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9-23
 제목  최자실(1915~1989) 목사
 주제어  [여의도순복음교회]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15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2살 때 우연히 친구와 함께 천막 부흥성회를 하는 이 성봉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여 옆집의 곰배팔이 아저씨가 안수기도 받고 낫는 것을 보고 밤낮 머리 아프다고 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참석하여 이 목사님의 안수를 통해 어머니의 두통을 고침 받게 된다. 이로서 그녀와 모친은 예수를 열심히 믿게 되었다.

그녀는 이후 1935년 평양 도립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압록강 국경지대 간호원과 신의주 도립병원 산파주임으로 근무하면서 한경직 목사님이 담임하던 신의주 제2교회에 출석하며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그녀의 모친은 권사로 계셨다. 그녀는 해방 후 월남하여 서울에서 성냥공장, 비누공장, 샷틀 제조업 등 활발한 사업을 했으나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자 어머니와 장녀를 잃었고 남편에까지 소박을 맞고 사업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극약을 산 다음 삼각산 골짜기로 올라갔다. 개울가에서 약봉지를 꺼내 먹으려는 순간 돌개바람이 불어 약은 물 속으로 빠졌다. 이제 그녀는 동굴 속에서 굶어 죽으려고 6일을 버티다가 정말 죽겠다 싶어 산밑으로 내려가는데 30년 전 헤어졌던 친구를 마나 자초지종을 얘기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성령 받으라고 충고를 해주면서 바로 산 너머에 열리는 부흥회로 인도했다.

그 날 밤 기적적으로 바로 30년 만에 다시 이성봉 목사님의 설교를 거기서 듣고 소, 돼지같이 살아온 지난날을 밤새도록 회개하자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게 되었다. 이목사님과 상담하니 순복음 신학교에 가라는 조언을 듣고 1956년 9월 순복음신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조용기 학생을 만나게 된다. 20대 초반의 조용기 학생회장이 그녀에게 전도 부장직을 주어 그때부터 노방전도를 시작하였다.

1958년 신학교졸업과 함께 고아사업을 시작하려다가 또 한차례 매를 맞고 복음전도의 외길로 들어선다. 조용기 전도사와 함께 자신의 자택 거실에서 5명이 가정예배형태로 출발하여 공동묘지 곁에 세운 대조동 천막교회를 시작했다. 불과 3년 만에 크게 부흥하여 서대문으로 나와 1962년 순복음 중앙교회가 되었으며 1965년 조용기 목사를 사위로 맞게 된다.

그녀는 일본과 대만 등의 해외선교여행을 통해 복음을 증거했고 1966년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왔다. 1969년에 여의도 성전신축을 시작했으며 1972년 일본하나님의 성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73년 순복음 금식기도원(최자실 기념금식기도원)을 설립하여 최자실 하면 금식기도로 인식될 정도로 금식기도를 통해 성령세례 받고 신유와 문제해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곳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되었다. 1979년 성도 10만명 돌파, 81년 20만명, 85년 50만명으로 성장하였다. 그녀는 계속되는 해외선교여행을 통해 세계를 나의 교구로 삼고 복음을 전했으며 1989년 미국 L.A에서 집회를 마친 후 74세를 일기로 조용히 주님 품에 안겼다.

 

 

>> 목차고리 : 여의도순복음교회

>> 바깥고리 :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A-Z




  인기검색어
kcm  527686
설교  253456
교회  219316
아시아  170471
선교  166698
예수  150358
세계  137583
선교회  123880
사랑  119386
바울  118645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