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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8-01
 제목  김용기(1909.9.5-1988.8.1)
 주제어  가나안농군학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09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광동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봉안교회 및 이상촌을 건설하였고 독립운동과 농촌운동을 전개하였다. 조국이 해방된 이후에도 메마른 황무지를 개척하고 민중의 의식을 계몽하는 일을 해오던 김용기 선생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개척자적 정신을 심어주고 또한 함께 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고 1962년 경기도 광주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후 더욱 많은 교육의 확대를 위해 강원도 원주에 지금의 제2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 하게 되었다.

이후, 가나안농군학교는 김용기 선생의 사상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생활개혁 및 농업지도교육을 하였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조국의 경제발전과 국가적 정신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속에서 "새마을운동"이 태동 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가나안농군학교와 김용기 선생이 정신적 기틀을 마련 하였다.

김용기 선생이 남긴 복민사상을 통해 오늘날 발달된 과학문명속에 감추어진 역기능인 정신문화의 빈곤에 대한 답을 주고자 모두가 함께 잘살기 위한 복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78년 필리핀 쎄이비어종합대학교에서 45주년 개교 기념 특별행사의 하나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1월 15일 발행된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독립유공자 수록 중 일제36년 동안 독립 투쟁사에 한 분으로 수록되었다. 1988년 80세의 일기로 소천혔으며 8월에 국민훈장무궁화장 수상하였다.

 


가나안 농군 학교 김용기 장로  

이승종 목사


   이 분의 삶은 한마디로 감동입니다.  삶의 뜻 세움과 실제 살아온 길이 그렇습니다.  그의 인격의 토대는 기독교 신앙이며, 철저한 개척 정신과 말씀의 실천이었습니다.  평생을 가꾸어 온 ‘가나안 농군 학교’는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 한국 정신의 용광로였습니다.

   초등 학교 시절 우연히도 그 분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충남 서산의 해미 감리 교회에서의 사경회였습니다.  그 때는 검정 고무신에 재건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온화한 모습이었습니다.  예배당 마루 바닥에 앉아서 밤 늦도록 얼어 붙은 것처럼 귀를 귀울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라가 제 자리를 찾아야 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후에 신학교에 입학해서 가나안 농군 학교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실제, 가나안 농군 학교는 농부들 만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5.16 군사 혁명 당시의 막강한 리더였던 육군 소장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그곳을 불시 방문을 했습니다.  그 때 군장성 30여명이 함께 했습니다.  점심으로 감자와 빵이 나와 먹으려 할 때 김용기 장로님이 막아 섰습니다.  ‘여기서는 내가 대통령이니 내 말대로 따라야 한다’며 조국과 식사를 위한 감사 기도를 간절히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라는 구호를 외치고서야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이 기도의 순간에 함께했던 장성 중에 여러 명이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의장은 그 때 받은 깊은 충격과 감동의 여파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혁명의 구체적인 의지와 실천 항목을 가나안 농군 학교에서 얻은 셈입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새마을 운동 관계자들이 김 장로님의 구체적인 조언을 받았다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태국의 ‘청백리’로 불리는 잠롱 시장도 가나안 농군 학교 출신입니다.  ‘밥 한 공기에는 4천 알의 쌀이 들어 있고, 그것을 먹으려면 4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는 김 장로의 생활 철학에 감복을 하고 돌아 가서 국민의 편에서 정치를 합니다.  ‘흙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땀 흘려 일하는 자의 웃음과 땀은 모든 이에게 희망의 원천이 되는 강한 생명력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954년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의 박토를 개간하여 첫 농군 학교를 세운 것을 비롯해 다른 곳에도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분의 거침없는 외침이 있다면, 의식 혁명, 생활 혁명, 인격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의식과 정신이 새롭게 되어야 나라와 국민이 올바르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로, 봉사, 희생의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인격을 도야하며 민족 뿌리의 정신을 함양하고 사회 지도자가 육성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를 함축한다면 복민정신(福民精神)입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한 손에는 호미를 든 채 황폐한 땅을 일구어 낸 그 분의 정신이 이 시대에도 절실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모두가 제자리, 제 정신이 아닌 듯싶은 세태와 궤도를 이탈한 기관차처럼 난폭한 탐욕과 무질서가 횡횡합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배고픔이 아니라 정신적인 황폐화 현상입니다.  땀 방울의 소중함, 삶의 겸허함과 부지런함을 저버린 채 일하기 싫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 배부름이 영혼의 핍절과 정신적 공황을 초래했습니다.  

   가나안 농군 학교는 엄격한 규율과 질서의 적용으로서 입교 자체가 신용이고 신뢰의 과정입니다.  김 장로님은 진실 앞에서 가장 낮게 엎드리는, 그래서 고개 들어 무서운 것이 없는 지도자였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의 삶의 철학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한 신앙 정신입니다.  그리고 자기 살을 깎듯이 근면 정신으로 자신을 철저히 다스렸습니다.  감자 껍질 조차도 깨끗이 닦아서 먹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민족 사랑, 복민(福民)의 정신입니다. 삶으로 보여준 스승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려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 참고고리 : 가나안농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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