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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단체  작성일  2008-05-16
 제목  전주서문교회(설립일 1893년)
 주제어  레이놀즈 선교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전주 서문교회 1905년도 예배당전주서문교회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3가 123번지(560-053)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교회로 1893년 늦은 봄 미국 남장로 교회 선교회 레이놀즈 선교사의 파송을 받은 정해원씨가 전주에 도착하여 같은 해 6월 완산 밑 은송리에 초가 1동을 예배처소로 마련하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여 시작된 호남의 최초 교회이다.

 

선교사들 중 가장 먼저 호남 땅을 밟은 선교사는 호주 장로회에서 파송을 받고 온 데이비스(J. Henry Davis) 목사였다. 그는 1889년 서울에서 선교지인 부산으로 향해 가던 도중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경유하였다. 1892년 말에는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인 레이널즈와 미국의 북장로회 선교사인 마펫이 선교 지역 책정 문제를 앞에 두고 호남의 초입인 충남 공주 지방까지 말을 타고 답사한 일이 있었다. 1893년 장로회 미션 공의회에서는 예양 협정(Commity Agreements)에 의해 선교 지역을 배정했는 데, 호남 지방인 충청도와 전라도는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의 선교 지역으로 지정(指定)되었다. 그 당시 호남에는 동학교도들의 움직임으로 민심이 흉흉했고 선교사들은 민심의 동향과 지역 사정에 밝지 못했다. 이에 미국 공사관의 만류로 선교사들이 나서기보다는 믿을 수 있는 한국인을 선임해 파송하기로 했다. 그래서 레이놀즈 선교사의 어학 선생이면서 자신들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던 정해원(鄭海元)을 선정했다. 전주에 도착한 정해원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준비 차 온 사람임을 밝히며 부근의 냇가에 있는 저잣거리에 돌아 다니며 민심을 살피는 일과 장터 전도를 하였다. 


   그는 주일이 되면 자기의 은송리 집에서 그간 사귀어 온 사람들에게 복음의 도리를 전하고 예배드리며 전주에 처음으로 온 신자답게 생활했다. 1897년에 예수를 구주로 확실히 믿기로 작정하고 세례 받기를 원하는 남자 3명과 여자 4명을 문답한 결과, 남자 2명과 여자 3명이 문답에 합격하였다. 그래서 그 해 7월 17일 주일에 레이널즈 목사의 집례로 남자 2명과 여자 3명(김내윤, 김창국과 여자 강씨, 임씨, 김씨)이 세례를 받았다. 이로써 ‘전주 교회(교회 명칭)’가 한국인 세례 교인이 있는 교회로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또한 8월 1일 주일에는 전주 교회에서 처음으로 성찬 예식을 레이널즈 목사의 집례로 거행했다. 세례 문답에는 합격했으나 시골에서 멀리 사는 관계로 7월 17일 세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전씨는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도 참예했다. 그 날 세례식에서는 7월 17일 세례를 받은 바 있는 김씨가 두 살 되는 딸 보영(寶榮)을 안고 와서 자신의 신앙 고백에 따라 유아 세례를 받으므로 그 아이는 전주에서 처음으로 유아 세례를 받은 교인이 되었다.

 

  이 무렵(1897년 9월) 전주 선교부는 많이 발전하여, 9월 5일 주일에는 교회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 집회시 예배 인도자 레이놀즈는 선교사들 중에 우리 나라 말을 가장 잘 했고 유식한 말로 설교하였다. 이 날 예배 후에는 감동을 받은 교인들이 자진해 예배당 개수(改修)를 위해 특별 연보(헌금) 할 것을 작정했으므로 9월 7일 화요일부터 해리슨이 살고 있으며 예배 처소로 겸하고 있는 집을 앞으로는 예배당으로 전용할 수 있게 방을 넓히고 인원을 많이 수용하도록 개수했다. 이에 소요되는 경비를 교인들이 힘써 연보하여 충당하였다. 수리를 마친 9월 19일 주일에는 개수된 예배당에 모여서 기쁨으로 감사 예배를 드렸다. 이때부터 이 건물은 전주 교회 예배당으로 불렸다. 교인은 여자들 외에 남자가 20명 가량이 출석했다.

 

 

약사

 

1893년 늦은 봄......
미국 남장로 교회 선교회 레이놀즈 선교사의 파송을 받은 정해원씨가 전주에 도착하여
동년 6월 완산 밑 은송리에 초가 1동을 예배처소로 마련하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니 본 교회의 설비의 시초요, 호남의 최초 교회가 되다.
그 후 선교사들이 계속 도착하여 선교를 전개하여
1897년 7월 5명에게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다.
1905년 9월 서문밖 현 위치로 옮겨 780평 기지를 구입하고 건평 50평의
벽돌 기와지붕 예배당을 건축하다.
1908년 8월에는 김필수씨를 장로로 장립하니 비로소 당회가 조직되다.
1908년 12월에 전북지역 선교를 하다 별세한 전킨 선교사를 기념하는 종각을 세우고
1911년 4월 교세 확장으로 에배당을 ㄱ 자형으로 32평을 증축하여 89평의
큰 예배당을 이룩하다.
1912년 한국인 담임목사를 청빙하여 자주적으로 발전하던 중
서문안 여자소학교를 설립하고
1920년대에 여자야학회, 전주유치원, 숭덕성경학교 등을 개설하다.
1935년 다시 교세 확장을 현 위치에 평면 115평 연건평 230평의
2층 벽돌집 예배당을 신축하다.
1945년 민족 해방을 맞이하여 일정의 억압을 떨쳐 버리고 발전하여
전주서문교회1971∼74년에 걸쳐 평면 100평 연건평 320평에 지하실과 지상 3층의 교육관을
건축하고,
1981년 기존 예배당이 노후되어 평면 300평 연건평 790평 지하 1층
지상 2층의 현재 예배당을 3년에 걸쳐 신축하고
1983년에 교회창립 90주년 기념식과 헌당식을 거행하다.
1990년에는 교회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교육시설의 확충과
사회봉사 사업전개를 위하여 평면 120평 연건평 705평 지하 1층 지상 5층의
[100주년 기념관]을 건축키로 하여 1992년에 완공한 후
1993년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선교 2세기에 진입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에 신령하고 능력 있게 발전하고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4년 12월에 부임하신 김승연 담임 목사를 통해 올바살운동(올바르게 살기운동)과
9양 전도법, 자체 공과 제작, KOSTE(유럽유학생선교회) 등을 통해 연일 부흥을
경험하고 있으며,
2007년 6월 현재 교회는 설립 114주년을 맞이하여 평균 주일 2000명이 출석하여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다.

전주서문교회는 해외 후원 선교사 22명, 후원 미자립 교회는 17개,
기관 후원 단체는 22개, 일반 후원 단체는 12개, 은퇴 목사 5명을 후원하고 있다.

 

교회분립

 

1905년 남문교회 분립
1907년 중인교회 분립
1926년 완산교회 분립
1926년 태평리교회(용흥리)분립
1930년 중앙교회 분립
1934년 동부교회 분립
1934년 서신교회 분립
1944년 금암교회 분립

1949년 화산교회 분립
1949년 중산교회 분립
1950년 태평교회 분립
1956년 남성교회 분립
1979년 남원중부교회 복구설립
1986년 세심교회 분립
1986년 섬진교회 개척
1993년 송산교회 개척

 

>> 목차고리 : 단체 > 교회 > 한국의 장로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 바깥고리 : 전주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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