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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3-13
 제목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3.14–1955.4.18)
 주제어  [미국] [물리학자] [과학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독일의 물리학자.

20세기초의 창조성이 뛰어난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20세기초 15년 동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를 단언하고 공간·시간·중력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한 일련의 이론들을 내놓았다. 그의 상대성 원리와 중력에 관한 이론들은 뉴턴 물리학을 넘어서는 심오한 진전이었고 과학적 탐구와 철학적 탐구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열정적 감각'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명성 덕택으로 평화주의·자유주의·시오니즘과 같은 대의를 지지하는 데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이상주의적인 사람이 물질 입자가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에너지-질량 방정식 가설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파괴적인 무기인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창조를 증명했다.

 

독일 뷔르템베르크 울름에서 1879년 3월 14일에 전기 공장 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브리네는 매주 교회에 나가는 가톨릭 신자였으며, 집안에도 청동으로 만든 십자고상이 있었다. 한살때 아버지의 사업부진으로 대대로 살던 울름을 떠나, 뮌헨에 이사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인슈타인은 유럽인들의 뿌리깊은 반유대주의로 인해 상처받았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는 가톨릭계 학교였는데, 교사가 수업시간에 대못을 보여주며,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유대인 아인슈타인이 존경받는 과학자가 된 후에도 그를 괴롭혔다.

 

그의 가족은 사업부진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 건너갔다. 독일 뮌헨과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김나지움에 진학했으나, 군국주의의 영향으로 자유가 없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신경쇠약으로 공부를 쉬어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자, 17세의 아인슈타인은 "다시는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면서 학교를 떠났다. 이 후 독학으로 공부하여 스위스의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에 응시하였으나 낙방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수학 성적을 눈여겨 본 학장의 배려로 1년간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나서 결국 연방공과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1900년 봄, 학교를 졸업한 후에 스위스 시민이 되었고 2개월간 수학교사로 일한 후에 베른에 있는 스위스 특허 사무소 심사관으로 채용되었다. 새로이 안정을 찾게 되면서 1903년 대학시절의 애인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했다. 1905년초에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유명한 월간 학술지〈물리학 연보 Annalen der Physik〉에〈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 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이라는 논문을 냈는데, 이 논문으로 나중에 취리히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 해의〈물리학 연보〉에 4개의 더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고 이는 인간의 우주에 대한 견해를 영구히 바꾸어버렸다.

 

이중에서 첫번째 논문인〈정지 액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입자들의 (열의 분자운동론에 의한) 운동에 대하여 Über die von der molekularkinetischen Theorie der Wärme geforderte Bewegung von in ruhenden Flüssigkeiten suspendierten Teilchen〉는 브라운 운동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빛의 발생과 변화에 관련된 발견에 도움이 되는 견해에 대하여 Über einen die Erzeugung und Verwandlung des Lichtes betreffenden heuristischen Gesichtspunkt〉에서 빛은 파동적 작용에 더하여 입자에만 고유하게 나타나는 일정한 성질들을 보여주는 개별적 양자(量子:후에 광자로 불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했다. 그는 이 한 가지 가정으로 빛 이론에 혁명을 일으켰고 여러 현상들 가운데서 광전효과(光電效果)라고 하는, 빛을 비추었을 때 일어나는 몇몇 고체로부터의 전자(電子) 방출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에 처음으로 실렸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 법칙이 똑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표현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그의 4번째 논문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Ist die Trägheit eines Körpers von seinem Energieinhalt abhängig〉를 썼다. 이 논문에서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를 확립했는데, 이에 따르면 어떤 양의 물질이 갖는 에너지는 그 물질의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 즉 E=mc2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알려짐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유럽의 저명한 물리학자 대열에 서게 되었다. 그는 중력 현상을 새로 포함시키려고 이론을 계속 발전시켰다. 특허사무소를 떠나서 처음에는 스위스에서, 그리고 잠시 프라하의 독일대학교에서 정교수로 있었으며, 1912년 겨울 취리히의 연방공과대학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때를 결혼생활에 만족했고 어린 두 아들 한스·에트바르트와 즐거웠던 행복한 시절로 회상했다.

 

1914년 4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서 자리를 얻었는데, 아카데미 당국은 아인슈타인이 때때로 베를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연구를 계속하도록 허가해주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헤어짐으로 몇 해 뒤에 아인슈타인은 이혼하게 되었다. 그는 전쟁을 혐오했고 일반적으로 순종적인 학자사회에서 독일 군국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자가 되었으나,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는 데 주로 열중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1916년〈물리학 연보〉에〈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Die Grundlagen de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로 출판되었다. 이 가설의 핵심은 중력이, 뉴턴이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힘이 아니라 시공연속체 속의 질량의 존재에 의해 생긴 굽어진 장(場)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는 별빛이 태양 가까이를 지날 때 별빛의 휘어짐에 의해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가 있는 것이었는데, 별빛은 개기 일식 동안에만 볼 수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2배의 빛의 휘어짐을 예측했다.

그의 새로운 방정식들은 또한 수성의 근일점(近日點)의 당혹스러운 불규칙성(약간의 이동)을 최초로 설명해주었고, 강한 중력장 속의 별들이 약한 장의 별들이 내는 스펙트럼보다 적색에 더 가까운 스펙트럼을 내는 이유를 증명했다. 아인슈타인은 전쟁이 끝나는 것과 일식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그의 이론이 시험될 기회를 기다리면서, 점차 평화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직전까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양심적 병역거부, 무기개발반대,반나치운동등을 주장하였으며,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집권자가 된 후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독일을 떠났다. 이미 그의 재산은 나치 독일에 의해 압류된 뒤였으며, 시집간 그의 두 딸도 독일을 벗어나 인근 국가에서 살아야 했다. 1940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1955년부터 죽을 때까지(1955.4.18)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교수로 지냈다.

그의 미국 생활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미국내 반공주의자들로부터 공산주의자로 여겨졌다. 미국 하원내 반공정치인들은 아인슈타인을 "이 세상 최고의 사기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수년 전부터 공산주의자로 활약해 왔다"느니,"지금 그가 퍼뜨리고 있는 허튼 소리는 공산당 노선의 이행일 뿐"이라느니 비난했으며, 에드거 후버 FBI 국장(1924년-1972년까지 FBI 국장직 역임)은 아인슈타인의 사상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아인슈타인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34개 공산주의 단체와 연관된 골수 공산주의자로 묘사되어 있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독일

>> 연결고리 : 물리학자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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