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이다. 한성(漢城) 4대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으로, 남쪽에 있는 문이어서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숭례문은 1396년(태조 5) 1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9월에 준공하였다. 그뒤 1448년(세종 30) 지대가 낮아 볼품이 없고 풍수지리설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개축한 것이 바로 지금의 건물이며, 1479(성종 10)년에도 문루(門樓)가 기울어 다시 개축하였다. 원래 기단 양쪽은 한성의 성벽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1908년 도로를 내면서 헐어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특히 숭례문은 창건과 두 차례에 걸친 개축공사에 관여한 기술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건공사 때는 각화사(覺華寺)의 승려인 각희(覺希)가 맡아 진행하고, 1448년에는 대목(大木)으로 최건○(崔健○), 도석수(都石手)에는 신내행(申乃行) 등이 참여하였다. 1479년에는 대목으로는 어모장군(禦侮將軍)의 품계를 가진 종9품의 무관 등이 공사를 담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1962년 홍예와 문루를 완전히 해체하여 수리하였었다. 그러나 2008년 2월 10일에 일어난 화재로 2층짜리 누각이 소실되고 석축만 남았다.
 
숭례문은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건물인 동시에 전형적인 다포식(多包式)의 건물로서 15세기의 목조건축 수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건물이다. 한편, 숭례문(崇禮門)이란 현판의 글씨를 쓴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지봉유설≫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개 현판의 글씨는 가로로 쓰는데 비하여 이 현판은 세로로 쓰여있다. 이는 '숭례'라는 두 글자가 불꽃을 의미하므로 경복궁의 맞은편에 있는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판을 세로로 쓴 것이라고 전한다. 최근 수리를 통해 후대에 첨가된 공포의 일부와 포벽 등을 제거하여 모습을 단장하였으며 지붕모양도 지금과 같은 우진각지붕이 아니라 팔작지붕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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