은 피의 일요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모스크바, 사라토프, 바르샤바 등지에서 노동자들은 연일 시위에 나섰다. 그 결과 66개 도시의 44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항의의 표시로 작업을 중단했다. 이때까지 니콜라이 2세가 이 사건이 얼마나 큰 파정을 가져올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사이, 10월에는 대규모의 파업이 발생하여 러시아 경제는 파탄에 빠지게 되었다.

 

 

10월선언 발표

 

1905년 10월 30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10월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차르 체제가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출범했다. 1905년 일련의 혁명적 사태에 위협을 느낀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군사독재체제를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헌법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르게이 율리예비치 비테의 조언에 따라 10월선언이 공포되었다. 10월선언의 주요내용은 시민권(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참정권 확대, 두마(의회)의 창설 등이었다. 두마는 인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는 대의원들로 구성되며 법령승인의 권한을 부여받았다.

 

10월선언으로 반정부 세력을 약화시키고 혁명을 진압할 수 있었으나 정부는 선언의 약속들을 잠정적·형식적으로만 이행했다. 10월선언에 따라 1906년 4월 23일 러시아의 헌법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될 기본법이 선포되었다. 기본법은 두마에 양원을 마련하고 그중 하원만을 인민이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하도록 규정했다. 두마는 예산에 대해서 제한적인 감독권을 행사할 뿐 행정부서에 대한 통제권은 없었다. 시민권과 참정권 역시 공약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 목차고리 : 세계 > CIS(구 소련지역) >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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