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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단체  작성일  2008-04-03
 제목  장대현교회(1893)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장대현교회는 마포삼열선교사에 의해 1893년 설립된 평안도 최초의 교회로서 평안도 지역 모교회였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이 교회를 평양중앙교회라고 불렀다. 1901년 당시 이 교회 교인은 1200명에 달했다. 후일 이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회가 남문밖교회(1903), 창동교회(1905), 산정현교회(1906), 서문밖교회(1909) 등이다. 이런 점을 보면 장대현교회는 평양의 중심 되는 교회였다.

 

한국인 최초의 목사 7인중에 하나인 길선주는 1902년에는 장대현교회와, 황해도 및 평안도의 도조사(道助事)가 되었다. 보다 직접적으로 목회자가 되고자 했던 길선주는 1903년에는 평양신학교 입학하였고, 장대현교회 장로이자 전도사로서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중심은 당시 장대현(장대재 라고도 함)교회였다. 부흥운동은 1907년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부흥사경회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과 같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와 성도들의 회개로 나타났다.

1월 2일부터 열린 평안남도 부흥사경회 마지막 날인 15일. 길선주 목사(당시 장대현교회 장로)는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라며 회개했고 이어 온 회중이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부흥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09년 백만인구령운동도 평양대부흥을 계기로 일어난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한국교회는 3배 이상 증가했으며 부흥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외국 언론들은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대서특필했다. 뉴욕트리뷴은 “지금 기독교가 한국의 품격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으며 존 모트 박사는 “한국교회가 이만큼의 속도로 계속 성장한다면 한국은 근대선교 역사상 완전히 복음화된 유일한 비기독교국이 될 것”이라고 기록했다.

장대현교회 예배당은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장대현교회가 위치한 장대재 언덕은 평양 중심지에 있어서 평양주민들이 모여들던 영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곳은 평양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황해도까지 보이는 장소다.

 

 

>> 목차고리 : 단체교단 >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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