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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1993-03-01
 제목  [최신 구약 개론] 예레미야
 주제어  
 자료출처  레이몬드 딜러드&트렘퍼 롱맨 공저, 서울;크리스찬다이제스트,1993)을 요약 / 강화구 목사  성경본문  
 내용 예레미야서는 선지서들 중에서 가장 큰 책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약의 인물 중 가장 파악하기 쉬운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에 대해 풍부한 역사적 전기적 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선지자 자신이 스스로의 성격을 자신의 수많은 기도들 속에서 드러내고 있음을 본다. 예레미야는 앗시리아의 몰락과 바벨론 제국의 발흥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사역했다. 또한 유다의 마지막 네 왕들의 시대에 나라의 종말에 대해서 에언하며, 실제로 예레미야는 직접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도하기도 했다.

역사적 배경

정치적인 상황

거대한 앗시리아 제국은 앗술바니팔의 죽음과 함께 찾아왔다. 통치를 받던 이집트와 바벨론 등이 다시 저들의 야망을 펼쳤으며, 메데의 노력으로 앗시리아는 멸망을 당한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멸망 중에 불거져나온 다른 제국들의 세력 재편성 과정에서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유다 왕국도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갈그미스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그 이후에 페르시아의 발흥까지 전세계는 바벨론의 손아래 들어갔다.

유다에서는 요시아에 의해서 발견된 율법책을 따라서 개혁을 시작했고, 이집트와 바벨론의 세력 확장의틈바구니에서 요시아는 이집트의 느고에게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때로부터 여러 왕들이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를 오가며 추종하며 살아남기 작전을 벌였으나, 결국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반기를 든 대가로 바벨론에 의해 586년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주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인 야망의 부활과 결강 속에서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그 격동의 시절을 목도하였다. 예레미야서는 국수주의, 편집증, 친 바벨론계와 친 이집트계의 갈등,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투쟁등을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세월 속에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은 것이다.

선지자 자신

선지자의 활동 시기는 요시야 13년(주전627경)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고, 예루살렘 멸망 후에 이집트로 떠나기까지 계속되었다. 그의 사망 연대는 추측하기가 어렵다. 예레미야의 나이 문제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요시야 13년을 예레미야의 탄생연대로 늦추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경우 요시야의 개혁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해답이 제시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는 8세때인 609년에 사역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심각한 본문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앗시리아에 대한 언급들(2:18)이나, 요시야 시대에 받은 신탁(3:6-14)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성인이며, 사역중인 선지자에게 임하셨기 때문에 아이였던 예레미야에게 적용되기 보다는 오히려 도입문구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2,3마일 정도 떨어진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예레미야는 자기 시대의 정치, 종교적 권세들에 저항했으며, 그를 이은 다른 많은 선지자들처럼 그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 때문에 박해를 당했으며, 성전의 유사장에 의해 매를 맞고 감금을 당했으며, 배반하고 선통하고 탈주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자신에 대한 음해를 받았으며, 구덩이에 갇히고 시위대 뜰에 갇힘을 당했다.

역사 비평학적인 접근 방법들

예레미야서의 어려운 점은 본문들이 두서없이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특정한 연대도 주어져있지 않으며, 파악하기 어려운 근거들에 의해 배열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본문이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지 않으며, 어떤 일관된 구도를 따르는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역사비평학계에서의 예레미야서에 대한 논의는 인간 예레미야와 그의 이름을 가진 책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별로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레미야서에서 예레미야의 것으로 보이는 소수의 본문들을 찾아내었으나, 다른 학자들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예레미야서의 대부분은 바룩이 기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레미야의 심판에 대한 신탁들은 회개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항상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의 심판의 메시지와 회개의 메시지와 회복의 메시지 간의 관계는 신학적으로 아주 복잡 다단하기 때문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예레미야서의 본문

