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치가·언론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를 지냈다. 클레망소는 1871년 급진공화당원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1902년 4월에는 바르 지역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06년 내무부장관으로 입각했고 1906~09년 총리를 역임했다.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클레망소는 즉각 행동에 나서 전프랑스 국민에게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1913년 발간된 일간지 <자유로운 인간 L'Homme Libre>을 통해 맹렬하게 반전(反戰)·반군(反軍)주의자, 사회주의자, 과격한 노동운동가 등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한편 군비 확장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던 1917년부터는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레이몽 푸앵카레의 요청에 의해 전시내각(1917~20)을 이끌게 되었다. 클레망소는 이 기간동안 냉정하고 끈덕지게 전쟁을 수행해 '승리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후에는 파리 평화회의 의장으로 베르사유 조약의 골격을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1894~1906년에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 때는 자신이 관여하는 언론지 <정의 La Justice>·<새벽 L'Aurore>에 드레퓌스를 지지하는 기사를 싣는 한편 정부를 맹렬하게 공격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