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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10-02
 제목  훈춘사건(琿春事件)
 주제어  [일제]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2007년 훈춘입구일본군이 훈춘의 한인 교포와 독립운동가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

1920년 10월 2일 새벽 4시 일본군에게 매수된 장강호를 두목으로 하는 마적단이 훈춘을 습격했다. 이 사건은 일제가 간도지역의 조선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간도 출병의 구실이 되었다. 당시 간도는 3·1운동 이후 무장투쟁을 하는 독립지사들의 활동 무대였다. 이를 토벌하기 위해 일본은 마적단 두목을 매수해 상가를 약탈하고 훈춘의 일본영사관 분관에 방화하는 등 난동을 사주했다.

 

마적단 400여 명은 1920년 10월 2일 훈춘성을 습격, 중국병 70명과 한국독립군 7명을 살해하였다. 한편 또 다른 마적이 일본 영사관을 습격, 일본측의 피해는 사망 13명, 중상 11명, 경상 20여 명이었다.

 

이 사건을 구실로 일제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의 난동으로 덮어 씌우고 재만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미리 대기시켰던 나남사단(羅南師團)과 함북경찰부 파견대를 훈춘으로 출동시켜 마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한국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학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한민회(韓民會)와 독립단이 파괴되고 한인 교포 3,100명이 희생당했다. 일제가 의도했던 대로 이 사건 후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상실되고 간도지역의 조선인 독립운동이 크게 약화되었다.

 


 

“동아일보 장덕준 기자, 훈춘사건(琿春事件) 취재 중 日 경찰에 피살”

1920년 10월, 일본군이 마적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중국 지린 성(吉林省) 훈춘의 우리나라 교포와 독립 운동가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을 일명 ‘훈춘사건’이라 한다. 3.1반일시위운동 후 간도지방에는 수많은 한국의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이 결성한 독립군 부대는 일본의 관공서를 습격하고 친일분자들을 제거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20년대 들어 독립군의 활동이 더욱 활기를 띠자 일본 당국은 일거에 독립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중국 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명분을 만든다.

일본군은 중국 마적 두목과 내통, 훈춘을 공격할 것을 사주하여 그해 10월 2일 400여 명의 마적단이 훈춘성을 공격하게 한다. 마적단은 약속대로 오전 9시부터 4시간 동안 살인과 약탈을 자행, 중국인 70여 명, 조선인 7명, 수명의 일본인을 살해하고 비어 있던 일본공사관을 불태웠다. 일본군은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즉시 3개 사단을 출동시켜 심문 없이 무조건 잡아 일렬로 세운 후 총살하고 불태우는 등 대학살을 저질렀다.

이때 일본군은 한국인 민가와 학교는 물론 신문사와 교회를 불태웠다. 그 와중에 11월11일 ‘훈춘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파견된 동아일보 장덕준 기자가 살해되었다. 그해 10월부터 이듬해인 1921년 5월까지 토벌을 계속해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되고, 건물과 곡물이 불타는 등 커다란 재산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때 북간도에서 살해된 한국인의 수는 3,600여 명에 달한다. 이 만행을 통해 일본이 의도했던 대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상실되었고 간도지역의 조선인 독립운동이 크게 약화되었다.

출처 : 뉴스한국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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