예레미야서는 본문비평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70인경 예레미야서에는 맛소라 본문에 있는 단어중 약 2700여개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문의 순서도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 두 본문 간의 차이는 단순히 통상적인 사본 전승상의 차이(필사자의 실수 등)만은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 책의 형성 과정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예레미야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판본이 맛소라와 70인경을 통해서 각각 보존되었으며, 또한 쿰란의 도서관에서도 병행해서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엇핏 보기에 보다 짧은 본문이 더 고대의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대의 필사가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을 추가하거나, 다듬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70인경의 예레미야서가 구약의 다른 책들보다 더 맛소라 본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 차이를 과장해서는 안된다. 그 차이는 대부분 암시된 부분을 설명하거나, 명백히 하기 위해서 변화가 가해진 경우들이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분석

예레미야서의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의 본문이 알기쉽게 배열되거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 전체의 일관성 있는 구조조차도 주석가들의 공통된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틀을 만들 수 있는데, 가령 1:1-24:13절은 유다 및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선언들로서 하나의 모음집일 가능성이 있다. 25:1-3에서 선지자는 1장에 기록된 자신의 사역이 시작된 때를 다시 언급하는등 몇가지 사항들은 1장과 25:1-13절이 한 커다란 부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수미쌍괄식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30-33장은 또한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우는 예가 자주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미래 회복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41-51장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신탁들의 모음집을 형성하고 있다. 70인경에서 이 부분은 25:13절 바로 뒤에 나오고 있다. 이 세 개의 대규모 모음집 외에 두 개의 문헌이 더 들어있다. 26-29장과 34-35장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대개 예레미야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전기적 성격의 네러티브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예레미야서는 다수의 상징적인 행위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예레미야 및 기타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이러한 상징적인 행위들은 그들의 설교의 한 부분이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효과적인 말씀들이었다.

신학적인 메시지

예레미야의 신학은 이 선지자가 메신저로서 지정학적 종교적 상황들 속에서 만난 예루살렘의 시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형성되어진 것이다. 아래는 다양한 설교들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예레미야의 하나님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서 절대적인 주권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그는 우주의 창조주였으며, 이 세상에 대해서 심판을 베푸시는 분이셨따. 이방 나라들에 대한 선지자의 신탁들이 바로 예레미야가 가졌던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의 확신이었다. 예레미야는 또한 이스라엘의 죄와 악을 크게 강조함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님은 인내심이 많으시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백성과 언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독특한 지위는 예레미야에 의해서 풍부한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난다(첫 열매, 참 종자, 귀한 포도나무, 신부, 양 무리, 포도원, 산업 등).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나라였으며,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도성이 난공불락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예레미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는 자신이 모세로부터 이어지는 선지자들의 반열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예레미야와 모세

예레미야서에는 신명기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학자들은 예레미야란 사람 자체가 예레미야서에서 일종의 제2의 모세로 그려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모세가 선지자적인 중보자였던 것처럼, 지금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깊은 기도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런 중보기도를 하지 말도록 명하셨다. 심판의 확실성 때문이다. 모세는 자신의 중보기도로 민족을 구했지만, 예레미야는 이 책읨을 더 이상 감당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한 모세는 애굽에서 출애굽 시켰지만, 예레미야는 역애으로 애굽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나라의 역사가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갔음을 보게 된다.

미래를 향한 소망

예레미야가 자기 사촌의 땅을 구입한 것은 머지않아 돌아올 것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포로생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비록 포로생활의 기간이 짧지 않고 길기는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아직도 은혜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외쳤다(29:11). 이제 하나님은 돌판이 아니라 마음 판에 율법을 세우실 것이다. 이렇게 예레미야는 미래의 소망과 함께 미래의 메시야적 소망에 대해서도 표현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스가랴서가 이런 예레미야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약으로의 접근

신약에 인용되고 있는 예레미야서는 약 40여군데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바벨론 멸망과 관련해서 계시록에 나오고 있다. 또한 신약의 성도들에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며 커다란 슬픔에 빠진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 윙클은 마23:29-34와 렘7,26장간에 많은 유사성이 있음도 발견했다. 사람들이 예레미야와 예수님을 연결시켜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마 예레미야와 예수님 양자 모두가 성전 및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심판을 선포했기 때문일 것이다.

>> 목차고리 : 신학 > 최신 구약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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