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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8-23
 제목  허균(許筠, 1569(선조 2)∼1618(광해군 10) )
 주제어  [조선인물]
 자료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사인물정보시스템 참고  성경본문  
 내용

강원도 강릉에 있는 허균의 생가.조선 중기의 문신. 소설가. 1569(선조 2)∼1618(광해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 본관은 양천(陽川). 아버지가 허엽(許曄), 누이가 시문(詩文)에 뛰어난 천재로 알려진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으로 유명한 문장가 가문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고,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597년 문과중시에 장원급제, 이듬해 황해도사가 되었다가 서울의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형조정랑(刑曹正郞)을 지내고 1602년 사예(司藝)•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전적(典籍)•수안군수(遂安郡守)를 역임하였다. 1606년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을 영접하여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610년(광해군 2)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도가 되었고, 천주교 12단(端)을 얻어 왔다. 이해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친척을 부정으로 급제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후 태인(泰仁)에서 창작에 전념하였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평소 친교가 있던 박응서(朴應犀) 등이 처형되자 신변의 안전을 위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여 예조참의•호조참의•승문원부제조(承文院副提調)를 지냈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얻어 이 해 좌참찬(左參贊)으로 승진하고, 광해군 폭정에 항거하여 이듬해 하인준(河仁俊)•김우성(金宇成) 등과 국가변란을 기도한 것이 탄로나 처형되었다. 허균은 시문(詩文)에 뛰어난 천재이며, 출중한 재능을 지녔으나 서얼차별의 벽에 걸려 불우한 일생을 보내던 스승 이달(李達)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발견한 후, 이를 계기로 사대부 계통의 문인보다는 서얼출신 문인들과 어울렸다. 이로써 인간주의적•자유주의적 사상을 키우면서 당시 사회제도의 모순을 과감히 비판하였으며, 불교중생제도(衆生濟度) 사상, 서학(西學)과 양명좌파(陽明左派)사상 등을 받아들여 급진적 개혁사상을 갖게 되었다.

 

1614년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중국>중국에 다녀왔으며, 그 이듬해에는 동지 겸 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중국>중국에 다녀왔다. 이 두 차례의 사행에서 많은 명나라 학자들과 사귀었으며 귀국할 때 《태평광기 太平廣記》를 비롯하여 많은 책을 가지고 왔는데, 그 가운데에는 천주교 기도문과 지도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
1617년 좌참찬이 되었으며 폐모론을 주장하다가 폐모를 반대하던 영의정 기자헌(奇自獻)과 사이가 벌어지고 기자헌길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 아들 기준격(奇俊格)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허균의 죄상을 폭로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허균도 상소를 올려 변명하였다.
1618년 8월 남대문에 격문을 붙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허균의 심복 현응민(玄應旻)이 붙였다는 것이 탄로났으며 허균기준격을 대질 심문시킨 끝에 역적모의를 하였다 하여 허균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그가 창작한 국문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은 당대 봉건체제의 모순과 부당성을 예리하게 폭로하고 민중의 이념을 반영한 조선조의 대표적 걸작으로 국문소설의 효시가 되었다. 이 외에도 한문단편인 <손곡산인전(孫谷山人傳)>•<장산인전(張山人傳)>•<엄처사전(嚴處士傳)>•<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장생전(張生傳)> 등을 창작하였다. 손곡산인은 뛰어난 시인으로서, 장산인은 의업(醫業)을 하지만 신술로서, 엄처사는 탁월한 선비로서, 남궁두는 아전이나 과거를 보아 이름을 떨치고 지상선(地上仙)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성격은 선술을 통하여 세계 개혁의 큰 뜻을 실현시키려는 일사적(逸士的)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시•비평에도 안목이 높아 ≪국조시산(國朝詩刪)≫이란 시선집을 편찬하고, ≪성수시화(惺叟詩話)≫라는 비평작품을 썼다. 이외의 저술로는 ≪교산시화(蛟山詩話)≫•≪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학산초담(鶴山樵談)≫•≪도문대작(屠門大爵)≫•≪한년참기(旱年讖記)≫•≪한정록(閑情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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